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1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15화(115/245)
115
“자, 그럼 한번 읽어 보시고 싸인 부탁드리겠습니다 호갱님.”
“….”
한스 마이어가 이한성과 화연에게 납치당해 집까지 끌려온지도 어느덧 3시간 째. 불과 몇 분 전 까지만 했어도 손과 발이 밧줄로 구속되어 있던 그는 이내 자유롭게 풀려난 자신의 팔 다리를 당혹스러운 기색과 함께 살피며 이한성으로부터 정체모를 종이 한장을 건네받았다.
“…무슨 꿍꿍이지?”
“일단 읽어 봐.”
대체 무슨 꿍꿍이길래 적군인 자신의 구속을 풀어준 것도 모자라서 갑자기 왠 종이 한장을 덜컥 건네주는 것일까. 한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이한성과 화연의 행동에 경계심을 품으며 일단은 시키는대로 종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한성이 내민 종이의 내용은 화연의 도움 덕에 이세계의 인간인 한스가 아무런 문제 없이 읽을 수 있는 대륙 공용어로 쓰여져 있었다. 덕분에 한스는 별 무리 없이 종이에 적혀진 내용들을 읽을 수 있었고, 바로 자신이 건네받은 종이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뭐냐 이 노예 계약서는?”
조항 1번. 을은 갑 본인이과 그의 지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약조한다.
조항 2번. 을은 갑으로 부터 의식주를 제공받는 대신, 갑의 가게에서 매주 6일 동안 풀타임으로 일해야만 한다.
조항 3번. 을은 갑이 보유한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아니된다.
조항 4번. 을은 갑의 자녀들 앞에서 바른 말 고운 말만 사용해야만 한다.
조항 5번. 위의 모든 조항들은 을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까지 효력을 지니며, 이를 어길 시 을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만 한다.
갑이 어떻고 을이 어떻고 거창하게 이러쿵 저러쿵 적어놓은 계약서지만, 결국 한마디로 내용을 축약하자면 서명하는 순간 노예가 되겠다-이 뜻이다.
“내가 미쳤다고 여기에다 좋아라 서명을 할 것 같나?”
한스는 망설일 것도 없이 계약서라는 이름의 노예자원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나 이에 화연은 아주 쉽게 손짓 한번으로 마법을 사용하여 다시 갈갈이 찢겨진 계약서를 말짱하게 복구시켰고, 이한성은 그렇게 그녀가 고친 계약서를 다시 한서에게 들이대며 서명을 강요했다.
“노숙자 되기 싫으면 서명 해야지.”
“하! 5년 동안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험난한 수련을 반복했던 이몸이다. 그깟 노숙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글쎄. 여기는 네가 살던 곳과 많이 다른 곳이라서 말이야. 노숙하는게 쉽지는 않을걸?”
콘크리트 바닥에서 찬바람이 살을 찢어놓는 2월달의 밤을 보내고 싶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이곳이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라면 모를까, 있는 거라곤 빌딩 숲과 콘크리트 아스팔트 밖에 없는 도시에서 노숙을 하는 건 매우 권장되지 않는 선택이다.
“….”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너도 겪어봐서 아나보네.”
하긴 쟤가 여기에 돈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겠어. 보나마나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입이 돌아가면서 까지 길바닥에서 잤었겠지.
“….젠장. 선택의 여지가 없군.”
이한성의 생각대로 지난 3일 동안, 한스는 온갖 개고생을 겪어가며 길거리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도시에서의 길거리 생활은 제아무리 육체적과 정신적으로 단련된 소드 마스터라고 할지라도 맨정신으로 할 짓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스는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달은지 오래였다.
‘하는 수 없지. 일단은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척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천천히 이곳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는 수 밖에. 내가 이깟 종이에 서명한다고 해서 적힌 것들을 적힌 그대로 지킬거라 생각하는 저놈들이 멍청한 게 천만 다행이로군.’
당장 주어진 선택권은 없다. 어차피 그냥 종이 쪼가리에다가 이름만 적는다고 해서 저 말도안되는 조항들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이유도 없으니 지금은 일단 마지못해 서명하고 추후를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다.
