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283)
제283화
진시후가 물었다.
“다른 승천자들이 여기로 올까?”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양소와의 싸움이 끝난 상황이고, 승천자들이 전처럼 1:1을 고집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시후의 목을 노린다면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영호충은 회의적이었다.
“……너는 힘을 거의 소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파천이다. 파천의 병력은 건재하다. 곳곳에 그들의 눈이 있는 것이 확실한 이상 파천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진시후도 영호충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세상일을 어찌 장담하나.
그런 진시후에게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누나였다.
누나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줘 봐.”
“뭐를?”
“별 #1000, 거기로 가는 이동석.”
“뭐 하려고?”
“지금 네가 생각하는 거.”
물끄러미 누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안 했는데, 나는 드워프들을 ‘멸족’시킬 생각이다.
장난질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했다.
멸족시키지 않을 이유를, 나는 도저히 못 찾겠다. 누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누나가 말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 기억들은 ‘진송이’들의 기억이야. 내가 진송이고, 그 진송이도 나야.”
대충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진정한 적합자로서 나아가는 방향이구나.
모든 진송이들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것.
다른 별에 태어나는 진송이들은 쪼개진 영혼들이고 그것이 합해져 모든 영혼들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하나가 되는 것.
지금 누나의 머릿속에 들어온 기억들 중에 드워프들과 엮인 기억이 있나 보다.
음.
“헬레나야.”
구석에서 흰색 장갑을 낀 채 이리저리 바라보던 헬레나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누나랑 같이 가. 가서 누나가 하려는 일 좀 도와줘.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했다. 무슨 의미인지 헬레나는 안다. 헬레나가 목에 채워진 펜던트를 살짝 쓰다듬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뒤 품에서 #1000이라 적혀 있는 이동석을 누나한테 건넸다.
이동석을 부수는 누나에게 한마디 했다.
“죽지 마.”
누나도 한마디 했다.
“너도 죽지 마.”
“여기 일 다 끝내면 갈 테니까, 일 다 끝내도 거기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와 헬레나가 일그러진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구석에서 지켜보던 영호충의 미간이 살짝 꿈틀했다.
어떤 생각인지 충분히 안다.
지금 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내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그걸 생각하는 영호충은,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툭, 투둑.
머리 하나가 내 쪽으로 굴러온다.
잘생긴 미남이었다. 머리는 길었고, 동양인이었다.
뭔가, 교과서에서 이렇게 생긴 얼굴을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고개를 돌렸다.
이 모가지가 굴러온 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길이는 길고, 폭은 굉장히 얇은 검을 들고 있는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이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래?”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양소를 죽였는데…… 너무 멀쩡한 거 아니야? 얼굴이 좀 갈린 거 같은데 재생이 가능할 정도의 상처…… 와…… 뭐야? 이건 너무 계산 밖인데.”
그녀가 옆에 있던 중년 엘프에게 말했다.
“야, 탈렌아.”
“예.”
“주변 정리해. 관짝도 하나 준비하고.”
궁금했다.
“하나로 되겠어?”
“충분할 거 같은데?”
“아닐걸. 네 거랑 네 옆에 있는 쟤 거까지 두 개는 있어야지.”
발렌타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곧 죽을 놈이 입담은 여전하네.”
영호충은 다른 승천자들이 이곳 파천으로 넘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전제가 중요했다.
양소와 나와의 싸움을 그들이 지켜보았다는 전제.
그게 반드시 필요했다.
만약 지켜보았더라면 오지 않을 것이고, 지켜보지 않았거나 못했더라면 올 것이다.
나는 그저 대비했을 뿐이다.
발렌타인의 말을 들어 보면 그녀는 내가 양소와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고 있다.
그들이 심어 놓은 눈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뿐이다.
천하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영혼이 열린다.
내 몸에서 백련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너랑 쟤가 끝이야?”
발렌타인이 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럴 리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거대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분명 다시 보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아하, 그때 그 구질구질했던 놈 맞지?”
“……닥쳐라.”
“닥치긴 뭘 닥쳐. 그때 그 구질구질했던 새끼 맞잖아. 준천의 라파엘, 아니야?”
“……맞다.”
“그럼 됐어.”
백색 연기에 휩싸인 채 웃었다.
승천자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이다.
이 두 명을 상대해야 하기에 누나와 헬레나를 보낸 거다.
발렌타인이 말했다.
“이제 진짜 가를 수 있겠네.”
“뭐를?”
“진짜 무신이 누구인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원군 끌어온 상황에서 그게 의미가 있나?”
“있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자, 그게 무신이니까.”
이젠 어이가 없을 정도다.
추한 새끼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일 때였다.
저 두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
꽤 먼 거리에 있던 공간이 쩌저적 찢어진다.
그곳에서 검은색 실루엣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별 #2403에서 보았던, 그리고 그전에는 화천이라는 곳에서 보았던 [트리무르티]였다.
