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4화(14/245)
14
지루하고 평면적이기만 했던 일상이 무너진 지 어느덧 일주일 하고도 절반이 지나갔다.
“우으아앙!!”
“옛다, 슬슬 배고플 줄 알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이한성은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눈 하나 꿈뻑이지 않은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미리 준비해뒀던 젖병을 아기의 입에다가 물려주었다.
일주일 하고도 절반. 정확히는 11일 째. 처음에는 마냥 아기를 돌보는 게 미숙하고 짜증나고 귀찮기만 했던 이한성이었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었다.
아기가 운다는 것은 무언가 필요한 게 있다는 뜻. 그냥 아기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만 하면 금방 잠잠해진다는 사실을 5일차에 깨달은 뒤로, 이한성은 어느 샌가 능숙한 베이비시터가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 젖병, 의외로 효과가 쏠쏠하네.”
[좀 괜찮은 젖병: 500년 묵은 거목의 가지를 깎아 만든 젖병. 자연의 가호가 깃들어 있기에 정서불안의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얼마 전에 상점 메뉴에서 시험 삼아 사본 새 젖병. 처음에는 싸구려 젖병과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정작 써 보니 싸구려 젖병에게는 없는 아주 유용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물건이었다.
정서불안을 해소시켜주는 능력. 다르게 말하자면, 사용자에게 안정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즉 매사에 별 걸 다 가지고 불안해하는 생후 1개월 된 아기한테 주면, 애가 무척이나 얌전해지고 조용해진다는 뜻이다.
“덕분에 집이 많이 조용해졌단 말이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거나 배고플 때가 아니면 애가 딱히 우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상점에서 새로 산 다른 물건들도 같이 써보니까 육아가 이렇게 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가 배고플 때는 바로 분유를 먹여주면 되고, 기저귀에다가 실례를 하면 빠르게 갈아주면 그만이며, 밤에 자다가 깰 때는 바로 일어나서 수면마법을 걸어주면 완벽하다. 대응책이 확실하니 이한성이 걱정할 것은 딱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 덕에 육아도 쉬운데 거기에다가 애를 돌봐줄 때 마다 골드를 비롯한 이런저런 보상을 지급받으니 일석이조다. 실제로 지난 며칠 동안 거의 10만에 가까운 골드를 모은 이한성은 그저 애를 돌보면서 쾌재를 부를 뿐이었다.
‘뭐, 하지만 그것도 이제 앞으로 3일이면 끝인가.’
이한성이 아이를 맡기로 했던 기간은 2주일. 오늘로 벌써 11일째 이니 앞으로 3일이면 이 지긋지긋했던 아기와의 인연도 끝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쉽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아무리 애를 돌보면서 10만 골드,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애를 돌볼 생각은 없다.
“이건 그냥 단기간 꿀알바라고 생각해야지.”
고작 100만원 하나 벌겠다고 애를 키우겠다는 건 미친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분유 좀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어떻게든 재워주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이 아기가 언제까지고 요만한 작은 생물로 남아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성장이란 것을 한다. 물론 이 아기의 정체가 하프엘프이니 만큼 인간과 똑같이 성장할지는 모르는 법이지만, 아마 언젠가는 학교도 다니고 반항기도 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한성은 그때까지 아이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서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선택이 어떤 모습의 결과를 불러오는지, 이한성은 경험으로써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라는 인간의 친자식이었던 자신조차도 그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나 거슬려서 못볼 꼴을 보면서 자라났는데, 남의 자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란 존재를 무척이나 증오하는 이한성은 그 인간과 같은 전철을 밟고 싶은 마음이 원자 단위 만큼도 없었다.
“다 마셨으면 젖병 내놔. 설거지하게.”
“우아으.”
어느 샌가 젖병 안에 든 분유를 다 마셔버린 아기는 이한성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반응한 건지 순순히 젖병을 내놓았다.
‘설거지 하는 마법은 어디 없으려나.’
세상 모든 주부들이 한번쯤은 꿈꿔보았을 궁극적인 소원. 하도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니 어쩌면 그런 마법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한성은 젖병을 비롯한 싱크대에 쌓여있던 그릇들을 주방세제와 수세미로 닦기 시작했고, 물기를 말리기 위해 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가능하면 인스턴트로 먹기는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왜 자꾸 설거지가 늘어난담.”
설거지 하는 게 하도 귀찮아서 컵라면 같은 거로 끼니를 때우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거지거리는 늘 착실하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아마 사람이 살면서 절대로 풀지 못할 생활의 미스터리겠지.’
이한성은 속으로 그런 실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젖은 손의 물기를 털어냈다.
“아우…”
“?”
순간 아기가 옹알거리며 이한성의 시선을 끌었다.
“웬일로 안자고 깨어있냐?”
보통 분유를 먹이고 나면 금새 조용히 잠들던데.
