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게이트 내부의 세상은 실제로 있었던 장소다. 시스템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장소를 바탕으로 재구성을 한 게 지금 이 무대다.
즉, 시스템의 지배하에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 장소를 베어 냈다. 공간이 잘렸고, 그 공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만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지금 저 진시후라는 남자는 ‘시스템의 의지’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의 괴물이라는 뜻이다.
미친.
이딴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탈출 게이트가 보이자마자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헬레나는 게이트 앞까지 다가왔다. 그대로 한 번 더 자리를 박차려던 그때였다.
툭, 무언가가 어깨를 잡는다.
“어디 가?”
진시후였다.
진시후가 옆에 있었다. 슬쩍 팔을 바라보았다. 내려오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마나까지 쓰고 있는 것 같다.
웃으며 그가 말했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 봐?”
침을 꿀꺽 삼켰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응, 나 좀 바빠. 얼굴 보면 견적 나오잖아. 바쁜 얼굴이야, 내가.”
팔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
“우리 대화 좀 해야지?”
표정이 굳어진다.
“누구냐, 너.”
* * *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곳 지구에는 사실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들이 존재했다?”
“응. 영화 언더월드 알지?”
“알지.”
한때 시리즈로 엄청 유명했던 영화 중 하나다.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들의 첨예한 다툼을 다룬 영환데, 나도 보긴 했다.
“약간 각색이 좀 있긴 했지만 얼추 비슷해. 지금 지구의 상황이랑.”
웃고 말았다.
와, 지구에 게이트니 시스템이니 이딴 게 생기고 나니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들이 드러나 있으니, 흥미롭기도 했다.
“서양권 쪽은 뱀파이어들이 꽉 잡고 있고, 동양권 쪽은 늑대 인간들이 꽉 잡고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저씨 정도면 대충 알지 않아? 경지 같은 게 훤히 보일 거고, 오다가다 한 번쯤 보면 이질감 같은 거 충분히 느낄 텐데.”
헬레나는 진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나는 한 가지를 더 읽을 수 있었다.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가 보네.”
헬레나의 질문에는 내 정보에 대해 캐내고자 하는 그런 의지도 있었다.
예컨대, 헬레나의 말대로 내가 지구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더라면 분명 오다가다 인간의 모습을 한 뱀파이어든 늑대 인간이든 뭐든 봤을 거다. 사도들을 봤던 것처럼.
충분히 나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구에 온 지는 고작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만날 일이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아저씨,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눈치가 되게 빠르네.”
“칭찬은 고마운데, 마저 말해 봐. 왜 말을 하다 말아?”
“나도 하고는 싶지. 싶은데, 지금 우리 이 게이트에 꽤 오래 있었다는 생각 안 들어?”
물끄러미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뒤쪽에 있는 탈출 게이트를 가리킨다.
“이거 곧 닫혀. 닫히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 그거 실험해 보려는 거 아니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왜? 또 도망치려고?”
“날 뭘로 보고. 무슨 도망이야. 나가서 이야기하자. 다 말해 줄게. 이면의 세상에 대한 거. 대신 아저씨도 이야기해.”
“뭘?”
“타이탄이 뭔지, 그리고 아까 저 노인이랑 무슨 대화를 했는지. 그런 거.”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양아치도 아니고, 이런 정상적인 대화를 거부할 리가 있나.
우리는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다시, 북태평양 한가운데로 이동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 번만 더 강조하자. 흥미로웠다.
그냥 흥미로운 게 아니라, 미칠 정도로 흥미로웠다.
언젠가 읽었던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애초에 지구 공동설을 가정하여 쓴 소설이긴 하지만 이런 걸 다 건너뛰고, 내용은 그냥 지구 속에 그 누구도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존재했고, 환상 속의 동물들을 비롯해 선사 시대의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우수리 다 떼고 보면, 얼추 비슷하긴 하다.
이면의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
뱀파이어랑 늑대 인간들이 인간들이랑 같이 살아가고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나. 아니지, 음모론자들의 말이 이번에는 맞는 건가.
그런 어설픈 생각을 하며 손을 뻗었다.
꽈악.
헬레나의 손을 그대로 잡았다.
“아, 또 왜?”
내가 어설픈 생각을 했다면 헬레나는 더 어설픈 행동을 했다.
“도망 안 간다며?”
“……안 갔는데? 그냥 움직이려던 건데.”
“헛소리하지 말고. 왜 자꾸 도망을 가려고 해. 내가 뭐 잡아먹냐?”
“가만히 있으면 잡아먹힐 거 같아서 그래.”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거치고는 할 거 다 하는 거 같던데, 감당할 수 있겠어?”
헬레나가 눈을 끔뻑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언제였더라.
처음 지구로 왔을 때였나. 그때 나는 누나와 충돌이 있었고, 누나를 기절시킨 뒤 판교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그때, 동행했던 사람이 비서실장 윤영수였는데, 그가 몰래 워치로 구원 길드에 비상 연락망을 돌렸고, 구원 길드의 최정예들이 그날 누나 집으로 소집됐다.
그때랑 같다.
“소속된 곳이 프리메이슨이라고 했나?”
“우리 아저씨는 기억력도 좋네.”
“언제부터 우리야?”
“아까부터지. 야박하게 왜 그래? 같이 게이트도 클리어한 사인데.”
어이가 없었다. 그보다.
“그 프리메이슨 애들 부른 거 같은데 괜찮겠어? 정말로?”
의외로 헬레나는 당당했다.
