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1화(151/245)
151
“아 거 귀찮은 성격이네 진짜.”
적막하던 차 안에서, 이한성의 귀찮음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야, 절박하다고 해서 너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뭐든 다 되는 줄 알아?”
보통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애가 눈앞에 있으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달래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한성은 주저앉을 것만 같이 위태로운 여학생을 눈앞에 둔 채 위로는 커녕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 과는 많이 다른 이한성의 반응에 양예은은 바보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라고 해서 위로의 말이나 들으려고 눈물을 보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만큼 절박했기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던 것 뿐.
“마, 막무가내가 아니라 다 계획이 있어서-”
“계획? 뭐, 돈 좀 벌어서 피아노 사는거? 그런게 계획이냐? 그래 뭐, 니가 그렇게 한달정도 더 죽을 듯이 일을 해서 피아노를 산다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부모님도 아직 설득시키지 못한 주제에 피아노를 사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그 큰 피아노를 집에 몰래 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
당장 피아노에만 눈이 멀어서 그 다음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양예은은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한성의 생각대로 부모님을 설득시키거나 가출이라도 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
“내 그럴 줄 알았다. 생각도 안하고 있었지?”
“…그런 것 쯤은 그때가서 생각하면-”
“그러면 모처럼 새로 산 피아노가 다시 한번 박살나겠지.”
“….”
당장 떠오르지 않는 답을 뒤로 미룬다고 해봤자 그때가 되서도 답이 나오지 않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양예은은 입을 꾹 다물으며 할 말을 전부 잃어버렸다.
“알겠으면 괜히 무리하면서 일하지 말고 당분간은 가게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이나 해. 일요일 빼고는 가게 여니까.”
“…네?”
너무 그렇게 풀 죽은 모습 하지 말라는 듯한 이한성의 말투에 양예은은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를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방금 주 2회만 일하라고…”
“일 안하는 날에도 오지 말라고는 안했다.”
언제든지 가게에 피아노 치러 와도 된다. 돌려서 말했을 뿐, 사실상 그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받아 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늘 주변사람이 걱정하는 건 자신의 성적과 진로 뿐. 진정으로 자신의 꿈에 대한 응원 같은 것 따윈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양예은에게 있어서 타인인 누군가로 부터 이렇게 격려나 다름없는 말을 듣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늘 레슨을 해주셨던 교수님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받는 타인의 호의. 늘 공부와 성적만을 중요시 하고 의대에 가는 것 만을 고집하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존중해주는 태도.
비록 말투는 까칠었고, 귀찮다는 불평이 섞여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이한성의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런 그의 진심이 닿았기 때문이었을까, 한번이라도 이런식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꿈에 대한 격려를 받고 싶었던 양예은은 눈가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야야야, 너 우냐…?”
“…훌쩍-”
“아니… 왜 갑자기 울고 난리야??”
“훌쩍-저, 저도 울고 싶어서 우는 거 아니거든요…!”
왜 우냐는 이한성의 물음에 양예은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렇게 대꾸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은 영 그칠 것 같은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이고… 가지가지하네 진짜. 거기 휴지 있으니까 그걸로 닦아.”
“에이씨… 왜 갑자기 눈물이 나오고 x랄이야 진짜아…”
고등학생이나 되서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는 건 상상 이상으로 쪽팔리는 일이다. 그렇게 양예은은 흑역사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한 자신의 추태에 욕을 하며 휴지를 뭉텅이로 뜯어내 코를 풀었고, 이한성은 그런 양예은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채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초록불이었던 신호는 어느새인가 다시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신호를 놓쳐버린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하지 않았다.
당장은 빨간불이라 해도 언젠가는 초록불이 들어오게 되기 마련이었기에.
–––––––—
이런저런 소동이 지나가고 사고 없이 무사히 양예은의 집앞까지 차를 모는데 성공한 이한성은 딱 봐도 고급진 아파트의 주차장에다 차를 멈춰세웠다.
[덜컥-]차가 정차하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양예은은 곧비로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이한성은 얼른 가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그녀를 재촉했다.
“딴데로 새지 말고 빨리 들어가.”
“사장님이야 말로 교통사고 내지 말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세요.”
집 앞까지 왔는데 딴데로 샐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항변하는 듯한 말투와 함께 양예은은 이한성의 말에 그리 대꾸하며 차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
“아… 맞다. 사장님, 그럼 혹시 일요일에도 피아노치러 가도 되요?”
“안돼. 일요일에는 가게 문 안 여는거 너도 알잖아.”
“…일요일이 제일 한가한데.”
안된다고 단칼에 거절하는 이한성의 대답에 양예은은 아쉽다는 듯이 그렇게 홀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쯧, 그래 알겠으니까 이거 받아.”
“? 으아?!”
아니, 건네주었다기 보다는 던져주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한성이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던져주자 양예은은 별로 좋지 못한 반사신경과 함께 서투르게 그 무언가를 받아냈고,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성이 준 물건을 만지작 거렸다.
“…열쇠?”
“가게 열쇠야. 정 일요일에도 피아노 치고 싶으면 그걸로 알아서 문 열고 들어가.”
“네?!”
가게 사장이 한낱 알바생한테 가게 열쇠를 이렇게 덜컥 건네줘도 되는 걸까? 그것도 학생한테?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이한성의 행동에 양예은은 경악 내지 당황스러워 하며 얼떨결에 건네받은 열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아니… 이러면 조금 부담스러운데요.”
“정 부담스럽다면 돌려주던가.”
“….”