어째서인지 낮잠을 실컷 잘 시간에 깨어있는 아기의 모습에 이한성은 별일이라는 듯이 아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소파 위에 누웠다.
“넌 어차피 깨어있어 봤자 팔다리 허우적거리는 것 밖에 못하잖아. 괜히 힘 빼지 말고 빨리 자.”
“아우…”
“그래, 싫으면 됐고. 난 좀 잘란다.”
별로 잘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기의 반응에 이한성은 그렇게 대꾸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쉴 수 있을 때 미리 쉬어야 한다. 11일간 아기를 돌보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은 이한성은 나중을 위해 그대로 얕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문제가 있으면 어차피 또 울고 불면서 깨우겠지 뭐.’
조금 익숙해졌다고 다소 안일해진 생각과 함께.
–––––––-
“우으아아아아앙!!”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던 정적 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작스럽게 침묵을 깨뜨렸다.
“몇시야…”
잠깐 눈 좀 붙인다는 게 그만 긴 낮잠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며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덧 오후 5시. 잠들어버린지 3시간이 지났다.
“아우으아아아앙!!”
“그래그래… 또 배고프냐? 아니면 또 기저귀에 지도 그렸어?”
이한성이 피곤해서 갈라진 목소리로 일어나며 아기에게 물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치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이한성은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아기에게 다가가 젖병을 입에 물려주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배가 고픈 건 아니었는지 아기는 분유를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 기저귀 문제인가보네.”
배고픈 거 아니면 배변문제다. 이 상황에서는 분유를 거들떠도 안 보니 기저귀 문제일 것이다.
이한성은 망설일 것 없이 미리 상점 메뉴에서 사두었던 기저귀를 꺼내고는 아기가 차고 있던 기저귀의 상태를 확인했다.
“…뭐야. 기저귀 문제도 아니잖아?”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배고픔도 아니고 기저귀도 아닌데 왜 우는걸까.
처음 보는 아기의 상태에 이한성은 잠시 당황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어째서인지 붉어 보이는 아기의 이마에다 손을 대보았다.
“이런 미친, 불덩이잖아…?”
뜨겁다. 굳이 체온계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열이 펄펄 끓고 있다.
[상태이상: 고열]스킬, [의심병자의 눈]을 사용하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아기의 상태가 메시지 창으로 출력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으아아아아앙!!”
“…!”
얼어붙어 있을 시간 따윈 없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한성은 곧바로 잠바를 걸치고 아기를 끌어안은 채 집을 뛰쳐나왔다.
달린다. 숨이 차고, 폐가 찌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지경까지 또 달린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이한성은 그렇게 근처의 병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집에서 병원까지의 거리는 고작 걸어서 10분. 하지만, 지금의 이한성에게 있어선 1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다.
1분이 1시간과도 같이 느껴진다. 벌써 달리기 시작한지 한참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병원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1초도 쉬지 않은 채 달린 탓에 폐가 비명을 질렀다. 부족한 산소를 온몸에 보내기 위해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이 뛰었고,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다리는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한성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몇시간과도 같은 5분이 지난 끝에 이한성은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기 무섭게 이한성은 곧장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러자 병원 스태프들과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한성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애가…., 열이….,”
의료진의 질문에 이한성은 다 죽어가는 숨소리와 함께 겨우겨우 대답을 내뱉었다. 그러자 의사는 바로 상황을 파악했는지 이한성이 안고 있던 아기를 받고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간호사들을 부르며 아기를 응급실 안으로 데려갔다.
“아기 체온 체크하고, 바로 소아과 불러서 내려오라고 해.”
이런저런 알아듣지 못할 의학용어들이 계속해서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를 오갔다. 이한성은 그런 의료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이내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사람, 별별 환자들이 모여 있는 응급실 이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뜨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오열하는 이름 모를 부모의 모습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런 광경이 눈에 밟히는 걸까. 사람 불안하게시리.
‘별일 없겠지… 그냥 열만 좀 나는 것뿐이잖아. 언제 그렇게 남 걱정했다고, 진정해 이한성.’
떨어져나간 팔다리도 이어붙이는 시대인데 애 열나는 것 하나쯤 고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계속해서 떨린다. 10분거리를 5분 만에 달려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뭐가 자꾸 불안해서 이러는 건지, 혹은 둘 다인지.
“에이씨, 진짜. 가만히 좀 있어라.”
이한성이 계속해서 덜덜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그렇게 스스로를 꾸짖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떨림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결국 다리가 떨리는 것을 멈추는데 실패한 이한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진정하겠답시고 눈을 감으니 오히려 귀만 더 밝아질 뿐이었다.
“으아아아앙!! 으아앙!!:
“…..”
저 먼치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한성의 귓가를 자극했다.
“…젠장.”
결국 이한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걱정되어서 죽을 것 같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