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0화(10/245)
10
“그러니까… 버스남 씨랑 화연 언니랑은 그냥 알바 동료일 뿐이고, 그 애는 친자식이 아니다… 이건가요?”
한참동안의 설명 끝에, 해영이 지금까지 이한성이 설명해줬던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확인을 구했다.
“요약 잘 하셨네. 네 맞습니다.”
괜히 귀찮게 해명을 더할 것도 없이 자신의 설명을 단번에 정리한 해영에게 이한성은 좀 어리버리해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면모에 조금 놀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야. 그런 거였구나~ 잠깐, 저 그럼 되게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그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뒤늦게 오해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해영은 그대로 조금 전에 화연이 이한성의 와이프니 뭐라니 했던 자신의 질문들을 떠올리고는 무척이나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분, 좀 귀여우시네.’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 마치 그런 해영의 모습이 꼭 잘못을 저지른 골든 리트리버와 같은 인상이라고 생각한 이한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이구… 죄송해요. 화연 언니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러죠 뭐.”
어차피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하는 해영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문득 든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나저나 용케도 제가 한 말을 믿으시네요.”
보통 사람이라면 변명이라고 생각하며 겉으로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물론 이한성이 그녀에게 설명한 자초지종들은 시스템이라던지 아기의 정체라던지를 제외하면 전부 다 사실이었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믿기가 힘든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야 믿죠? 이런 걸로 쓸데없이 거짓말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쓸데없이?
붙이지 않았어도 될 단어를 굳이 문장에 넣은 해영의 단어선택에 이한성은 아주 살짝이지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해영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어서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전 원래 사람 말을 일단 믿고 보는 성격이거든요.”
“….”
속고 살기 딱 좋은 성격이네.
온갖 거짓말과 사기행각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적합한 성격이다. 친한 친구사이라도 절대로 돈을 빌려줘선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게 바로 이 세상인데, 해영처럼 남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마 남을 등쳐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있어선 거의 최적의 먹이와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뭐… 그래서인지 화연 언니도 그렇고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제가 언젠가 한번 크게 데일까봐 걱정이라고 말하지만요.”
해영이 머쓱한 미소로 말끝을 살짝 흐렸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본인의 성격에 대한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지겹도록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조금 안이한 성격이긴 하네요.”
“아하하… 역시 그런가요.”
“그래도 뭐, 그렇다고 딱히 고칠 것 까진 없지만 말입니다.”
확실히 사회를 살아가기에는 다소 부적합해 보이는 해영의 성격이지만, 적어도 그녀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피해를 입었으면 입었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해영의 성격을 긍정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 이한성의 긍정이 조금 쑥스러웠는지 실없는 미소를 얼굴에 띄웠지만,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뒤로 한 채 그녀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그런데 해영 씨,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 겁니까?”
“…아!!”
이런저런 대화를 서로 나누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지만, 해영에게 있어서 지금은 엄연히 근무시간이다. 아마 이렇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걸 다른 직원이나 윗사람에게 들켰다가는 호되게 쓴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내 정신 좀 봐…. 저 먼저 가볼게요!!”
“네. 조심해서 가세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어디론가로 향하는 해영의 뒷모습에 이한성은 금방이라도 어딘가에 또 부딪칠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걱정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어지간히도 바빴던 해영에게 그런 그의 말은 닿지 못했다.
“가버렸구만…”
해영이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주변은 온통 침묵으로 물들었다. 때마침 아기도 대화 도중에 잠들어 있던 상태였기에 몇시간 만에 다시 찾아온 고요함을 맞이한 이한성은 금방이라도 눈을 감고 이대로 잠들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며 바구니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어떡해야 한다냐…”
입소 절차가 끝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은 2주. 오늘 저녁에 당장 야간근무로 알바를 뛰어야 하는 이한성에게 2주 동안이나 아기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그냥 애를 베이비박스 안에다가 넣을까? 그럼 왠지 애를 버리는 것 같아서 조금 양심이 찔리긴 하는데… 그래도 보육원에 보내는 거랑 베이비박스에 보내는 거랑 둘 다 똑같은 거잖아.’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머리만 더 아파져온다. 이미 밤을 새서 아침부터 계속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이한성은 결국 양심과 현실의 싸움 끝에 현실의 손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
이한성은 겉으로도, 속으로도, 그 어떠한 변명도 내뱉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사소한 변명으로 스스로를 정당화 했다가는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속에 남은 양심마저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랬기에 이한성은 그저 조용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대로 보육원을 나와 근처 교회로 향하려고 했다.
