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1화(11/245)
11
‘내가 살다 살다 그 인간 심정을 이해하게 될 줄이야.’
좀비와 다를 게 없는 몰골로 바구니를 든 채 길거리를 걷고 있던 이한성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 하나 데리고 사는 게 이렇게나 진빠지고 힘든데 그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용케도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았는지가 의문이다. 그런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와 함께, 이한성은 조용히 시스템 창을 열었다.
[이한성 – 임시 보호자] [종족: 인간] [직업: 알바생] [Lv: 2] [Hp: 150/200] [Mp: 0] [Exp: 85/110] [상태: 탈진+수면부족] [극심한 피로로 인해 힘이 30% 감소하였습니다.] [극심한 피로로 인해 이동속도가 45% 감소하였습니다.] [4시간 4분 44초 뒤에 강제수면이 시작됩니다.]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밤에 일도 해야 하는데 현재 이한성의 몸 상태는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 좋지 못하다.
‘빨리 근처 교회에 있는 베이비박스에다 애를 맡기고, 집에 가서, 쉬는 거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숨이 차는 것 마냥 중간마다 생각이 뚝뚝 끊긴다. 이러다가 정말로 걷는 도중에 쓰러져서 과로사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이한성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지나가던 놀이터 근처에 놓여진 벤치 위에 잠시 앉았다.
“카페인, 카페인이 필요해.”
커피든 에너지 드링크든 아무거나 상관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카페인, 또는 C8H10N4O2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기화합물 뿐.
금방이라도 정신줄이 끊어질 것만 같았던 이한성은 곧장 벤치 옆에 있던 자판기로 향해 동전을 넣고 에너지 드링크를 꺼냈다.
“쓰읍, 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캔뚜껑을 따기 무섭게 에너지 드링크를 원샷에 전부 들이키자 이한성은 금방 정신이 맑아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응아우?”
“안 돼. 넌 이거 말고 그거나 마셔.”
이한성이 에너지 드링크에 관심을 보이는 아기에게 그렇게 말하며 젖병을 입에 물려줬다. 그러자 아기는 금방 에너지 드링크에서 눈을 돌리고 분유를 마시기 시작했고, 이내 시원하게 트림을 내뱉었다.
“꺼윽-”
거 트림 한번 참 시원하게도 하네.
왠지 모르게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렇게 조용할 땐 제대로 아기답게 귀엽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이내 무의식적으로 놀이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 놀이터 맞아?”
놀이터 치고는 되게 재미없게 생겼는데.
원심분리기, 정글짐, 널판뛰기용 시소 등등의 가장 재밌던 놀이기구들은 온데간데없이 죄다 밋밋하게 스릴 부족하게 생긴 놀이기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모래성이나 두꺼비집을 만들던 모래판마저도 사라지고 웬 고무판 재질의 바닥만이 사방에 깔려있다.
아무래도 안전상의 문제로 재밌었던 놀이기구들은 전부 다 철거시킨 모양이었다. 재미는 위험과 반비례하는 법이니 말이다.
“야! 이번에는 내 차례야!”
“뻥치지 마! 이번엔 내 차례거든?!”
하지만 그런 재미없게 생긴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재밌다는 듯이 신나게 투닥거리며 놀고 있었다.
‘…이런 걸 세대 차이라고 해야하는 건가.’
애들끼리 맘대로 옆동네까지 놀러가고 심지어 치고 박고 싸우기 까지 했었던 그때와는 달리 현재의 놀이터에는 놀고 있는 애들의 수만큼 부모들이 근처 벤치에 앉은 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모들은 부모들끼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재밌게 노는 풍경. 얼핏보기에는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이한성은 그런 풍경 가운데 노이즈와도 같은 불협화음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니? 우리 재민이를 때렸던 게?”
한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이터 구석에서 앉아있던 소년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쟤는…’
홀로 서있던 소년이 어딘가 낯이 익었던 이한성은 어렵지 않게 소년이 아까 보육원에서 뛰쳐나갔던 동욱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너희 부모님이랑 말 좀 해야겠다.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아이의 엄마가 고압적인 말투로 동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를 제 엄마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인상이 삐딱한 소년이 나서며 대신 대답했다.
“엄마. 쟨 부모님 없어. 고아잖아.”
“부모가 없다고?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역시 고아원 애였어.”
….저런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결코 달갑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른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이만 일어나 가던 길을 다시 가려고 했다.
“동욱아!! 한참이나 찾았잖니…!”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려던 그 순간,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에서 달려와 곤란에 처해 있던 동욱이를 감싸안았다.
