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3화(13/245)
13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돈이 제일 필요하다.
집세 내는데 돈이 들어가고, 먹는데 돈이 들어가고, 심지어 변기 물을 내리는 것 까지 돈이 들어간다.
거기에다가 이런저런 기타 부가세 등등을 생각한다면 삶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삶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돈이 없으면 단 3일도 버티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오로지 일하며 힘들게 돈을 버는 방법 밖에 없다. 적어도, 이한성 같은 돈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서민 같은 경우엔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가뜩이나 쪼들리는 생활에 먹는 입이 하나 더 늘어버린 이한성에게는 지구온난화가 어쩌니 생태계 파괴가 어쩌니 국회의원이 또 무슨 망언을 늘어놓았느니 하는 문제보다도, 돈 문제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2주 동안 일 안하고 버틸 수 있으려나…”
꼴에 적금 모아둔답시고 통장에 넣어둔 게 50만원. 이번 달에 내야 할 월세 40만원에 식비+기타등등의 수도세 포함 전기세까지 내야하는데, 당연히 터무니없이 돈이 부족하다.
“…그러고 보니까 이 육아 보조 시스템이라는 거, 애를 키우면 돈도 줬었지?”
분명 처음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줬을 때 5천원인가 푼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사실을 떠올린 이한성은 어째서인지 최근 들어서는 돌발 퀘스트인가 뭔가를 클리어해도 현금 대신에 골드라는 쓸데없는 것만 주구창창 받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시스템 창을 열어 상점 메뉴에 들어갔다.
꽤나 오랜만에 들어간 상점 메뉴는 이한성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소지 골드: 66500]우선 소지하고 있는 골드의 액수가 꽤나 컸고, 쓸모없는 아이템 3개만 존재했던 아이템 메뉴에 좀 더 다양한 물건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좀 괜찮은 젖병: 1000 골드] [신기한 딸랑이: 3500 골드] [친환경 기저귀: 5000 골드] [세계수의 이슬: 10만 골드]처음부터 메뉴에 있었던 3가지 기초 아이템에서 가격이 10배로 뛴 아이템들, 그리고…
“세계수의 이슬?”
새로 상점 메뉴에 추가된 영문 모를 이름을 지닌 아이템이 이한성의 눈에 들어왔다. 죄다 없어보이는 이름을 지닌 다름 아이템들과는 달리 이름도 그렇고 가격도 있어보이는 아이템을 본 그는 이내 아이템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세계수의 이슬: 세계를 연결하는 나무, 위드그라실의 잎파리가 머금은 마력의 이슬. 비록 나무에 맺힌 이슬에 불과하지만 세계수가 지닌 영생의 힘을 일부분 머금었기에 하이포션에 버금가는 회복 효과를 지니고 있다.]“….”
처음으로 찾아낸 쓸모 있는 아이템. 그러나…
“…별로 쓸모없지 않아?”
하이포션에 버금간다는 회복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가. 총기소지가 불법인 그 대한민국이다. 저기 내전이 허다하면 얼어나는 중동이라면 모를까, 이 치안 하나는 비교적 잘 유지되는 이 나라에서 떨어져나간 팔다리도 붙여줄 수 있는 회복약이 있어봤자 별 소용은 없다는 뜻이다.
거창하고 대단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별로 쓸모가 없어진 아이템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시대를 잘못 만난 아이템으로 부터 관심을 버리며 또 달리 뭐가 새로 추가된 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환전하기]“이건 또 뭐야?”
소지 금액 바로 밑에 이전에는 없었던 버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환전이라니, 뭐를 뭐로 환전할 수 있다는 거야? 설마 혹시…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이한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환전] 버튼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소지 중인 골드를 현금으로 환전하시겠습니까?]“…[YES].”
[환전하실 골드의 액수를 정해주십시오.] [YES] 버튼을 누르자 나온 메시지 창을 본 그 순간,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키며 떨리는 손끝으로 액수를 지정했다. [10000 골드를 현금으로 환전합니다.] [10만원이 지급되었습니다.]“이런 미친….”
밝은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노란색 종이쪼가리 2장이 이한성 앞에 나타났다. 신사임당의 얼굴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 5만원 짜리를 본 이한성은 순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채 그자리에서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10만원이나 되는 돈이 거저 주어졌다. 최저임금으로 풀타임으로 일해도 꿈도 꾸지 못하는 액수의 돈을 손에 거머쥔 이한성은 다시 한번 [환전하기] 버튼을 눌러 소지하고 있던 골드를 현금으로 바꾸었다.
[40000 골드를 현금으로 환전합니다.] [40만원이 지급되었습니다.]“아하하… 아하하하하….”
심봤다.