“동욱이 너…! 어쩌다가 그렇게 다친 거야?!”
“?”
하지만 막 발을 떼려던 그 순간, 익숙하디 익숙한 목소리가 정문 쪽에서 들려와 이한성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정문 앞을 바라보며 그곳에는 화연이 좀처럼 보기 힘든 흥분한 모습으로 이름 모를 10살짜리 아이를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살펴보고 있었다.
‘…딱 봐도 휘말리면 성가셔질 것 같네. 조용히 지나가야지.’
굳이 [의심병자의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눈치가 백단인 이한성은 발소리를 죽이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연을 지나치려고 했다.
“설마… 너 또 동네 애들이랑 싸운 거야? 누나가 다치면 안 되니까 싸우지 말라고 했잖니!”
화연이 몸 여기저기가 까지고 멍들은 소년을 바라보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나이 때 싸우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화를 내는 거야?’
5살 때부터 온갖 애들과 치고 박고 싸우면서 자라왔던 이한성은 화연의 태도가 너무 과보호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아주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아니, 정확히는 지나치려고 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걔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단 말이야!!”
동욱이라고 불린 소년이 화연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반박했다. 그러자 동시에 바구니 안에서 편히 자고 있던 아기가 번뜩 눈을 떠버렸고, 이내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바다처럼 고요한 표정을 지었다.
“우으으…”
“아 제발.”
“우으아아앙!!”
….그래. 어째 이렇게 될 것 같았다.
결국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 화연과 소년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경쓰지 마시고 하던 얘기 계속하세요.”
“으아아아앙!!”
말은 그렇게 하는 이한성이었지만 아기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탓에 이미 둘 사이의 대화는 진즉에 끊긴 상태였다.
“자자, 분유 줄 테니까 그만 좀 울자.”
“으아앙!! 응으부…”
이한성이 분유가 담긴 싸구려 젖병을 꺼내 아기의 입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기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는 꼭지부분을 우물거리며 분유를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고, 이에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본의 아니게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화연과 소년 사이의 대화에 다시 엿듣기 시작했다.
“아무튼 동욱아. 애들이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이렇게 다칠거면 싸우지 말고 도망쳐야 하는거야.”
“내가 걔들보다 더 센데 왜 도망쳐야 하는데?”
“네가 더 세다고 해서 안 다치는 건 아니잖니.”
“하지만 난 도망치기 싫단 말이야!”
소년이 갑자기 화연의 팔을 뿌리치며 보육원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은 어째서인지 따라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화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따라 갈 겁니까?”
“…한성 씨야 말로 나가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화연이 피곤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아직도 분유를 쭉쭉 들이키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지금 움직였다간 또 울어댈 것 같아서요.”
“아하하… 힘드시겠네요.”
바닥에 닿을랑 말랑 하는 긴 금발을 쓸어 넘기며, 화연은 피곤함이 깃든 미소와 함께 이한성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답을 이어갔다.
“….동욱이는 작년에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에요. 집에서 아동학대를 당하던 아이죠. 부모님은 지금 실형을 받은 상태고요.”
별로 놀랍지도 않을 정도로 뻔한 사연이었다. 적어도, 이한성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동네 애들이 자주 왕따를 시키나 봐요. 부모님이 버린 애라면서요.”
“….저한테 이런 이야기는 왜 하시는 겁니까?”
제멋대로 대화를 이어가는 화연에게 이한성은 제법 날이 선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냥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
이한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겉으로 듣기에는 알지 못하는 화연의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아주 잘 이해해버렸기에.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는지 알면서도, 정말로 보육원에 보낼 것이냐고. 화연은 지금 그렇게 돌려서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전 이만 동욱이를 찾으러 가볼게요.”
화연은 굳이 이한성이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대답이 어떻든 간에 선택은 이한성의 몫이고, 자신이 이래라저래라 해봤자 아무소용 없다는 걸 그녀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원.”
멀어져가는 화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홀로 중얼거렸다.
‘누가 그걸 모르는 줄 아나.’
부모에게 버려진 채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세간에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당장 이한성 본인만 해도 보육원만 안 갔을 뿐이지, 보육원의 아이들과 별 다를게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왔다.
그렇게 겪어본 경험으로부터 이한성이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부모의 존재는 때때로 없으니 만큼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애가 제 아비를 닮아서…
“….”
그랬기에 이한성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다짐을 끊임없이 되뇌어 왔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부모라는 존재만큼은 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