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화(15/245)
15
아기가 응급실 안에 들어간 지 어느덧 15분이 다 지나갔다.
“뭐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불안해서 떨리던 다리는 더 이상 떨림이 아니라 발작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불안하다. 불안해서 죽을 것 같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밤늦게 술 마시고 돌아왔을 때도 이정도로 불안한 적은 없었다.
“사람을 말려 죽이려는 건가?”
피가 아프리카 대륙의 가뭄현상을 겪고 있는 토지마냥 쩍쩍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러다가 인간 북어가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에, 이한성은 결국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이한성이 꺼내서 마시기 시작한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젖병 안에 들어있던 분유였다.
[좀 괜찮은 젖병: 500년 묵은 거목의 가지를 깎아 만든 젖병. 자연의 가호가 깃들어 있기에 정서불안의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정서불안의 해소. 안에 들어있는 게 분유라는 게 좀 그렇지만 지금 불안해서 죽을 지경인 이한성에게는 정말 필요한 효과다.
“엄마, 저 사람 이상해. 애들이 마시는 걸 마시고 있어.”
“쉿. 그런 거 보는 거 아냐. 모른 척 해.”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주변사람들은 다 커가지고는 젖병이나 쪽쪽 거리는 이한성을 그저 미친놈 바라보듯이 시선을 회피하며 모른 척 자리를 비울 뿐이었다.
‘이제야 좀 진정되는 것 같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쳐다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이한성은 젖병의 효과덕에 다리의 떨림이 멎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분, 2분, 그러다가 기어코 10분.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갔지만, 아기를 무슨 함흥으로 보냈는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안되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참다못한 이한성은 직접 의사에게 따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순간,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의사 한분이 나와 이한성에게 다가왔고, 이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막 들어왔던 아기의 보호자 분 맞으시죠?”
“네. 저, 애는…”
“지금은 잠들었습니다.”
아, 다행이다.
애가 지금 자고 있다는 의사의 대답에 이한성은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렇게 안도하는 이한성의 모습을 본 의사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장면이 이한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자의 가족에게 무언가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꼭 나오는 의사들 특유의 머뭇거리는 표정이나 말투를 본 이한성은 깨닫고야 말았다.
자신의 기우가 맞았다는 것을.
–––––
소독약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져 오는 공간. 이런저런 기계와 혈액팩들이 팔에 꽂힌 채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계선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
중환자실에 이렇게 발을 들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에 아무리 다쳐도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게 아니라면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병원비를 낼 형편도 되지 못했고, 부모라는 인간부터가 병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켰었기 때문에.
그랬기에 병원이라는 공간과 큰 연이 없었던 이한성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병원에 찾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이 다쳐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비춰지는 아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흡기를 비롯한 각종 링거액들을 맞으며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과 함께, 그저 옆에서 이어지는 의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당장 열이 안 내려서 해열제를 투여하긴 했지만… 원인이 파악되지 않아서 당분간은 계속 중환자실에서 상태를 지켜보며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인을 모른다고요…?”
“…네.”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이한성의 물음에 의사는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할 수 있는 검사들은 다 해봤지만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병이라고도 딱히 말할 수가 없는 상태에요.”
열은 계속 나지만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이한성에게는 그저 모순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만약…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어떻게되죠?”
“운이 좋을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회복되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증상이 완전히 없어질 때 까지 계속해서 해열제를 투여해야 할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한계가 찾아오겠죠.”
“….”
평생 동안 중환자실에서 해열제나 맞으면서 살아야 한다. 듣기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입을 꾹 닫은 채 그저 아기를 바라보는 이한성의 모습에, 의사는 그렇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머리가 멍하다. 마치 금속 배트로 얻어맞은 것처럼.
이한성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죽음을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는 게 험난하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본 적도 없었다.
SNS나 뉴스를 보면 교통사고니 살인사건이니 뭐니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한성 본인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타인들이 겪는 불행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지금까지 죽음이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사는 게 너무 바빴고, 그는 늘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왔기에.
이기적인 삶. 나만 아니면 된다는 지극히도 이기적인 사고방식. 남의 불행도, 남의 행운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배타적인 성격.
지금까지 이한성은 줄곧 자신을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자기자신만 괜찮다면 상관없다고 여기고도 남을 놈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숨이 턱 막히는 것일까.
친자식도 아니다. 부모도 누구인지 모르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산지 2주도 채 되지 않았고, 며칠 후면 아예 다시는 만날 이유가 없는 존재다.
