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4화(15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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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빌려입은 채 한옥마을의 거리를 조용히 걷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10분. 마지막으로 전주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버리다 싶이 한 주변의 모습에 화연은 감탄을 내뱉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우와… 사방이 기와집이네…”
“그야 한옥마을이니까 당연하지.”
“글쎄… 한옥이라고 하면 기와집 보다는 초갓집이 더 어울리지 않아? 기와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양반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는걸.”
“…그야 초가집은 유지보수 하기가 힘드니까 그렇겠지…?”
“아, 그런가. 하긴, 비만 조금 와도 줄줄 새는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겠다.”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직접 겪어보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충분히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와집에 살아본 적 없었어?”
기와집이 이렇게 줄줄히 거리에 들어서 있는게 영 익숙하지가 않은 듯한 화연의 반응에 이한성이 의외라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무척이나 애매하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음… 살아보지 않았던 건 아닌데…”
? 뭔 대답이 그렇게 어중간해?? 기와집에서 살았으면 살았던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이도저도 아닌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끔가다가 돈 많으신 양반 분들한테 이것저것 도와주는 답례로 방을 얻어쓴 적은 있었어. 뭐, 그래봤자 하루 이상을 묶어본 적은 없었지만.”
“도와주다니? 뭘?”
“그냥 인육에 맛을 들린 호랑이 좀 잡고, 높으신 집안의 자제들 병을 고쳐주고… 아, 가뭄에 비도 한번 내리게 해주고.”
“….”
님이 무슨 여호와세요?? 아주그냥 지난 600년 동안 전국 팔도를 돌아댕기면서 지져스 마냥 기적을 일으키고 다닌 걸 되게 별 것 아닌 것 처럼 얘기하네… 아니지, 조선에서 그랬으니까 예수보다는 선녀라고 해야 하나??
화연이 그동안 평범하게 살아오지 않았으리라는 사실 쯤이야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이한성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본인으로 부터 얘기를 들어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창한 삶을 살아온 모양이었다.
“…용케도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살아왔네.”
만약에 그녀가 조선이 아니라 저기 고대 그리스 같은 곳에 떨어졌더라면 여신으로 추앙받아왔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그동안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살아온 것만 해도 참 대단하다며 그렇게 감탄을 내뱉었다.
“글쎄, 한번 제대로 찾아보면 기록되어 있을 법도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살면서 정체를 남한테 의도치 않게 들켰던 적이 딱 2번 있었거든.”
“? 2번 밖에 안들켰었다고??”
딱 봐도 그렇게 조용히 살아온 것 같지도 않은데 2번 밖에 들키지 않았다니, 기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놀란 눈치와 함께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야 뭐… 나도 나름대로 조심해서 살아왔으니까 들킬 일이 왠만하면 없었는걸.”
“…조심해서 살아왔다는 사람이 가뭄에 비도 내리게 해줬다?”
“그러니까 나름대로라고 했잖아… 나라고 해서 항상 그렇게 전지전능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던 건 아니었단 말이야.”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정체를 들키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정체를 들킬 것은 각오하고 나서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연은 아슬아슬하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정체를 숨겨 넘기며 살아올 수 있었다.
앞서 그녀가 말했듯이 단 두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래서? 그 2번 들켰던 경우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들켰던건데?”
“어… 그건 말하기가 좀 그런데…”
“? 왜?”
뭐하다가 들켰길래 말하기가 좀 그렇다는거야?? 설마 뭐, 선녀와 나무꾼에서의 선녀 처럼 목욕하다가 나무꾼에게 들키기라도 했던 거야??
순간 동화가 아닌 19금 딱지를 붙여야만 할 것 같은 성인용 선녀와 나무꾼의 이미지가 이한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음란마귀가 가득한 그의 상상과는 다르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예상했던 것 과는 전혀 스케일이 다른 문제였다.
“왕한테 들켰었다고 하면… 믿을거야?”
“…예???”
왕???
순간 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위인께서 이한성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갑자기 왠 왕이라는 존재가 튀어나오자 이한성은 갑작스런 전개에 머리가 전혀 따라가고 있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왕이라면 그… 맨날 밑사람들한테 통촉 소리 듣는 그거…??”
“…응.”
“….”
