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진계.
이곳은 어떠한 세상인가.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진시후와 일행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과거 판타지아를 분열시켰던 이들이 넘어가서 새로 만든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검존과 혈존이라는 존재는 집행자라 불리며, 장로라고도 불린다는 점.
이거 말고는 없다.
안에 어떤 국가가 있는지, 지금의 왕은 누구인지.
이곳의 정치는 어떠한지.
민주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제국주의인지.
타이탄처럼 오등작이 존재하는지, 중원처럼 별호가 존재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바르가처럼 판타지 세상인지.
알아야 할 게 많았다.
세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원이었다.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너무나도.
평온했다.
무명이 말했다.
“진시후.”
“왜?”
“함께 움직여야 하나?”
진시후가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명령해도 안 따를 거잖아.”
“맞다. 나는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
진시후가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봐. 저 새끼 저거, 거기 갔다 오더니 이상해졌어.”
“……그럴 수도 있죠. 보통은 변하는 게 맞더라고요.”
“넌 안 변했잖아.”
“꼭 변해야 하나요? 말했잖아요. 보통은.”
“너는 보통이 아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웃으며 답하는 헬레나의 모습에 진시후도 웃고 말았다. 하긴 헬레나가 보통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지도 않았을 거다.
“야 무명아.”
무명이 진시후를 바라본다.
“그 뭐, 아무리 변했어도 과거에 또 함께했던 그런 게 있잖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별건 아니고, 죽지 말라고는 안 하겠는데, 죽을 거면 좀 의미 있게 죽으라는 말을 좀 하고 싶네.”
“의미 있게 죽어라?”
“단순히 깽판 치는 게 아니라, 나한테 좀 거슬릴 만한 놈들을 최대한 좀 정리해달라, 그런 거지.”
무명이 피식 웃었다.
“과거에 너에게 받은 것이 희미하긴 하나,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좋다. 최대한 고려는 해볼 것이다.”
“그래라. 가.”
무명은 더 말하지 않고 즉시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진다.
헬레나와 단둘만 남았다.
“의도치 않게 데이트하게 생겼네.”
“제가 꼬시면 넘어오실 거예요?”
“모르지. 내가 또 여성 편력이 있거나 그러지는 않거든.”
헬레나가 웃음을 터트린다.
폭풍전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 진계에서 평화로운 대화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내심 긴장하고 있었는데, 진시후 덕분에 긴장이 풀린 느낌이다.
“그보다, 저쪽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가볼까?”
진시후가 가리킨 방향은 유하가 갔던 서쪽과는 정반대되는 동쪽이었다.
그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거리가 대략 수십 킬로가 넘긴 하지만, 이미 진시후에게 그 정도 거리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진시후의 영역은 대략 수십 킬로.
이미 주변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가요.”
그렇게 헬레나와 진시후는 그곳으로 향했다.
***
절벽 위에서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와…….”
입 밖으로 소리는 나만 내뱉었을지언정 옆에 있던 헬레나와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래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맞았다.
붉은색의 갑옷을 입고 있는 약 20명의 사람과 검은색의 장포를 걸치고 있는 30명의 사람.
숫자로 보면 검은색 쪽이 더 많긴 하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생각해 보면 붉은색이 약 20명, 검은색이 약 40명이다.
전적으로 붉은색 쪽이 우세했다.
갑옷의 형태를 보니, 타이탄에서 보았던 어느 백작가의 갑옷이 딱 떠올랐고, 반대쪽 검은색 장포를 보고 있으면 타이탄 동대륙의 무인들이 생각났다.
이런 것들 때문에 놀란 게 아니다.
하나하나의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높다.
지금 살아서 싸우고 있는 60명의 사람들 전부가 모두 탈혼경이다.
탈혼경은 금단경, 구령경, 원령경, 그리고 무신경.
이렇게 네 개로 나누어지는데 60명 중 40명 정도가 금단경이고 나머지 20명이 구령경이다.
