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4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49화(14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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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알람 소리에, 죽은 듯이 눈을 감고있던 양예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또 아침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창 밖에서 방 안쪽으로 새어들어오는 햇살을 본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그랬다.
“….”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몸은 무거웠지만, 무거운 것 이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공기가 그녀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늦겠다. 빨리 준비해야지.”
피곤하다고 해서 다시 침대에 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양예은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고, 가볍게 샤워를 마친 채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었구나.”
거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다름이 아닌 그녀의 아버지, 양정학이었다. 40대 후반에 외모로 주름진 이마와 함께 TV로 아침뉴스를 시청하고 있던 그는 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그렇게 말을 걸었고, 이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아버지를 지나치고는 곧바로 아침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향했다.
“양예은, 너 이번에 보니까 성적이 또 떨어졌던데. 학원에 제대로 다니고 있는거 맞지?”
“….”
…이제 막 일어난 딸한테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아침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성적부터 물어보는 어머니, 최혜정의 말에 양예은은 안그래도 갑갑했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진 것을 느끼며 교복의 단추를 하나 풀었고,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양예은. 엄마가 말하는데 왜 대답이 없어?”
“….”
숨 쉬는 것만 해도 벅차서요.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던 양예은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간 아침부터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훤히 보였기 때문에.
“너 설마, 그깟 피아노 하나 때문에 아직도 그러는거니?”
“….”
[벌떡-]순간 전신의 피가 머리로 확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무시를 하려고 해도 사람을 계속해서 숨막히게 만드려드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양예은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침밥도 먹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인사를 남긴 채.
–––––––
“예은아, 혹시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니? 이번 시험에서 전교 6등으로 떨어졌던데.”
숨이 막힌다.
“음대 지망이라고…? 예은아, 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애가 굳이 음대를 갈 필요가 있을까?”
숨이 막힌 것만 같다.
“피아노 같은 건 그냥 취미로만 하고 일단은 인서울로 대학을…”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목을 죄이는 것만 같은 기분. 어떻게든 숨을 쉬어보려고, 잠깐이라도 좋으며 숨통을 트여 보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그럴 수록 점점 더 깊은 바닷속으로 떨어져 익사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전신을 감돈다.
공부, 성적, 대학, 그리고 다시 공부, 성적, 대학. 매일같이 사람들의 입에서 반복되는 단어들. 이제는 듣기만 해도 지겹고 속이 울렁거려지는 그런 단어들을 듣는 것도 지칠 뿐이다.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쳐 보았던 것이 언제였는가. 한달? 두달?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손가락이 점점 굳어가고 있다는 것.
“…연습이라도 꾸준히 해야 하는데.”
집에 있던 피아노를 부모님이 손수 망가뜨려 버린 이후로 연습은 커녕 피아노를 만져보는 것 조차 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비록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틈틈히 연습도 하고, 어렸을 때 부터 피아노를 가르쳐주신 교수님에 집에 몰래 들리면서 피아노를 배워왔지만 그것도 이제는 2달 전의 이야기.
학원을 빼먹고 교수님의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들켜버리는 바람에, 열받은 그녀의 부모님이 피아노를 아예 거들떠도 못보게 치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당연히 그 이후로 학원의 스케줄은 이전보다 더 살인적이게 늘어났고, 교수님과의 연락도 더는 닿지 않는 형편이 되었다. 지금의 양예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직 성적과 공부 뿐.
물론 그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하더라도 피아노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랬기에 죽어라 발버둥치며 다시 한번 피아노를 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가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노력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성적을 전교 10등 안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다니고 있던 학원들을 전부 끊어달라고 부모님을 어떻게든 설득시키기 위해서.
다행히도 양예은은 공부에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밤을 새면서 공부를 하며 겨우겨우 성적을 전교 2등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고,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다니고 있던 모든 학원들을 끊을 수 있었다.
그녀가 살인적인 스케줄로 짜여져 있었던 학원들을 끊은 이유는 어떻게든 시간을 얻기 위해서였다. 방과후에 학교가 끝나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생긴다면, 짬을 내서라도 알바를 뛰는 것이 가능했으니.
피아노를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학생인 그녀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그랬기에 양예은은 새로 생긴 빙수 카페에서 알바자리를 얻었고, 학원 다니던 시간을 대신하여 돈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학생인 것을 속이고 성인의 신분으로 이력서를 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일하는 것 보다는 성인으로 신분을 속이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하루라도 피아노를 빨리 살 수 있는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학원 없이 성적을 상위권으로 유지하면서도, 알바를 뛰어서 피아노를 사야 한다. 거기에다가 고등학생이니 학교도 가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 오히려 이전처럼 하루에 학원 네다섯 군데를 다니는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무모한 목표.
그러나 나이가 어려서 의욕 하나는 넘쳐났던 양예은은 그런 본인의 계획을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본인의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까지.
