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4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45화(145/245)
145
1교시가 지나고 2교시 직전의 쉬는 시간에, 수정이는 여느때와는 달리 잔뜩 토라진 모습으로 책상위에 늘어진 채 금 같은 쉬는 시간을 날려보내고 있었다.
“수정아… 기운 내.”
“…시러. 다 때려치울꺼야.”
암만봐도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수정이의 의욕 제로인 모습에 걱정을 내비친 하나였지만, 수정이는 친구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굼뱅이 마냥 책상에다가 얼굴을 묻었다.
“김정우 걔가 어제 했던 말 때문에 그러는거야?”
“…아니야.”
“아니기는 뭘. 너답지 안케 왜 그런 말 가지고 풀이 주근거야?”
“아니라니까아! 나 풀 안주겄써!”
하나의 말에 발끈한 수정이가 고개를 홱 들며 버럭 외쳤다. 하지만 이에 하나는 그저 추궁하듯이 입을 다문 채 수정이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고, 수정이는 이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거 때문에 이러는거 아니란말이야…”
말은 아니라면서도 수정이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말과는 달리 수정이의 표정은 방전되기라도 한 배터리와도 같은 모습이었고, 어제 들었던 김정우의 말은 자꾸만 수정이의 귓가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너네 아빠 결혼도 안하고 너 키우는거라며? 그런건 가짜아빠거든?!
어쩌다가 그런 말을 듣게 된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수정이는 오직 정우가 내뱉었던 그 한마디만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가시질 않는 걸 느끼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일의 발단은 무척이나 사소했다. 여느때와 같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놀던 수정이와, 그런 수정이에게 한번이라도 이겨보려고 시비를 걸었던 정우.
축구, 줄넘기, 달리기, 술래잡기, 심지어 가위바위보 까지, 그런 온갖 종목들을 가지고 정우는 수정이에게 대결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수정이는 정우가 신청안 모든 대결에서 당당하게 승리를 차지했고, 그 바람에 정우는 그만 분에 이기지 못하고 수정이의 부모님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던 것이었다.
그 유치한 트집 하나가 수정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우리 아빤 가짜 아닌데.”
물론 그때 수정이는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지 않았었다. 행동파인 수정이는 이한성의 가르침에 따라 바로 정우에게 달려들어 헥토파스칼 킥을 날렸었고, 아예 일방적으로 정우를 뚜드려 눕혔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마음 속 응어리를 풀기에는 턱도 없었다.
어떻게든 아빠가 무척이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서 정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다. 친아빠는 아니지만 아빠가 진짜 아빠라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납득하게 만들고 싶었다.
어제 이후로 수정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런 생각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결혼을 들먹이던 정우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우의 말대로 이한성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몸이라는 건 사실이었으니.
“혼자오면 걔가 또 무시할텐데…”
쉬는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어느샌가 참관수업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시계를 통해 확인하며, 수정이는 아까보다 한층 더 시무룩해진 얼굴로 말없이 수업종이 치기를 기다렸다.
수업종이 치기 까지는 눈깜짝할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쉬는시간으로 소란스러웠던 교실은 종이 울리기 무섭게 반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조용해졌고, 동시에 교무실에 가있던 양혜미 교사가 교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질서를 되찾았다.
양혜미가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생님이어서가 아니다. 평소 같았더라면 아이들은 양혜미가 교실로 돌아오던 말던 소란스럽게 떠들며 진정하는데 한 3분 정도가 더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된 2교시는 학부모 참관수업. 미리 사전에 통보받고 지난 1주일 동안 준비를 해왔던 1학년 2반의 아이들은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얌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모님 앞에서 멋지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자, 여러분. 좀 있으면 여러분들의 부모님들께서 교실에 들어오실거예요. 다들 오늘까지 써오라고 했던 편지는 써왔나요?”
참관수업을 시작하기 앞서, 양혜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번 참관수업에서 부모님들에게 직접 읽어주기 위해 만들라고 했던 편지. 1주일 전에 미리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오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욕만땅의 모습을 내비쳤다.
수정이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집에 가고싶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수정이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1주일 내내 아빠한테 읽어주는 것을 기대하며 길게 써내렸던 편지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손으로 꼼지락 거리던 수정이는 교실 바깥이 여러 발소리들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고, 시무룩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드르르륵-]교실의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열린 문 사이로 아이들의 것이 아닌 발소리가 난잡하게 들려오며 잠시 교실 안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자녀들을 보기 위해 학교로 찾아온 학부모들.
‘…아빤 분명 혼자왔쓸꺼야.’
혹시나 아빠가 이번에도 결혼을 안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 받으면 어떡할까. 그런 건 싫은데.
결혼을 했던 안 했던, 진짜든 가짜든 간에 이한성은 수정이에게 있어서 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빠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수정이를 괴롭혔다.
“수정아, 너희 아빠 오셨써!”
시선을 창밖으로 둔 채 침울해져 있던 수정이에게 옆자리의 하나가 귓속말과 함께 말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조용히 교실 뒤편을 바라보며 아빠를 찾았고, 동시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생각치도 못한 사람이 이한성의 곁에 서있었기 때문에.
“여니…?”
금발에 오피스룩을 한 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화연과,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양복을 입고 온 이한성. 다른 부모님들은 일하다가 반차를 내고 들린 모양인지 피곤해보이는 낌새가 가득한 반면에, 이한성과 화연은 무슨 화보라도 찍으러 온 듯 온갖 귀티를 내며 수정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니가 아빠랑 함께 왔다.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의욕하나 없이 침울해져 있던 수정이의 얼굴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밝은 기색을 되찾으며 기쁨으로 물들었다.