“서명하겠다. 깃펜을 내놔라.”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로 그런 판단을 내린 한스 마이어는 현대 시대에 사용하고 있을리가 없는 깃펜을 이한성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말없이 화연에게 눈치를 보냈고, 화연은 그런 그의 눈치를 단번에 이해하고는 조용히 한스에게 다가가 깃펜을…
…건네주는 것 대신에 그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가차없이 한가닥 뽑아냈다.
[뽁-]“아악?! 뭐 하는 짓이냐?!”
“펜 달라며. 자, 여기 펜.”
난데없이 머리카락을 강탈당한 한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며 항의하자 화연은 그런 그의 항의를 무심히 받아넘기며 방금 막 뽑아낸 머리카락에 마력을 불어넣어 그가 요구했던 깃펜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낸 깃펜을 건네받은 한스는 금방이라도 다 뒤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르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질질 끌 것도 없이 바로 종이에다가 명백히 한글이 아닌 언어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자 이제 됐겠지. 원하는 대로 서명했으니 이제-”
[번쩍!]순간 갑작스럽게 밝은 빛이 노예계약서로부터 새어나오며 한스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먹어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한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종이로 부터 새어나온 밝은 빛이 자신의 몸에 흡수되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았고,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기 무섭게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신을 더듬었다.
“바, 방금 그건 뭐냐?!”
“뭐긴 뭐야. 계약 접수 완료지.”
화들짝 놀라는 한스의 모습에 이한성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며 서명이 완료된 계약서를 쭉 훝어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챙겨두었다. 그러자 이에 무언가가 잘못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스는 바로 이한성의 멱살을 붙잡아 계약서를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그의 손은 멱살을 붙잡기 직전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제지당하기라도 한듯 멈춰버리고 말았다.
“…! 설마 방금 그 계약서는… 맹약이었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이한성의 멱살을 붙잡으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몸을 확인한 한스는 이전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잊혀진 고대의 마법, 한번 서명하면 절대적으로 따르게 된다는 [맹약의 서]를 떠올리고는 경악어린 표정으로 화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에 화연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친히 설명해줄 뿐이었다.
“맹약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이건 그냥 내가 한 300년 전 쯤에 계약사기 한번 거하게 당하고 열받아서 이것저것 연구하다가 개발해낸 마법이란다. 한번 서명하면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마법이지.”
대체 계약사기를 어떻게 당했길래 이런 마법을 개발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 당시 어지간히도 열 받았었던 모양이었다. 이한성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한번 서약하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화연의 무시무시한 마법에 혀를 내둘렀다.
‘한번 잘못 서명했다가는 사람 하나 정도는 아주 쉽게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마법이네. 화연이가 저걸 악용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저 한스라는 놈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 상황에는 꼭 필요한 마법이다. 한스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 그리고 지금 가게에 부족한 일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 2가지 문제를 떠안고 있었던 이한성은 일타쌍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계약의 효과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한스를 살짝 비웃었다.
‘이런 젠장, 당했다…!! 설마 저놈들에게 [맹약의 서]가 있었을 줄이야… 제기랄 어떡하지? 이놈들, 저 악마같은 눈빛들을 보아하니 정말로 날 죽을 때 까지 노예로 부려먹을 작정이다…!’
설마 이대로 광산으로 끌려가 죽을 때 까지 일평생을 광부로 곡괭이질이나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 없는 걱정과 함께 한스 마이어는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뒤늦은 후회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장래가 유망했던 젊은 천재 소드 마스터가 한순간만에 최저임금을 받으며 죽도록 일만하는 노예 1호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현실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
“그래서 오늘부로 함께 일하게 된 신입이야. 자, 인사해.”
“….”
소동만이 가득했던 일요일이 지나가고 찾아온 월요일의 아침에, 이한성은 체스트 플레이트에 롱소드를 찬 모습 대신 전혀 안 어울리는 가게 유니폼을 입게 된 한스를 해영에게 소개하였다.