“눈치가 빠른 건 부정 안 하겠는데, 아저씨, 이건 확실히 하자.”
“뭐를?”
“난 우리 애들 부른 적 없어.”
“그래?”
“왜? 못 믿겠어? 볼래?”
그러면서 내게 워치를 들이밀었다. 떠오르는 홀로그램에는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클리어 끝냈어. 그리고 당분간 좀 쉴 거니까, 연락하지 마.]답장도 왔다.
[보고서는 작성 안 하시게요?]평범한 대화였다. 물끄러미 헬레나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을 잇는다.
“의심병이야, 뭐야. 아저씨, 나 뒤로 수작 부리는 그런 여자 아니야. 뭐든 직진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 마저 답장 보내도 돼?”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워치를 두드린다.
굳이 그녀는 보낸 메시지도 내게 보여 주었다.
[특별한 건 없었어. 천천히 써서 보낼 테니 알아서 검수해.]답장도 바로 왔다.
[네, 국장님. 휴가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리고 지금 카우아이섬으로 안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거기 지금 개판이에요.] [무슨 일인데?] [그, 진송이 아시죠?]힐끔 나를 바라보던 헬레나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알지. 어떻게 몰라. 대한민국의 영웅인데.] [……맞죠, 영웅. 그런데 그 진송이의 동생이 카우아이섬에서 사도들을 죄다 죽였습니다.] [그래?] [네, 그러니 가지 마세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진시후에 대해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에 사도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이 대신하고 있는 이들은 타이탄이라는 땅으로 보내 버렸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진짜가 귀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위성으로 추적하고 있는데…….]나는 피식 웃었고, 헬레나는 한숨을 터트렸다.
메시지의 침묵이 길어진다. 결국 헬레나가 답장을 보냈다.
[지금 같이 있어.] [……그렇군요. 지원 필요하십니까?] [필요 없어. 오버하지 말고 할 일 해. 사도들 움직임 살펴서 바로 보고하고.]거기까지 보낸 헬레나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됐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헬레나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내 손을 가리킨다.
“아저씨, 카우아이섬에서 사도들 다 죽였어?”
“죽였지.”
“왜?”
“거슬렸으니까.”
“……그렇구나.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네. 여하튼, 봤지? 나 개수작 같은 거 안 부리는 사람이야. 아저씨가 나랑 같이 있다는 게 들킨 이유는 우리 애들이 능력이 있어서일 뿐이고. 이해하지?”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녀가 웃는다.
“이제 아저씨 차례야. 반칙이잖아. 나만 이야기하는 거.”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굉장히 뇌쇄적이다. 묘한 느낌이다. 내가 경지에 오른 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바다 위에서 바로 넘어갔을 거다. 손으로 헬레나의 이마를 밀었다.
“떨어져.”
내 말에 헬레나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선 그녀가 내게 물었다.
“타이탄이 뭐야?”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내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내가 들을 대답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미국에는 프리메이슨, 유럽에는 일루미나티, 이 두 조직이 모두 뱀파이어라면 동양은?”
헬레나는 내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배짱도 두둑했다.
“아저씨, 힘 있다고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오히려 내가 의아했다.
“힘이 있는데 숙일 필요가 있나?”
“……없…… 겠지?”
“언더월드, 흥미롭긴 한데, 너희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도 방치한 게 맞는다면 내 입장에서는 그쪽이나 니네 쪽이나 다 같은 놈들로밖에 안 보여.”
“…….”
“날 납득시켜. 너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내가 도플갱어들을 죄다 죽여 버릴 생각이거든. 같은 놈들 몇 개 더 있다고 달라지지는 않아.”
다 죽인다는 말이었다. 헬레나가 눈썹을 찌푸린다.
“아저씨,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우리 단체가 보통 단체는 아니야. 아저씨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우리 쉬운 상대 아니야. 세상 속으로 숨으면 어떻게 찾아내려고?”
“숨으면 뭐? 그래 봤자 지구일 텐데 왜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해?”
“……뭐?”
“지구는 좁아. 도망치는 놈 있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일 거고, 숨는 놈 있으면 숨는 놈 감춰 주는 놈도 전부 죽일 거야. 내가 비슷한 일 여러 번 해서 아는데,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 그 흔적을 추적하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놈들을 찾을 수 있거든. 그놈들 고문하고 정보 얻고,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결국 찾아. 이래도 못할 거라고 생각해?”
헬레나가 나를 얼마나 아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한다면 하는 놈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풍기고 있는 살기는 그것을 방증했다. 헬레나가 침을 꿀꺽 삼킨다.
“……아저씨,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거만 답해 봐. 아까부터 느낀 건데 아저씨한테 풍기는 피 냄새가 장난이 아니야. 대체 손에 피를 얼마나 묻힌 거야?”
“세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모르겠는데, 한 천만? 모르겠네. 대충 그 정도 죽였을걸.”
“…….”
“지금부터는 잘 생각하고 말해.”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프리메이슨인지 일루미나티인지 뭔지, 이딴 세력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나는 납득해야 한다. 이유는 별게 아니다. 앞서 말한 도플갱어를 방치했다느니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대충 봐도 절대 작은 단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다.
작은 단체가 아니어서.
내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귀찮은 일에 얽히기 전에, 혹시 모를 그런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그냥 미리 죽여 놓는 게 편하다.
타이탄에서 배우고 느낀 거다. 납득시키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헬레나를 죽이고 곧장 언더월드를 부숴 버릴 생각이다.
진심을 읽은 헬레나가 한숨을 터트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