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2화(12/245)
12
“도와줘서 고마워요 한성 씨.”
놀이터에서 홀로 그네에 앉아 놀고 있는 동욱이를 바라보며, 화연은 이한성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감사인사라면 아까 했잖아요.”
“동욱이 질문에 대신 대답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아직 안했어요. 동욱이에게는 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알려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됐습니다. 필요 없어요.”
뭘 그런걸 다 가지고 감사인사를 하려고 하는걸까. 이한성은 생각보다 고지식한 화연의 면모에 조금 놀라움을 느끼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잠깐만요.”
“?”
화연이 아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한성의 옷자락을 붙잡아 세웠다. 이만 가려는 사람을 갑자기 붙잡고 늘어지는 그녀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이한성은 이에 무슨일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이런 말 할 염치가 없다는건 잘 알고있긴 하지만, 혹시라도 아이를 베이비박스에다 맡기실 생각이시라면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가 촉이 꽤 좋은 편이거든요.”
화연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알면 알 수록 그녀를 점점 모르게 되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낀 이한성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베이비박스에 맡기실 거라면 차라리 그냥 사랑 보육원에다가 맡겨주세요.”
“아까는 아이한테는 부모가 필요하다느니 어쩌니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걸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요. 적어도… 나중에 아이가 좋은 가정에 보내질 수 있도록 보육원에 맡겨주시면 했을 뿐이에요.”
법적절차를 거치고 보육원에 들어가는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의 손에서 바로 베이비박스를 거치게 되는 아이들은 부모와의 친자관계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위탁과정이 매우 까따롭다고 한다. 아까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얼핏 들었던 내용을 떠올린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그네 위에서 혼자 놀고 있던 동욱이를 바라보았고, 동시에 어째서인지 모르게 훗날 저 소년과 같은 나이가 될 아기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교회에 맡겨져 성인이 될 때 까지 그 어떠한 가정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평생동안 부모라는 존재를 만나지 못한 채 쓸쓸하고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 그런 인생이 어떤건지 비슷하게나마 겪어본 이한성은 자신과 비슷한 나날을 보내게 될 아기의 생각에 양심이 찔려오는 기분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찡그렸다.
어차피 애를 다른 곳에다 맡길거라면 적어도 조금이나마 좋은 곳에다가 아기를 맡기는게 낫다. 그러는 편이 괜시리 찔리는 양심은 잊어버리기에 좋을 것이다.
“…그러죠 뭐.”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못해 화연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
“뭐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기껏 충고를 받아들였더니만 갑자기 왜 저렇게 한강에서 가재라도 잡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걸까.
경악에 가까울 정도로 놀라는 화연의 반응에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진짜로 제 말을 들으실 줄은 몰랐거든요…”
“저기요. 절 대체 뭘로 보시는 겁니까.”
“지 편할려고 친자식도 쉽게 내다버릴려는 사람…?”
“이 여자가 뭐래는거야.”
방금 전에 기껏 도와줬던 사람한테 뭐? 지 편할려고 뭘 하려한다고? 사람을 대체 뭐로 보는거야…
“친자식은 커녕 피가 1도 안이어졌습니다만.”
“다들 그렇게들 부정하시더라구요. 부끄러워 할 일이 전혀 아닌데도요.”
“아니, 그러니까 부끄럽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아니라니까.”
“그럼 그 애는 뭔데요?”
“….”
이걸 뭐라고 말해야 돼. Yes랑 No 한번 잘못 눌렀다가 애가 뿅 하고 생겨버렸다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 받을텐데…
“것 봐요. 아무말도 못하잖아.”
“아놔, 돌아버리겠네…”
이한성이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화연이 변변한 변명조차 내뱉지 못하는 이한성의 말을 믿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제 충고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럼 전 이만 동욱이 데리고 보육원으로 돌아가볼게요.”
“….잠깐만요.”
“?”
