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3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39화(139/245)
139
한스 마이어라는 인간은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고, 천국을 믿지도 않았으며, 지옥을 믿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다고 한다면, 있는데도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면, 그는 당장 그 신이라는 존재를 찾아가 그 목을 검으로 베고 거리에다 매달아 놓을 생각이었으니.
사람이 죽으면 죽는거고, 그걸로 끝이다. 천국이나 지옥 같은 건 그저 신전 놈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퍼뜨려놓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후 부터 한스 마이어의 가치관은 항상 그래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한스 마이어는 실제로 천국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깨닫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땀을 흘리고 있는 이 헬스장이 천국인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그래, 이거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지!!”
호구처럼 헬스장 1년치를 끊어버리고는 운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2시간. 잠깐의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다른 운동기구로 옮겨다니며 근육을 집중적으로 조진 한스의 얼굴에는 오로지 희열만이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500kg의 벤치 프레스를 즐기며 변태같이 웃고 있을 정도로.
“저거 사람이냐…?”
“아니, 곰인듯.”
“확실히 서양인들이 힘이 좋긴 하네…”
2시간 내내 온갖 세계 기네스북을 갈아치우고 있는 듯한 한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크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며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짜릿하고 새로운 운동기구들에 중독된 것 처럼 빠져있던 한스는 그런 주변의 술렁임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오로지 근육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맛있군 맛있어…!! 삼각근이 쪼이고 수축되는 이 감각, 아주 훌륭하다!”
용병이었던 시절 바위로 훈련했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황홀함. 아무리 몸에 딱 맞는 바위를 찾아 들었다 내려놨다 운동을 한다 한들, 늘 어딘가 부족한 감각이 있었지만 이 바벨과 각종 프레스 기구들은 자연의 부산물이 아닌, 처음부터 운동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과학의 정수. 오로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연구되고 개발된 보디빌딩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기구들은 지금까지 원시적인 방법으로만 운동을 해왔던 한스 마이어에게 있어선 마치 2G폰을 쓰다가 5G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기분 그 자체였다.
“이런 것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인생의 절반을 헛살아 버렸구나!!”
[쿵-]세트를 끝낸 한스가 바벨을 마치 빗자루 다루듯이 사뿐히 한손으로 바닥에 내려놓으며 현자가 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에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정이는 그가 내려놓은 바벨에 호기심을 가지고는 작은 두 팔로 500kg에 달하는 초중량 물체를 들어올리려고 했고, 이내 너무나도 당연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으으읏차아…!”
“관둬라. 네 까짓 것의 힘으론 어림도 없다.”
“으앗?!”
그러다가 괜히 다치지나 말라고 하는 듯한 한스의 말이 울려퍼지게 무섭게, 수정이는 곧바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자 이에 주변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런 귀엽기 그지 없는 수정이의 모습에 저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한스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잠시 숨도 돌릴 겸 자리에 앉았다.
‘역시 땀을 흘리고 난 다음에 마시는 물은 성수가 따로 없군.’
체육관에 들어온지 2시간 만에 취하는 휴식. 혹시나 몰라 가죽으로 만든 수통을 챙겨온 그는 21세기에서는 결코 흔하지 않는 수통으로 물을 마셔 목을 축였고, 이내 무심코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삼촌, 안 힘들어?”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수정이는 휴식하고 있던 한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이에 한스는 뚜껑 대신 끈으로 가죽 수통을 묶어 옆에 내려놓았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가 삼촌이냐. 그리고, 이정도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허얼… 되게 지루할 것 가튼데…”
“너 같은 반푼이 꼬맹이는 모르겠지. 근육을 움직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얼마나 큰지.”
인간의 신체가 낼 수 있는 원초적인 힘을 키운다는 것은 극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노력을 하는 만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그에 따른 쾌락은 세상 그 어느 욕망과 비교해도 견줄 바가 못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진 한스의 생각은 그러하다.
“? 쾌락이 모야?”
“기분 좋은거.”
“음… 그러면 삼촌은 운동하는게 기분이 조아서 하는거야?”
“…글쎄. 무조건 그런 이유라고는 딱 잡아서 말하기가 힘들군.”
수정이의 물음에 한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살짝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스스로를 단련하기 시작한 이유는… 가족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였지.’
