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5화(155/245)
155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불과 초속 1cm.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 이한성은 마치 우주정거장에 도킹을 시도하는 우주 비행사마냥 정확하게 손을 뻗었다.
[삐끗-]“!!”
과한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아주 천천히 목표에 접근하고 있던 이한성의 손에 떨림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손떨림은 회전하고 있던 점토에게 있어선 매우 치명적이었다.
사소한 떨림 하나만으로 매끄러운 형태를 전부 잃은 채 다각형의 무언가로 변해버린 점토. 기껏 온 신경을 다해 완벽에 가까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지난 15분 동안 그 고생을 했는데, 그런 본인의 고생이 한순간의 실수로 완벽하게 망해버렸다는 사실에 이한성은 깊은 빡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에라이, 안해.”
벌써 이게 몇번째인가. 다섯 번? 여섯 번? 이제 좀 감을 잡았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보기 좋게 망쳐버리고 말았다. 이한성은 그렇게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며 이미 망해버린 점토를 다각형인 그대로 내버려둔 채 포기를 선언하였다.
인생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포기할 때 포기해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이한성은 변명을 내뱉으며 조용히 옆에서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 푹 빠져있던 화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시 도공이었던 적도 있었어?”
화연이 만들고 있던 도자기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6번이나 연속으로 형태잡기에 실패해서 때려치운 본인과는 달리, 화연은 도자기 장인도 울고 갈 섬세함과 손재주로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한번 배워본 적은 있어.”
“…왜?”
“당연히 팔려고 배웠었지.”
“그것 참 아주 현실적인 이유네…”
하기야 600년 동안이나 살아온 동안에 직업이 수도 없이 바꼈을텐데, 도자기 장인이었던 적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유에 이한성은 화연의 말에 납득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 또한 이한성이 납득하는 와중에 작업을 끝냈는지 아주 예쁘게 형태를 갖추게 된 점토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고, 꽤나 만족하는 얼굴과 함께 유약을 구석구석 발라주고는 이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화르르륵!]“???”
화연이 손가락을 튕긴 것과 동시에 푸른 화염이 도자기 전체를 감싸며 도자기를 순식간에 구워냈다. 다짜고짜 실내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이한성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누가 보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았고, 이내 목격자는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그녀에게 항의했다.
“아니, 실내에서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 뭐하기는, 도자기를 만들었으면 구워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걸 왜 마법으로 구우냐고?! 나중에 가마로 구우면 되잖아!”
“아… 미안, 마법으로 구우는게 습관이 들어서.”
보통 형태를 가다듬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섭씨 1000도를 넘어가는 온도의 가마가 필요하지만, 마법으로 가볍게 섭씨 3000천도는 넘어가는 헬플레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화연에게 있어서 가마는 있으니만도 못한 도구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옛날부터 도자기를 구울 때 마다 본인의 불 마법으로 단숨에 도자기를 구워내기 일수였고, 그때의 버릇은 아직까지도 여전했던 것이었다.
“다 만드셨어요?”
도자기 만들기 체험 담당 직원이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이한성과 화연에게 다가와 도움이라도 필요하냐는 듯이 친절하게 물어왔다. 그러자 이에 둘은 방금 막 완성된 도자기를 황급하게 숨기며 식은땀과 함께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 네, 뭐…”
“다 만들기는 했죠…?”
아직 가마에 가져가지도 않았는데 구워져버린 도자기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둘은 그렇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다 만드셨으면 저쪽에 있는 가마로-”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너무 못 만들어서 딱히 구울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하하…”
이한성이 망해버린 본인의 도자기를 보여주며 빠르게 말을 둘러댔다. 그러자 직원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다른 참가자들을 살펴보러 자리를 떠났고, 이에 이한성과 화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도자기 체험관을 빠져나왔다.
“진짜 600년 동안 정체를 안들키고 살아온 거 맞아? 어떻게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펴, 평소에는 조심하거든?! 그냥 너랑 있다 보니까 긴장이 풀려서 실수 한 것 뿐이야!”
정체를 아는 사람과 이렇게 함께 여행도 다녀본 적은 화연의 600년 인생에서도 매우 드물었다. 애초에 이한성과 만나기 전까지만 했어도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주변에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았었고, 그마저도 같이 여행을 가거나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 그녀의 곁에는 이한성이 있고,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지난 600년 동안 함께해왔던 그 어느 인간 보다도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는 인간이었다.
