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2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23화(123/245)
123
아직은 날이 쌀쌀한 3월 초. 봄은 아직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분주하게 손님들이 오가고 있는 개점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은 빙수 카페 안에서, 카페의 사장인 이한성은 왠지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와 씨… 뭐지? 통풍인가…?”
이유없이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이한성은 온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보일러를 틀었다.
“왜 그래 오빠? 추워?”
“아니, 그냥 좀 오한이 든다 싶어서.”
딱 적당한 온도에서 굳이 보일러를 트려는 이한성의 모습에 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이에 이한성은 별 것 아니라며 빙수만드는데 쓸 얼음을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영은 그런 이한성의 모습에 영문모를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다 알고있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수정이가 걱정되서 그러는거지?”
“…걱정은 무슨. 내가 걔 걱정을 뭐하러 해? 수정이 걔가 어디 학교에서 적응 못해서 고생할 상으로 보이디?”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다고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닐거잖아.”
“….”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수업시간이 한창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한성은 수정이 때문에 온갖 걱정들을 한가득 떠안고 있었으니.
물론, 해영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걱정이 아니라 수정이가 과연 사고치지 않고 잘 하고 있을까-하는 걱정이 대부분 이었지만 말이다.
‘얘가 또 남 앞에서 날아댕기는 건 아니겠지…? 설마 반 애들한테 자랑하고 싶다고 대뜸 얼음성을 짓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면 안되는 목록들을 한 50가지 정도 정리해다가 지난 한달 내내 당부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그정도로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불안해서 돌아버리겠네 진짜…”
다시 도지기 시작한 불안감에 이한성은 얼음을 갈다 말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리고는 애써 불안감을 잊기 위해 화제를 돌리기로 하며 저기 옆에서 빙수 토핑을 엉망으로 올리고 있던 한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야 노예, 너 뭐하냐? 내가 토핑을 올리랬지, 탑을 쌓으랬냐?”
간단하게 얇게 썰은 딸기만 적당히 올리면 될 것을, 아주 그냥 딸기동산을 만들 작정이다.
“아니… 맛을 위해서는 딸기를 많이 올리는 편이-”
“그래서? 니 눈에는 이게 맛있어 보이냐? 이럴거면 아예 그냥 과일 샐러드를 만들어다가 손님한테 주지 그래?”
저게 어딜 봐서 빙수인가. 그냥 딸기 그 자체지. 뭐든 과하면 엉망이 되는 것 처럼, 토핑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식한 한스의 반응에 이한성은 그리 독설을 퍼부으며 한스가 쌓아놓은 딸기동산을 덜어냈다.
“어떻게 된게 한달을 일한 너보다 일한지 1주일도 안된 예은 씨랑 재혁 씨가 일을 더 잘하냐고 이 덩치만 큰 곰새끼야.”
이한성은 그렇게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한스에 비해선 일을 훨씬 능숙하게 하는 젊은 남녀 두명을 가리키며 한스를 나무랬다.
양예은과 윤재혁. 나이는 각각 19살과 20살로 풋풋한 사회 초년생들. 아직 일하기 시작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일 하나 만큼은 둘 다 농땡이 피우지 않고 착실하게 하는 편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냥 들으면 다른 사람 디스, 돌려서 들으면 당사자에게는 칭찬이나 다름없는 이한성의 말에 싹싹한 성격의 윤재혁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이에 한스의 얼굴은 자동적으로 팍 구겨졌고, 이한성은 그렇게 구겨진 한스를 옆으로 치워버리며 새 알바생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뇨 뭐 감사할 것 까지야. 그나저나 일은 두분 다 좀 괜찮으세요?”
“아, 예! 물론이죠. 금방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사장님.”
“그렇다면야 다행이네요. 그럼 예은 씨는?”
이한성이 고개를 돌려 말주변이 별로 없어 보이는 양예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묵묵히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그녀는 매우 사무적인 말투로 짧은 대답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
잠깐 슬깃 쳐다보고 마는 둥한 태도. 만약 이 카페의 사장이 꼰대였다면 뭐 예의가 그따구냐고 욕을 퍼부었을 그녀의 태도에 이한성은 살짝 당혹스러움을 내비치며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왠지 되게 건성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은데. 근데 저러는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꼰대처럼 보이겠지?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성격이 저런 성격일 뿐. 이한성은 그렇게 최대한 그녀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 괜찮다면 다행이네요. 뭐 불편한 점 생기면 나중에 말해주세요.”
