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74)
제274화
“……겁?”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게 겁나시냐고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례한 년이네.”
“원래는 이러지 않는데, 자꾸 철없는 소리를 해대시니까.”
잠시 말을 멈춘 진송이가 마르실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반만 남은 사탕을 와그작, 깨물며 말을 이었다.
“있던 예의도 사라지더라고요. 책 보는 거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현실은 책 같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밖에 있어요. 정신 좀 차리세요.”
“…….”
“대체 고생을 얼마나 했다고 도망이나 치고, 숨고, 외면하는 건데요? 책임지는 게 두려우세요? 누가 죽어 나가는 게 두려우세요? 지키지 못할까 봐, 한계에 부딪칠까 봐?”
“…….”
“당신 개인 사정 따위 아무도 관심 없어요. 지나가던 개도 관심 없고 저기 날아다니는 비둘기도 관심 없어요. 그게 뭐든, 맞서 싸우고 부딪치고 더 성장할 생각을 해야지. 이건 무슨 인형 끌어안고 있는 애새끼도 아니고.”
마르실라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니까,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지?”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들으시네요.”
마르실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네가 시후 누나니까, 성향은 비슷하겠지. 날 이겨봐. 그럼 네 말대로 해 줄게. 대신 지면.”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빼며 좌우로 저었다.
“그럴 일 없으니까, 그 가정은 안 하셔도 돼요.”
“……와,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타이탄에서도 드물어. 너 같은 애는.”
히죽 웃었다.
그런 진송이에게 마르실라가 책을 들어 올렸다.
“내가 건방진 애들 몇 명 교육시켜 봐서 아는데, 넌 오늘 좀 많이 맞아야겠다.”
“그걸로 교정이 되겠어요? 제가?”
“될 거야 아마.”
그런데.
“왜 자꾸 말 까세요?”
“……뭐?”
진송이의 미간도 마르실라의 그것처럼 구겨져 있었다.
진심으로 진송이는 궁금했다.
“왜 자꾸 말 까냐고.”
“…….”
“내 비서실장으로 들어올 년이 벌써부터 위아래가 없네.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하…… 돌겠네. 이걸 패 죽일 수도 없고.”
할 말은 다 했다.
진송이의 주변에 광명구체가 떠오른다. 이어서 탈혼기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마르실라도 마찬가지였다.
마르실라의 탈혼기도 끓어오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이 홍염에 휩싸였다.
머지않아.
두 사람이 충돌한다.
* * *
지금 세상을 지배하던 괴물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진시후는, 사실 관심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별 #1000에 있었다.
가죽으로 무구를 제작하는 데에도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한정아는 바실리스크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코트를 주문했고 별로 생각 없던 진시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같은 종류의 코트를 주문했다.
외형은 전에 쓰던 드래곤 코트처럼 발마칸 형태를 원했는데,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일이다.
숨을 비롯한 최고의 제련사들이 보증한 시간이다.
본래라면 더 걸렸겠지만 진시후에게 보이는 성의 같은 느낌으로 빠르게 제작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숨은 제련사들을 이끌고 대장간으로 들어가 제작을 시작했고 진시후랑 한정아는 광장 한가운데서 대장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시후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뭐가요?”
“뭐겠어.”
“적합자가 되는 거요?”
“어.”
한정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건 이미 결심이 확고하다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음.
“모든 별의 한정아라는 존재를 전부 죽이는 게 쉬울 것 같지가 않은데, 도와줘?”
한정아가 고개를 젓는다.
“제 일이잖아요. 오직, 저 혼자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
“아무리 시후 님이어도 저와 같은 이름을 쓰는 존재를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여 주는 건 이상하잖아요.”
진시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가?”
“이상하죠. 만약 저 자신을 누군가 죽인다면, 그리고 그걸 납득하려면 그 누군가는 반드시 다른 별의 한정아여야만 해요. 나 자신을 멈출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그런 거죠. 아마 다른 한정아들도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어렵네.”
“어렵죠. 하지만 시점만 조금 다르게 보면 간단해요. 진송이 님의 꿈은 제 꿈과 같거든요.”
“…….”
“저는 끝까지 갈 거예요.”
“끝까지 간다는 건, 첨삭이라는 것을 죽이겠다?”
“모르죠. 하지만 저는 판타지아니 뭐니 하는 것의 재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어요. 리셋이 된 별이긴 하나 제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제가 지켰던 사람들, 그들 모두가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어 다시 살아나거나 하는 그런 일 없이 편한 안식을 가지기를 원해요.”
그게 한정아의 꿈이었다. 별 #12의 진송이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목표이기도 했고.
물끄러미 한정아를 바라보다 툭 던지듯 물었다.
“승천자가 될 수도 있잖아.”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잖아요.”
“그런가.”
“저는 아까 그 라파엘의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어요. 순응하고 지배할 것인가, 불응하고 대적할 것인가. 저는 후자예요.”
“…….”
“절대적인 규칙이긴 하나 옳지 않아요. 순응하고 따르면 편해지겠지만 그만큼 다른 이들의 피해를 외면해야 하잖아요. 전 그럴 생각 없어요. 불응하고, 대적할 거예요. 그게 적합자잖아요. 영웅이고.”
“맞아. 그런 사람이 영웅이지.”
진시후가 그대로 손을 뻗었다. 쩌저적, 아공간이 갈라진다.
그곳에서 작은 팔찌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곳에 약간의 마나를 불어 넣자 툭, 팔찌가 두 개로 분리된다.