“…외국인?”
누가 봐도 딱 서양인 처럼 생긴 한스의 외모에 해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가를 찌푸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비슷해. 얘는 한스 마이어라고 한국에 온지 며칠 안됐어. 애가 모르는게 많아서 좀 많이 모자랄테니까 해영이 네가 좀 잘 가르쳐봐.”
“네??? 제가요???”
상대가 외국인인 것은 둘째치고 자신이 일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당혹스러웠는지, 해영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냐고 항의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빠 잠깐만. 나 여기에서 일한지 아직 1주일 밖에 안됐는데…?? 괜히 내가 가르치는 것 보다는 일에 익숙한 화연이 언니가 가르치는게 더 낫지 않을까…?”
“그건 안돼. 둘이 사이가 좀 많이 안좋거든.”
한쪽은 엘프들을 멸망시킨 왕국의 기사고, 다른 한쪽은 가족들을 죽여버렸다는 오해를 사고 있는 엘프다. 물론 오해를 어느정도 풀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종족간의 앙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리도 없다.
“그러면 오빠가 가르쳐야지!! 오빠가 가게 사장이잖아??”
“내가 이놈 가르칠 시간이 어딨어. 빙수 담당은 당장 나밖에 없는데.”
“그, 그치만…! 나 영어 할 줄 모른단 말이야!!”
“괜찮아. 얘 한국말 할 줄 알아.”
화연이가 친히 통역 마법까지 걸어줬거든. 아마 대화하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걸?
어제까지만 했어도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처지였기에 세스템의 보조를 받는 이한성과 이세계 출신인 화연 만이 한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지만, 화연의 도움 덕에 굳이 시간을 들여가면서 한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고를 질 필요는 없어졌다.
“그러니까 한번 잘 가르쳐봐. 아니면 뭐, 이번주도 우리끼리만 죽어나가고 싶은겨?”
“아뇨.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볼게요.”
지옥 같았던 지난주의 일들을 떠올리자 해영은 정색하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난주 처럼 3명이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기에.
“그래 그래야지. 한번 잘 해봐.”
해영이 승낙하자 이한성은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응원아닌 응원을 보냈다. 이에 해영은 마음 같아선 이한성의 아구창을 시원하게 갈겨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한국말 할 줄 아는 거 맞죠? 두 유 스핔 코리안??”
[끄덕-]혹시나 하는 해영의 물음에 한스는 살짝 반항기가 흠씬 묻어나는 표정과 함께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해영은 분명 문화 차이 때문에 저러는 거일 거라며 스스로를 타이르며 한스를 데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어… 그럼 일단 오픈할 때 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간단한 것들 부터 알려드릴게요. 우선 계산대를 사용하는 법 부터 알려드릴건데, 이렇게 여기를 누르시면-”
“?!”
[딸칵-]해영이 계산대를 조작한 것과 동시에 계산대 밑에서 현금들이 가지런히 모여있는 수납공간이 시원하게 튀어나왔다. 그러자 한스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마치 계산대를 처음보는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고, 이에 해영은 별걸 다 가지고 놀란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한스에게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이렇게 현금들이 나오죠? 이건 백원이고 좀 더 큰건 오백원, 그리고 파란색은 천원, 갈색은 오천원, 초록색은 만원, 그리고 노란색은 오만원이에요.”
한스는 한국에 얼마 온지 안됐다고 했으니 분명 아직 돈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해영은 가장 먼저 한국 돈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뭐, 돈이야 나라가 달라도 다 거기서 거기니까 어려울 건 없을테지만 그래도 미리 알고계시는게 좋을거예요.”
“하,”
순간 해영의 설명을 듣고 있던 한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자신이 무언가 잘못 설명하기라도 한건가, 싶었던 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스의 눈치를 살폈고, 한스는 이윽고 무척이나 깔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고작 종이 쪼가리 따위를 화폐로 사용하고 있다니, 이 나라는 어지간히도 빈곤한 모양이로군.”
“???”
미친놈인가?? 갑자기 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