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히말라야에 한 남자가 있었다.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눈으로 뒤덮이지 않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사도들의 목적은 지구의 시스템이 페이즈2로 넘어가기 전, ‘열쇠’와 ‘적합자’를 찾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페이즈2가 시작된다.
그런데 열쇠는커녕 적합자조차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몇 추려 놓긴 했으나 말이 후보지, 결국 못 찾아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완벽한 임무 실패.
솔직히 방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언더월드? 오히려 그들 중에서도 후보자 있었기에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들도 사도들을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사도를 건드리는 순간 전면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더월드는 필연적으로 무너질 테니까.
최근에야 등장한 진시후? 대단한 남자인 건 맞다.
사도들을 이렇게 위축 들게 만든 존재는 그 남자가 처음이다.
그는 타이탄에서 지구로 귀환한 지 20일 만에 무려 80명이 넘는 사도들을 죽였다.
어마어마한 거다. 심지어 하나하나 최우선적으로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놀 거 다 놀고, 지구의 정복자인지 뭔지 하는 길드와의 마찰도 해결하고, 심지어는 글도 쓴다.
비록 대필 작가가 다 쓰긴 하지만 그 글에 의견을 첨부하는 건 진시후다.
그런 자잘한 일거리들을 전부 처리하고도 사도 80명을 죽인 것이라면, 그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백 명이 넘는 사도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
그에게 정보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서 사도들이 택해야 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세상 속에 숨어 버려야 한다.
아직 사도들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앞서 말했듯 열쇠와 적합자를 찾는 것은 페이즈1의 임무다.
페이즈2가 되었을 때, 사도들의 임무는 달라진다.
지금처럼 인간 세상에 숨어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간단했다.
페이즈2가 된다면, 이 지구 전체가 변한다.
게이트는 지금껏 공간과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하지만 페이즈2는 그런 분리가 없다.
페이즈2가 시작되면 지금처럼 A급 게이트니 S급 게이트니 하는 것은 의미 없어진다.
지구의 모든 장소들이 전쟁터가 되어 버리니까.
또한, 지구에 ‘안내자’들이 내려온다.
페이즈2의 시련을 담당할 수많은 안내자들은 보통 악마라고 불리기도 하고 천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냥 ‘고블린’이다.
즉, 고블린이라는 안내자들이 내려와 전쟁터가 되어 버린 지구에서 각성자들에게 앞으로 벌어진 일들을 설명해 주는데.
페이즈2에서 사도들의 임무는 그 고블린들이다.
그 안내자들을 족치고 또 족쳐서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열쇠’를 빼앗아 오는 것.
그게 사도들의 임무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게 어그러졌다.
남자는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도,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도.
천천히 그가 고개를 돌렸다.
“느낌 있네, 여기.”
두 남자였다. 정확히는 한 명의 남자가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의 멱살을 움켜쥔 채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멱살이 잡힌 남자와 멱살을 잡고 있는 남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멱살을 움켜쥔 남자는 진시후, 멱살이 잡힌 남자는 11번째 사도 쉐도우.
지금 상황을 남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 남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왜 쉐도우가 저 남자한테 잡힌 거지?
고민은 짧았다.
금방 답이 나왔으니까.
“야차를 만나고 오는 길이신가?”
진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차는 죽었겠군.”
“섭섭해?”
“글쎄.”
“섭섭해하지 마. 곧 만나게 해 줄게. 아마 걔가 마중 나와 있을 거야.”
진시후의 두 눈이 남자를 훑는다.
이런 눈보라 속에서 남자의 복장은 굉장히 얇았다.
반팔 티와 반바지.
기이할 정도로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진시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를 마주한 뒤 확신했다.
“제대로 왔네. 그럼 얘는 이제 필요 없겠어.”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진시후가 반대쪽 주먹으로 쉐도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석-!
쉐도우의 머리가 터진다. 핏물과 뇌수, 뼛조각이 눈 더미를 덮는다. 그대로 쉐도우의 시신을 옆에 던진 진시후가 걸음을 옮겼다.
남자의 앞까지 걸어간 뒤, 이리저리 그를 살피며 물었다.
“안 추워?”
“……그게 질문인가?”
“안부 인사 같은 거지. 네가 아수라라는 애가 맞는 거 같은데, 하필이면 골라도 그 얼굴을 골랐냐.”
남자가, 아니, 아수라가 스스로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얼굴인데, 타이탄에서는 좋지 않았나 보군.”
“어, 많이 안 좋았어. 곤잘레스 비야. 이이백괴들 중에서 가장 비굴했고 가장 추하게 죽은 놈이거든. 그냥 쉽게 말해 줄게. 걔, 연쇄 강간범이었어. 평민, 귀족, 노예 가리지 않고 온갖 곳에서 아랫도리 놀리다가 결국 그 아랫도리를 구워서 먹힌 채…… 어우, 됐다. 말해서 뭐 하냐.”
“……가관이군.”
“맞아. 가관이었어.”
“진시후, 그런 추악한 놈들이 있는 세상이어도 너는 그 세상에서 왕이나 다름이 없었을 터. 도대체 왜 돌아온 거지?”
오히려 진시후가 의아해했다. 일단 대화가 통하는 건 둘째다. 그런데 질문이 조금 그렇다. 이건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니까.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나?”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난 타이탄에서 나고 자란 놈이 아니야. 여기 지구에서 나고 자란 놈이지. 내 가족이 여기에 있고 내 과거가, 그리고 내 미래가 있는데 내가 왜 다른 곳에서 살아? 거, 좀 정상적인 놈인 줄 알았는데 질문이 되게 이상하네.”