이 팔찌의 이름은 [생명의 팔찌]다.
낙원을 멸망시키면서 주웠던 아티펙트이기도 했다.
한쪽이 사망해도 다른 한쪽이 사망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은 쪽의 생명력을 절반 소모하며 사망한 이를 되살리는 최상급의 아티펙트.
등급은 유일이다. 내부 등급은 최상급이고.
단 1회의 유효 기간이 있는 이 팔찌가 진시후는 두 개나 있었다.
이미 하나는 썼다.
진송이한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쓰려 한다.
“받아.”
“이게 뭐예요?”
“네 생명 줄.”
그걸 받아 든 한정아에게 진시후가 말을 덧붙였다.
“무조건 한 번은 내가 살려 줄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믿고 있는 거 그대로 한번 쭉 가 봐.”
한정아가 빙긋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일 다 끝나면 그때처럼 술 한잔하실래요?”
진시후가 기겁한다.
“이상한 플래그 세우지 마. 그거 소설이었으면 뒈지는 클리셰야.”
“그래요?”
“어. 술은 원 없이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죽지나 마.”
“네.”
한정아는 웃으며 손에 들린 이동석을 꺼내 들었다.
“고생해.”
“시후 님도요.”
“그래.”
퍼석.
이동석을 부순 한정아가 그대로 사라진다.
다시 혼자가 된 진시후는 자리에 앉아 묵묵히 생각했다.
사람들이 정말로 나를 등신으로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생각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지능 수준이 딸리는 건가.
모르겠다.
라파엘의 말은 다른 승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천하삼분지계라는 거, 솔직히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
어느 한쪽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당연히 다른 두 쪽도 그에 따른 대응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 대응이 변명일 줄이야.
그렇다.
실망했다.
진심으로 상대하고 있는 승천자라는 존재들에게 진시후는 크게 실망했다.
적이 적다워야지, 이건 무슨 저능아 새끼들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던져진 주사위를 무를 수는 없다.
모두가 깨달았을 테니, 이제는 행동할 일만 남았다.
진시후는 승천자들을 치고, 승천자들은 편집자들을 치고.
더 없을 정도의 개판이 벌어지겠지만 알 바 아니다.
품에서 2403이라 적힌 이동석을 매만지던 진시후는 고민 없이 이동석을 부쉈다.
퍼석 소리와 함께 공간이 열린다.
* * *
성운 [매의 기사단].
이곳은 과거 낙원에서 사망했던 [마이다스]가 속한 성운으로서, 이 성운의 수장인 [철혈의 매]는 뛰어난 군주이자, 뛰어난 전사였다.
그는 압도적인 통솔력을 바탕으로 보잘것없던 성운을 18성운의 중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통솔력 때문은 아니었다.
운도 따라주어야 했다.
세상의 판도는 시시각각 변한다.
비교적 덜한 성좌들의 세계여도 분기점은 여러 번 존재했었다.
그때마다 [철혈의 매]는 적어도 손해를 보지 않는 선택을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손해를 보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해, 지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슬쩍,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성운 [세계수 연합]의 수장이자 승천자 발렌타인의 충실한 오른팔이자 대장로라는 직책을 지니고 있는 탈렌 라엘렉, 그리고 그의 옆에는 작은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래전 트리무르티의 수하였다가 발렌타인의 밑으로 적을 옮긴 제인 크루스무슈.
이 둘의 존재를 무시할 정도로 [철혈의 매]의 간이 크지는 않다.
저 두 명은 어디를 가든 대접받는 존재들이고 그 누구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괴물들이 분명했으니까.
탈렌 라엘렉은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들을 사냥할 생각이라고.
이 일에 협조할 생각이 있냐고.
[매의 기사단]이라는 성운의 목숨줄이 곧 끝날지, 혹은 조금 더 먼 기간 동안 연장할 수 있을지가 결정되는 분기점이 지금 온 것이다. [철혈의 매]는 결정해야 했다.승천자들 쪽에 설지, 아니면 편집자들 쪽에 설지.
솔직하게 말하면.
어려웠다.
다른 선택지도 아니고, 하필이면 승천자와 편집자라니.
“……중립을 택하고 싶습니다.”
[철혈의 매]의 대답에 탈렌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진다.“중립? 지금 간을 보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까?”
“…….”
“미치셨습니까? 다른 성좌들은 몰라도 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발렌타인 님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18성운의 한자리를 차지했는데도, 그 발렌타인님이 원군을 요청하니 간을 보겠다? 와우.”
무슨 미국 시트콤의 배우가 크게 과장하며 놀랄 때 쓸 법한 대사였는데, 이게, 탈렌을 아는 이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일단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혹은 도망쳤거나.
[철혈의 매]가 말했다.“얼마 전에 오셔서 진송이를 죽이고 가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래서, 그게 왜?”
“……왜라니요…… 엄연히 저희가 낙원에서 돈을 주고 구매한 물품을…….”
그 이상 들을 생각이 없었다. 탈렌이 손을 들었다.
[철혈의 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탈렌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별 #1111.
리셋을 여러 번 반복한 별치고 이 정도로 상태가 좋은 별은 또 거의 없다.
이용 가치가 있다.
[매의 기사단]에게는 과분하다.“제인.”
“왜?”
“다 죽여.”
인형을 안고 있던 여자아이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이미 포진해 있는 [매의 기사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모해 보였지만 그녀를 아는 이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탈렌도 그중 하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