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legendary returner lives RAW novel - Chapter (94)
#제94화
말이 묘하다.
“안면 인식, 뭐?”
“마나를 조금만 불어 넣으면,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코트의 주인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합니다. 코앞에 있다 하더라도요.”
조금 놀랐다.
“세상의 물리 법칙을 벗어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공간을 비껴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코트를 입고 있을 때 이 세상 그 누구도 저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걸치든 입든, 마나만 불어 넣으면 효과가 발동되니 적어도 사도들을 잡으러 갈 때 진시후 씨가 누구인지, 그들은 코앞까지 갔을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유용하다는 말은 부족했다.
흥미로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리 누나 주변에 있던 윤지후가 태양신 라, 즉 사도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기운을 집중해서 살폈을 때, 그제서야 이질감을 느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기운이다.
그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어떻게 구했어?”
“탐나십니까?”
“조금.”
“원하시면 드리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거라며?”
“당신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가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피식 웃고 말았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달라고 하기 좀 그렇다. 내가 진짜 양아치처럼 보일 거 아니야.
“안 줘도 되니까 어떻게 구했는지나 말해 봐.”
“SS급 게이트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게이트 보상?”
“예, 정확히는 바실리스크의 가죽 일부를 얻었습니다. 그 가죽을 코트와 결합시켜서 만든 겁니다.”
이상하게, 내 직감이 계속 외치고 있었다.
바실리스크와 태양신 라가 말했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육도선인.
이 둘 사이에는 분명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여하튼.
“5시간이라고 했지?”
“예, 최대 5시간입니다. 최소치로 잡으면 3시간 정도밖에 없습니다.”
“걔들 위치 확보만 제대로 하면 돼. 여기 주변에 뱀파이어 있나?”
“총 22명이 대기 중입니다.”
“다 불러와.”
“……예?”
의아해하는 라자루스에게 웃으며 말했다.
“피 공장 만들 거라며? 사도들 기절시킬 건데, 걔들 데려갈 짐꾼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라자루스가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메이안 펍으로 향했다.
* * *
미코노스섬은 휴양지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대격변 이후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지긴 했어도 이 정도의 휴양지는 쉽게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기반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여느 때처럼 미코노스섬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지금은 분명 대낮이다. 그리스 기준으로 오후 1시밖에 되지 않았다.
휴양지였기에 낮술을 하는 이들은 분명 있다.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메이안 펍은 한산했다.
바텐더도 없었고 직원도 없었다.
이곳에는 오직, 각양각색의 남녀 9명만이 존재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급한 일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우리를 부른 거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렇게 우리를 전부 불러 모을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데…….”
“소집이라니, 뭣도 아닌 놈이 꽤 출세했어.”
“뭐 어쩌겠나. 그동안 놈한테 뜯어내고 받아 낸 게 있으니 지금처럼 한두 번쯤 움직여 주는 건 나쁘지 않지.”
“왜? 또 이렇게 움직여 줬으니 돈 달라고 하게?”
“지구에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게 많더군. 미인도 많아. 놈한테 공급받던 여자들 수준이 꽤 높아. 내가 있던 플로리안에도 거의 드물어.”
역겹다는 듯 다른 여자가 말했다.
“더러운 새끼.”
“남 말하고 있군. 전에 일본에서 호스트 20명을 끼고 놀다가 한폐제하고 대판 싸울 뻔했던 년이.”
“이 새끼가, 그때 그건 오해라고 분명 말했는데 귓구멍이 막혔어?”
여유롭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남자와 분노하고 있는 여자,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그중, 대화에 끼지 않고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던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미국의 프리메이슨이 진시후와 손을 잡았다.”
모두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공장을 하나 만들었다더군.”
펍이 침묵에 잠겼다.
그럴 만도 했다. 이 남자는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남자였으니까.
무려 13번째다.
13번째 사도 이아손(Ἰάσων).
2번째 사도인 아테나의 심복 중 한 명인 그가 입을 열었으니 모두가 입을 닫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 공장에서 사도들을 잡아서 피를 뽑고 있다더군. 라자루스가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를 부른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다.”
이아손의 두 눈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캘리포니아 공장을 부수고, 그곳의 사도들을 해방시키는 것.”
사실 깊게 생각할 거리도 아니었다.
진시후가 강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안다.
그에게 걸린 사도들이 살아날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죽을 확률이 높을까.
이미 그분을 비롯한 최상위 사도 중 대다수의 목이 날아갔다.
죽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살았다.
놈과 마주한 사도들 중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40명 이상의 사도가 지금 살아서 공장에 감금되어 있다.
