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명백했다.
시스템은 ‘각성자’들만이 ‘시스템에서 용인하는 무구’를 사용해 ‘게이트를 클리어’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이 박혀 있는 이들이라면 게이트를 통제하는 게 맞다.
아무리 각성자여도 아무나 집어넣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어떤 각성자가 어떤 게이트에 들어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 가지 법이 만들어졌다.
게이트를 클리어하러 들어가는 각성자들은 진입할 때와 진입한 이후, 그리고 클리어한 이후에 팔목에 채우고 있는 국가 공인 워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그 워치를 이용해 각 국가는 각자의 땅에 나타난 게이트와 각성자들을 통제한다.
이걸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냐면 밖으로 나온 정빈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게이트 측정기에서는 A급이라고 나오는데, 설마 네가 혼자 클리어했냐?”
진시후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논외로 친다 해도 정빈은 아니었다.
정빈은 각성자다. 그것도 B급 각성자.
아무리 갑작스럽게 생겨난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 해도 그는, 워치를 작동시킬 의무가 있었다.
“안 되겠다. 너 워치 기록 넘겨 봐. 그 안에 영상이랑 다 있을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이 새끼, 워치 기록 전송도 안 했네? 신입치고는 간이 커.”
정빈은 순간 근처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진시후를 바라보았다.
그냥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진시후는 진시후 나름대로 파악했다.
그가 그 누구도 몰래 슬쩍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파스슥.
정빈이 들고 있던 워치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빈도 놀라고, 정빈에게 따지듯 말하고 있던 게이트 안전 관리 1팀의 팀장 지창수도 놀랬다.
“그거 뭐냐? 워치가 왜 그래?”
정빈은 비록 등급이 낮을지언정 눈치가 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정말이다.
정빈이 혀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했다.
“그게…… 게이트에 갑작스럽게 들어갈 때 워치가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
“예. 그 상태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게이트가.”
“게이트가?”
“F등급 게이트가 맞더라고요.”
“……뭐?”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곧, 그 자체로 자신감의 근원이 되어갔다. 정빈이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A등급 게이트라고 하셨습니까?”
“……그랬지.”
“안 그래도 여러 번 이상 현상을 일으킨 게이트라 이렇게 혼란이 생기나 봅니다.”
지창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 새끼, 이거.
“구라 치는 거 아니야?”
“팀장님,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닙니다. 그리고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 B급 각성자입니다. 만약 그 게이트가 A급이라면 B급인 제가 고작 5분 만에 클리어가 가능했겠습니까?”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그게 맞긴 했다.
정빈은 B급 각성자다. B급 각성자가 5분 만에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한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상태로?
이건 뭐,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다.
“진짜 고블린이었다고?”
“예. 고블린 로드 한 마리랑 고블린 열다섯 마리가 나온, 그냥 흔하디흔한 게이트였습니다.”
“……하아……. 그래, 내가 봐도 그게 맞는 거 같긴 하네.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고 했잖아. 새끼가 어벙해 가지고, 야, 멍청하게 관리국 요원이 게이트에 휩쓸려? B급 특채로 들어온 놈이 뭐 하자는 거야? 지금이 대격변 초창기 시절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대충 몸 추스르고 오늘은 이만 퇴근해라.”
“……예?”
“생일이라며. 네 생일 파티, 이따가 소고깃집에서 몰래 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봐도 오늘은 아닌 거 같다. 내일로 미룰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이만 퇴근해. 오늘 벌어진 일들은 대충 내가 수습할 테니까.”
정빈은 놀랐다. 이 양반이 이런 양반이었나?
내심 감동했다.
지창수.
이 양반을 조금 오해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거절? 안 한다.
넙죽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됐으니까 가라. 그리고 가기 전에 게이트에 휩쓸린 저 남자도 챙겨. 딱히 조사할 건 없으니까 자택까지만 데려다주고. 조서 정도는 대충 작성해서 보내. 알아서 끼워 맞춰 줄 테니까.”
“팀장님…….”
“그만 쳐다보고 가라.”
“예!”
정빈은 그렇게 퇴근했다.
진시후와 함께.
* * *
“제법 눈치가 빠르시네.”
진시후의 말에 정빈이 찔끔했다.
“그럴 만했지 않습니까?”
“저야 잘 모르죠.”
그리 말하는 진시후였지만 정빈은 안다. 받아먹은 건 정빈이었지만 결국 그 판을 깔아 준 건 진시후였다는 거.
진시후는 현 세상에 대해 자세하게 모르는 게 맞다. 맞지만 적어도 눈치는 있었다.
아까, 그 게이트에 있던 골렘 술사는 정확히 스물다섯 명이었다. 스물다섯 개개인이 정빈보다 강했을뿐더러 그들이 부리는 골렘들조차 전부 정빈보다 강했다.
말은 안 했는데, 그 산.
그 산 자체가 골렘이기도 했다.
그걸 정빈이 혼자 죽였다? 괜히 일만 복잡해진다. 그걸 읽은 진시후가 진시후 나름대로 반응한 거고, 정빈은 따랐을 뿐이다. 정빈은 이제 해야 할 질문을 했다.
대체.
“목적이 뭡니까?”
말없이 웃는 진시후에게 정빈이 재차 물었다.