1골드가 10원. 즉 골드와 대한민국 원의 환전 비율은 1:10 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상점 메뉴의 유용하다 못해 황금알 낳는 거위와도 같은 기능을 알게 된 이한성은 가만히 자고 있던 아기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너 다행인 줄 알아라 야. 시스템 덕에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생각치도 못하게 돈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애를 보육원에 보낼 때 까지는 이 환전 기능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도 다 현금으로 바꿔버릴까?”
돈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그건 항상 돈에 쪼들려서 살아왔던 이한성이 깨달은 하나의 진리다.
‘하지만 보니까 현금을 골드로 환전할 수는 없던 것 같던데… 혹시나 모르니까 남은 골드는 그냥 남겨둬야 하나?’
그러나 이한성은 섵불리 골드를 죄다 현금으로 바꿔버릴 정도로 돈에 눈이 멀은 수전노가 아니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게 선택하는 성격이었고, 항상 일어날지 모르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미리 대비해놓는 편이었다.
“그래. 어느 정도는 남겨놔야지.”
굳이 지금 당장 환전하지 않아도 소지하고 있는 골드가 어디 도망가는 일은 없다. 급하게 돈을 꺼낼 필요 없이 천천히 꺼내도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린 이한성은 이내 상점 메뉴를 닫았고, 또 뭐 다른 유용한 기능이 없는지 시스템 창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에 뜨인 것은 [인벤토리] 메뉴에 들어있던 한 아이템이었다.
[초급 마법 주문서]“이건… 어제 버스 안에서 그 주정뱅이를 쫒아내고 받았던 거잖아?”
그때 당시에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상 목록을 확인하지 않았었다. 그 후로 불면증에 하도 일이 겹쳐서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한성은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던 [초급 마법 주문서를] 손끝으로 눌렀다.
[아이템이 실체화됩니다.]그러자 마치 상점에서 아이템을 살 때와 똑같이, 밝은 빛 입자들이 모여들며 낡은 종이 두루마리 비슷한 것이 실체화되었다.
“꼭 박물관에서 보는 고대 문서처럼 생겼네.”
세월이 지나 누렇게 변질된 색. 조금이라도 세게 건드렸다가는 모래처럼 바스라질 것만 같은 감촉. 왠지 꼭 유네스코나 문화재청에 맡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양피지를 본 이한성은 이내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펼쳐보았다.
[초급 마법 주문서를 사용하시겠습니까?]“[YES].”
[초급 마법 주문서를 사용했습니다.] [스킬: 수면마법(I)이 해금되었습니다.]“수면마법?”
스킬이 해금되었다는 메시지에 이한성은 곧바로 [스킬] 창을 열어 대체 뭐가 해금된건지 살펴보았다.
[수면마법(I): 지정한 대상을 수면상태에 빠뜨립니다. Mp의 소모가 없는 대신에 하루에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디게 애매한 성능이네.”
초급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었을 때 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이한성이었지만 마법서에서 나온 스킬은 예상외로 쓸모가 없었다.
‘뭐, 파이어볼이나 메테오 같은 실생활에 쓸모없는 게 안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판타지에서 흔히들 등장하는 공격 스킬들을 떠올린 이한성은 별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스킬에 그다지 개의치 않아하며 시스템 창을 닫았다.
“우아으아으아앙!!”
“또 시작이네 저거.”
좀 잠잠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또 시작된 아기의 울음소리에 이한성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상태이상: 딱히 없음]“아니 그럼 대체 왜 우는 건데.”
[의심병자의 눈]으로 아기의 상태를 살펴본 이한성이었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똥오줌을 싼 것도, 불안한 것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울어대는 아기의 모습에 이한성은 문득 떠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잠깐만, 혹시 수면마법을 사용하면…”
별로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킬. 하지만 어쩌면, 이대로는 앞으로 2주 동안 막을 방도가 없는 불면증으로 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바램과 함께, 이한성은 이제 막 습득한 수면마법을 사용했다.
[수면마법(I)를 사용했습니다.] [대상이 성공적으로 잠들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23시간 59분 57초]“우아으….”
스킬이 발동된 것과 동시에 나라라도 잃은 것 마냥 울려 퍼지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뚝 멎었다. 좋은 아기는 자고 있는 아기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얌전하게 잠든 아기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태어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이젠 밤에 자다가 깰 걱정 없이 마음놓고 수면을 취할 수 있다. 고작 하루 뿐이었지만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자다 깼다를 반복하는 게 얼마나 지옥같은 고문인지 처절하게 깨달아버린 이한성은 평소에는 욕하기 바빴던 신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신은 죽지 않았구나.”
하도 세상 꼬라지가 이 모양 이 꼴이길래 진작에 임종하신 줄 았았는데, 아직 정정하신 모양이다. 이렇게 사람 목숨 하나를 건져주시는걸 보아하니 말이다.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잠들은 아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자고 있을 때는 꽤 예쁘다니까.”