열쇠를 손에 움켜쥔 채 고민에 빠져버린 양예은. 열쇠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건 맞으나, 그렇다고 이 열쇠가 없으면 가장 한가로운 일요일에 피아노를 만져볼 수 조차 없는 본인의 신세에 한참동안이나 고민하던 그녀는 이윽고 결정을 내렸는지 쥐고 있던 열쇠를 본인의 교복 주머니에다가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야지. 내가 너 하나 때문에 해준게 얼만데. 그러니까 괜히 나 없는 사이에 가게에서 사고치거나 하지 마라.”
“…그렇게 걱정되시면 일요일에도 직접 가게에 나오셔서 절 직접 감시하시면 될텐데요?”
“굳이? 꿀 같은 일요일에 굳이 귀찮게 감시하긴 싫다 이것아. 그리고 내가 이번주 일요일에는 여행을 하고 있을 예정이라서 그럴 시간도 없어.”
이번주 토요일에 전주로 화연이랑 같이 1박 2일 짜리 여행을 하러 가기로 했던 약속이 있다. 애초에 바로 엊그제 운전면허를 딴 것도 순전히 이번주 토요일에 있을 여행을 위해서였고. 그러니까 내가 굳이 쟤 하나 감시하려고 주말에 쓸 시간 따윈 없다 이거지.
그렇게 이한성은 곧 있으면 가게 될 여행에 잔뜩 기대를 머금은 채 양예은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이한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자친구랑 1박 2일요? 셋째라도 만드시게요?”
“…야, 너 빨랑 들어가.”
남녀끼리 1박 2일 여행을 간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알 걸 다 아는 고등학생인 양예은이 그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이한성의 셋째를 들먹이며 놀리자, 이한성은 그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네네. 사장님도 빨리 돌아가세요. 다른 차들 길막하지 마시고.”
“….”
한마디도 안지려고 하는 양예은의 성격에 이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평상시에는 영 말을 안하는 편이길래 그녀가 이런 성격인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어서 차 문이나 닫고 들어가라는 듯이 그녀에게 손짓했고, 그러자 이에 양예은은 피식 웃으며 문을 닫고 아파트에 들어가버렸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다시 차 안에 홀로 남게 된 이한성. 다 큰 어른이나 놀려대던 여학생 한명이 사라지니 차 안이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를 몰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근데 셋째 이름은 뭐로 하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셋째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며.
––––––––-
“칫솔 챙겼어?”
“네.”
“치약은?”
“가서 호텔에 있는거 쓰면 돼요.”
“옷은?”
“…하룻밤만 자고 올건데 달리 챙길 옷이 뭐 있어요?”
“그럼 팬티는?”
“….”
금요일 밤. 여행을 가기 하루 전날 밤에 미리 챙겨둘 것을 가방에다가 전부 챙겨둔 이한성은 계속되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제는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내가 지금 21살인데 아들한테 팬티 챙겼냐고 물어보는게 대체 뭐냐고. 그리고 뭐 이렇게 걱정하시는게 많아? 해외 여행가는 것도 아니고 차타고 전주에 하룻밤만 자고 오는 것 뿐인데.
저기 어디 유럽에 여행을 하러 간다고 해도 이보다도 걱정을 많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걱정 투성이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고, 팬티 두어장을 추가로 꺼내다가 가방에다가 쑤셔넣었다.
“이제 됐죠?”
“에휴… 그래, 뭐 이정도면 그럭저럭 충분하겠구나.”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만.
1박 2일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부피가 커진 여행 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어머니의 말씀에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속마음을 읽을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니셨던 이한성의 어머니는 그저 거실에서 놀고 있던 수정이와 세리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이어가실 뿐이었다.
“그나저나 의외로구나? 난 분명 수정이랑 세리가 너 따라가겠다고 난리법썩을 피울 줄 알았는데.”
“아, 연이랑 같이 여행간다고 말하니까 알아서 내빼더라고요.”
하여간에 꼬맹이들 주제에 쓸데없는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다니까. 보나마나 엄마 후보를 정식 엄마로 만들려고 저러는거겠지.
…뭐, 물론 차가 2인승이다 보니까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어도 같이 가는 건 무리였겠지만 말이야.
고급 스포츠카의 단점은 비싸다는 점 뿐만이 아니다. 비싸면서 연비는 최악이고, 사람 탈 자리도 뒤지도록 좁은 탈것이 바로 스포츠카이니. 아마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있어선 스포츠카 만큼 비효율의 극치가 따로 없을 정도로 스포츠카는 돈지랄의 끝판왕이니.
‘나중에 SUV 같은걸로 차 하나 더 사야겠다.’
나중에 가족 모두가 여행에 갈 수 있도록 탈자리가 많은 차도 한대 필요할 것이다. 보통 한 가정에 차를 2대 두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돈 하나 만큼은 달리 쓸 곳이 없었던 이한성에게 있어선 차를 한대 더 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애들을 둘이나 돌보시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안될 거 뭐 있어. 평소에도 잘만 돌봐왔는데.”
아들내미의 걱정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대답하셨다.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가서 화연이랑 잘 놀고 와. 한성이 너도 너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니.”
“…글쎄요, 솔직히 저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애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서요.”
물론 애들이 사고치는 것만 생각하면 피곤하고 귀찮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게 마냥 나쁜일인 것 만도 아니다. 그런 기억이나 경험들이 나중에 돌이켜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세상에서 그런 말을 하는 애 아빠는 아마 너 뿐일거다.”
“제가 원래 좀 특이한 편이잖아요.”
어머니의 말을 그렇게 받아치며, 이한성은 거실에서 운동하고 있는 한스를 가지고 놀려드는 수정이와 세리를 옅은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아, 그래. 깜빡잊고 물어보는 걸 걸 까먹을 뻔했구나.”
“? 뭘요?”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르며 이한성과 그의 어머니가 딸과 손녀딸들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던 그 순간, 어머니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셨다.
“둘이 가서 셋이서 돌아올 계획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
…손녀딸 둘 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시는 이한성의 어머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