성좌로 치면 구령경은 최상급 성좌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이륙한 경지인데 저기 널려 있다.
그렇게 물끄러미 두 세력 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붉은색 갑옷을 입은 쪽에서 한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도와주십시오!”
덩달아 검은색 장포의 남자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턱을 긁적였다. 헬레나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도와달라는데 외면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그러다 저기 있는 검은 애들이 도와달라고 하면요?”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지.”
확실히 복잡해졌다. 이번에는 검은색 장포를 입은 이들이 외쳤다.
“귀인이시여!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피식 웃었다.
“말이 씨가 됐네.”
“그러게요.”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붉은 쪽 진영과 검은 쪽 진영은 서로 무기를 겨눈 채 뒤로 물러서 있었는데, 안 봐도 뻔했다.
지금 저들의 감각은 나와 헬레나 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뭘 보고 도와달라는 걸까.”
“저야 모르죠.”
“일단 가볼까?”
“네.”
나와 헬레나는 자연스럽게 절벽 아래로 향했다. 이게 말이 향했다지, 그냥 뛰어내렸다.
너무나도 가볍게 땅에 착지한 뒤 그들에게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묘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붉은색 진영은 대체적으로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고, 검은색 진영은 대체적으로 동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마치 타이탄의 동대륙 서대륙처럼.
왜 이들이 도와달라고 서로 외쳤는지도, 앞으로 벌어질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집행자님께 감히 고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건 붉은색 진영이 헬레나한테 하는 소리였고.
“장로님께 감히 고하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건 검은색 진영이 나한테 하는 소리였다.
언어는 구천의 언어, 즉 판타지아의 언어였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단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한 모금 마시며 묵묵히 말했다.
“우리는 집행자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다.”
내 말에 두 진영이 고개를 갸웃한다.
“중간계에서 넘어왔다. 듣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말끝이 흐려진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의문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뭔가 이상하다.
“중간계에 대해 모르나?”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진계는?”
“……진계요? 그건 또 무슨…….”
“판타지아, 들어봤나?”
“판타지아면…… 이곳이 판타지아 아닙니까?”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헬레나도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제대로 온 거 맞아?
***
나와 헬레나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두 진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붉은색 진영에서 굳센 인상의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는 흰색의 깃털이 그려져 있었는데, 꽤 높은 직위가 분명하다.
“……너희 둘, ‘그분’들이 아니군?”
검은색 진영에서도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의 복장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으나 느껴지는 기세가 양쪽 진영 통틀어 가장 강했다.
“누구냐. 너희는.”
두 남자는 나와 헬레나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감히 이 싸움에 끼어들었냐는 듯, 너희가 뭔데 왜 거기에서 그러고 있냐는 듯.
조금 어이가 없었다.
“멀쩡히 구경하던 사람보고 도와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 새끼들이, 눈 안 깔아? 콱 씨.”
그 말에 두 남자가 실소를 터트린다. 둘의 무기에 ‘탈혼기’가 깃든다.
가볍게 한숨을 터트렸다. 옆에서 헬레나가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 다 죽여요?”
잠시 고민했다.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단은 들을 말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니 정보를 얻어야 한다.
“죽이지는 말고, 그냥 제압만 해놔.”
“저 두 남자만요?”
그럴 리가.
“여기 있는 놈들 전부.”
헬레나의 입가에 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가 자리를 박찼다. 그녀의 주먹이 검은색 무복의 남자에게 뻗어나간다. 그가 고개를 틀며 검을 휘둘렀지만 의미 없었다. 그의 얼굴에 헬레나의 주먹이 적중했고 그의 검은 헬레나의 몸에 닿았으나 겉에 있는 호신강기에 스크래치조차 내지 못했다.
빠아악-!
남자가 그대로 엎어진다. 이번에는 헬레나가 반대쪽을 바라보며 자리를 박찼다. 붉은색 깃털의 남자 움찔한다. 그도 같았다. 검을 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으나.
후웅.