“…….”
“네가 그분이라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며?”
“안다.”
“쉽게 가자. 내가 그놈이랑 내기를 한 게 있어. 그래서 묻는 건데 어디에 있어?”
“내기? 무슨 내기를 말하는 거지?”
진시후가 피식 웃었다. 이게 말하기도 조금 그렇긴 하다.
“전에 걔보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 했거든. 오면 한 대로 끝내 주겠지만 안 오면 찾아가서 뒈지기 직전까지 쥐어팰 거라고 했는데 안 오더라고. 그래서 찾아가서 쥐어패려고.”
어이가 없는지 아수라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놈이군. 기이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존재답지 않게 지나치게 자유로워. 좋다.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 이상 그분과 너는 어떤 식으로든 만날 운명인 것 같으니, 내 말해 주도록 하지.”
“말해 봐. 귀 열고 경청해 줄게.”
“하지만 그냥 알려 주기엔 조금 그렇군. 야차도 죽이고 쉐도우도 죽이고, 내 수족들을 죽인 너에게 어찌 쉽게 알려 주겠는가.”
“그럼 뭐 어쩌자고?”
“나를 이기면, 알려 주지.”
“그건 쉽지.”
망설이지 않았다.
진시후가 주먹을 휘둘렀다.
빠아아악-!!
얼굴을 얻어맞은 아수라가 피를 뿌리며 멀리 날아간다.
* * *
세상에는 말로는 설득이 안 되고, 반드시 폭력을 행사해야만 설득이 되는 머저리들이 존재한다.
진시후는 아수라를 그리 생각했고, 아수라도 진시후를 그리 생각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구구절절 이야기해 봤자 열린 귀를 닫은 채 듣지도 않은 저 머저리 같은 새끼는, 일단 뒈지기 직전까지 패 놔야 한다.
두 남자는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산을 구르며 다시 균형을 잡은 아수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 주먹이 뻗어 온다.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주먹이 스친다. 그대로 팔꿈치를 올려 쳤다.
빠악, 진시후의 팔이 하늘로 솟구친다.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금이 갔거나 부러진 게 확실하다.
이건 확실히 해야 한다.
진시후의 팔에 타격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수라가 미간을 구긴 채 즉시 자리를 박찬다. 그의 몸이 뒤로 쭉 뻗어 갔다. 얼얼한지 팔꿈치를 잠시 어루만졌다.
부러져 있었던 팔이 이내 재생된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방어력이군.”
“칭찬이야? 고마워.”
다시 진시후가 자리를 박찬다. 아수라는 이번에도 뒤쪽으로 자리를 박찼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그곳에서 진시후가 한숨을 터트리며, 지금 뭐 하냐고, 그렇게 질문하려던 그때였다.
우두둑.
섬뜩한 소리가 울린다.
아수라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네 번째 사도였던 야차와 거의 흡사했다.
등에는 여덟 장의 검은색 날개가 있었고, 온몸이 검은색이었다.
머리에 나 있는 하나의 나선형 뿔은 굉장히 길었다.
얼마 전에 본 반지하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그곳에 나온 발록이랑 굉장히 흡사했다.
당장이라도 우두둑 소리가 울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근육의 몸뚱이와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동자까지.
이건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아수라의 두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안 아픈가.
그런 생각이 든 진시후가 그대로 물어보기도 전이었다.
툭.
짧은 소리였다.
아수라의 몸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진시후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진시후의 얼굴에.
꽈아아아앙-!!
아수라의 주먹이 꽂힌다.
놀랍게도 진시후가 날아갔다.
바닥에 박힌 채 네다섯 바퀴 정도 구른 진시후가 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오히려 그 모습에 아수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맞는 걸 즐기는 편이었나?”
“아니 그건 아닌데, 신기해서 그래, 신기해서. 처음이야.”
처음이다?
“무엇을 말하는 거지?”
“여기 지구에서 공간 이동술을 사용할 줄 아는 놈을 만난 거.”
“…….”
“간다르바, 천상, 야차, 이 세 명은 되게 어중간했거든.”
진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가에 묻은 피를 슥 훔쳐 내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넌 아니네. 축지를 쓸 줄이야. 놀랐어, 정말로.”
사도들에게도 나름의 주무기가 있는 법이다.
간다르바는 기운을 머금고 방출시키는 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원거리 딜러다. 천상의 본체는 날개 달린 문어였다. 그는 해상 쪽에서 큰 능력을 발휘한다. 일종의 해상술사 같은 거다. 그리고 야차는 검이었다.
눈앞의 아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아수라의 몸을 볼 때, 아수라의 주무기는 무투다. 주먹과 발.
진시후는 간만에 흥미가 진진했다.
사도들을 보면서 매 순간 실망하고 또 실망했다. 오히려 화까지 났다.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그따위 수준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꼴이 못마땅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아수라는 아니다.
저 정도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첫 번째라는 이름에 충분히 어울린다.
타이탄에서 공간 이동술을 펼칠 수 있는 강자는 정확히 20명이었다.
그 20명 모두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괴물들이다.
“재미있네. 무투가 주특기면 나도 무투로 상대해 줄게.”
아수라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진다.
한낱, 미물 새끼가 어찌 저렇게 자신감이 넘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수라는 용납하지 못했다.
툭.
다시 한번 아수라의 몸이 사라진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