이한성이 단단히 굳은 목소리로 화연을 멈춰세웠다. 아까 자신이 했던 것 처럼 똑같이 이한성에게 붙잡힌 그녀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믿으시는 것 같으니까 부탁이나 하나 좀 합시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믿을 마음이 없는 사람을 믿게 만들 수는 없다. 굳이 해명을 하려 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깨달은 이한성은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화연을 바라보았다.
“부탁이요? 네 뭐… 절 도와주셨으니까 물론이죠.”
이한성의 사악한 미소에 뭔가 께름칙함을 느낀 화연이었지만 방금 전의 빚도 있었기에 화연은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듣기도 전에 수락해버렸다.
“오늘 저 대신에 야간근무 좀 뛰어주세요.”
“알겠어요. 그런거야 당연-”
순간 이어지던 화연의 말이 뚝 끊겼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5초 정도 멍하니 이한성을 바라보더니, 이내 핏기가 싹 사라져버린 얼굴로 당황했다.
“…네?”
“야간근무요.”
“아… 야, 야간근무… 근데 저 어제도 야간근무 뛰었는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애를 집에다가 방치해놓고 일하러 가는 수 밖에.”
“저, 저기요…?”
이틀 연속으로 편의점 야간근무라니, 제아무리 친구사이라고 해도 그딴 부탁을 했다가는 바로 주먹이 오가고 돈 떼어먹은 사이마냥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화연과 친구사이가 아니었던 이한성에게는 그 어떠한 죄책감도 없었다.
‘계속 오해하면서 잔소리한 복수다.’
게다가 엄연히 이한성은 곤란한 일에 처해있던 화연을 도와준 은인이다. 물론 딱히 그가 목적을 가지고 그녀를 도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 도와준거 빛을 제대로 써먹는게 좋은 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주간이라도 아이를 돌봐달라고 충고했던건 화연 본인이다.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서 이한성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그건 이중잣대의 훌륭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알았어요.”
화연이 생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이한성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아주 조금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안하다는 생각 보다는 야간근무를 뛰지 않고 바로 집에 가서 잘 수 있게 되서 좋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나 좀 쓰레기일지도?’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어렴풋이 깨달은 이한성이었다.
––––––-
기나긴 하루. 아니, 이틀이었다.
어젯밤부터 잠도 못자고 깨어있기를 벌써 36시간 하고도 25분. 오다가 러시아워와 이런저런 교통문제가 겹쳐서 8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한성은 시스템창의 경고를 바라보며 다 죽어가는 낯빛으로 현관문 앞까지 걸어갔다.
“그래그래… 말 안해도 들어가자마자 잘거야.”
카페인 과다 섭취로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했지만 더 이상은 카페인도 무용지물이다. 이한성은 그 사실을 깨달으며 일분 일초라도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 잠을…
“총각. 잠깐 나 좀 보자.”
“….”
칼칼하면서도 까탈스러운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이한성은 들은 그 즉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
주름진 얼굴에 성격이 꽤나 고약하게 생기신 외모. 실제로도 성격이 고약하고 월세가 밀리는걸 단 1초도 봐주지 않는 깐깐한 집주인.
‘대체 뭐 때문에 찾아온거지…? 월세를 깜빡하거나 한 적은 없는데…’
이제야 좀 겨우 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도 못한 방해꾼을 만나게 된 이한성은 넘쳐 흐르다 못해 거꾸로 솟구치는 불만을 꾹꾹 눌러담으며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밤새도록 총각 방에서 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다른 방 사람들이 항의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아… 그건 말이죠, 그게 그러니까…”
이 낡은 원룸 아파트에는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이한성은 급하게 들고 있던 바구니를 등 뒤로 숨기며 재빠르게 그럴싸한 변명을 머리로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졸음을 이겨내는 것만 해도 한계였던 이한성의 뇌는 그럴싸한 변명은 고사하고 정신을 유지하는 것 조차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강제수면이 시작됩니다.]“그러니까 그게…. Aㅏ…”
왜 하필 타이밍들이 죄다 이럴까. 뚝 끊겨가는 필름 속에서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며 바구니를 내려놓고 바닥에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생전에 단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극상의 꿀잠에 빠져들었다.