한스 마이어라는 인간은 본래 이렇게 우락부락한 몸에 근육과 검술 밖에 모르는 전사가 아니었다. 그의 어렸을 적 꿈은 검술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조각가였고, 그에게는 훌륭한 조각가가 될 만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그는 이그니스 왕국 기사단의 소드 마스터이자 한명의 전사이고, 가족들의 복수도 이루지 못하고 임무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운동을 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수를 갚기 위해 수련을 반복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처음으로 수련을 시작했을 때 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지금은 어떤가… 내 스스로도 잘 모르겠군.’
물론 지금은 운동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 예전의 그때 처럼, 가족의 원수를 갚는 것에 사로잡혀 광적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에 매진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스는 본인이 아직까지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이유를 딱 잡아 말할 수가 없었다.
가족의 원수? 지금에 와서 엘프들이 원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싶이 되어버렸다.
기사로서의 임무? 함께 온 전우들은 이미 뿔뿔히 흩어져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고, 이렇게 한심하게 눈앞의 엘프 꼬맹이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완수할 수 있을리가 없다.
의무인가, 취미인가, 지난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했던 걸 되돌아보았을 때 이제와서 그것의 경계는 너무 희미해져버렸다. 그렇기에 한스는 본인이 아직까지도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계속하는 것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
장황하고 사연있는 고뇌와 함께, 한스는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무게를 잡으며 고뇌를 반복한다 한들, 한줄요약으로 앞선 이야기들을 설명하자면 현재 그가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쳇, 꼬맹이 너 때문에 괜히 머리만 복잡해졌군.”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할 시간에 차라리 스쿼트 한개라도 더 때리는게 훨씬 보람차고 만족스러운 일인데 말이지.
하여간에 이래서 꼬맹이들은 싫다. 그렇게 한스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면모를 더욱 굳히며 다시 몸을 움직이려 나섰다.
“휴식 끝. 한 세트 더 때릴 시간이다.”
헬스장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헬창들의 전문용어까지 습득한 한스는 그런 혼잣말과 함께 벤치 프레스로 향했다. 그러나 휴식을 끝내고 루틴을 반복하기에는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름모를 누군가가 벤치 프레스 위에 누운채로 한가하게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 이용하지 않을거라면 비켜주면 좋겠다만.”
흔히들 볼 수 있다는 헬스장에 출몰하는 빌런 중 하나, 광개토대왕. 온갖 덤벨 같은 것들을 주변에 쌓아 놓은 채 쓸 생각은 안하고 기구를 차지하고는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고 있는 유형의 빌런들을 의미하는 광개토대왕과 마주하게 된 한스 마이어는 반말이긴 하지만 정중한 말투로 빌런을 쫒아내려고 했다.
“이용 중인데.”
그러나 이에 광개토대왕은 한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 보며 짧디 짧은 말과 함께 무심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광개토대왕+폰 디스트로이어 콤보. 딱 봐도 이용하지도 않고 몇 십분 째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게 뻔히 보이는데 뻔뻔하게 이용중이라는 빌런의 대꾸에 한스는 어이 없어 하며 한층 더 강경해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빌런에게 말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비켜.”
“이런 x발 아까부터 왜 반말하고 x랄이야?”
헬스장 빌런도 한스 못지 않게 한 덩치 하는 편이었다. 팔뚝에 문신을 하고 있는 것이 딱 봐도 동네 문신 근육 양아치인게 분명한 빌런은 그대로 성질을 내며 욕설과 함께 일어나 한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스는 한번 더 빌런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며 마지막 경고를 주었다.
“…두말하지 않겠다. 험악하게 해결하고 싶지 않으니 순순히 비키도록.”
늘 느끼는 거지만 이 나라의 인간들은 다 하나같이 싸가지란 것이 없단 말이지. 치안이 너무 좋아도 문제로군.
치안이 좋다보니 아무리 타인의 면전에다 대고 쌍욕을 내뱉어도 칼 맞는 일이 없다시피 한 나라다. 그런 속마음과 함께 한스는 이곳이 이그니스 왕국이었더라면 저 성질 더러워보이는 근육돼지는 진작에 배때지에 칼빵 두어번 맞고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려졌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왕! 삼촌, 싸울꺼야??”