허공을 베었다. 헬레나가 그의 코 앞에서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돌아간 것이다. 완벽한 빈틈이 노출된다.
헬레나의 왼쪽 주먹이 남자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뻐어어어억-!
“커헉.”
남자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터져 나오며 털썩,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정확히 2초가 걸렸다.
헬레나가 팔을 걷어붙이며 땅을 짚었다.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읊는다.
그러자.
꽈아아아아앙-!!
땅이 폭발하며 엄청난 양의 돌 파편들이 붉은색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그냥 파편이 아니라, 헬레나의 탈혼기가 깃든 파편들이다.
퍼버버버벅.
붉은색 진영이 일시에 쓰러진다. 헬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압도적인 무력에 겁을 먹은 듯, 검은색 진영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지만 의미 없다.
나는 헬레나에게 양쪽 다 제압하라고 했다.
헬레나는 그것을 지킬 생각이 분명하다. 방금처럼 반대쪽 땅에 손을 올렸다.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꽈아아아앙-!!
땅이 터지며 검은색 남자들을 휩쓸었다.
고작 5초 남짓한 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헬레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친 기색도 없다. 확실히 만족스럽다.
“고생했어.”
“고생은요, 고작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웃고 있을 때였다.
붉은색 진영 쪽에 있던 마차의 문이 열린다.
그곳에서 앳된 남자가 하나 걸어 나왔다.
떨리는 걸음, 그리고 떨리는 손.
겁을 먹은 것이 분명하나 두 눈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 분은 대체, 누구십니까.”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만한 사람이 나온 것 같다.
“말했잖아. 중간계에서 왔다고.”
“……저희는 중간계라는 것을 모릅니다. 저희가 볼 때 당신들의 복장은 장로님들과 집행자님들의 그것과 같습니다.”
조용히 있었다. 남자가 말을 잇는다.
“금발이 아름다우신 당신은 집행원의 [혈존]과 흡사한 외형을 지니고 계시며, 흑발인 당신은 장로원의 [검존]과 흡사한 외형을 지니고 계십니다.”
너무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혈존과 검존?
지금 그 두 새끼를 죽인지 얼마나 됐다고 그 이름이 다시 나오나.
“그 두 명은 중간계로 파견됐을 텐데.”
“……글쎄요. 그것조차 저희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그 두 분은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로원과 집행원에서 군림하고 계십니다. 최근에 그 이름을 쓰시는 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저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혈존은 남자일 텐데, 금발도 아니었고.”
“……글쎄요. 머나먼 과거 [초대 혈존]이 남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으나…… 그분은 까마득한 세월 전에 등선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혈존은 금발 머리에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저기 계신 저분처럼 천상의 외모를 지니신 분입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거…… 뭔가 그림이 그려진다.
“야 헬레나야.”
“네.”
“딱 보니까, 은폐한 거 같지?”
헬레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인 검존과 혈존은 분명 이곳에서 살던 놈들이 분명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초대 검존], [초대 혈존]이라고 봐야 할 거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 진계의 검존과 혈존은, 내가 죽인 놈들 다음을 이어받은 놈들이거나, 그다음의 다음을 이어받은 놈들일 거다.
시간대가 이미 수십만 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그들은 잊힌 게 분명하다.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좀 불쌍하네.”
“……그러게요. 수십만 년 동안 여기를 위해 싸워왔던 이들인데, 이제는 잊혀서 기억도 못 하네요.”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전에.
“너보고 천상의 외모라던데, 기분 좋냐?”
“나쁘진 않네요.”
웃는 헬레나를 뒤로하고 앳된 남자의 어깨를 둘렀다.
“좋은 정보를 줘서 고마운데, 이름이 뭐냐?”
“……저는 철혈 백작성의 장남 잭 모턴입니다.”
“잭 모턴, 이름이 멋있네. 궁금한 게 있는데, 꼭 답해줬으면 해.”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아는 대로 답해드리겠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방금 네가 말한 검존과 혈존, 어디 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