––––––-
“뜨헓?!”
코가 뒤로 넘어가는 듯한 괴상한 소리와 함께, 이한성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거지?
분명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현관문 앞에서 집주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자신이 어째서 집 안 소파위에 누워있는 것일까. 이한성은 맑지만 어째서인지 술이라도 퍼 마신 것 처럼 필름이 끊겨버린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 맞다. 그 강제수면인가 뭐시기 때문에 중간에 잠들었었지?’
기억을 더듬자 떠올린 것은 필름이 끊어지기 직전에 보았던 강제수면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던 메시지 창이었다.
설마 강제수면이라는게 진짜로 예고도 없이 사람 정신을 딱 끊어버리는 것일 줄이야.
“총각, 일어났어?”
순간 까탈스러운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자연스럽게 거실바닥에 앉아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고 계셨다.
“저… 뭐하세요?”
“뭐하기는. 퍼질러 자고있는 총각 대신에 애 돌보고 있는거 안보여?”
주인 아주머니가 까칠한 말투로 그렇게 대답하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어렴풋이 아주머니께서 필름이 끊겨버린 자신을 집 안까지 데리고 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런 아주머니의 행동을 무척이나 의외라고 생각하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밤새도록 애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아마 아이를 달래고 재우시느라 고생하셨을 것이다.
“감사할 것 없어. 난 그냥 괜히 옆집 사람들 항의를 듣기 싫었을 뿐이야.”
주인 아주머니는 손을 저으며 이한성의 감사인사를 받는 대신, 다소 귀찮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그나저나 총각, 그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어쩌려고 애를 가진거야?”
“…가지고 싶어서 가진게 아닙니다만.”
“혼자서 애를 어떻게 키우려고 쯧쯧… 변명은 됐고 애나 잘 좀 돌봐. 옆집 사람들한테 괜히 소음으로 피해주지 말고.”
주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한성의 해명에 관심하나 주지 않으신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나 없이 집을 나가셨다.
“가버리셨네.”
마냥 깐깐하기만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으신 분인 것 같다. 이한성은 새롭게 알게 된 주인 아주머니의 또다른 면모에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11시야?”
늦게도 일어났다. 평소 기상시간이 8시, 늦어도 9시인걸 감안해도 너무 늦은 시간이다. 아무래도 어제 피로에 찌든 채로 강제로 잠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자신이 늦잠을 자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핸드폰으로 스케쥴표를 확인했다. 대행이도 식당에 일하러 나가기 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일하러 가야되는데…’
어젯밤의 편의점 야간알바는 화연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어떻게든 무마했지만 오늘 식당 아르바이트 문제는 아직 해결법을 찾지 못했다.
“애를 집에 놔두고 일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치겠네.”
생후 1개월짜리 애를 홀로 방치한다는건 애보고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부모가 아니어도 그런 상식을 모를리가 없는 이한성은 결국 깊은 고민 끝에 핸드폰으로 식당에다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사장님. 저 그게… 제가 당분간은 아무래도 일을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그… 가족문제 때문에…”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을 쉰다고 통보하는건 고용주를 정말로 곤란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행동 중 하나다. 베테랑 알바생으로써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이한성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휴, 이걸로 식당 알바는 날아갔네.”
그나마 돈이 짭잘한 알바자리였는데.
이런 식으로 갑자기 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렸으니 아마 사장에게 단단히 찍혀버렸을 것이다.
“너 말이야, 내가 꿀알바 까지 그만둬 가면서 돌봐주는거니까 고마운 줄 알아.”
통화가 끝난 핸드폰을 주변에다가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이한성은 그렇게 가만히 천장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아기에게 그렇게 생색을 부렸다.
“아우으?”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말을 알아들을리가 없는 아기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