애초에 그분이 죽든, 첫 번째 사도인 아수라가 죽든 네 번째 사도인 야차가 죽든, ‘대계’의 진행은 멈추지 않는다.
열쇠를 찾아 적합자에게 주입한 뒤 시스템과 함께 공멸시켜 버리는 것.
이후 등장할 승천자들을 하늘에서 끌어내린 뒤 죽여 버리는 것.
이 모든 일은 지금 주춤할 뿐 계속 진행은 되고 있었다.
사실, 네 번째 시련까지 버텨도 승천자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끌어내리는 과정이 없기에 그들의 힘은 상상 이상이겠지만 상관없다.
죽일 기회만 만들면 된다. 그것을 위해 함께 나아가는 이들이 바로 ‘200명의 사도’다.
“라자루스가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이렇게 모인 것을 보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의 이야기를 일단 듣겠지만, 최우선적으로 캘리포니아의 사도들을 해방시키는 게 앞으로 우리의 목표다. 조만간 아테나 님의 명령이 떨어질 테니 그때까지 마음 단단히 잡고 있도록.”
여전히 장로는 장로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펍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다. 양복을 입고 있는 라자루스가 보인다. 여전히 그의 가슴에 꽂힌 붉은색 행커치프는 인상적이었다. 그의 옆에도 사람 하나가 있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보나 마나 라자루스 밑에 있는 뱀파이어 중 하나겠지.
아마 보좌관이거나 운전기사일 것이다.
라자루스와 운전기사의 앞으로 이아손이 걸어갔다. 그들과 약 40cm 거리를 두고 멈춰 선 이아손이 물었다.
“배가 불렀더군.”
라자루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래, 네놈이 배가 불렀어. 그게 아니고서야 감히 사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으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면?”
“적어도 우리가 아는 네놈은 허튼짓을 하지 않는 놈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거고, 그래서 지금 네놈을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야박하네. 그동안 지원해 준 게 얼만데.”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라. 그만한 지원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너를 비롯한 유럽의 뱀파이어들이 지금처럼 무사히 숨을 쉬고 살아 있을지를.”
라자루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의 실핏줄은 이미 여러 개가 터져 있었고 미간은 살짝 좁혀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머니에 꽂고 있는 주먹은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이게 팩트다.
라자루스는 미국의 헬레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녀와 달리 라자루스는 이렇게 자존심이 뭉개지고 짓밟히는 와중에도 휘하의 뱀파이어들을 지키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 모은 목적…….”
“말하기 전에 하나만 묻고 싶은데.”
말이 끊기자 이아손의 이마에 두동맥이 돋아났지만 이아손은 참았다.
번뜩이는 눈으로 라자루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확실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라자루스에게는.
“페트로스 만탈로스, 그가 이 자리에 없는 이유가 캘리포니아의 공장과 관련이 있나?”
그 질문에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도가 반응했다.
놀란 이들과 속내를 들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감탄하는 이들, 제각각이었다.
그중 이아손은 감탄하는 쪽이었다.
“제법이군. 라자루스 블러드, 너는 분명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똑똑하지. 생각 없는 다른 사도 새끼들이 너를 좀 본받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나, 이아손은 개탄함과 동시에 탄복할 따름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아손은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라자루스 블러드, 네놈에게 미국을 주겠다.”
“내게?”
“그렇다. 지금껏 너는 우리들의 요구를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협박이라는 수단을 통하긴 했으나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은 네놈이 그만큼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라는 뜻이지. 물론 책임감도 뛰어나고. 그러니 네놈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가 캘리포니아의 공장을 부수는 것을 도와라. 그리하면 미국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원한다면 헬레나 마이어스도 네놈에게 건네도록 하지. 그년과 원한이 깊은 걸로 아는데.”
“제안은 고맙지만, 이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이런 갑작스러운 일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라자루스의 말에 이아손은 순간 미간이 구겨졌다. 그의 뒤에 있던 사도들 중 두 명이 버럭 외쳤다.
“이 하등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말대답을…….”
그런 사도의 말을 이아손이 제지했다. 그는 여전히 라자루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
당연히 동등한 위치에서의 그런 게 아니다. 이아손의 그것은,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을 바라볼 때의 그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오래는 주지 못한다. 하루다. 하루 안에 결정하도록. 그런데…….”
이아손의 시선이 라자루스의 옆에서 지금껏 쭉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운전기사’에게 향했다.
두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번째는 운전기사답지 않게 코트를 걸치고 있는 모습이 아니꼬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운전기사답지 않게, 감히 이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묘하다.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뱀파이어 중에 저런 얼굴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아손이 말했다.
“운전기사인 것 같은데, 이놈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