울 때는 작은 악마가 따로 없는데 이렇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천사로 밖에 안보인다.
확실히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기를 보면 다들 그리 좋아라하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아기의 볼살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게 바로 진짜 아기피부 구만. 되게 부드럽네.”
꼭 찐빵이나 만두피같은 느낌이다. 험하게 자라느라 거칠기 짝이 없어진 자신의 피부와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에 이한성은 그렇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잠든거, 이왕이면 하루종일 자라. 나도 좀 쉬게.”
물론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다. 어차피 또 이따가 일어나서 밥 달라던 뭐라던 간에 다시 깨서 펑펑 울겠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이한성은 별로 개의치 않아하며 속으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이제는 밤에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참아야지.’
괜히 짜증내고 불평을 늘어놓아봤자 피곤해지는 건 자기자신뿐이다. 지난 이틀간의 경험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이틀 전 보다 대견해진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며 지금 이 조용한 순간을 마음껏 만끽하기로 했다.
수면마법은 하루에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린 채.
“우아으아아앙!!”
한밤중 부터 계속해서 반복되는 13번째 울음에, 이한성은 가출할 것만 같은 영혼을 간신히 붙들으며 생기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 신이시여. 저게 어딜봐서 하프엘프입니까. 완전 맨드레이크구만.”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게 딱 맨드레이크 그 자체다. 실제로 울음소리를 지속적으로 듣는 것 때문에 생기도 빨려나가는 느낌이고.
“아까 수면마법을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수면마법을 쓸 수 있는 건 하루에 단 한번. 그걸 애 낮잠 재우겠답시고 낭비해버렸으니 오늘밤은 꼼짝없이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다.
“내 인생은 대체 어디부터 꼬여버린걸까…”
불안해서 울고불고 난리인 아기를 안아들어 토닥이며, 이한성은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제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그냥 태어난 것 부터가 불행인 것 같은데.
이왕 태어날거면 재벌 3세 같은 금수저로 태어나서 돈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근데 이게 뭐지? 태어나 보니까 부모는 인간만도 못한 웬수 중 웬수고 그 부모한테서 겨우 독립하고 나니까 이젠 웬 이세계 맨드레이크가 밤마다 소음공해로 날 괴롭히네? 내가 전생에 무슨 매국노였나?
불평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 살면서 거의 불행밖에 없다 싶었던 이한성은 화만 내봤자 피곤해질 뿐이라며 스스로를 겨우 진정시켰다.
“그래. 앞으로 2주만 버티면 되니까 참자 참아. 어차피 앨 키우기만 해도 돈이 절로 들어오니까 챙길만큼 챙기고 바로 고아원에 보내버리면 그만이지 뭐.”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진짜 쓰레기같긴 하지만… 솔직히 나랑 얜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잖아. 따지고 보면 난 피해자고 얜 가해자 비슷한 거라고. 내가 고소를 하면 모를까…
“…..그만 두자.”
정당화 하려니까 괜히 기분만 더 더러워지네. 그냥 내가 이기적인 놈이라고 인정하지 뭐.
끝도 없이 늘어지는 스스로의 정당화에 혐오감을 느낀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다시 잠들어버린 아기를 바구니 속에다 눕혔다.
[똑똑-]“?”
이 시간에 누구지?
현재 시각은 오전 3시. 누가 찾아올 만한 시간은 절대 아니다.
“…누구세요?”
스산한 새벽이라 그런지,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바싹 긴장하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나야 총각.”
“…집주인 아주머니?”
문을 열자 보인 것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 집주인이었다. 컴컴한 조명 때문인지 순간 귀신으로 착각할 뻔한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겉으로 일절 드러내지 않은 채 아주머니께 물었다.
“이 시간엔 왠 일이세요…?”
“당연히 애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왔지. 보아하니까 총각 얼굴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게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구만.”
“그야 애가 랜덤으로 막 울어대는데 어떻게 잡니까…”
이한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집주인이 또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에 혹여나 집에서 쫒겨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서 미칠 것만 같은 그였다.
“쯧쯧, 그러게 왜 그 나이에 사고나 쳐가지고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차더니 현관문을 제치고 자연스레 이한성의 집 안에 발을 들이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풀리지 않는 오해에 답답해서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을 뒤로 한 채 다시 한번 해명을 시도했다.
“그러니까 제 아이 아니라고요… 진짜 제 아이면 제가 양심 땜에 진작에 입 닥치고 가만히 있었을거 아닙니까…”
정말 너무너무 억울하다. 그냥 제자식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믿어주면 좋을 것을, 사람들이 죄다 어떻게 꼬여먹었는지 사람 말을 원자 한톨 만큼도 믿지 않는게 그리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그럼 총각은 뭣하러 남의 애를 데려다 키우고 있는건데?”