아니 이게 무슨 갑자기 사극 퓨전 판타지 같은 소리야. 왕한테 들켜?? 아니, 무슨 소싯적에 두루미 흐린 달빛이라도 찍으셨대???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길래 왕한테 들켰었다는거야???
“잠깐만, 왕한테 들켰었다는 건…”
…한국사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거잖아…?
딱 태정태세문단세 까지 밖에 외우지 못한 이한성은 혹시나 그 중에 자신이 아는 왕일까, 싶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한국사 지식을 억지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태종 이방원.”
“….”
와, 내가 아는 사람이네. 하하. 자그니마치 만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신 분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잖아.
“아니… 대체 뭐하다가 들킨거야??”
뭐, 내시로 남장해서 궁에 잠입했다가 이상한 로맨스 같은 분위기로 왕이랑 엮였던 건 아닐테고.
“…술 마시고 텔레포트하다가.”
“….”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이가 없는 이유였다. 무슨 거창한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다른 것도 아니고 음주 운전… 이 아니라 음주 텔레포트를 하다가 들킨거였다니, 그것도 한 나라의 왕한테. 대체 얼마나 꽐라가 되서 텔레포트를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건지 궁금해 죽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들킨 다음에는 어떻게 됐었는데?”
“뭐, 뭐어… 그것까지는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잘…”
차마 만취한 상태였던지라 왕 앞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취담에다가 인생 한탄까지 늘어놓았었다는 사실까지는 밝힐 수가 없었던 화연은 술을 핑계로 그렇게 둘러대며 말을 얼버무렸다.
“왕한테 들켜 놓고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은게 기적이네.”
“아하하… 그, 그러게…”
‘그날 하루종일 왕하고 술친구를 하게 되버렸었다고는 말 못해…’
하필 화연이 실수로 태종 이방원의 앞에다 음주 텔레포트를 해버렸던 날이 역사속에도 기록되어 있는, 그가 자식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을 시기였다. 술 마시고 텔레포트를 했었던 그녀도 만취인 상태였고, 자식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만땅이었던 태종 또한 만취였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날 둘은 밤새도록 서로에게 하소연만을 늘어놓았었던 것이었다.
서로 자식들이 어쩌니 저쩌니, 떠돌이 신세가 외롭다니 저쩌니 하면서.
숙취로 인해 다음날 아침에 깬 태종은 그날밤 있었던 일을 술김에 본 헛것으로 치부했었던 덕에 역사 속에 그날의 일이 기록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일 테리라. 그렇게 화연은 그날 저질렀던 본인의 대형사고를 영원히 비밀로 묻기로 하며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이, 이야~ 그나저나 주변에 맛있는 냄새가 장난 아니다아~ 그, 그치?”
“…뭐, 확실히 주변에 먹거리가 많기는 하네.”
누가 봐도 말을 돌리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굳이 이 이상 그녀의 흑역사를 파헤치지 않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의 화제전환에 넘어가주려 하기 무섭게,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문득 떠오르며 그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근데 잠깐만. 가만 있어봐… 들킨 적이 2번이라는 말은 음주 텔레포트 외에도 한번 더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리잖아?
당장 첫번째로 들킨 건만 해도 다른 누구가 아니라 왕한테 들켰는데 두번째는 얼마나 더 대단한 위인한테 들켰던 것일까. 이한성은 그런 의문과 함께 빤히 화연을 바라보았다.
“와! 문어 강정!! 저거 엄청 맛있어 보이지 않아??”
일부러 텐션이 높은 척을 하며 필사적으로 본인의 흑역사의 유출을 막으려는 600살 엘프의 발악.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일부러 흑역사를 파고들어 그녀의 곤란한 모습을 보고싶기도 했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러기엔 아주 필사적인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그는 그런 사디스트 적인 본인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사줄까?”
“어, 어어…? 그, 그럼 고맙지…??”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더듬었다.
‘어, 어라…? 내가봐도 어설픈 연기에 이렇게 쉽게 넘어간다고…??’
화연이 알고 있는 이한성이란 남자는 절대로 이런 어설픈 연기를 눈치채지 못할 남자가 아니었다. 이전에 매직큐어 건으로 곤란해졌을 때도 도와주기는 커녕 웃어 죽으려고 하기만 했던 게 바로 이한성이었으니, 그랬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화연에게 있어선 이대로 그냥 넘어가주려는 이한성의 모습이 이질적이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흑역사 캐내기는 나중에 천천히 할 생각이니까 너무 다행이란 표정 하지 마.”