이렇게 함께 걷고 있는 것 만으로도 본인의 정체를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
“….”
오늘 벌써 몇번인지도 모를 묘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서 다시 한번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이런 묘한 분위기에 적응했던 이한성은 분위기를 이겨내고 침묵을 깰 수 있었다.
“…나랑 있으면 편해?”
“어, 어… 응.”
“해영이 걔 보다도?”
“그, 글쎄…? 그런 것 같기도…?”
다짜고짜 해영이와 비교를 해보라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본심을 그렇게 에둘러서 대답했다. 그러나 이에 이한성은 멈추지 않고 비슷한 질문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도 될 정도로?”
“어어, 대충 그정도-”
“….”
“….”
순간 대화가 툭 끊겼다. 정작 질문을 건넨 이한성은 일부러 대답을 의도했다는 듯이 부끄러움 하나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프러포즈나 다름없는 질문에 대답을 무심코 내뱉어버린 화연의 얼굴은 말 그대로 라이징 썬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대충? 뭐야, 그정도 밖에 안돼?”
“아, 아, 아, 아…”
고장나기라도 한듯, 화연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을 더듬었다. 이미 오버히트로 완전히 과열되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는 필사적으로 혀를 굴린 끝에 간신히 더듬던 말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아, 아, 아, 아-아! 활쏘기 체험이 요기잉네??”
“???”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도 저보다 발음이 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인 엘프가 갑자기 한국어 초짜마냥 요상한 발음으로 어색하게 화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걷다보니 바로 옆에 있었던 활쏘기 체험장 안으로 도망가버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놀리는게 재밌기는 재밌다니까.’
평소에는 되게 어른스럽게 굴면서 차분한 화연이 저렇게 놀릴 때 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 퍽 중독적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본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사디즘 적인 기질을 느끼며 도망쳐버린 그녀를 따라잡았다.
“이보세요, 대답은 끝까지 제대로 하고 도망치셔야지.”
“와! 활 쏘는거 정말 오랜만이다! 꼭 한번 쏴봐야지!”
여전히 이한성의 말이 안들리는 척 국어책 읽기로 딴청을 피우는 화연. 연기에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는 그녀는 주섬주섬 체험용 활과 화살을 손에 쥔 채 부끄러움으로 물들은 얼굴을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지만, 이에 이한성은 그런 가상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필사적인 연기를 그저 모른척하며 핸드폰을 꺼내들 뿐이었다.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도 될 정도로?] [어어, 대충 그정도-]“!?!?!?”
아까 내뱉어버렸던 화연의 민망한 대답이 이한성의 핸드폰으로 부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새 누구도 모르게 녹음을 해뒀던 이한성은 사악힌 미소와 함께 웃으며 화연에게 본인의 핸드폰을 과시하였고, 어설프기 그지 없었던 그녀의 연기를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렸다.
“어, 어… 그, 왜… 녹음을…”
“그야… 재밌으니까?”
“으아아아!!!”
이한성의 핸드폰을 뺏기 위해 화연은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돌발행동에 이한성은 당황하며 뒤로 내빼다가 그만 핸드폰을 놓쳐버리고 말았고, 그렇게 이한성의 핸드폰은 중력가속도의 영향으로 돌바닥에 뚝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콰직-]“….”
“….”
본래라면 패시브 스킬인 [위기감지]가 발동하여 낙하하는 핸드폰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시간을 지연시켰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낮에 주차한다고 [위기감지]의 상위호환 스킬인 [스테이시스 필드]를 사용했었던 탓에 [위기감지]는 아직 재사용 대기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결과 이한성의 핸드폰은 [위기감지] 스킬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처참하게 떨어져버렸고, 아주 선명하게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를 내며 싸늘하게 바닥에 널브려지고 만 것이었다.
“저기요.”
“….”
“아무리 부끄럽다고 해도 그렇지, 핸드폰을 죽여버리면 어떡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뺏으려다가 이 사단이 나버리자 화연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며 죄인의 태도로 진심이 담긴 사과를 내뱉었다. 물론 이한성 또한 그녀가 일부러 핸드폰을 박살내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그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그저 허리를 숙여 죽어버린 자신의 핸드폰을 주워 확인했다.
“와우, 액정이 깔쌈하게 박살났네.”
“새, 새로 사줄까…?”
