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0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04화(104/245)
104
가게 마감을 전부 끝나고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샌가 시간은 8시 반이었다.
꽤나 늦은 시간. 하늘은 캄캄하고 가로등의 불빛에만 의지해서 걸어야 하는 시간.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겨울인 탓에 날이 짧아 여자 둘이만 같이 보내기에는 조금 마음이 걸렸던 이한성은 조심스럽게 화연과 해영에게 물었다.
“…집까지 둘이서만 가도 괜찮겠어?”
“괜찮아. 대한민국 치안이 얼마나 좋은데.”
화연이 전혀 문제 없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이한성의 걱정을 덜어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평범함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인간에 불과한 이한성이 온갖 마법에 능한 엘프인 자신을 걱정해준다는게 어딘가 우스우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집 방향이 아예 다른데 굳이 바래다주기엔 좀 그렇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
아직 차도 없는 주제에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게 참 꿈도 크다. 이한성은 그렇게 뒤늦게 자신이 괜시리 오바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빠른 시일 내에 면허를 따고 차를 한 대 사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그러는 너야 말로 괜찮겠어? 가는 길 내내 수정이를 업고 있어야 할텐데.”
“불편하다고 애를 버리고 갈 수도 없잖아. 그냥 버텨야지.”
등이 좀 뻐근해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가는 길 내내 걸어갈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니 큰 문제는 없다.
이한성은 그렇게 곤히 잠든 채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수정이를 옅은 미소와 함께 흘끔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말은 항상 그렇게 하면서도 늘 아빠의 책임을 다하는 이한성을 위해 사소하게 나마 경량 마법을 걸어주었다.
“적어도 집에 돌아갈 때 까지는 지속될거야.”
“오, 감사.”
원래 무게 보다 반 정도나 가벼워진 수정이의 몸무게에 이한성은 소소하게 놀라며 화연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 팝콘 땡긴다.”
보기만 해도 뭔가 간질간질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화연과 이한성 사이의 분위기를 지켜보며, 해영은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둘의 썸을 관람하기에는 타이밍 나쁘게 버스가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버스 왔네. 그럼 이만 가 볼게.”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먼저 도착한 것은 화연 일행의 버스였다. 나지막히 손을 흔드며 해영과 함께 버스에 올라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 이한성은 이윽고 금방 떠나가버리는 버스로 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참고 있던 혼잣말들을 중얼거렸다.
“…빨리 차 좀 알아봐야겠네.”
SUV? 적당한 국산 승용차? 아예 돈 좀 써서 고급 외제차나 한번 사봐?
“아니지. 일단은 면허 부터 따야지.”
앞으로 간간히 집까지 바래다 주고 싶으면 면허가 우선이다. 무면허인 주제에 차를 먼저 산다는 것은 주객전도 그 자체이니.
이한성은 그렇게 벌써부터 화연을 집까지 바래다 줄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들뜬 상태로 조용히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팔자가 펴지니까 세상만사가 다 즐겁구만.”
역시 인생에 여유가 있어야지만 뭘 해도 다 즐거운 법이다. 여유롭지 못한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지기 마련이니.
하지만 반대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일에 관대해진다. 지금의 이한성이 그렇듯이 말이다.
장사가 생각보다 잘 안되도 돈 때문에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니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고, 본인이 사장이다 보니까 실수를 하든 뭘 하든 윽박받을 일도 별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니까 예전에는 특정 부분에 부정적이기 그지 없던 시선이 점차 완만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연애라던가, 연애라던가, 또 연애라던가.
‘솔직히 연애나 결혼 같은 걸 뭐하러 하냐고 생각했었지만… 숨통이 트이고 나니까 자연스레 눈길이 가게 된단 말이지.’
당연한 이치다. 당장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이 무슨 여유가 있어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계획하고 자녀를 낳는단 말인가. 생존본능이 최우선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여유보다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바뀐게 가장 크겠지만.
