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2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26화(12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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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랑 하나는 절친이야!”
“….”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수정이의 이야기. 대체 학교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닌걸까. 이한성은 빙수를 먹어치우며 당당한 웃음과 함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황당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 괜히 보냈나.”
왠지 모르게 담임 선생님한테 몇번이고 절을 올려도 모자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하필이면 운도 없게 저 귀여운 재앙 덩어리를 맡아버린 수정이의 담임 선생님, 윤혜미를 위해 묵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이…”
“?”
이한성이 한숨을 내쉬던 와중에 수정이의 옆에 앉아있던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빙수 더 머거도 대요…?”
“아, 좀 부족했어? 잠깐만 기다려 봐. 금방 더 줄게.”
수정이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느라고 애가 빙수를 그새 다 먹었는지도 몰랐다. 이한성은 그렇게 예의바르게 빙수를 더 먹고싶어 하는 하나를 위해 부엌으로 향해 빙수를 추가 주문하였다.
“야 노예! 트리플 초콜릿 빙수 좀 후딱 만들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네놈 눈엔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나?!”
그러나 어째 돌아오는 건 울분이 섞인 한스의 항의 뿐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을 확인해 보니 이한성이 애들을 돌봐주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이 순간에도, 한스는 여전히 주문 서너 개를 한꺼번에 처리하며 생지옥을 체험하고 있었다.
“에라이… 하여간에 손 한번 더럽게 느려요.”
자신 같았으면 별 어려움도 없이 혼자 처리했을 만큼의 주문을 가지고 버벅거리며 헤메는 한스의 모습에 이한성은 혀를 차고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스를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
가게가 한창 바빴던 것은 아니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쯤. 가게 안에 손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한참 전에 주문을 한 채 빙수를 먹으며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럼에도 한스가 바빠보였던 이유는 그저 그가 주방 일에 지지리도 손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한성이는?”
이제 막 빈 테이블 정리를 끝내고 숨 좀 돌릴 겸 이한성을 찾아온 화연이 수정이와 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이미 깨끗하게 비어버린 그릇을 아쉽다는 듯이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내며 주방 쪽을 가리켰다.
“아빠는 아저씨 도와주러 갔써!”
“? 아저씨?”
“응! 곰돌이 아저씨!”
“…?”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정이가 가리킨 주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스를 어디 영국 출신의 매운맛 셰프처럼 갈구고 있던 이한성의 모습이 그녀의 눈가에 들어왔고, 이에 그녀는 그제서야 곰돌이 아저씨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노예를 말하는거니?”
“응!”
한스가 노예라는 사실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 수정이. 물론 아직 어려서 노예라는 개념이 뭔지 잘 몰라서 그런 것 뿐이지만, 수정이와는 다르게 노예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던 하나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노, 노예라니… 그런 건 불법이자나요!”
조선시대 이후로 노비, 혹은 노예제도는 한반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가끔가다 저기 섬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상대로 강제 노역을 일삼다가 경찰에게 붙잡히는 판타지 같은 소식들이 뉴스를 통해 들려오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케이스일 뿐이다.
그랬기에 정의감이 투철한 성격을 지닌 하나는 낯선 어른인 화연을 상대로 겁을 먹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여 이의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고작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하나를 상대로 한반도 라이프 600년 짬밥을 지닌 엘프인 화연은 그저 능숙하게 하나의 말을 받아넘길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렴. 노예는 그냥 저 아저씨 별명이야. 실제로 월급도 제대로 주고 있는데 노예일리가 없잖니?”
“그, 그래도 노예라는 별명은 안조은 별명 아닌가요…?”
“음. 확실히 그렇구나. 어감이 좀 안좋게 들리긴 하지.”
사람에게 이상한 별명을 붙여서 놀리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아빠에게 배웠다. 그런 아빠의 가르침을 떠올린 하나가 아주 똑부러기제 옳은 말을 하자, 이에 화연은 아이의 말을 귀담아 경청하며 한치의 반론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는 노예가 아니라 노비라고 불러야겠네.”
“…??? 노? 비??”
노예라는 단어는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하나였지만 애석하게도 같은 의미지만 다른 단어인 노비가 무엇을 뜻하는지, 소녀는 알지 못했다.
“노비가 뭐에요…?”
“나 알아!!”
노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하나가 물어보기 무섭게 수정이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외쳤다. 그리고는 이내 이한성과 함께 같이 보던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노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감이 넘치게 대답했다.
“TV에서 맨날 할아버지들한테 마님~ 하고 허리 아프게 인사하는 아저씨드리야! 그치??”
“어… 그,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노비들의 삶이 어떤지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적도 있었던 화연은 얼추 들어맞는 수정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아~ 맞췄다! 여니야, 나 대단하지??”
“아하하… 그럼, 당연하지~”
“에헤헤~”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화연은 그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수정이의 은빛 머릿결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이에 하나는 수정이와 화연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정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기 수정아.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면 안 혼나…?”
“?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방금 니가 아줌마 보고 여니야-라고 불렀자나.”
엘프는 귀가 밝다. 그들이 지닌 긴 귀는 장식이 아니다. 두 꼬꼬마 소녀들의 귓속말을 곁에서 본의 아니게 전부 들어버린 화연의 표정은 아줌마라고 불린 것과 동시에 가슴에 화살이라도 꽂힌 듯 충격으로 물들었다.