“아니, 그럴 필요없어.”
아무리 여자친구라고 해도 실수로 본인의 핸드폰을 박살나게 만들었다면 화가 나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한성의 얼굴은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매우 무덤덤 할 뿐이었다.
[스킬: 리커버리를 시전합니다.]왜냐하면 그에게는 뭐든지 고칠 수 있는 만능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도 될 정도로?] [어어, 대충 그정도-]액정이 처참하게 박살 나 있던 이한성의 핸드폰이 고쳐지고 아까 녹음했던 화연의 민망한 대답이 울려퍼지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였다. 박살나버린 줄만 알았던 핸드폰에서 본인의 목소리가 다시 기습적으로 울려퍼지자 이에 화연은 손바닥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며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래… 너한테는 그 마법이 있었지…”
이렇게 된 이상 더이상 화연에게 저 핸드폰에 녹음된 본인의 부끄러운 목소리를 지울 방법은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마법에 능한 그녀라면 이한성으로 부터 억지로 핸드폰을 뺏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녀는 본인의 부끄러움 하나 감추자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게 그렇게 부끄러워 할 거야?”
“당연하지! 넌 그, 그, 그런 프러포즈 같은 걸 하고도 안부끄러워??”
“난 안부끄러운데.”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기는 하지만, 딱히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은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라도 돌직구나 직진으로 나가지 않으면 저 연애고자이신 600살 엘프님과 진도를 빼는데 족히 70년은 걸릴테니.
“진심을 물어보는 것 뿐인데 부끄러울게 뭐 있어?”
“그, 그런가…?”
“아니면 뭐, 아까 그 대답이 진심이 아니라 장난이기라도 한거야?”
“그건 아니-!”
반쯤 농담으로 한 말에 화연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높이며 그렇게 대답하다 말았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부끄러움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장군이요, 체크메이트다.’
더 이상 변명할 여지도 없이 화연의 대답을 여기까지 유도해낸 이한성은 600살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는 그저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였다.
한마디만 더 하면 그녀의 대답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과 함께.
“나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너 진짜 사람 약올리는데 선수구나?”
“인성이 글러먹었다는 소리는 자주 듣지.”
“…그거야 이런 식으로 구니까 당연하겠지.”
아주 치사하다. 누구는 부끄러워서 본심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저쪽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걸어온다는게, 참으로 치사했다.
그렇게 이한성의 태도가 너무 치사했던 나머지, 연상으로써도, 연인으로써도 더 이상 당하기만 하고 싶지 않았던 화연은 터질것 같은 머릿속을 억누르며 말 대신 행동으로 나섰다.
[턱-]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은 대체적으로 기분이 더럽다. 애초에 멱살을 잡는다는 행위 자체가 대게 적대적인 사람에게나 하는 행위이니.
그러나 어째서인지 화연에게 멱살을 잡인 이 순간, 이한성은 기분이 더럽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기분이 더럽다고 말하기에는 서로의 코가 닿을랑 말랑 할 정도로 멱살을 잡혀 끌어당겨진 본인의 얼굴이 그녀와 얼굴과 가까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입술이 접촉하기 까지 앞으로 3초. 아니, 2초. 찰나의 순간 속에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화연의 입술에 정신이 팔려버린 이한성은 귓가가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흥분에 밀려날 것만 같은 이성을 간신히 붙들었다.
2초에서 1초가 지나가고 이제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화연의 입술은 조금만 움직여도 맞닿을 정도로 이한성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대망의 기다리던 마지막 1초가 지나가려던 그 순간-
“쯧, 요즘 젊은 것들은 하여간에 장소를 가릴 줄을 몰라요. 라떼는 말이야? 어? 밖에서 서로 포옹하기만 해도 주변 어른들이 경을 쳤어! 알아?”
“….”
“….”
-예정에 없었던 왠 늙다리 꼰대 노인의 목소리가 혀를 차며 화연과 이한성에게 훼방을 놓아버렸다.
“라떼…? 라떼에??”
그리고 그런 노인의 꼰대짓은 기껏 큰마음 먹고 시도했던 키스 시도에 방해를 받아버린 화연의 뚜껑을 열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파지직-]화연의 머리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수백년은 어린 존재한테 “라떼”를 당해버린 그녀는 잔뜩 열받은 얼굴로 노인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백만볼트를 날릴 것만 같은 기세와 함께 입을 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라떼를 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