“…꼬맹이 너는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수정이가 빌런과 대치중이던 한스의 앞에 나서며 끼어들자 한스는 귀찮고 피곤해 죽겠다는 듯이 수정이를 쫒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성질 더러운 근육돼지 빌런은 수정이의 말에 발작 스위치가 켜지기라도 했는지 불편할 정도로 얼굴을 위협적이게 들이대며 압박했다.
“너 이 x끼, 뭘 믿고 그렇게 나대냐? 운동 좀 하니까 세상이 만만해 보이지?? 하여간에 이런 x끼들이 항상 뭣 모르고 나대다가 다친다니까.”
“허, 돼지처럼 생긴 것 답게 혓바닥 한번 길군. 고블린 하나 못 잡아봤을 놈이…”
“…뭐 이 x끼야?!”
만만치 않게 성격이 개차반인 한스의 반격에 헬스장 빌런은 그런 도발 하나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덤벨이 올려져 있던 프레스 기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무래도 후천적인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말로 해선 안되겠군. 팔이라도 하나 부러뜨려놔야 좀 대화가 되겠—
폭력은 훌륭한 대화수단이다. 그런 사상을 지닌 한스는 현대인과는 다르게 주저없이 폭력을 휘두를 준비를 하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러려던 순간, 헬스장 빌런의 화풀이에 의해 덜컹이던 프레스 기구가 휘청이며 불길한 소리를 냈다.
[기우뚱-]기구 위에 사용하지도 않고 방치되어 있는 100kg 짜리 바벨. 둔중한 흉기 그 자체인 덤벨이 충격에 의해 걸쳐져 있던 기구로 부터 떨어지려던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그 밑에 서있던 수정이를 향해.
“어라??”
“!!!”
헬스장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고는 아마 덤벨에 의한 사고일 것이다. 본래 고중량 운동을 위한 기구이니 만큼 무게도 무겁고 사용빈도도 많은게 바로 덤벨이니.
힘이 부쳐서 들어올리지 못하고 떨어뜨린다던가, 아니면 원판을 끼우다가 놓쳐서 발가락을 찧는다던가 하는 불상사는 흔히 있는 사고다. 물론 크게 다치거나 하는 경우는 왠만해선 드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헬스장의 주된 이용자들이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에 처해지는게 어린 아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1m 정도 높이에서 낙하하는 100kg 짜리의 물체는 7살의 여자아이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앗아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기 때문에.
“흡!!!”
찰나의 순간. 소드 마스터의 뛰어난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으로 반응한 한스 마이어의 팔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울려퍼진 것은 날카로운 기합. 한쪽 팔 만으로 수정이를 향해 낙하하던 덤벨을 무슨 떨어지는 핸드폰 마냥 붙잡으려는 듯이, 한스는 팔을 뻗었다.
1m 높이에서 낙하하는 100kg의 덤벨을 한쪽 팔로 캐치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정도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이었지만, 한스는 인간을 초월한 인간이었다.
[끼기기긱-]낙하하던 덤벨은 마치 정지하기라도 한 듯 마냥 한스의 손에 붙잡힌 채 금속이 우그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아니, 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스가 붙잡은 바벨의 손잡이 부분이 손자국 모양으로 우그러져 있었다.
“이런, 힘을 너무 줬나…”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바람에 힘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스는 그렇게 자신이 신성하기 그지 없는 운동기구를 망가뜨려버렸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을 내보이며 바벨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물론 한손으로.
“우왕! 삼촌 대박!! 힘 짱 쎄!!”
“이 반푼이 꼬맹이가 진짜…!”
방금 훅 갈 뻔한 것도 모르고 막 좋아라 웃고 있는 수정이. 천진난만한 수정이의 모습에 한스는 울컥하며 화를 내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수정이의 미소가 너무나도 밝았다.
“…됐다. 말해봤자 어차피 듣지도 않을테지.”
말 안듣는 꼬맹이한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 만큼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인 일이 따로 없다. 그렇게 한스는 스스로를 진정시켰고, 다시 헬스장 빌런에게로 시선을 돌려 팔 하나 부러뜨릴 준비를 갖췄다.
“어디갔어???”
그러나 이미 돌아보았을 때 헬스장 빌런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쳐버린 뒤였다.
‘…도망간건가? 아쉽군, 간만에 몸 좀 풀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헌데… 무엇 때문에 도망간거지??’
…100kg짜리 덤벨을 한손으로 공깃돌 다루듯이 드는 게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한스 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