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85)
#제85화
“아수라야, 우리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
“별건 아니고, 네 말대로 영혼의 본질을 이야기해 보자고. 분명 난 지구인이 맞아. 여기에서…… 얼마나 살았지?”
“……18년이다. 네놈은 지구에서 18년을 살았고, 이후 타이탄으로 넘어가 10년을 살았다.”
“그래, 그거. 분명 단순 숫자로만 보면 지구에서 산 시간이 훨씬 많아. 내 영혼은 분명 지구에서 태어났고, 나는 명백한 지구인이 맞아. 그런데 영혼의 본질이 변형될 경우는 생각 안 해 봤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영혼이 어찌 변형된다는…… 설마, 네놈이 있는 경지에 올라서게 되면 영혼이 변질되는 것이냐.”
피식 진시후가 웃었다.
“단순 경지의 문제는 아닐걸. 타이탄에서 내가 있었던 시간은 표면적인 시간으로만 보면 분명 10년이 맞아. 그런데 정말 10년일까?”
“……뭐?”
“전에 우리 누나한테 비슷하게 말했었는데, 한 수천 년 정도는 타이탄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 있었어. 말이 수천 년이지 나는 수백 년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난다고……?”
진시후는 굳이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검지로 스스로의 머리를 가리켰다.
“얘가 도저히 감당 못 하고 닫아 버렸나 봐. 수천 년이 아니라, 수만 년일 수도 있어. 그 정도로 살면 영혼이 변질되지 않을까?”
진시후의 말은 한 가지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아수라는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경악한 표정의 그가, 뒤쪽으로 주춤거리며 몸을 움직인다. 두려움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진시후의 말을 아수라의 머리로 해석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진시후는 인간이 아니다. 신인류도 아니다.
진시후가 있는 경지는 영혼의 힘을 다루는 경지다. 정확히는 그 위의 단계다.
그 힘을 사용하기 최적화된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신의 육체를…… 가졌다고……?”
“그런가? 이게 신의 육체인가?”
사실 진시후도 잘 몰랐다.
하지만 아수라는 스스로의 직감을 확신했다.
그렇게 확신을 한 순간, 한 가지의 의문점이 더 생긴다.
“……네놈의 육체가 그 정도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네놈의 몸에 지구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육체와 그런 힘을 가지고 대체 왜 지구로 온 것이냐. 이곳은 분명 네놈이 있을 곳이 아니다.”
뒷걸음질 친 아수라 덕분에 두 남자 사이의 거리는 조금 멀었다. 대충 50cm 정도.
그런데 그 정도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다.
지금처럼.
진시후가 그대로 손을 뻗어 아수라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끌고 왔다.
미간을 아주 약간 찌푸린 채, 진시후가 말했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하냐.”
“…….”
“가만 보니 이거 되게 이상한 새끼들이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한 가지가 법이었어. 강자 독식, 강한 놈이 다 먹는 거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등등, 꼬락서니 보니까 니들도 서열을 중시하는 거 같은데 이걸 너네가 이해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그냥,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야.”
“…….”
“내가 나고 자란 곳이고, 내 가족이 있으니까 온 거라고. 뭔 만들어지다 만 벌레 같은 새끼들이 자꾸 똑같은 말을 하게 하냐. 밥버러지 새끼가, 한 번 말하면 못 알아들어?”
그대로 손바닥으로 아수라의 뺨을 찰싹찰싹 후려쳤다.
말이 찰싹이지,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이빨과 핏물을 보면 그 위력이 절대 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콱 씨, 뭣도 아닌 새끼가 사람 짜증 나게.”
그대로 아수라의 얼굴을 눈 더미에 처박은 뒤 비볐다. 핏물로 얼룩진 얼굴이 그나마 조금 씻겨 내려간다. 그대로 들었다.
아수라를 노려보며, 진시후가 물었다.
“사내새끼가 한 번 한 약속은 지켜야지. 안 그래?”
“…….”
“매우 정중하게, 딱 한 번만 묻는다. ‘그분’이라는 새끼, 지금 어디에 있냐?”
* * *
한 남자가 잠시 손에 들린 워치를 바라보았다.
굵은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
그 남자는 몸이 좋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게이트 클리어도 열심히 하러 다닌다.
정확히 일주일 전, 남자는 이 워치에 대고 이렇게 말했었다.
‘Good luck.’
그리고 어제는, 그의 충신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서열의 아수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도들에게 하던 일들을 모두 중단한 뒤 은닉하라고.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사도라는 거대한 존재들이 한 남자와의 전쟁에서 회피를 택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패배를 시인한 것과 같다.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계산했던 적 없는 위험이었고, 예측할 수조차 없는 위험이었다.
타이탄으로 보냈던 200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나름 마나의 재능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쓸 만한 존재들이었다.
다 까놓고 말해서, 진시후가 왜 사도들을 적대하는가.
단순히 200명을 타이탄으로 보냈다는 이유였다면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사도들의 목적에 과거의 이유는 묻어 두고 갈 수도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시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주변인들은 그렇게 강하지가 않았다.
세상이 거대한 전쟁터로 변한다면 진시후는 가장 가까운 사람 정도는 확실하게 지킬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지킬 수 없다.