[뚝-뚝-]“….”
학교의 화장실에서 붉은 물방울이 세면대로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벌써 이걸로 오늘 하루 몇번째 인지도 모를 코피에, 양예은은 휴지를 한무더기로 뜯어 코를 막았고, 교복에 묻은 코피를 수돗물로 대충 닦아냈다.
“…앞으로 한달만 더 하면 돼.”
학생이다 보니 생활비 걱정은 안해도 되기에 앞으로 한달만 더 이렇게 스케줄을 유지하면서 버티면 다시 한번 피아노를 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양예은은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아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한달만 더…”
아까보다 한층 더 약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화장실 안에서 홀로 울려퍼졌다.
“한달…”
그리고 결국에 그녀의 목소리는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흐윽, 흑…”
한달이나 더 이렇게 버텨야한다. 지금 당장에도 지치고 힘들어서 쓰러질 것만 같은데, 앞으로 한달이나 더 이렇게 숨막히는 나날을 반복해야만 한다. 17살에 불과한 양예은은 그런 사실을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 이상으로 어떻게든 피아노를 치고 싶다. 그것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텨왔던 양예은은 이제와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으면서 까지 새어나오는 우는 소리를 틀어막았다. 눈물이 떨어지는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본인을 채찍질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면을 뒤집어 쓴 듯한 무감각한 얼굴을 이끌고 화장실을 나왔다.
시간은 이미 방과후였기 때문에 학교 안은 한산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늦기 전에 가게에 일하러 나가야 했던 양예은은 그대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 신발장으로 향했고, 실내화를 갈아신은 채 학교를 나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양예은이 일하는 빙수 카페는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비록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이긴 했으나, 30분 거리가 아닌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맞춰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고, 두 정류장을 지나친 후 안내방송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길을 따라 5분정도 더 걷다보면, 목적지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일… 해야지.”
양예은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가게 바로 앞에서 멈춰선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이미 피곤해질대로 피곤해진 몸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몸을 억지로 가게의 문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들어가자 마자 그녀를 반겨준 것은 다름이 아닌 빙수카페의 사장, 이한성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가볍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준 이한성은 오늘따라 유독 지쳐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잠시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았지만 양예은은 그런 사장의 시선을 신경쓸 기운조차 없었다.
사장의 신경쓰이는 시선을 무시한 채 지나친 양예은은 그대로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탈의실로 향해 가게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맑은 소리 하나가 그녀의 발걸음을 자동적으로 멈춰세우게 만들었다.
[띵-]“…!”
맑고 경쾌한 소리. 선율도 뭣도 아닌, 그냥 가게 안의 손님 중 한분이 아무 생각없이 손가락으로 누른 건반이 만들어낸 소리.
가게에서 결코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그 소리를 들은 양예은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천천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아주 익숙한 형태의 악기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였다.
“사장님, 저거…”
순간 자신이 헛것이라도 본 게 아닐까, 싶었던 양예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반응에도 별로 개의치 않아하며 대답했다.
“아 저거? 장식용으로 하나 샀어.”
“…한번 쳐 봐도 되요?”
“그러던가. 칠 수 있으면.”
“….”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한 이한성의 말투에, 양예은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피아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가게에 들어서 있던 건 그렇게 특별한 피아노도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 하나였을 뿐. 브랜드도 흔하디 흔한 브랜드의 피아노. 늘 고가의 그랜드 피아노로만 연습해왔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대단할 구석이 전혀 없어야 했을 피아노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평범하기 짝이 없을 업라이트 피아노 하나가, 그렇게나 특별하게 비춰졌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드드득-]피아노 의자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양예은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적당히 의자를 뒤로 빼놓고 앉은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88개의 검고 흰 건반들을 바라보았고, 그 위에다가 조용히 손을 얹어 움직였다.
[딩-]건반을 누르는 감각과, 그와 동시에 울려퍼지는 피아노 음. 눈앞에 있는 것이 진짜로 치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라는 사실을 확인한 양예은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맑은 선율과 화음들이 양예은의 손이 움직일 때 마다 가게 전체에 부드럽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치기 시작한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클래식.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하는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와… 저 애 대박이다.”
“음대 지망생인가?”
“근데 왜 울면서 치고 있는거야…?”
주위의 손님들이 양예은이 치기 시작한 피아노 소리에 반응하며 저마다 한마디 씩 수근거리며 그녀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버린 양예은은 막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나갔고, 가게의 사장인 이한성은 그런 양예은의 모습을 옅은 미소와 함께 조용히 바라보았다.
클래식 같은 것에는 당연히 문외한이었던 그는 지금 그녀가 치고 있는 곡이 어떤 곡인지도 알지 못했다. 클래식 뿐만이 아니라 피아노 그 자체에 문외한 이었으니 그녀의 피아노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도 알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이한성이라도, 한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잘 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