“네.”
…이제는 아예 눈도 안마주치고 대답하는구만. 태도가 영 그렇긴 하지만 뭐… 그래도 일은 착실하게 하는 편인 것 같으니까… 당장 일손이 부족해서 고용한건데 대답 하나 짧게 하는 것 가지고 일일히 뭐하나 따지고 그러면 안되겠지. 말 많아서 일도 제대로 안하고 농땡이 피우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그간 여러 알바를 거쳐가며 별별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행페를 부렸던 전 사장들의 모습을 떠올린 이한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그런 사장이 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예은의 태도를 묵인하였다. 그러자 이에 그런 예은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해영이 팔꿈치로 그를 툭툭 건드리며 놀리기 시작했다.
“이야~ 이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오빠 출세 다 했네.”
“시끄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새로 온 애들이나 좀 잘 봐줘.”
얘가 요즘 일손들이 새로 생겨서 한가해지더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게 사장을 놀릴 여유까지 생긴 모양이다. 역시나 이중에서 가장 말이 많은 편인 해영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게 된 이한성은 그렇게 그녀의 농담을 일축하며 꾸중했다.
“그리고 노예 넌 덩치값 좀 하고.”
“….”
“대답.”
“…알겠다.”
한스는 이를 꽉 물며 어거지로 대답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저 악마같은 고용주를 때려죽이고 싶었던 (전직)소드 마스터였으나, 그러기엔 그는 여전히 [맹약의 서]의 제약이 걸려있는 상태였다.
“저기, 근데 사장님. 한스 씨가 노예라고 불리는 이유라도 있나요? 닉네임 치고는 좀 상당히 악질적인 것 같은데.”
자꾸만 한스를 노예라고 부르는 이한성의 말버릇에 윤재혁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내뱉었다.
“이새끼 우리집 식객이거든. 밥주고 재워주는 대신 일 시키고 있는거라서 별명이 노예야.”
“…공짜로 재워주고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궁시렁 거리던 한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이에 대충 속사정을 알게 된 윤재혁은 이해했다는 듯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이윽고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반응에 영업용 인사를 올렸다.
“어서오십쇼~”
손님들이 좀 뜸할 시간에 난데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의 정체는 다름아닌 화연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있어야 할 그녀가 가게를 찾아오자, 이한성과 해영은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교 때려쳤어?”
“교수가 언니보고 대학원에 들어오래?”
현재 시각은 10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시간이고,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이며, 오로지 백수나 비효율적이게 오전 반차를 낸 사회인 만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당연 아무리 1380년도 생이라고는 하나 대학생에 속한 화연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만한 시간은 아니란 뜻이다.
“아니. 오늘 교수가 강의 파토냈어. 아침 일찍 강의실에 가보니까 아무도 없더라.”
? 아니, 그런 거라면 보통 과 단톡방에 오늘 공강이라고 바로 문자 뜨지 않나? 그런데 뭐하러 아침 일찍부터 교통비까지 낭비하면서 강의실에 자진출두했대??
대학과는 인연이 눈꼽만큼도 없는 이한성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현직 대학생인 화연이 모를리가 없다. 이한성은 그렇게 대체 뭘 어떡해야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를 수가 있냐고 묻는 듯한 눈빛으로 화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한성보다 화연에 대해 더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해영은 안봐도 비디오라는 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의문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이한성에게 알려주었다.
“…언니 단톡방 확인 안하지?”
아, 맞다. 저분 기계치였지.
화연이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와 친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고려인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원인을 깨달은 이한성은 그저 대단하다는 듯이 화연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에 입꾹닫을 시전할 수 밖에 없었다.
“단톡방? 내가 그런 걸 뭐하러 확인하니? 젊은 애들만 바글바글 모여서 문자 나누는데 내가 끼어들 데가 어딨다고…”
“….”
님아. 아무리 그래도 단톡방 확인은 해야죠. 대체 지금까지 단톡방 확인도 안하고 대학생활을 어떻게 했던 거야??
사실 대학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너그럽고 만만한 곳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저리도 세대차이에 적응하지 못한 고려인 조차도 잘만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것 같으니.
“저기…”
잠시 화제가 화연에게로 쏠려있던 그 순간, 대화를 듣고 있던 윤재혁이 조심스레 끼어들며 이한성을 불렀다. 아무래도 화연과 초면이다 보니 그녀가 누군지 알고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 저쪽은 화연 씨. 재혁 씨가 오기 전까지 가게일을 도와주던 지인입니다. 들었다시피 대학생이고.”