“원하는 게 있으니까 지금 제집까지 따라온 거잖습니까. 아니지, 그 전에 진짜 이거는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제 워치는 어떻게 박살 낸 겁니까? 이거 이제 전원도 안 들어옵니다.”
“그냥 워치 안에 있던 소량의 마나를 가볍게 터트린 건데.”
“…….”
“왜요? 못해요?”
“네, 못합니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저는 더 신기합니다. 각성자도 아니시라면서요?”
지금 정빈의 심리 상태는 매우 간단했다.
그냥 혼란,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눈앞의 남자는 스스로를 2024년에 실종된 진시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실제 진시후라는 인물은 실종된 적도 없고, 현 세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하기까지 하다. 장르 소설 작가에 방송인이다.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남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각성자 중 한 명인 ‘진송이’의 동생이다.
이게, 너무 말이 안 된다.
눈앞의 진시후와 장르 소설 작가 진시후.
둘 중 하나는 구라를 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만약 구라를 치고 있는 게 눈앞의 진시후라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각성자 데이터베이스에도 없고, 워치로 스캔도 안 됐으며 시스템이 ‘사람’으로 읽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문 인식으로는 진시후가 맞다.
이제는 조금 두렵기까지 했다.
물론 ‘도움’을 받은 건 맞다. 특별 보상이라니.
이런 게 주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렴풋이나마 최상위권의 각성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정빈은 진시후로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도움을 받았다.
정빈은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
그래서 진시후가 일단 그쪽 집 앞까지만 같이 갑시다. 그렇게 말했을 때도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던 거다.
그리고 방금 정빈은 물었다. 왜, 이곳까지 같이 오자고 했냐고.
진시후가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양반이 되게 웃기는 양반이네. 아까는 자택까지 모셔다드린다면서요? 밖으로 나오니까 입 싹 닦는 거 봐.”
“……입을 닦다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섭섭하게.”
피식 웃은 진시후가 말을 이었다.
“지금 뭔가 상황이 엄청 꼬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요?”
“잠시 생각 좀 하려고요.”
“…….”
“알아볼 것도 있고, 아까 보상 비슷한 거 받은 거 같던데 맞아요?”
“……예, 맞습니다.”
“내 덕에 좋은 거 얻으셨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 알죠?”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일단.”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오랜만에 지구 음식 맛 좀 보게. 여기 김치찌개 잘하는 집 없나?”
* * *
그는 매일매일이 바쁜 사람이었다.
또한,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아침 06시.
그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는 06시에 일어나자마자 잠옷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환복한 뒤 밖을 뛴다.
거리는 정확히 10km.
달리는 내내 한강이 훤히 보이는 코스였고, 그가 직접 짠 코스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깅을 마친 뒤 집에 들어와 일정을 확인한다. 방송을 하는 날이면 방송을 하고, 방송이 끝나면 글을 쓰고.
아침은 혼자 먹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아는 누군가와 만나게 되면 식사를 하고 아니면 혼자 하고.
그러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다시 운동을 한다.
샌드백을 치고, 달리고.
그는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작가지만 체력 관리도 확실하게 하는 완벽주의자라고 해야 할까.
운동을 끝낸 그는 오늘 일정을 확인하려 워치를 들었다.
그러자 메시지 하나가 날아온다.
[카사 피아 레스토랑 알지?]서울특별시 사직로 쪽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모를 리가 없다. 남자는 발신인을 확인했다.
‘누나’였다.
남자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알지, 왜?]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하자.] [저녁?] [너 론 웨슬리 보고 싶다고 했잖아.]론 웨슬리.
그는 미국의 SF 및 판타지 소설 작가이자 각본가, TV 프로듀서다.
그가 쓴 ‘불타오르는 호수’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으며 드라마로 제작된 그 작품은 시상식에서 온갖 상을 휩쓰는 등.
현세대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의 하나다.
엉덩이가 무거운 그의 이름이 지금 나왔다.
[같이할 거니까, 저녁에 와. 보고 싶어 했잖아.] [누나ㅠㅠ] [오늘 18시야. 늦으면 국물도 없어.] [고마워, 누나.]뒤에 환호하는 이모티콘도 붙여 보냈다.
누나는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따 저녁에 만날 테니까.
오늘 일정을 아무래도 바꿔야 할 듯하다.
론 웨슬리라니.
딱 거기까지였다.
방송을 비롯해 주변에 계속해서 말해 왔었다. 론 웨슬리를 만나 그와 작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소원 중 하나라고.
그 정도로 고대하고 또 고대했던 만남이었지만, 그는 별 감흥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보인다.
그는, 아니 진시후는 매우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기다가 매우 오만해 보이는 듯한 표정이었으며 그 안에는 이 시간 자체를 혐오하는 듯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방금 전 메시지로 이모티콘을 쓴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지겹네.”
진시후를 아는 이가 지금 이 표정을 보았더라면 놀랐을 거다.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는 남자였으니까.
세상은 변했다.
큰 세상도 변했고, 작은 세상도 변했다.
두 개 모두의 변화를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진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동안은 착실하게 그 일을 ‘수행’해야 한다.
문득, 진시후는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034년 5월 5일.
그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이제.
“한 달 남았군.”
그해, 한 달이다.
진시후는, 아니, 도플갱어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