“…독심술도 쓸 줄 알아?”
“너한테는 아직 한참도 못미치지만.”
“….”
그동안 화연에게 속마음을 읽힌 일만 해도 한두번이 아니었던 이한성은 사소한 복수라는 듯이 그렇게 대꾸하며 그녀가 어설픈 연기로 눈독들이고 있던 문어강정 가게에 다가갔다.
“문어강정 2개만 주세요.”
“네~ 어, 근데 여자친구가 외국인인 것 같은디… 괜찮겠어 총각?”
“걱정마세요. 겉모습만 외국인이지, 속은 완전 한국인이니까.”
가게 아주머니의 물음에 이한성은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계산을 끝마치고는 문어강정 2개와 함께 화연의 곁으로 돌아왔다.
“자, 여기.”
“고, 고마워… 아, 맞다. 돈은-”
“됐네요. 내가 오자고 한 여행인데 경비도 다 내 부담이지.”
“…꼭 돈 많다는 걸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이한성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화연은 건네받은 문어강정을 호호 불면서 이한성의 말을 그렇게 받아쳤고 이내 나무 젓가락을 뜯어 한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 와… 이거 진짜 맛있다.”
냄새가 좋았던 만큼 맛도 아주 훌륭하다. 낙지든 문어든 가리지 않고 잘만 먹는 화연은 능숙한 젓가락질로 빠르게 문어강정을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그런 화연의 모습을 그저 웃으며 지켜보던 이한성 또한 조금 어긋나게 뜯어진 나무 젓가락으로 본인 몫의 문어강정을 먹기 시작했다.
“-Excuse me?”
“??”
생각보다 살짝 뜨거운 문어강정에 입바람으로 공냉식 냉각을 시도하던 그 순간, 미드에서나 들어볼 법한 깔쌈한 발음의 영단어가 이한성과 화연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깔쌈한 영어 발음의 주인공은 다름이 아닌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서양 사람들 외모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온건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여자들끼리 서너명 씩 한복을 입은 채 몰려다니는 것을 보아 친구들끼리 한옥마을에 놀러온 것 만은 확실했던터라 이한성은 곧바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 한성이 너한테 말하는거 같은데?”
“누가봐도 댁한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누가봐도 이한성과 화연, 둘중에서 영어를 더 잘하게 생긴 건 화연이다. 물론 금발머리 한국인인 그녀이기에 오히려 영어는 이한성보다도 못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Can I take a picture of you guys? I know it sounds weird, but you two look so pretty.”
대충 뭐 번역하자면 사진 찍어도 되냐-라고 물어보는 외국인 관광객. 하지만 말하는게 빠르기도 빠르고 영어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화연이 그런 관광객의 질문을 알아들을 리는 만무했다.
“…뭐래는겨??”
“픽쳐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같은데,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야?”
관광객들이 모르는 사람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는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그 많은 영단어 중에서 픽쳐 밖에 알아듣지 못한 이한성은 그렇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해석을 내놓았다.
“그런거야? 뭐, 그런거라면… 예쓰.”
사진이라면 찍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후하기로 유명한 한국인으로써 그정도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 화연은 그렇게 딱딱한 발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외국인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는게 아닌,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으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Oh, thank you! I appreciate it! I’ll be posting this on Facegram and will that be okay too?”
“아하, 아하하…?”
또 다시 날려진 영어 공습에 화연은 이번에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주 고맙다는 듯이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고, 그대로 화면에다가 한복을 입은 화연과 이한성의 모습을 담았다.
[찰칵-]외국인들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후면 카메라로 부터 플래쉬가 터지며 화연과 이한성의 눈을 정통으로 기습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얼이 빠진 둘은 난데없이 사진을 찍고는 고맙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멍하니 쳐다보았고,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거라면서?”
“…사진을 찍은 건 맞잖아 뭐.”
찍힌 건 우리 쪽이었지만.
화연의 추궁에 이한성은 자신의 해석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며 그렇게 변명을 내뱉었다.
SNS를 전혀 하지 않는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그날 외국인 관광객들이 올린 포스트가 수백만 명으로 부터 좋아요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