“아~ 그렇군요. 되게 미인이시네요?? 해외 유학생이세요??”
“아니. 토종 한국인 입니다만.”
“???”
금발에 벽안. 흰 피부에다가 누가보아도 서양적인 외모. 근데 토종 한국인. 뭔가 매치가 잘 안되는 듯한 수식어들을 한꺼번에 들은 윤재혁은 잠시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 그, 그렇군요. 어렸을 때 부터 한국에서 자라셨나 봐요…?”
“네 뭐… 그렇죠.”
5살 때 부터 쭉 600년 동안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다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이한성은 화연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대충 대답을 둘러댔다. 그리고는 이내 화연에게 간단하게 재혁과 예은을 소개해 주었다.
“이번에 우리 카페에서 새로 일하게 된 알바생들. 양예은 씨랑 윤재혁 씨야.”
“아~ 생각보다 빨리 구했네?”
“세상에 일자리 못 구해서 근심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래 걸릴 게 뭐 있어.”
취직난이 한창인 이 시대에 자영업자로써 알바생을 구하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구직광고만 하나 대충 만들어서 가게 앞에다 붙여놔도 족히 5, 6명은 지원을 하러 오니까.
화연의 감탄에 이한성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받아치며 재혁과 예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잠시 재료를 찾으러 워크인 쿨러에 들어갔었던 한스가 밖으로 나오며 이한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봐, 딸기가 다 떨어진 것 같은데 어떡-”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연과 눈을 마주쳐버린 한스는 그대로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하도 그녀에게 전기 고문을 당한 경험이 수두룩 했던 그는 바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뒤를 돌아 주방으로 도피해버렸고, 그런 그의 모습에 해영은 안쓰럽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화연을 나무랬다.
“언니가 하도 괴롭혀놓으니까 한스 씨가 저러잖아. 이젠 금발만 봐도 딱딱하게 굳어버린다구.”
“내가 저거한테 뭘 했다고 그러니? 어깨 걸리지 말라고 마사지 해준 기억 밖에 없는데.”
“우리들은 그걸 고문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제대로 된 마사지도 고통이 만만찮은데 거기다가 고압전류까지 동반하면 그건 그냥 전기고문 그 자체다. 화연의 마사지의 고통을 겪어봐서 아는 해영은 그렇게 질린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며 한스를 동정하였다.
“해영이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그 꼴을 보고도 저걸 걱정하니?”
물론 한스에게 악감정 비스무리 한 것 밖에 없는 화연으로써는 지금껏 한스가 보여준 온갖 기행들을 보고도 그를 동정하는 해영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하긴 저놈이 일하기 시작한 뒤로 사고친게 한두개가 아니여야지.
손님들한테 반말 쓰는 건 겨우 고쳐놨고, 그릇 깨먹은 것만 해도 벌써 10개는 되고, 진상들 대할 때 들고 있던 식칼로 협박을 해서 경찰이 올 뻔한 적도 있었고, 세고자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스 마이어가 지금껏 싸지른 똥은 가게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의 심각함이었다.
그렇게 이한성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주방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일하러 슬그머니 돌아온 한스를 쪼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노예로 써먹기 시작한 이상 일을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한성아, 나 잠깐 탈의실 좀 빌려도 되지?”
“? 갑자기 탈의실은 왜??”
화연이 이한성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순간 다짜고짜 탈의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는 어째 겉옷을 허리에다가 둘러매고 있던 그녀의 차림을 보고는 금방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런 차림의 여성이 갑자기 탈의실을 찾을 만한 이유라고 하면, 남자는 몰라도 될 이유 밖에 생각나는게 없었기 때문에.
“아…! 어어어 그래. 써도 돼.”
“…?”
이한성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황급히 말을 돌리며 눈치 껏 모른 척을 했다. 그러나 그런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이한성의 행동에 화연은 잠시 이상하다는 눈치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입을 열었다.
“그,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일 도와주려고 유니폼으로 갈아 입으려는 것 뿐이야.”
“아.”
어…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전 또 무슨 다른 것 때문인 줄 알았습죠. 그 왜 이성끼리는 좀 알면 민망하고 TMI인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민망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한성은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민망함을 숨기려고 했다.
주둥아리를 섣불리 눌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