불과 몇개월 전에만 해도 절대로 부모 따윈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보아라. 그렇게 자신있게 외치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아직 미혼인 주제에 딸이 둘인데다가 애들이 떼를 쓰면 싫다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보게 되는 호구가 되어버린 이한성. 만약 작년의 이한성이 지금의 이한성을 본다면 대가리가 빠개져서 전두엽이 적출되기라도 한거냐고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참… 세상 앞날 같은 건 장담할 게 못된다니까.”
그런 혼잣말과 함께 이한성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잠시 벤치 위에 눕혀 두었던 수정이를 다시 등에 업은 채 정차한 버스에 올라탔다.
앞으로도 분명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
“…근데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지.”
창 밖으로 스며드는 아침의 햇살이 따사로운 가게 안에서, 이한성은 8시에 가게를 연 이후부터 장정 3시간 동안 얼음만 간 것 같은 기분아닌 기억을 되올아보며 영혼이 쏙 들어간 목소리로 홀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게를 열자마자 들이닥친 손님만 대충 세어봐도 총 서른 명. 1시간 안에 들이닥친 주문의 갯수만 총 104개. 아직 오후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바닥을 보이는 식재료들.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어제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수정이네 빙수카페]는 오늘 미칠 듯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장과 직원들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없이 3잔!”
“딸기 빙수랑 트리플 초콜릿 빙수 라지로!”
“으아아 잘못 눌렀다!!”
3시간 내내 앉아서 쉴 틈도 없이 빙수들을 테이블에다가 나른 화연과 정보 허용치 초과로 아까부터 이런저런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해영의 분주한 모습이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둘의 모습을 한가하게 지켜보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하루 아침에 확 바빠진거지?? 이유가 뭐야 대체?? 무슨 도깨비라도 왔다 간거야 뭐야??
흔히들 이런 정신없는 시츄에이션을 “지랄났다” 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이한성은 그렇게 생각만 해도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를 속으로 읊으며 서둘러 얼음통을 빙수 기계에다가 부었다.
“…어?”
하지만 얼음 통에서 나오는 건 오직 얼음이 녹은 흔적으로 생겨난 물 몇 방울 뿐이었다.
이런 x발 x됐네.
현재 시각 11시 53분. 12시 정오까지 단 7분을 남긴 지금, 빙수를 만드는데 빠져서 안될 얼음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진 건 얼음 뿐만이 아니다. 과일 토핑도, 우유도, 연유도, 시럽도, 이미 다 떨어졌거나 바닥을 보이고 있다. 어제와 손님 수가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어제와 똑같은 양의 재료들만 준비해 두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한성이 준비해 놓았던 재료는 대충 50인분의 메뉴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어제 하루 매출이 30만원 이었으니 어제와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이 준비 했으면 준비 했지, 결코 적게 준비한 건 아니었다.
3시간 내내 가게 안의 모든 테이블들이 꽉꽉 차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빨리 일 안하고 뭐해?! 사장이라고 지금 땡땡이 치는거 아니지??”
“….”
이런 분주한 와중에도 숙련된 알바 경험으로 거의 실수 없이 커피 여러잔을 한번에 타고 있던 화연이 멍하니 선 채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이한성에게 잔소리를 던졌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아무 말 없이 텅 빈 냉장고 안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내, 냉장고 안이 왜 저래…? 재료 사는 거 깜빡했어…?”
“그럴리가.”
“그, 그럼 대체 왜 안에 아무것도…”
“그러게. 왜 아무것도 없을까.”
이한성이 꽉꽉 채워져 있는 테이블들을 바라보며 그걸 굳이 말해야 알겠냐고 따지듯이 입을 열었다.
카페든 식당이든 간에 요식업계의 경우, 준비해둔 재료들을 전부 다 쓰는 경우는 아주 극히 매우 드물다. 보통 예상치보다 재료를 널널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보통 아주 유명한 미슐랭 쓰리스타 타이틀을 지닌 식당이 아니고서야 재료를 전부 쓸 정도로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저기요, 10분 전에 딸기 빙수 하나 시켰는데 아직도 멀었나요?”
아까부터 기다리다 지친 여자 손님 한분이 계산대로 다가와 정신이 반쯤 나가있던 해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정신이 가출하기 직전인 그녀를 대신해 사장인 이한성이 직접 나서며 허리를 숙여 손님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준비해둔 재료가 다 떨어져서… 바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네?? 으으으…! 왠지 그럴 것 같았더라니…!!”
