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솔직히 말하자.
적응이 안 될 정도다.
여전히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입은 웃고 있다. 몸은 떨리고 있었고 건물 잔해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 사타구니 쪽에 있는 잔해가 젖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변을 지리고 있나 보다. 옆에 있던 누나가 한숨을 터트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제대로 미친 거 같은데, 원래 이랬어?”
“그럴 리가. 아까 얘가 얼마나 무게를 잡았는데. 난 무슨 황제 보는 줄 알았다니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 라의 정신은 붕괴됐다. 지금이라면 내가 묻는 모든 것에 제대로 답할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걸러서 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뭐 어쩌겠나.
지 정신이 약한 거지,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질문을 했다.
이건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의문을 풀어야 했다.
“적합자와 열쇠, 이 부분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말해 봐. 말 안 하면 4시간 동안 거기로 보내 버릴 거야.”
히익,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놈이 다급하게 말했다.
“말하겠습니다. 아는 모든 걸 말할게. 그러니까 이 개종자만도 못한 새-끼야, 그곳으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 제발.”
“중간중간 욕 쓰는 게 굉장히 아니꼬운데, 일단 말해 봐.”
“적합자는 열쇠의 적합한 자를 의미하며 열쇠는 진리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의미한다.”
“갑자기 목소리가 또렷해졌네. 계속해 봐.”
“진리의 문을 연 자는 그에 상응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며 그 정도의 힘이라면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
“머나먼 과거에 ‘천존’이라 불리던 이가 열쇠의 주인이 되어 시스템을 무너뜨렸던 기록이 있다.”
뭔가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그러려니 했다.
“열쇠를 얻어 진리의 문을 연 적합자는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최강의 칼이 될 것이다. 그 칼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 육도선인의 최종 목표다.”
“그럼 타이탄으로 보낸 200명은 뭔데?”
“타이탄으로 보내 버린 200명은 추후에 우리가 지구를 점령하는 데 큰 방해물이 될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도가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고, 우리 중 다수는 이미 시스템의 권속으로 들어갔다.”
“시스템이라는 게 생각보다 허술한 건가? 너희가 그 200명을 대체하고 있는 걸 시스템이 몰라?”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넘어간다. 시스템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대충 이해했다.
시스템은 알면서도 사도들이라는 존재를 ‘플레이어’로 등록시켰고, 이들도 시스템을 적으로 생각하면서도 플레이어로 들어갔다.
즉.
“트로이의 목마 같은 건가?”
“무식한 놈이 제법 아는 게 있구나.”
그대로 뺨을 한 대 후려치려다가 그만뒀다.
“계속해 봐. 그냥 아는 거 전부 읊어 봐.”
“타이탄에서 귀환하는 이가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전부 죽는 것이 100% 확실시되었으니까. 너희가 가진 재능이 아무리 비범하다 할지라도 그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배경이 필요한 법이다. 타이탄은 선인님의 고향으로서 그곳에서는 강자 독식, 약자 도태가 기본 원칙이다. 너희처럼 기회를 요구받지 못한 벌레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밟혀 죽는 것이 기본 원칙. 대체 네놈이 어찌 귀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잠시다. 어차피 선인님께서 강림하시면 너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다. 이 개 같은 새-끼야.”
더 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여섯 장로들 중 진송이를 적합자 후보로 생각한 이가 무려 5명이었다. 내 의견까지 포함하면 7명의 사도들 중 6명이나 진송이를 적합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
솔직히 이건 정말 궁금했다.
“왜?”
다른 건 별로 안 궁금했는데 이건 정말 궁금했다.
왜 우리 누나일까. 놈이 답했다.
“진송이만큼 신념을 관철시키는 이가 없으니까.”
“신념?”
“광명술사 진송이는 아름답지. 똑똑하고, 돈도 많다. 자신보다 남을 위할 줄 알며 큰 것을 위해서라면 작은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대담함도 가지고 있다. 집중력은 물론 시야도 넓고 예측력도 뛰어나다. 간간이 보이는 천재적인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웅이라는 단어는 분명 이 여인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뜬금없이 긴 칭찬에 누나가 눈을 끔벅이고 나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남자를 밝히지도 않는다. 저 정도 외모라면 취향의 남자든 혹은 여자든 파리 꼬이듯 꼬이겠지만 진송이는 한눈 따위 팔지 않았다. 접근해 오는 남자, 여자, 혹은 그녀가 혹할 정도의 남자가 그녀의 앞을 지나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다. 전투적인 측면에서도, 그리고 스스로의 위치를 이용해 부를 축적시키는 능력이나 그 모든 것들이 비범하다. 그런 존재이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희생자가 되고자 하는 자세도 그렇고, 이 여자가 적합자가 아니면 대체 누가 적합자이겠는가.”
조금 애매했다.
“신념이 어쩌구 했잖아. 그게 뭔데?”
