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67)
#제67화
꽈아악, 진시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헬레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얼마 만일까.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진 적이.
아마 수백 년 동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도 의아해할 정도로 지금의 변화는 의문투성이였다.
헬레나의 두 눈을 직시하고 있던 진시후의 두 눈이 가라앉는다.
살기가 피어오른다. 주변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헬레나의 두뇌 회전이 멈췄다.
이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느낌이다.
죽음.
이건 분명 죽음의 기운이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선고처럼 반드시 죽게 될 거라는 필연적인 죽음.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이후에도 벌어졌다.
진시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헬레나의 몸으로 붉은 기운들이 몰려들었다. 대자연의 기운, 마나의 찌꺼기, 온전한 마나, 가리지 않았다.
잠시 멈췄던 두뇌가 미친 듯이 회전한다. 헬레나 스스로도 컨트롤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과거 살아왔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때 그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들과 다짐이 헬레나를 덮친다.
압축되고, 정리된다.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다짐했던 그때 그 순간.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싶다는 꿈 같은 것을 가지기도 이전에, ‘갇혀 있던 우리’에서 나오고 싶었던 한 뱀파이어 소녀의 다짐이.
지금의 헬레나에게 씌워진다.
그렇게.
두근-!!
헬레나의 심장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크게 뛰었다.
이후.
세상이 변했다.
* * *
수도 없이 언급했지만 탈혼기라고 모두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가진 진정한 영혼의 힘을 개방할 수 있는 자들은, 애초에 격 자체가 다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도플갱어들에게 진심으로 실망했다.
그들을 짐승 취급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육체는 분명 ‘탈혼기’의 육체다.
하지만 다루는 힘은 ‘자연기’였으며 심지어 그 자연기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나마 얼마 전에 본 여섯 번째 사도인 간다르바만이 제대로 다뤘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은, 적어도 내 눈에 그들은 ‘만들어진 존재’처럼 보였다.
일종의 키메라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원래라면 그냥 상대할 가치도 없는 벌레 새끼들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진정한 탈혼기의 경지에 이른 강자들은 스스로가 가진 영혼의 힘을 사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의 힘은, 영역 전개를 뜻한다.
심상을 구현화시키고 세상의 물리 법칙을 벗어나 스스로의 영혼을 유형화시키는 기술.
스스로가 쌓아 올린 격을 세상에 투영시키는 것.
그게 ‘영역 전개’다.
그 기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탈혼기는 탈혼기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헬레나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녀를 자극하고 그녀가 분노에 차오를 때, 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헬레나의 심장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헬레나의 영혼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할지.
둘 중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내 귀에는 들렸다.
개방시켜 달라고, 열어 달라는 그녀의 외침이.
그래서 자극을 좀 주었다.
살기를 뿜어내고, 그녀의 과거를 캐묻고.
애당초 영혼이라는 건 각오와도 매우 큰 관련이 있다.
스스로가 가진 각오. 그 각오를 굽히지 않고 계속 관철시켜 나가면 자연스럽게 격은 올라가고 영혼은 커진다.
지금 헬레나가 그랬다.
어중간하긴 하지만 그래도 영혼이 개방됐다.
그녀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은 진작에 떼 냈다.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선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르던 바다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넓디넓은 평원이 보인다. 그 평원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고, 그곳 정중앙에서 헬레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흥건했고, 그녀의 손에도 피가 흥건했다. 두 눈은 붉었으며 입고 있는 옷은, 처음 보았던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 드레스가 아니라 피처럼 붉은 새빨간 드레스였다. 그녀의 앞에는 엄청난 양의 핏물이 있었다.
사람이 대충 아홉 명 정도가 죽으면 나오는 양이 분명하다.
“더러운 기억인데, 이거.”
문득 들려오는 헬레나의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녀가 고개를 든다. 피처럼 붉은 두 눈.
그녀의 두 눈은, 과거를 바라보는 것처럼 공허했다.
천천히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저씨, 이거 뭐야?”
“글쎄.”
“글쎄글쎄거리지 말고. 뭐냐고, 이거.”
웃고 말았다.
영혼의 힘을 개방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다.
나는 마음이 태평양 같은 남자다. 그냥 설명해 주기로 했다.
“영역 전개, 탈혼기의 강자들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지.”
“……내가 탈혼기라고? 그러니까, 지금 있는 이 2차 각성이라는 경지에서 위로 올라섰다고?”
“네가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으면 따로 알림 같은 거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 보이나?”
“난 플레이어가 아니야.”
잠시 눈을 끔뻑였다.
“그래?”
“무슨 착각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난 시스템이랑 관련 없어. 정확히는 플레이어가 되라는 시스템의 제안을 거절했어.”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여하튼.
“영역 전개는 스스로가 가진 영혼의 힘이 어느 정도의 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자,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두어야 할 기술인데, 나머지 설명은 기니까 대충 이렇게만 이해해.”
“……필살기 같은 거네?”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가 물었다.
“왜 그랬어?”
“뭐를?”
“나 일부러 자극시킨 거 아니야? 지금 이 영역 전개라는 거, 내가 했다기보다는 아저씨가 만든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궁금해? 이유가?”
“응.”
“그냥.”
“…….”
“별 이유 없어. 그냥.”
“아저씨 진짜,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네.”
헬레나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하얗던 모든 땅들이 피로 물들었다.
새하얀 도화지에 붉은색 점이 몇 개 찍혀 있었던 풍경들은 이제 없었다.
모든 것이 붉었다.