빨리 내쫓고 싶어서 안달이지 않았던가. 눈에 거슬린다고 매일같이 불평이었지 않았던가.
이한성은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소란스러운 나날들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울기만을 반복하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부모에게 버려진 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와버린 존재. 고작 태어난지 1개월이 조금 지났고, 울거나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
자신에게는 별 것 아니었던 그런 존재가 막상 이렇게 갑자기 떠나간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참 웃기는 놈이네. 확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게 언젠데…”
이한성이 유리창에 반투명하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소를 내뱉었다.
부정하는 건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아무리 생각한다 한들, 이제는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자그마한 존재가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던 게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적막하기 그지없는 정적 보다는 나았다.
아침 점심을 가리지 않고 밥 달라고 징징대는 게 귀찮았지만, 그래도 아무도 곁에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것 보다는 나았다.
빨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떠나가라고 빌었던 건 아니었다.
“…니가 나한테 피해준 게 얼만데. 그거 다 갚기 전까지는 너 못 보내. 자장가든 분유는 다 줄 테니까 빨리 징징대기나 해.”
이한성이 유리창 너머의 아기를 향해 그렇게 일방적인 말을 걸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말은 아기에게 닿지 않았고, 아기 또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살리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지만, 조금만 더 곁에 두고 싶다.
이 아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던 그날 밤의 자신이 들으면 노발대발 했을 바람을, 이한성은 마음 속으로 바랬다.
그러자 그 순간, 살면서 한번도 믿지 않았던 신은 그의 소원에 귀를 기울였다.
[전설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봐왔던 퀘스트 창이었다.
[하프엘프의 운명: 인간과 엘프의 피가 섞인 하프엘프는 스스로의 방대한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1년도 채 살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기적을 일으켜 정해진 운명으로 부터 엘프의 마지막 혈육을 구하십시오.]“이건….”
마력폭주. 현대의학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아기의 태생이 불러온 병의 원인.
머리부터 발끝까지 현대에서 태어나 자란 현대인인 이한성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지만, 이미 마법이란 판타지적 요소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접해본 그는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의심병자의 눈].”
원인이 뭔지 알게 된 이한성은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아기에 관한 정보창을 열었다.
[이름: ???] [나이: 생후 48일] [Hp: 10/15] [Mp: 3526/3000]아기의 스탯창을 보자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Mp 관련 스탯이었다.
Mp의 총량이 3000. 하지만 현재 아기의 Mp 수치는 그걸 넘어선 3526. 아마 퀘스트가 말했던 마력폭주라는 건 이걸 뜻하는 것일 테지.
요컨데 힘이 너무 쓸데없이 넘쳐나서 큰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간략하고도 확실하게 상황을 파악한 이한성은 곰곰히 해결법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마력폭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지닌 마나의 수치를 줄이거나, 아니면 마나의 상한치를 높여야 한다.
‘문제는 방법인데…’
원리야 간단하지만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한성은 마나 같은 게 픽션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대 사회 출신이고, 당연하게도 마나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이 Mp 라는 게 게임이랑 똑같은 거라면 스킬 같은걸 마구잡이로 난사하면 될 텐데…’
얼핏 생각하면 꽤 그럴싸한 해결법이지만 생후 1개월 반 밖에 안 된 애한테 마법 좀 펑펑 써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령 말한다고 해도 알아들을 리가 없고.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상점 메뉴에 그게 있었지…?”
10만 골드짜리 아이템. 한화로 100만원짜리 물건. 하이포션인지 뭔지 모를 물건과 맞먹는 치유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있어보이던 성능.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이한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떠올리기 무섭게, 이한성은 바로 상점 메뉴를 열어 확인했다.
[세계수의 이슬: 세계를 연결하는 나무, 위드그라실의 잎파리가 머금은 마력의 이슬. 비록 나무에 맺힌 이슬에 불과하지만 세계수가 지닌 영생의 힘을 일부분 머금었기에 하이포션에 버금가는 회복 효과를 지니고 있다.]“이거라면 혹시…”
확신할 수는 없다. 세계수가 뭔지도, 하이포션이 실제로 어떤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확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한성이 떠올릴 수 있는 해결법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소지 골드: 106500 골드]모아둔 골드를 거의 다 쓰면 살 수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이한성은 골드를 전부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고 남겨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모 아니면 도인 심정으로 아이템을 구매했다.
[세계수의 이슬이 구매되었습니다.] [소지 골드: 6500 골드]100만원이 일시불로 빠졌다는 사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이한성은 구매버튼을 누르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주지 않았다.
[아이템이 실체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