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3화(153/245)
153
한옥마을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우리나라 옛 전통의 기왓집과 한복일 것이다.
인구 밀도는 높지만 그에 비해 땅은 좁아 터진 특성 때문에 오직 고층 아파트만이 쭉 들어선 나라 특성상, 옛날 풍의 전통 가옥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한옥마을 뿐. 그중에서도 이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장소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을 찾을 경우에는, 가끔씩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도 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케바케지만.
“…사람들 한번 징글징글하게도 많네.”
“그러게… 아무리 주말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데…”
아까 꽉찬 주차장에서 30분 동안이나 주차할 자리를 못찾았을 때 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마을 거리에 개미처럼 바글거리는 인파들을 보고있자니 없던 대인공포증도 생길 기세다. 그렇게 이한성은 미어 터질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를 화연과 함께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거야?”
“가면 알아.”
“…?”
화연의 물음에 핸드폰으로 길을 따라가느라 바빴던 이한성은 그렇게 짧막히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그냥 말해주면 될 것을 그런 식으로 대답하기를 피하는 이한성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일단 잠자코 이한성의 뒤를 따랐다.
“여긴…”
인파들 사이를 어찌저찌 헤치고 지나가자 다양한 색상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화연의 눈에 들어왔다. 현대 사람들이 익숙하게 입는 티셔츠나 바지가 아닌, 전통적인 색상의 한복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은 그녀는 살짝 그리운 기색이 가득한 표정과 함께 말끝을 늘어뜨리며 진열되어 있던 한복들을 바라보았다.
“한옥마을에 왔는데 기왕 온거, 한복까지 입고 돌아댕기면 좋을 것 같아서.”
다양한 한복들이 진열된 한복 대여점에 눈을 사로잡힌 화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쯤 농담조로 이한성의 말을 받아쳤다.
“내가 한복을 입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긴지 잘 알면서 굳이 한복을 입자고 하는거야?”
“…왜, 싫어?”
“아니, 좋아.”
“그것 참 다행이네. 미리 예약해둬서 싫다고 말해도 거부권은 없거든.”
사전에 단돈 2만원으로 예약해뒀던 이한성은 그렇게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며 화연과 함께 대여점 안에 발을 들였다.
‘솔직히 한복 입은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단 말이야. 딱 봐도 외모가 상타치니까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한성이 굳이 한복 대여점을 미리 사전에 얘기도 안하고 예약했던 이유는 딱 두가지 때문이었다. 화연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리고 화연이 한복을 입은 모습을 어떻게든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여친이 한복을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야 연애를 하다 보면 한번쯤 들 법도 한 생각이었지만, 이한성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남들보다 조금 달랐다. 그의 경우에는 “보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눈에 새겨야 한다” 같은 한복 페티쉬에 더 가까운 편이었기에.
‘왜, 다들 한번쯤은 여친의 새로운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 아니야. 남들이 여친의 수영복 차림을 보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난 그저 여친의 한복 차림이 보고 싶을 뿐이라고.’
…물론 수영복 차림도 꼭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 말이지.
다음번 여행은 하와이로 계획해야겠다. 장황하고도 거창한 변명 끝에 대여점 안에 발을 들이며 속으로 그렇게 다짐해보는 이한성이었다.
––––––––-
“…생각했던 것 보다 거추장스럽구만.”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복을 입어본 이한성의 소감은 그랬다.
어렸을 적 명절마다 다들 한번 씩은 입어봤을 한복이지만 이한성의 경우에는 워낙에 집안 환경이 열악했기에 한복을 입을 기회 따윈 그에게 단 한번도 주어진 적이 없었다. 애초에 명절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었던 그가 한복을 입을 이유 따윈 없었고, 입고 싶다고 해도 그 비싼 한복을 사서 입을 돈 따윈 그에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내 팔자가 피긴 폈구나. 이렇게 전주에 놀러와서 몇 만원 들이면서 까지 한복도 다 입어보고.
전형적인 사극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선비 스타일의 한복. 그런 본인의 옷차림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며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본 이한성은 본인도 나름대로 한복이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속으로 자찬을 조금 해보며 조금 삐뚫어진 채 머리위에 올려져 있던 갓을 고쳐썼다.
“그나저나 오래도 걸리네… 아직도 멀었나?”
원래 한복도 남성 쪽이 더 갈아입기가 쉬운 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금방 갈아입고 나온 본인과는 달리 아직도 탈의실 안쪽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화연을 기다리다 슬슬 지칠 것만 같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분 째. 남자라면 샤워도 끝내고 옷도 다 갈아입고 아침식사 까지 다 끝내고도 남았을 시간. 원래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이런 면에서 시간을 더 오래 쓴다는 사실 쯤이야 잘 알고 있는 이한성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기만 하자니 지루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스윽-]여자 탈의실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며 지쳐가던 이한성의 시선을 끌었다. 대여점 안에는 다른 손님들도 있었지만 최근 10분 동안 탈의실에 들어갔던 사람은 오직 이한성 본인과 화연 뿐이었기에 그는 굳이 고개를 돌아보지 않고도 이제 막 탈의실에서 나온 사람이 화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뭐 이렇게 오래 걸렸-”
-냐고 살짝 항의를 하려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런 그의 말은 도중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거의 백색으로 보이는 살구색 저고리에 남색 치맛자락. 화려한 패턴의 수가 놓여져 있는 옷감이 눈에 띄는 수수한 것 처럼 보이면서도 아름답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복장. 거기에다 더불어 지극히도 동양적인 복장과는 반대되는 흰 피부와 금발벽안이 어떻게 저리 어울릴 수가 있을까.