“…?”
분명 짜증스런 기색을 내비칠 줄 알았는데 손님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한 눈치였다.
“저기, 그럴 것 같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무슨 소리냐니요? 여기 지금 SNS에서 완전 핫 한거 모르세요??”
“예??”
핫? Hot??
SNS를 만질 일이 없다시피 한 이한성이 SNS에서 뭐가 핫 한지 알 턱이 없다. 딱 봐도 뭔 일인지 전혀 감이 안잡히는 듯한 이한성의 반응을 본 여자 손님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포스트 하나를 보여주었다.
[30대 중반인 흔해빠진 야근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회사 근처에 있는 새로 생긴 빙수 카페를 한군데 갔다왔는데, 정말이지 미쳤더라고요.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절반 정도인데 맛도 그렇고 효과가 완전 미쳤어요. 한입 먹었는데 피로가 싹 풀려서 힘들다고 가족을 버리고 회사를 퇴사할 뻔한 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주소 찍어놓을테니까 꼭 한번 가보세요.] [지랄하네 엘1사가 사장도 아니고 맛도 좋으면서 가격도 절반? 얼마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광고글 개역겨움] [가게주인은 뭐 땅파먹고 사냐? ㅋㅋㅋㅋ] [ㄴㄴ, 나도 오늘 저기 잠깐 갔다왔는데 진짜 맛도 좋고 가격도 절반임. 오픈 세일인지 뭔진 모르겠는데 실화 맞음] [실화라고????] [진짜 맞아요. 특히나 딸기 빙수가 6800원으로 레알 괜츈함 츄라이 츄라이] [ㄹㅇ?????] [딱 대 한번 가본다] [ㄹㅇ실화네???]어디에나 있을법한 불신에 찬 댓글부터 시작해서 밑으로 내려갈 수록 진짜라는 사실에 점점 당황스러워 하는 댓글들 까지, 총 좋아요 수가 300만인데다가 댓글 수는 500개 이상. SNS를 한 적이 없어 그게 많은건지 적은건지는 모르겠는 이한성이었지만, 숫자만으로 보았을때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이거 때문에 댓글들끼리 완전 불타고 있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자꾸 진짜라길래 저도 오늘 한번 와 본거예요. 근데 대박, 진짜더라구요!”
“아니, 뭐 노이즈 마케팅도 아니고…”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왠 한가한 SNS 사용자들이 지들끼리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불탄 덕분에 얼떨결에 가게가 유명해져 버렸다. 사장으로써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웠던 이한성은 미소는 커녕 멍한 표정만을 띄울 뿐이었다.
“근데 혹시 여기 사장님이세요?”
“아, 예. 제가 사장입니다.”
“헐 대박…! 완전 졵-”
“환불 다 끝났습니다. 여기 영수증이에요.”
순간 화연이 불쑥 끼어들며 해영의 역할을 낚아채 환불이 끝난 영수증을 여자 손님에게 건네드렸다. 그러자 여자분은 깜짝 놀라면서도 감사하다는 예의상의 인사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하던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얼떨결에 가게를 나섰다.
“…일부러 그런거야?”
“내가 뭘. 바빠 보이셔서 빨리 보내드린 것 뿐인데.”
“….”
일부러 그런 거 맞구만.
거짓말인게 무척이나 티가 나는 화연의 변명에 이한성은 이번에는 굳이 놀리지 말고 그냥 눈감아 넘어가주기로 하며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있던 해영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야, 문 닫을 준비 하자.”
“으어어어… 벌써 8시야…?”
“아니. 그게 아니라 재료가 다 떨어졌어. 더 장사하고 싶어도 못해.”
“…! 오 지져스! 감사합니다 부처님!”
해영이 기독교인인지 불교인인지 모를 뒤죽박죽 섞인 말로 신께 감사를 올렸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 또한 사장이긴 하지만 같은 생각이라고 공감하며 가게의 문 앞에 붙어있는 오픈 사인을 껐다.
비록 힘들기는 해도 내 가게가 장사가 잘된다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