사도들과 손을 잡으면 그 다른 이들도 지킬 수 있다.
분명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과거의 이유는 묻어 두고 잠시 손을 잡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나중에 누가 뒤통수를 칠지, 혹은 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칼을 겨눌지, 이 모든 것들은 그 이후의 문제다.
하지만 진시후는 단 한 순간도 사도들과 손을 잡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부터 사도들을 전부 죽일 생각으로 움직였고, 사도들의 목적을 간다르바에게 들은 순간 그 움직임이 더 거세졌다.
이 모든 이유는, 사도들이 단순히 ‘200명의 인간’을 타이탄으로 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사도들의 존재가 없이 200명이 지구에 전부 있는 상태로 시스템이 내려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건 정말 간단했다.
그 200명 모두가 ‘고유 각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시스템도 보는 눈이 있다.
가장 재능이 뛰어난 200명에게 고유 각성자의 재능을 내리지 않는다면 대체 그 누구에게 내리겠는가.
이거 때문이다.
사도들은 지구에 강림할 때 향후, 자신들의 일에 가장 방해가 될 ‘미래의 재능’을 없애는 작업을 취했다.
그게 그 200명이다.
무려 200명이라는 압도적인 미래의 재능들을 죄다 타이탄으로 보내 싹을 말린 뒤 지구에 자리 잡았다.
이 모든 사실을 진시후는 안다.
본인도 그 200명에 포함되었고, 타이탄에서 그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재능을 느껴 왔으니까.
무슨 변명을 해도 진시후에게는 안 통한다.
진시후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해도 진시후는 아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의 위협보다 사도들이 한 행동이 진시후는 매우 못마땅할 것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 말은, 결국 사도들과 진시후는 한 하늘 아래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없는 사이라는 뜻이고, 현재로서는 진시후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남자는 워치를 내린 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단하군.”
분명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한국어였다.
그가 앞에 있는 문을 열며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남자에게 쏟아진다.
남자는 유명 인사였다.
모두 다가오며 사인을 요청했고, 사진을 찍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아까 지었던 고단하다는 표정 따윈 없었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가 팬들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킨 뒤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건물 안으로 들어선 그에게, 로비에 있던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2팀장님.”
남자가, 아니, 구원 길드의 2타격대장이자, 보통 2팀장이라 불리는 ‘윤지후’가 히죽 웃었다.
“그래, 안에 계신가?”
“예, 계십니다. 엘리베이터 잡아 드릴까요?”
“됐어. 일 봐.”
손을 휘휘 저으며 임원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윤지후가 곧장 최상층으로 향했다.
이내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로비를 걸은 뒤 끄트머리에 있는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와요.”
남자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구원 그룹의 총수이자, 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영웅 중의 영웅.
광명술사 진송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던 진송이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로비에 도착하셨다는 보고는 받았어요.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예, 물론입니다.”
윤지후가 걸음을 옮겼다. 진송이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했다.
이 여자가 적합자일까.
아니면, 언더월드의 존재들 중 하나가 적합자일까.
적합자를 찾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사도들의 주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사도들은 ‘적합자’라는 것을 찾는가.
간단했다.
그 적합자에게 사도들이 만든 ‘힘’을 주입해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시스템을 해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열쇠’다.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대체 왜 사도들은 적합자라는 것을 찾아다닐 때 지구에 있는 존재들만을 조사하는가.
타이탄으로 간 200명은 하나같이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지구로 귀환한 진시후가 있는데도 그 조사 범위 안에 진시후를 단 한 순간도 넣지 않았다.
사도들이 정말 진시후의 말처럼 멍청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딴 이유가 아니다.
아닌 이들로만 꾸려서 보낸 거다.
타이탄으로 간 200명은 적합 대상자가 아니다. 정확히는 적합자 후보가 아니다. 사도들이 지구에서 그 200명을 ‘관찰’한 기간은 절대 짧지 않다.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허점’이 있는 이들이었고 그런 이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합자 후보가 될 수 없다.
진송이가 물었다.
“어떻게,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더니, 그게 뭘까요?”
싱긋 웃는 진송이를 바라보며 남자도 웃었다.
“그냥, 휴가를 좀 받고 싶습니다. 마스터.”
“휴가요?”
“예. 보라카이섬에 가서 몇 주 정도만 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정중하게 말하는 남자를 진송이는 잠시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제가 너무 무심했네요.”
“예?”
“한 번도 휴가 가신 적 없으시잖아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게이트만 클리어하러 다니시고…… 미안해요. 진작에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던 건데.”
“아닙니다, 마스터.”
손사래 치는 남자에게 진송이가 재차 말을 이었다.
“아니긴요. 바로 승인해 드릴게요. 페이즈2가 시작된다니까, 시작하기 전날까지만 쉬다 오세요. 경비는 제가 다 지원해 드릴게요.”
진송이는 통이 컸다.
“비행기도 제 거 타고 가세요. 혹시 친구분들도 데려가고 싶으신 거면 같이 데려가시고요. 법인 카드는…… 지금 저한테 없는데 실장님한테 말해서 전해 드릴게요.”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