“진송이는 게이트가 없어지는 세상을 원한다. 정확히는 평화를 원하지. 그래, 그 평화. 스스로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만들고 싶은 그 평화. 진송이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버는 돈으로 족족 기부하고, 무너진 땅을 다시 세우고, 죽어 나간 이들의 장례를 대신 치른다.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진송이는 수준에 맞지 않는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까지 게이트에 고립된 이들을 구해 낸다. 말로는 게이트가 없는 세상을 원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많지만 진송이만큼의 의지력을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들과 진송이의 다른 점은 하나다. 평화를 위해 지금 당장 네 목숨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단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가, 없는가. 진송이는 적합자가 확실하며 열쇠를 찾는 즉시 그 열쇠를 이용해 진송이를 진리의 문으로 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시스템이 본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그날, 시스템은 적합자와 공멸하게 될 것이다.”
“꽤 확신하고 있네. 정말 공멸할까? 시스템이 이길 수도 있잖아?”
“이길 수 없다.”
“왜?”
“시스템은 진리의 문에서 왔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사라지면, 그때부터는 우리 사도들의 진짜 역할이 시작되는 것이다.”
작게 웃고 말았다.
이건 나도 몰랐던 이야기다. 사도들의 진짜 역할? 적합자를 찾고 열쇠를 찾는 게 아니었나?
“뭔데, 진짜 역할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시스템 뒤에 숨어 있던 승천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즉시 승천자들을 땅으로 끌어내 그들의 사지를 분해하고 그들의 피로 목을 축이고 그들의 목을 꼬챙이로 꿰어 승전고를 울릴 것이다.”
전에도 들었던 그 단어가 튀어나온다.
승천자.
대체 승천자가 뭔데.
그보다.
“진리의 문이라는 게 정확히 뭐냐?”
“진리의 문은 진리의 문이다. 이 머저리 쉐-끼야.”
“그 연금술사 나오는 만화가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그 문이랑 비슷한 건가?”
“다르다. 진리의 문은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만화랑 같을 리 없지 않은가. 상상력이 지나치게 빈곤하군. 역시 인간, 너무나도 하등한 새-끼, 너 같은 새끼랑 문답을 나눌…….”
짜악-!
그대로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자.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다시 기괴한 웃음소리가 시작된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누나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누나가 때마침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이 이야기.”
“……나쁘지는 않아. 그리고 일리가 있어.”
“뭐가?”
“적합자라는 거. 왜 내가 적합자인지 몰랐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알 것 같아.”
묘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쟤가 말한 게 다 맞아. 나는 게이트가 없어지는 세상을 원해. 그것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곧장 내던질 수 있어. 그 생각으로 10년을 살았어.”
“…….”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시키는 것에 나는 망설임이 없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네가 건물을 무너뜨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그런데 그것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막지도 않았고.”
“그건 맞지.”
“만약 그 자리에서 네가 얘를 근처에 있는 게이트로 데려가는 방안도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얘가 몸을 숨길 수도 있잖아. 놓칠 확률이 0.1%라도 있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 육도선인이 사도들의 황제라면 얘는 사도들의 왕이니까.”
“그건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엄밀히 말하면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든 건 누나가 아니라 나지만, 누나는 내 생각보다 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 놈을 만난 게 너무 반가워서 그 자리에서 조진 것뿐이지만 누나는 무대를 옮기는 방안을 넘어 놈이 도망칠 확률까지 계산했으니까.
“말했잖아. 어쩔 수 없어. 얘를 놓치게 되면 100명 죽을 게 1,000명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구할 수는 없어. 지금은 그런 세상이니까. 가능하면 희생을 줄이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맞아.”
“냉정하네.”
누나가 슬며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 누나에게, 나는 지금 이 순간 반드시 던졌어야 할 질문을 꺼냈다.
“정말 누나일까? 그 적합자라는 거.”
“……왜? 아닌 거 같아?”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기준이 너무 ‘힘’에 치우쳐져 있는 거 같아서.”
“힘?”
“얘네가 후보로 추린 명단을 보면, 다 누나처럼 고유 각성자이거나 언더월드의 유하나 헬레나처럼 일정 경지에 이른 이들밖에 없는데, 만약 그런 게 아니면?”
누나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지금의 누나처럼 신념을 관철시키는 이가 누나 말고 더 있지 않을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잖아. 내가 지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누나만큼 게이트가 없어진 세상을 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까지 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지금 두 명 떠오르네.”
그게 누구냐고 누나는 묻지 않았다. 질문이 의미가 없었기에.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누나는 안다. 나도 알고.
“윤영수, 홍현.”
엄밀히 말하면 사도들은 ‘적합자’를 확실하게 잡아낸 게 아니다. ‘후보’를 추려 놓은 거다.
“그리고 전에 정빈한테도 이야기했던 건데, 여기 사람들은 그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맹목적?”
“시스템이 등급을 정해주면 그게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잖아.”
길게 말할 필요 없었다.
“정빈은 자기 스스로가 B급 각성자라던데, 내가 볼 때 정빈의 잠재력은 B급이 아니라 S급 내지 SS급 정도는 됐었어. 거기에 내가 약간의 도움을 더 줘 가지고 지금 SSS급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누나.”
“왜?”
“시스템이라는 거, 너무 믿지 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