“헤헷.”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 후보도 자신을 보러왔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던 수정이는 이내 정우가 앉은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한방 먹였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째 수정이가 정우를 약올리기도 전에 정우는 이미 무척이나 침울해져 있는 표정이었다.
‘? 쟤가 왜 저러지?’
한방 크게 먹여주고 싶었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어서야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렇게 수정이는 불과 몇 분 전의 자신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있는 정우를 바라보고는 정우가 누군가를 애타게 찾기라도 하는 듯 교실 뒤편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뒤에 오신 부모님들께 인사 한번만 건네주세요~”
“네에~!!”
양혜미 교사의 목소리가 수업의 시작을 알리자 아이들은 저마다 뒤편에 계신 부모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냈고,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한 채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은 여러분들이 부모님들을 위해 쓴 편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볼거예요~ 먼저 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저요!! 저요오!!!”
양혜미 교사의 말에 편지를 부모님 앞에서 읽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수정이에게는 그러한 낌새가 전혀 없어보였다. 아빠 뿐만이 아니라 화연도 함께 자신을 보러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의욕이 과부하될 정도로 충전되었기 때문이었다.
“의, 의욕이 넘쳐서 다행이네요. 그러면 수정이 학생 부터 앞으로 나와서 편지를 읽어볼까요?”
“옛써!”
무슨 경례라도 할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앞으로 나간 수정이. 씩씩하다 못해 패기가 넘쳐 흐르는 딸아이의 모습을 교실 뒤편에서 지켜보던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눈치껏 다른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쟤가 나를 위해 편지를 썼단 말이지? 쟤 성격에 별로 안 어울리는데.”
“무슨 소리야. 수정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딱 어울리는걸?”
글쎄… 내가 알기로 쟨 숫자 이외의 것을 종이에다 쓰는 걸 되게 귀찮아 하는 것 같던데. 일기장 좀 써보라니까 낙서만 왕창 그리고 문자는 1도 안 적었던 전적이 있단 말이지.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뭘 몰라도 단단히 모른다는 듯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교실의 앞에 선 채로 편지를 읽기 위해 꺼낸 수정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내용일지 참 궁금하네.”
이상한 내용은 없기를 바래야겠지.
주변에 울려퍼지던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정적이 교실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편지를 낭독하기 위한 환경이 갖춰지자, 수정이는 그대로 편지를 들어올려…
위풍당당하게 반으로 찢어버렸다.
“나, 이수정은 이깟 글쪼가리에 얽메이지 않겠따!!”
“???”
예?
갑자기 난데없이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정이의 돌발행동에 그자리에 있던 모두는 경악어린 표정을 지으며 얼탱이가 나간 눈빛을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보내던 간에, 수정이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목을 가다듬고 편지가 아닌, 마음 속 깊은 곳의 본심을 그대로 말로 바꿔 전할 뿐이었다.
“저는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습니다!”
첫 문장부터 아주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
“우리 아빠는 속이 좁고, 짠돌이고, 솔직하지도 못하지만 저는 그런 아빠가 정말로 좋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칭찬이 아닌 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의 모두는 저 교실의 앞에 선 은발머리의 소녀가 그 누구보다도 제 아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머리가 나빠서 다섯 자릿 수 곱셈도 암산으로 못하지만, 저는 그런 아빠가 하~나도 부끄럽지 않씁니다!”
“….”
저기요 따님아. 너 지금 웬수가 아니라 아빠를 위한 편지를 읽고 있는 거 맞지?
“저는 할머니도 좋아합니다! 아빠랑은 다르게 할머니는 항상 저한테 친절하고 무엇이든지 들어줘서 아주 좋습니다!”
…굳이 “아빠랑은 다르게” 라는 말을 넣어야 했었니?
기운이 넘치는 수정이의 발표는 점점 더 밝아져가던 반면에, 이를 듣고 있는 이한성의 표정은 어째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저는 여니도 좋아합니다! 나중에 꼭 여니가 우리 엄마가 됐으면 조켔씁니다!”
“쟤, 쟤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거야…!”
갑자기 난데없이 떨어진 폭탄발언에 모두가 어머어머 거리며 화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누구도 [여니] 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저 은발머리의 소녀가 말하는 그 사람이 화연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 얼굴이 익어버리다 못해 아예 분화구가 되어버린 사람은 단 둘 뿐이었으니.
“아빠랑 여니, 그리고 할머니랑 세리도, 이러케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고 오래오래 사는 게 저의 꿈입니다.”
한순간 힘차게 울려퍼지던 수정이의 목소리가 유해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선언하듯이 외치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수정이는 마치 동화책을 읽듯이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음 속에 써내린 편지를 읽어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아빠가 계속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씁니다.”
“….”
…앞에 내 험담을 그렇게나 많이 해놓고는 그런 말을 해봤자 호응해주기가 영 그런데 말이지.
수정이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한성은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입가에 드러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잘했다, 우리딸.”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가 이한성의 미소를 타고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어린 수정이의 패기넘치는 발표에 모두가 압도되어있던 와중에, 그런 이한성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오직 바로 옆에 서있던 화연 뿐이었다.
“그러므로…”
“?”
뭐야, 다 끝난 거 아니었어?
딱 끝내기 좋을 타이밍인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정이의 발표에 이한성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우리 아빠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놈들에게는 전쟁을 선포하겠따!!”
“….”
…좋고 화목하게 끝낼 수 있는 발표를, 다짜고짜 전쟁 선언문으로 마침표를 찍은 수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