“아하하… 좀 별로 안어울리지…? 나도 이런 고급진 한복은 처음이라…”
[찰칵-]그저 예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이한성은 무지하게 한복이 잘 어울리는 주제에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화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채 그저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다짜고짜 그녀의 모습을 대놓고 찍기 시작했다.
“자, 잠깐-뭐하는거야??”
“뭐하기는 사진 찍고 있습니다만.”
“사진을 찍을거면 미리 얘기라도 하고-”
“어어, 그래. 지금 그 포즈 그대로 유지해봐.”
당황해 하는 화연의 항의는 전혀 듣지 않은 채 계속해서 프로 사진작가 마냥 핸드폰으로 그녀의 모습을 화면에 담는 이한성. 완전 막무가내인 그의 행동에 말려들어버린 화연은 어정쩡하게 그의 말에 따르며 저도 모르게 자세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이내 우물쭈물 거리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저기, 그… 사진 찍기 전에 감상 정도는 말해줘야 되는거 아니야?”
“어. 예뻐.”
“…좀 더 성의있게 말해주는 건 어때?”
“글쎄요. 예쁘다는 말 외에는 달리 딱 떠오르는 단어가 없습니다만. 완전 예뻐-라고 말하면 성의가 좀 더 느껴질려나?”
“…아니, 그냥 예쁘다는 말로 만족할게.”
칭찬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예쁘다고만 하는게 아니라 진짜 예뻐서 예쁘다는 말 밖에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화연은 그냥 넘어가주기로 하며 미묘한 웃음과 함께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침 사진을 다 찍어 갤러리에 고이 저장을 끝낸 이한성은 그대로 화연과 눈을 마주쳤고, 이내 옷 말고도 하나 더 눈에 띄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머리도 땋았네?”
“아, 이거? 뭐… 오랜만에 한복을 입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땋았어.”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혼자서 능숙하게 땋은 뒷머리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한복을 마지막으로 입은지도 벌써 70년이 다 되어가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몸에 배여 있을 정도로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
“…왜 그렇게 쳐다 봐?”
갑자기 말없이 자신을 직시하기 시작한 이한성의 시선에 화연은 이번엔 또 뭐냐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물었다.
“…한번 나으리-해봐.”
그녀의 물음에 되돌아온 것은 기가 막힐 뿐인 뜬금없는 이한성의 요구였다. 선비 옷을 입었다고 여친한테 나으리라고 불리고 싶었던 건지, 한치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요구해온 이한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도 나으리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하고 있었고, 이에 화연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마치 사극의 한 장면처럼 고풍적인 인사와 함께 이한성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만족하셨습니까, 나으리.”
“…!!”
좋다…!! 이거 아주 좋아…!! 이런 젠장,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남겨야 했었는데.
몬가몬가다. 나으리 라고 불린 것 만으로도 갑자기 왠 사극 플레이에 눈을 뜰 뻔한 이한성은 본인의 요구로 시작된 상황을 가지고 상황극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사극 드라마에서 대충 보았던 선비들의 자세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사까지 흉내내기에는 항마력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말투는 평소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와, 그냥 오늘 하루동안 계속 나으리 라고 부르는게 어때?”
“…장난하니?”
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었을 나으리 소리를 괜히 나섰다가 퇴짜를 맞은 이한성은 아쉬운 기색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모습을 본 화연은 이내 피식 웃으며 방금 전에 이한성이 했던 그대로 본인의 요구를 말했다.
“너도 한번 아씨-해봐.”
“아C?”
“아니;; 그 아C가 아니라 아가씨 할때 아씨 말이야.”
“….”
방금 전의 복수라는 듯이 이한성에게 그런 요구를 건넨 화연. 그런 그녀의 요구에 이한성은 잠시 당했다는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마님, 속이 참 좁으십니다.”
“….”
아씨라고 부르랬더니 다짜고짜 왠 아줌마의 이미지가 가득한 마님이라는 단어를 꺼낸 이한성. 야심찬 반격을 도로 반격당해 버린 화연은 살짝 열 받았다는 듯한 묵묵한 표정과 함께 그를 바라보았고, 이내 그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난 제대로 나으리 라고 불러줬잖아. 이번엔 네 차례니까 제대로 해.”
“…굳이?”
“굳이라니… 너 진짜 이러기야?”
“알았어 알았어. 제대로 불러주면 되잖아.”
확실히 듣고보니 조금 불공평하긴 하다고 생각한 이한성은 하는 수 없다며 삐지려고 하던 화연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의 요구를 제대로 이행했다.
“…화연 아씨.”
“….”
목 좀 가다듬고 내뱉은 소리인데 쓸데없이 미성이 묻어나버렸다. 진지하게 말하기에는 쪽팔려서 일부러 대충 내뱉으려고 했는데, 생각 외로 잘 나와버린 자신의 목소리에 화연도, 그리고 이한성 본인도 민망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x벌, 놀고 자빠졌네.”
친절하기 그지 없던 직원이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아무도 들리지 않게 그런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리고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로 저주라도 퍼부을 시선으로 직원의 혼잣말에 동의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전혀 깨닫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