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4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46화(146/245)
146
훈훈했어야 할 학부모 참관수업이 뒤집어 엎어지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느닷없이 편지를 찢어버리고 즉석으로 마음 속 본심을 꺼낸 수정이를 시작으로, 반 아이들은 모두 다 수정이를 따라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전쟁이다!!”
“친구들, 나는 전쟁이 좋다!!”
“크크큭, 혼돈, 파괴, 망가!!”
…하하. 개판이네.
어쩌다가 참관수업이 이런 개판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한성은 그런 한탄과 함께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인 수정이를 바라보며 쉬는시간 종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
[딩동댕동-]익숙한 멜로디의 벨소리. 어느 초등학교나 다 거기서 거기처럼 들리는 벨소리가 울려퍼지며 참관수업의 끝을 알리자 폭주하던 아이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뒤편에서 벙 찐 채 서있던 각자의 부모님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정신없는 참관수업은 진짜 처음이네.”
이한성이 알고 있는 참관수업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좀 더 엄숙하고, 긴장되고, 딱딱한 분위기였지, 이런 식으로 혼돈의 카오스 같은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아빠빠!!”
정숙해야 할 참관수업을 혼란의 도가니로 바꿔버린 장본인이 냅다 달려와 아주 신난듯이 이한성을 불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채 마냥 신난다는 듯이 웃으며 달려오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저 허탈한 미소와 함께 이를 웃어 넘기기로 하며 수정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빠! 나 잘했찌!!”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
편지를 찢어버린 거랑 내 험담을 여러개 늘어놓은 것만 빼면 나름 발표를 잘 했으니까 말이야.
수정이의 물음에 이한성은 영 내키지는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이에게 칭찬아닌 칭찬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활짝 웃으며 방방 뛰기 시작했고, 이윽고 바로 이한성의 옆에 서있던 화연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똑같이 물었다.
“여니도 내가 잘했따고 생각하지?!”
“으, 으응. 그럼. 씩씩하고 당차게 잘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지적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저렇게 해맑은 미소로 물어보니 전혀 싫은 대답을 내뱉을 수가 없다. 화연은 그렇게 복잡미묘한 미소로 웃으며 이한성이 헝클여놓은 수정이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아, 맞따. 여니야 나 할 말이 있써.”
“? 뭔데?”
갑자기 할 말이 있다는 수정이의 말에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해보라는 듯이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에 수정이는 귀를 가까이 대보라는 듯이 손짓을 했고, 화연은 그런 수정이의 요구에 따르기로 하며 조용히 허리를 숙여 귀를 가져다 대었다.
“아빠랑은 언제 결혼할꺼야??”
“!?”
너무나도 선명하게 귓가에 울려퍼진 수정이의 귓속말. 갑자기 예고도 없이 어퍼컷을 얻어맞은 것만 같은 수정이의 기습공격에 화연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확 달아오른 얼굴로 수정이와 눈을 마주쳤다.
“? 왜 그래 갑자기?”
“아, 아니, 그게…”
영 이상한 반응에 수정이의 귓속말을 듣지 못한 이한성이 관심을 내비치자, 화연은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이한성과 도저히 마주치지 못하겠는 눈을 수정이에게로 돌렸다. 그러자 계획대로라는 듯이 웃으며 구경하고 있던 수정이의 모습이 그녀의 눈가에 들어왔고, 이에 화연은 속으로 배신당했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아지인 줄 알았건만, 여우였구나…’
벌써부터 여우의 자질이 보이는 수정이. 정말로 무서운 아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화연은 덥다는 듯이 불난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와, 덥네 오늘. 벌써 여름이 오려나봐.”
“…?”
아직 4월 말입니다만.
영 어설프게 말을 둘러대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이내 깜빡 잊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용건을 떠올린 그는 바로 수정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맞다 깜빡할 뻔 했네. 수정아, 그 네가 저번에 싸웠다던 정우라는 애는 어딨냐?”
“? 김정우? 걔는 갑자기 왜에?”