“데려다 키우고 있는게 아니라… 보육원에 보내려면 절차가 이것저것 필요해서 2주 동안만 맡게 된 것 뿐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보육원에다가 맡겨놓고 싶었다고요.”
“…쯧, 딱한 것.”
이한성의 진심어린 해명에, 집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동정어린 표정을 지으셨다.
“그쵸. 저 진짜 불쌍하죠.”
“총각 말고 애기 말이야. 거 딱하기도 하지… 보육원 살이가 많이 힘들텐데…”
“…..”
그럼 그렇지. 어째 날 쳐다도 안보고 얘기한다 싶었어.
이렇게까지 억울함을 표해도 일절 신경도 안써주는 아주머니의 냉랭한 태도에 이한성은 잠시나마 이해를 얻었다고 생각한 스스로를 나무라며 언제 또 깨서 울어댈지 모르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뭐… 보육원 살이가 힘들긴 해도 굶어 죽는 것 보다는 나을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거 다 사람마다의 차이야. 누구는 굶어죽는 것만 아니면 되지만, 또 누구는 부모없는게 평생의 한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있으니만도 못한 부모라고 해도요?”
“말했잖아. 사람마다 다 다른거라고. 있으니만도 못한 부모라고 해도 부모를 그리워 하는 사람도 세상 어디엔가는 있을지도 모르지.”
“…하, 그말에는 별로 동감이 안되네요.”
제자식을 패고 욕하고 사람 취급도 안해주는 부모들이 있어서 뭐하는가. 애초에 그런 것들은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인데.
평소에 장담 같은 건 잘 안하는 이한성이었지만, 이한성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신이 그 인간을 그리워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확고하게 장담 할 수 있었다.
“하여튼, 총각이 당분간은 애를 돌봐야 된다고? 애 돌볼 줄은 알아?”
“대충요. 잠 재우는 것만 빼면 다 어떻게든 할 수 있더라구요.”
뭐든지 일단 분유부터 주고 보면 조용해진다. 단 며칠 간의 경험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그럭저럭 애를 돌보는 것에 적응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얌전히 잠 재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가 한밤중에 잠에서 깨는 이유는 늘 제멋대로였기 때문이다.
기저귀를 갈아줘야 되서 우는가 하면, 또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그러다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 젖병이랑 기저귀를 둘 다 챙겨주면 또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울어대고, 답정너도 이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원래 애가 얌전하게 잠들 때 까진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야. 그때까지는 총각이 주기적으로 아이한테 잠 잘 시간을 가르쳐줘야 하지.”
“…결국 당분간은 잠 못 잔다는 거 아닙니까.”
“애 키울려면 그정도는 감수 해야지. 뭐… 총각은 2주만 버티면 되니까 괜찮겠지만.”
집주인 아주머니는 수고하라는 듯이 이한성의 어깨를 살짝 토닥이고는 그대로 현관으로 향하셨다.
“애가 또 깰 테니까 그때까지 눈 좀 붙여 둬. 아침에 장조림 하다 남은 것도 좀 가져올테니까 라면 같은 걸로 때우지 말고.”
“아, 감사합니다.”
내심 말은 까칠하게 하시면서도 반찬도 가져와주시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이한성은 참 복합적인 기분을 느끼며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런 그의 감사를 무시하신 채 인사도 없이 자리를 비우셨다.
“…정말로 친절하신건지 까칠하신건지 감을 못잡겠다니까.”
아무튼간에 월세 밀린 적도 없는데 월세 언제 낼거냐고 매일같이 재촉하시는 것만 빼면 꽤 좋으신 분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점점 호감으로 변해가는 아주머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소파 위에 누웠다.
‘그나저나 앞으로 2주가 지나고 애를 보육원에다가 맡기고 나면… 그땐 다시 노가다 뛰면서 일해야 하는 생활로 돌아가는건가…’
고작 며칠이나 동안 일을 그만 뒀다고 벌써부터 막막하다니, 이래서 백수 생활이 무서운거다. 애를 돌보는게 힘들기는 하지만 알바를 뛰는 것도 만만찮게 힘든 법이니.
“어쩌면 그냥 쟤를 이대로…..”
…..아니지. 지금 대체 무슨 미친 생각을 하는거야. 아무리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렇지, 미쳤다고….
이한성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생각을 가까스로 떨쳐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냥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누구는 부모없는게 평생의 한이 될 수도 있으니까.
“…..”
낮에도 들었고 밤에도 들었던 말들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안 키울거야. 안 키울거라고.”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도 모를 말과 함께, 이한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눈 좀 붙이려면 지금이 딱인데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한성은 잠들려고 발버둥 치는 척을 하며 홀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난… 그 인간 처럼은 안 될거야.”
결국, 그는 그날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린시절을 곱씹으며.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생각을 되뇌이며.
이도저도 못하며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마음에게 거짓을 고하며.
그렇게 잠 못이루는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