눈에 띄는 금발에 벽안. 누가 봐도 외국인처럼 보이지만 완전 한국 토박이와 다를 게 없는 자연스러운 발음.
아까 보육원을 소년을 뒤쫓아 이제야 이곳까지 찾아온 화연이었다.
“당신이 얘 보호자에요?”
“아, 네.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이것 좀 보세요! 그쪽 얘가 저희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아이의 엄마가 화연에게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보니까 멍만 좀 들었을 뿐이구만 무슨.’
더 많이 다친 건 오히려 동욱이다. 이한성은 애들끼리 싸우다 멍 하나 든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여성을 바라보며 속으로 그렇게 비아냥댔다.
“…죄송합니다.”
화연은 큰소리를 질러대는 여성에게 그저 나지막히 사과할 뿐이었다. 큰소리에 큰소리로 대응해봤자 일만 더 커질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하여간에 말이야, 가뜩이나 부모 없는 애들인데 교육이라도 좀 제대로 시키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무슨 깡패도 아니고.”
“….”
“고아원 애들도 애들이지만 고아원 사람들이 진짜 문제라니까. 따로 놀이터를 만들던가 해야지 원, 걱정되서 못살겠네.”
“….”
그랬기에 그녀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언에도 불구하고 그저 침묵하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x같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듣자듣자 하니까 기분이 더러워진다.
-누가 주정뱅이 아들 아니랄까봐, 난폭한 것 좀 봐.
오래전에, 뭐만 하면 가족 얘기를 꺼내며 자신을 아버지와 엮으려했던 인간들의 말이 이한성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건 타인의 일에 무관심한 이한성의 관심을 끄는데는 충분했다.
“아무튼 간에,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그땐 고아원에 직접-”
“여보세요? 아, 미안. 잘 안 들리지?”
이한성의 목소리가 화연에게 끝도 없이 항의하던 여성의 말을 집어삼켰다.
화연과 여성은 난데없이 나타나 일방적인 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린 이한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한성은 이에 조금도 개의치 않아하며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척 핸드폰을 붙잡고 계속해서 큰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놀이터인데 웬 아줌마가 시끄럽게 막 소리를 질러대서 말이야. 어, 응. 나도 몰라. 무슨 애들끼리 싸운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지금 막 애 보호자한테 교육이 어쩌느니 이래서 고아는 안 된다느니 지금 난리도 아니야.”
“풉-”
딱 봐도 들으라고 큰소리로 그렇게 말을 이어가는 이한성의 모습에 여성은 황당스러워 했고, 화연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웃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아 왜 그런 엄마들 있잖아. 막 다른 집 애가 잘못 했으면 엄청 뭐라고 하면서 막상 자기 애가 잘못하면 [우리 애는 안 그래욧!] 이러는 사람. 그런 쪽인가 보지 뭐. 진짜로 보니까 좀 많이 추하긴 하네. 영상 찍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내줄까?”
물론 순도 100% 거짓말이다. 영상은 물론이고 사진조차 찍지 않았을 뿐더러, 설사 찍었다고 해도 모바일 데이터를 절대로 낭비하지 않는 이한성의 성격상 동영상 전송 같은 데이터 낭비가 큰 짓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던 여성은 그래도 자신이 내뱉었던 말들이 사람들 보기에 좀 과격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는 했는지, 다급히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버렸다.
“아,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별 의미 없는 큰소리와 함께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자, 이한성은 속으로 그녀를 비웃으며 화면도 안 킨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 나한테도 뭐라고 항의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쉽게 아줌마를 쫒아낸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연에게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히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네, 도와주신 덕분에요.”
화연이 선뜻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풀이 죽은 채 자신의 등 뒤에 서있던 동욱에게 말을 걸었다.
“동욱아. 괜찮니?”
“…누나는 왜 그런 말에 가만히 있었어?”
“….”
“누나는 화나지 않는 거야?”
어째서 화연이 방금 전 상황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아니.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깨닫기엔 동욱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그건…”
벌써부터 사회생활의 어두운 면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화연은 대답하는 것을 꺼려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이내 그런 그녀를 대신하여 나선 이한성이 그에 대한 대답을 소년에게 들려주었다.
“꼬맹아. 만약 길가에 똥이 있다면 넌 그걸 굳이 밟고 싶냐?”
“똥? 아니, 싫어. 더럽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더러우니까 피하는 거지.”
왠지 모르게 이해가 되는 이한성의 대답에 동욱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한성과 화연은 그런 동욱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남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은, 진실을 교묘하게 감춘 거짓말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