그녀가 빙긋 웃는다.
“반가워.”
말없이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반응이 왜 그래? 더 좋은 곳에서 보자고 했잖아.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어?”
아주, 추함의 끝을 보여 주는 동시에 치졸함의 끝까지 동시에 보여 주고 있었다.
장천의 발렌타인.
준천의 라파엘.
화천의 트리무르티.
승천자 세 명이 지금 나를 죽이러 왔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 놓겠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상관없다.
두려움? 없다.
이 자리에서 죽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긴 했어도 상관없다.
언제부터 그딴 걸 신경 썼나.
담배를 퉤, 바닥에 뱉었다.
“뭐 해?”
천하검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시작하자.”
발렌타인과 트리무르티가 자리를 박차고 라파엘이 양손을 교차시키며 수인을 맺는다.
온 힘을 끌어모은 뒤, 천하검을 땅에 박았다.
[백련교 성화칠결.] [오의, 사문, 천리일도.]빛이 작렬한다.
***
별 #1000에는 두 개의 성운이 존재한다.
드워프족이 중심인 [중간계의 흔적], 그리고 서리 거인이 중심인 [얼음별의 의지].
당연히 두 종족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이 두 종족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을 추구한다.
단어 표현을 하면 [완벽한 장인].
서로 그 어떤 장난질을 하건, 모략을 꾸미건 전쟁을 치르건.
이딴 건 전부 한쪽으로 제쳐 두고 무언가를 만들고 제련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프로 중의 프로로서 행동한다.
그게 맞고, 그것이 바로 이 두 종족의 싸움이 수만 년 이상 지속되어도 다른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던 이유다.
드워프족의 대족장, 산트라 곤은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죄책감? 그런 건 없었다.
약간의 ‘미련’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다.
처음이 어려웠다.
천존의 무구에, ‘일정한 기운’이 담겼을 때 ‘일정 부위’가 부서지는 작용을 넣어 둔 것은 절대로 실수가 아니다.
의도였다.
천존 윤영수.
지구인으로서 진송이를 비롯한 온갖 강자들을 이끌며 세상을 빛냈던 강자.
그의 광채는 찬란했고 그의 의지는 성스러웠다.
종교가 만들어진다면 상징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싸가지가 없었다.
강압적이었고 가진 힘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남자였다.
물론, 겉으로 보았을 때 사이는 좋았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일에 생긴 상처가 곪아 가듯, 드워프 족장인 산트라 곤의 감정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고, 첨삭에게 도전을 하겠다며 최강의 건틀렛인 [용의 심장]의 수리를 요청했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선을 넘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천존은 이렇게 말했다.
‘서리 거인에게 제련을 맡길 생각입니다.’
미간이 굳어졌다.
‘제작은 드워프가 최고지만 제련은 서리 거인이 최고잖습니까. 저는 최고의 무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이번 일이 잘 풀리면 모여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술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굳어진 미간이 펴지지가 않았다.
천존이 웃는다.
‘수만 년간의 싸움도 이제 끝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첨삭을 무너뜨리게 되면 그땐 태평성대를 세상에 선물할 생각입니다. 서리 거인도 그렇고, 드워프들도 그렇고, 전쟁의 시작은 너무나도 까마득한 과거였고 지금은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잖습니까. 이걸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뭔데.
감히 너 따위가 뭔데 종족 간의 전쟁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지?
고작 인간 따위가.
운이 좋게 적합자라는 감투를 뒤집어썼을 뿐인 버러지 새끼가.
천존의 의도가 좋건 나쁘건, 그의 말투가 정중했건 건방졌건 이딴 건 고려할 생각도 없었다.
감히 종족 간의 전쟁에 끼어들었다는 점.
그 시도 자체만으로 산트라 곤은 분노했다.
산트라 곤의 인내심은 이때 바닥이 났고 곪았던 상처는 완전히 터져 버렸다.
그래서.
천존의 무구인 [용의 심장]에 수작을 부렸다.
서리 거인에게 제련을 맡긴다고 했었는데, 정말 안타깝지만 그 전에 첨삭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천존은 패배했고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졌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때의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천존보다 더한 양아치 새끼가 나타났다.
이레귤러 진시후.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밥버러지 새끼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가진 힘을 바탕으로 온갖 불합리한 요구를 해 왔다.
그 새끼한테만큼은 정말, 후회니 죄책감이니 뭐 이딴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통쾌했다.
[만 개의 세상을 지배할 자의 검]을 들고 싸우다가 정말 중요한 순간에 검이 박살 나서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한 뒤 목을 비롯한 온몸이 찢어발겨질, 놈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명상을 하는 이유는 평정심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위기에 처할 이레귤러를 생각하니 평정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게 정말로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명상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눈을 떴다.
눈을 뜬 산트라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뭐야.
저년이 왜 여기에 있어.
진송이였다.
이레귤러와 함께 떠났을 그년이 지금 뱀파이어 년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