“어떻게 생긴 애인지 얼굴이나 한번 좀 보게.”
절대로 내 욕을 해서 쪼잔하게 갚아주려는게 아니다. 그냥 누가 내 욕을 했는지 얼굴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뿐.
“김정우 걔라면 저기 있는데.”
수정이가 교실의 맨 오른쪽 앞자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딱 봐도 사고 잘 치고 말을 지지리도 안들어먹게 생긴 남자아이 하나가 이한성의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이한성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아이들은 전부 다 부모님들에게 발표에 대해 자랑을 하며 칭찬을 받고 있던 반면에, 그 정우라는 아이의 곁에는 그 누구도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딱 봐도 부모님이 바빠서 못 왔나보네.”
부모님이 둘 다 학부모 참관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두가지다. 부모님이 맞벌이에다가 둘 다 바쁘거나, 아니면 자식은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인간 쓰레기거나.
물론 둘 다 일 수도 있고 말이야.
“쯧… 저래서는 한소리 하고 싶은 마음도 안드는데 말이지.”
그 정우라는 놈을 말빨로 철저하게 밟아놓을려고 준비했던 말들이 한두개가 아닌데, 저렇게 혼자 침울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럴 기분이 싹 가신다. 그렇게 애를 상대로 유치하게 복수를 하려 했던 이한성은 계획을 없던 것으로 하기로 하며 먼치에서 정우를 바라보았다.
“….”
잠깐 초등학생 시절의 일들이 이한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참관수업에 그 누구도 오지 않아 혼자 자리에 앉은 채 자는 척을 했던 본인의 모습과, 정우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보였던 이한성은 이내 떫은 표정과 함께 혀를 차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니가 정우냐?”
“…?”
이한성이 말을 걸어오자 정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누군데요?”
“나? 쟤 아빤데.”
뒤쪽에 서있던 수정이를 엄지로 가리키며 대답한 이한성. 눈앞의 어른이 다름아닌 수정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깨달은 정우는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다는 티를 팍팍 내며 흠칫거렸다.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하지만 이한성은 그런 정우의 반응을 모른 척 해주며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이에 정우는 우물쭈물거리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하러 갔는데요.”
“안 됐네. 다른 애들 부모님은 다 참석한 것 같은데.”
“….”
약올리는 것 같은 목소리. 마치 다른 애들은 다 부모님이랑 같이 있는데 너 혼자만 여기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웃기다고 말하는 듯한 이한성의 말에 정우는 표정을 찌푸리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상심해 하진 마라. 참관수업을 한번만 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는 많으니까.”
“…다음에도 안오면요?”
“그럼 그건 너희 부모님한테 문제가 있다는 소리겠지. 다음에도 안오면 깽판을 부려서라도 부모님한테 항의해봐.”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어른으로써 훈훈한 덕담이나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아이를 달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한성은 그런 낯부끄러운 짓을 대놓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성이 올곧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안되면?”
전혀 위로처럼 들리지는 않아도 나름대로의 위로였던 이한성의 말에 정우는 여전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되물었다.
[딱!]“악?!”
하지만 이에 되돌아온 것은 가벼운 딱밤. 말로 안하고 행동으로 기습적으로 대답한 이한성은 손에 쥐고 있던 사탕 하나를 정우에게 건네주며 까칠하게 말했다.
“어린애 주제에 부정적인 생각하지마. 부정탄다.”
“….”
사탕을 받은 정우는 딱밤을 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탕을 되돌려주었다.
“저 이런거 안 먹어요.”
“야, 너 홍삼캔디 무시하냐? 이것도 엄연히 사탕이거든?”
“삼촌이 그런 건 사탕 아니라고 했는데.”
홍삼캔디를 거절한 정우. 당연한 소리지만, 어른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홍삼캔디는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거의 없다시피한 사탕이었다. 그저 수정이만이 유별나게 홍삼캔디를 좋아하는 특이체질일 뿐.