“아, 아줌마…”
저 꼬마 숙녀가 이제는 반박하기도 지겨운 오해를 어김없이 하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본 아줌마라는 호칭은 화연에게 치명상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하나는 가만히 수정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니는 우리 엄마 아닌데?”
“???”
순간 하나의 얼굴이 살짝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수정이와 화연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이 늘 한결같이 내비치는 반응이었다.
“그럼… 저 사람은 누군데?”
“음… 엄마 후보? 암튼 아직은 엄마 아니야.”
“?????”
엄마라는게 그냥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거였던가…?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 후보다. 엄마가 아니면 엄마가 아닌거지, 그걸 또 엄마 후보라고 말하는 수정이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설명에 하나는 엄마라는 존재의 정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말이지, 내가 여니를 엄마로 만들려고 노력중이야.”
“마, 만들다니?? 어떠케???”
“후후후, 그거야 아주 간단하지.”
수정이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화연과 이한성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대단한것도 뭣도 아닌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답을 내뱉었다.
“둘이 뽀뽀를 하게 만들면 대.”
“…!!”
“쿨럭!!”
아니야. 그거 아니야. 하나야, 너도 엄청난 비밀을 알게됐다는 표정 짓지 마.
귀엽게 봐줄 만 하던 두 꼬마 숙녀들의 대화가 어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화연은 순간적으로 피를 토할 뻔 한 기분과 함께 수정이의 위험한 계획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수정이는 브레이크 따윈 알지 못하는 리틀 토x스의 친구였다.
“남녀가 뽀뽀를 한다는 거슨 결혼을 할 준비가 대었다는 것. 그러케 되면 께임 끄치야.”
“그, 그치만 그런건 아저씨가 아줌마를 조아해야지만 가능한거 아니야…?”
“훗, 문제업서. 아빤 이미 여니한테 푹 빠져쓰니까.”
다 들리는 귓속말 대화를 엿듣던 화연의 얼굴이 점점 가열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방열판을 열고 냉각을 해야할 것만 같은 얼굴을 짓던 화연은 스리슬쩍 수정이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주방으로 시선을 돌려 이한성을 바라보았고,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정말로?”
서로 호감이 있다는 사실 쯤이야 진작에 깨달았던 화연이었지만 그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여전히 그녀 자신과 이한성은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한 진전도 1%에 불과한 사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정이와 하나의 비밀아닌 비밀대화는 그랬던 화연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수정이 니가 그걸 어떠케 아는데?”
“그야 아빠가 맨날 여니를 흘끔흘끔 쳐다보니까.”
수정이가 말하기 무섭게 화연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한성은 베테랑 알바생답게 자동적으로 [시선회피]를 시전하며 안 보고 있었던 척 애꿎은 한스를 갈궜다.
“야야, 너 그거 다시 만들어.”
“뭐?! 어째서냐!! 이번엔 완벽하게 실수없이 토핑을 쌓았잖아!!”
“그냥 까라면 까 새꺄.”
“크윽…!”
세 번의 시도 끝에야 완벽한 모양으로 토핑을 쌓아올리는데 성공했던 한스였지만 일개 노예-아니, 노비에 불과했던 그에게 주인인 이한성의 횡포에 저항할 수단 따윈 없었다. 그렇게 한스는 이한성이 시키는대로 하는 수 없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빙수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화연은 저도 모르게 수정이의 말에 신빙성을 느끼며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음… 아 그러치! 아빠는 맨날 이상하게 여니한테만 친절해!”
잠시 생각을 짚어보던 수정이가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그러자 그러기 무섭게 한스의 지도를 끝마친 이한성이 화연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이제 그만 퇴근하는게 어때? 어차피 바쁜 시간도 지났고 모처럼 시간이 났는데 괜히 쓸데없이 시간낭비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어.”
“….”
친절하다. 한스는 노예처럼 부리고 해영이 마저도 일할 때는 마구 부려 먹으면서 자신에게 만큼은 이상하리 만큼 느껴지는 친절함. 아까에 이어 두번째 연속으로 맞아 떨어진 수정이의 말에 화연은 잔뜩 붉어진 얼굴과 함께 합리적인 의심을 품으며 이한성을 빤히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로…”
“…?”
순간 이상하게 묘한 분위기가 두 남녀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K-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슬로우 모션 연출이 딱 들어갈 만한 타이밍 속에서, 화연은 점차 가속하는 본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져버리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울 아빠는 나이 많은 사람을 조아하거든!”
“….”
왜냐하면 잘 나가다가 부어진 수정이의 말 한마디가 멜트다운 직전이던 화연의 머릿속에다가 냉각수를 시원하게 들이부었기 때문이었다.
21살과 600살. 600-21=579니까 총 579년. 그정도의 나이 차이를 그냥 연상이라고 치부하기엔 화연의 양심은 너무나도 건재했다.
‘아… 갑자기 자괴감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조금 설레었던 방금 전의 상황이 무색하게 무자비한 현실이 화연의 마음에다가 팩트리어트 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하였다. 띠동갑만 되도 별로 시선이 좋지 못한 게 대한민국의 정서인데, 그런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녀가 그런 정서를 지니고 있지 않을리가 없었다.
“…갑자기 왜 그래? 조별과제 생겼어?”
“아하하… 아니. 그냥 뭘 좀 깨달아버렸거든.”
“뭘?”
“그 뭐랄까…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랄까…”
“…?”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 나이 차이라는 이름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화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