“아저씨.”
“왜?”
“아저씨는 대체 어느 정도로 강한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그건.”
“……내가 지금 온몸에서 힘이 넘치거든? 살면서 이 정도로 넘쳤던 적이 없어. 내가 살면서 깨달았던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세상을 이루고 있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아저씨의 한계가 보이지가 않아.”
“그게 보이면 네가 지금 내 경지에 있지 않을까?”
“……미치겠다. 뭐야, 진짜. 아저씨, 혹시 신이야?”
웃고 말았다.
“그럴 리가.”
헬레나가 나머지 손을 들어 내 쪽을 겨눴다.
“……신이 아니라면 아저씨가 가진 자신감의 근원, 한번 보고 싶어.”
“그건 안 돼.”
“왜?”
“영역 전개를 시전하자마자 이승 하직하려고?”
“……미치겠네.”
“이상한 데 욕심내지 말고, 영역 전개나 제대로 보여 줘 봐.”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헬레나도 그걸 느낀 게 확실했다.
헬레나가 웃으며 양손을 꽉, 말아 쥐었다.
바닥에 깔려 있던 핏물로 이루어진 결정들이 하늘로 솟구친다. 장관이었다.
하나하나가 대자연의 기운 따위는 가볍게 찢어발기고도 남을 힘이었고, 그게 전부 나한테 날아오기 시작했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내 발 앞에 수천 개의 피 결정이 박힌다. 진동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모자랄 거 같아서 두 걸음 더 물러섰다.
콰아아앙.
폭발했다. 먼지 사이로 피 결정들이 다시 뻗어 온다. 동서남북.
사방이 점해졌다. 피할 길이 없었다.
기운을 끌어올렸다.
백련기가 몸을 덮는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오른손을 그대로 뻗었다.
[백련교(白蓮敎) 성화칠결(聖火七結).] [3장 혈왕살권(血汪殺拳).]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정면이 열렸다.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아까처럼 나는 순식간에 헬레나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녀의 목을 움켜쥐려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바닥에서 튀어나온 피로 만들어진 화살이 팔등을 후려친다. 내 손은 허공을 때렸다. 헬레나가 손을 뻗는다.
콰아앙-!!
그녀의 주먹이 내 명치에 닿았다. 조금 아프다. 그녀가 한 번 더 주먹을 뻗는다. 왼팔을 들어 막았다. 그런데 콰직, 기이한 소리가 나며 헬레나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인다.
내 방탄력에 오히려 헬레나가 해를 입은 상황이다. 그대로 발을 휘둘렀다.
퍼걱-!!
그녀의 몸이 옆으로 꺾인다. 그때였다. 나는 곧장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주먹이었다.
헬레나의 주먹이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기형적으로 꺾였던 그 팔이, 지금 원상 복귀되어 있던 것이다.
저 팔은 재생하기 힘들었을 텐데, 재생 속도가 상당하다.
발이 땅을 딛는다. 균형이 옮겨진다. 오른쪽 옆구리에 밀착시키고 있던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헬레나의 옆구리에 박힌다. 살점이 짓이겨지고 뼈가 개박살 났으며 내부의 장기가 갈가리 찢겨지는 감촉이 세세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꽈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헬레나가 멀리 날아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역 전개는 여전했다.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웃고 말았다.
대충 알 것 같다.
내 쪽으로 헬레나가 자리를 박찬다.
그녀는 굉장히 빨랐다. 그녀의 손톱이 내게 뻗어 온다.
얼마 전에 상대했던 정복자의 이성재였나, 걔보다 빠르다.
고개를 옆으로 튼 뒤 아까처럼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이번 목표는 헬레나의 얼굴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너무나도 무방비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적중한다.
꽈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헬레나가 튕겨져 나갔다.
평원에 있던 눈들을 피로 물들이며 바닥을 수십 바퀴 구른 헬레나가 그대로 손을 뻗어 땅에 박아 넣었다. 구르던 그녀의 몸이 우뚝, 멈춘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엄청난 피가 묻어 있었지만 ‘상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헬레나의 영역 전개가 가진 특성을.
다시 한번, 헬레나가 자리를 박찼다.
아까와 같았다.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손톱을 세운 뒤 내 얼굴을 향해 휘두른다.
손을 뻗어 잡아채려 했을 때, 퉁, 그 소리와 함께 헬레나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기운을 추적했다. 뒤쪽이다. 왼발에 힘을 준 뒤 몸을 옆으로 회전시키며 이동했다.
후우웅-!!
방금 전까지 내 뒷머리가 있던 곳에 헬레나의 손톱이 지나간다. 그리고, 당황한 헬레나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방비였다.
그냥 무장 해제 수준이다.
그대로 왼쪽 다리에 힘을 주었다. 화르르, 백색 화염이 불타오른다.
헬레나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백련교(白蓮敎) 성화칠결(聖火七結).] [4장 혈왕살각(血汪殺脚).]꽈아아아아아앙-!!
굉음 사이로 헬레나의 고통 어린 비명이 들리긴 했지만 의미 없었다.
그녀는 다시 날아갔으니까.
상·하체가 분리된 채로.
천천히 헬레나의 ‘상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지가 치솟는 그곳에서 붉은빛이 쏘아진다. 양손을 뻗었다.
터억, 터억.
내 왼손이 헬레나의 오른팔을, 내 오른손은 헬레나의 왼팔을 붙잡았다.
헬레나의 하체를 확인했다.
멀쩡했다.
옷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그냥 멀쩡했다. 상처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