‘하긴 뭐… 수정이는 입맛이 특이한 편이니까 이런 반응이 정상이겠지.’
홍삼캔디에다가 민트초코까지 좋아하는 수정이의 입맛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다른 아이들도 입맛이 다 비슷할 것이라고 착각할 뻔 했다. 그렇게 이한성은 자신의 오산을 인정하며 홍삼캔디를 돌려받았고, 용건은 다 봤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다시 수정이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비우려던 순간, 정우의 목소리가 떠나려던 이한성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뭐야, 왜.”
“그… 죄송…”
정우가 얼굴을 긁적이며 머쓱한 말투로 말끝을 늘어뜨렸다. 이전에 수정이 앞에서 이한성에 대해 안좋게 말한 것에 사과를 하고 싶었던 정우였지만, 워낙에 자존심이 센 편이라서 그런지 막상 사과를 하려니까 말이 잘 안 떨어지는 듯한 모양이었다.
“…죄송했씁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려온 정우의 사과. 주어가 하나도 붙지 않아 그냥 들으면 무엇이 죄송하다는지는 알 수가 없는 사과였지만, 이한성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주기로 하며 말없이 정우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패드립이나 치는 싹수가 노란 애인 줄 알았는데, 그정도는 아닌 것 같네.’
양혜미 교사의 말대로 자존심도 세고 승부욕도 넘치는 바람에 욱 하고 자신을 욕했을 뿐, 제대로 뭘 잘못했는지 알고 사과를 하는 걸 보니 나름 괜찮은 아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정우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정정하며 화연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수정이에게로 돌아왔다.
“응? 아빠! 쟤랑 무슨 얘기 한거야??”
“그냥. 사탕 취향에 대해 잠깐 얘기를 좀 나눴지.”
정우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그렇게나 궁금했는지 돌아오자마자 화연과 대화를 나누다가 말고 물어보는 수정이의 질문에 이한성은 반송받은 홍삼캔디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화연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거야 당연히 결-”
“여행!! 이번주 주말에 가는 여행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어!!”
수정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연이 황급히 수정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급하게 외쳤다. 누가 봐도 일부러 수정이의 말을 끊은 것이 훤히 보이는 화연의 태도에 이한성은 영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조용히 수정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뭐?”
결-이라고 말한 것 까지는 들었는데 그것 만으로는 도통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수정이에게 이어지려던 말을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순간 화연이 다시 한번 끼어들며 수정이에게 딱 봐도 수상한 눈빛을 보냈고, 이에 수정이는 본인 스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말하기 싫으면 됐고.”
딱 봐도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화연과 수정이의 태도에 이한성은 그 이상 캐물어보지 않기로 하며 한발 물러났다. 궁금증은 여전했지만, 분명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수정이 아버님.”
“?”
그렇게 이한성이 궁금증을 무시하며 물러나던 순간, 갑작스럽게 제3자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갑자기 말을 걸어온 제3자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1학년 2반의 담임 교사, 양혜미였다. 무언가 용건이라도 있는지 많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 중에서 굳이 자신들에게 직접 찾아와 말을 걸어온 그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렇게 간단히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받았고, 그러자 양혜미는 화연에게로 시선을 돌려 초면인 그녀에게도 같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수정이의 담임을 맡은 양혜미 라고 합니다.”
“아, 네. 만나서 반가워요. 전 화연이라고 해요.”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눈 두 여성들. 눈앞의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이 설마 고려시대 때 부터 쭉 살아왔던 600년산 엘프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양혜미는 아까 들었던 수정이의 발표를 떠올리며 그녀가 수정이의 엄마 후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하네… 아무리 봐도 이쪽이 수정이의 친모로 보이는데 말이지…’
하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 겉모습은 전혀 닮지 않은 이한성이 오히려 수정이의 친부이고, 반대로 겉모습은 닮은 화연이 법적으로도, 혈연적으로도 수정이와 아예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한성조차 수정이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화연이 수정이와 닮아보이는 이유가 같은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양혜미가 알고 있을리가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