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7화(157/245)
157
남자와 여자끼리의 1박 2일 여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긴 여행?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아니면 기분전환을 위한 시간?
아니. 전혀 아니다. 앞선 3가지 대답 중 그 어느것도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남녀 둘만의 1박 2일 여행은 고작 그런 것들을 위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 질문에 관한 올바른 대답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누구에게 묻던 간에 전부 다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1박 2일이라는 소리는 총 이틀이라는 시간을 서로 함께 한다는 소리고, 이틀이나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소리는 또 같은 방을 쓴다는 뜻이며, 거기서 또 같은 방을 쓴다는 뜻은 즉 원 배드 투 피플을 의미하기에.
한국어로는 두글자. 영단어로는 세글자. 굳이 말로 표현하기에는 좀 적나라하고 민망하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남녀간의 스킨쉽의 최종단계.
그리고 현재 그 스킨쉽의 최종단계를, 이한성은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상태다.
[쏴아아아-]호텔룸의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문 너머로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냥 평범한 샤워기 소리일 뿐인데도 그런 소리가 너무나도 자극적으로 느껴졌던 이한성은 좀 과하게 다리를 떨며 깍지를 낀 채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대망의 시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폭풍전야로군.”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한 2주 전 이후 면허와 새차 준비를 한 오늘까지. 평일 저녁에 음란마귀가 잠든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제 본격적인 엔드게임을 수 분 앞둔 오늘. 초침 소리와 므흣한 샤워기 소리가 화장실 문 안쪽을 때린다.
못참겠다.
오목대에서 인생의 첫키스를 경험하고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화연과 함께 급하게 호텔로 돌아온 이한성. 여자 경험이 없는 그에게 다가온 화연의 기습적인 첫키스는 그야말로 폭탄의 기폭제가 되고 말았고,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성이라는 것을 뿌리 채 뽑아내버렸다.
본래라면 오목대에서 좀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이성이 뽑혀나간 이한성에게 있어 참을성이라는 것이 남아있을리가 없었다. 완전히 스위치가 확 돌아가버린 그는 본능이 따르는대로 오목대에서 화연을 아예 들어안고 호텔로 돌아온 것이었고, 그런 이한성의 속내를 눈치 챈 화연 또한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저렇게 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한 것이었다.
[뚝-]20분 가까이 이한성의 본능을 자극해오던 샤워기 소리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뚝 끊겼다.
‘…다 했나보네.’
[저벅저벅-스윽-]물기가 섞인 발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천소리가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인간이 지닌 청력의 한계에 가깝게 오직 소리를 듣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그는 이제 막 샤워실에서 나온 화연이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있는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상상에는 한계가 있었던 탓에 무의식적으로 검열이 걸리고 말았지만.
[위이이이잉-]이번에는 드라이기 소리. 아무래도 수건으로 물기를 다 닦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렇게 이한성은 가운을 입은 채 머리를 말리고 있을 화연의 모습을 온 집중을 다해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솔직히 젖은 머리도 보고 싶은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젖은 머리는 참으로 자극적이라고 생각이 된다. 꼭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식빵에다가 버터를 듬뿍 바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말하는게 이상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x발, 갑자기 상상하던게 식빵으로 바껴버렸잖아.”
없는 집중력을 쏟아부어 겨우 구체적으로 샤워 가운을 입은 채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을 화연의 모습을 상상해냈던 이한성이었지만, 본인의 이상한 취향을 요상한 비유와 변명으로 덮어씌우려 했던 탓에 다 완성되어 가던 상상 속 화연의 모습이 순식간에 버터를 듬뿍 바른 식빵 그 자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집중했으면 취향에 딱 맞는 화연의 모습을 8k에 가깝게 그려낼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이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버터바른 식빵으로 변해버린 화연의 상상 속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덜컥-]“!”
아쉬워하기 무섭게 돌연 화장실의 문이 열리며 비탄에 빠져있던 이한성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본인 페티쉬에 맞는 여친의 모습을 상상한답시고 어느샌가 들리는 소리에 집중을 끊고 있던 이한성은 바로 고개를 들었고, 이제 막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화연의 모습을 뇌속에 녹화라도 하려는 듯 바라보았다.
드라이기로 말리기는 했으나 여전히 살짝 젖어있는 금발.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와서인지 무척 촉촉해 보이는 흰 피부. 거기에 더불어 빈틈하나 보이지 않은 채 꼼꼼하게 입고 있는 샤워가운까지.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너무 빤히 쳐다보는 이한성의 시선에 화연이 살짝 당황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물음에도 이한성은 대답할 생각이 일절 없는 듯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화연의 모습은 이한성이 상상하려던 것 그 이상으로 Yeah했기 때문에.
흐트러진 것 하나 없이 가지런히 입은 샤워 가운이 특히나 매혹적이다. 이런 걸 바로 절제미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노출된 부분이라고는 다리와 얼굴 밖에 없는데 왠지 그것 만으로 기름에다 불을 지르는 것 같은 느낌.
“…너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아닌데요.”
“거짓말 하지마, 지금 딱 봐도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가득한 것 같은 관상인데.”
“이 얼굴이 음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어. 완전.”
사실 이한성의 표정 자체는 무척이나 태연했지만 화연은 그 너머에 숨겨진 그의 본성(?)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조금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이한성을 바라보았고, 이내 턱짓하며 그에게 말했다.
“…난 다 씻었으니까 너도 빨리 씻어.”
“오케이. 딱 3분만 기다려.”
“됐으니까 대충 씻지 말고 제대로 씻고 나와.”
“오케이. 그럼 5분.”
“….”
제대로 씻으라고 잔소리를 했더니만 고작 2분 밖에 늘어나지 않은 이한성의 샤워시간에 화연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며 빨리 들어가기나 하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한성은 지체할 것 없이 바로 화장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그렇게 잠시 방에 홀로 남게 된 화연은 조용히 침대에 앉아 목에 걸치고 있던 타올로 얼굴을 홱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유교걸인 그녀에게 있어서, 거사를 치르기까지 단 5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맨얼굴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미치겠다 진짜…”
––––––––-
이한성이 다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기 까지는 정말로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가 대충 씻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빠르게 씻는 습관이 몸에 베였을 뿐. 구석구석 빠짐없이 제대로 샤워를 끝마친 그는 여타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드라이기는 사용하지 않고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턴 채로 화장실을 나왔고, 정좌 자세로 침대 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화연과 눈을 마주쳤다.
“…정말로 5분 밖에 안걸렸네. 물만 끼얹고 나오기라도 한거야?”
“샴푸, 린스, 바디워시까지 제대로 다 쓰고 나온거거든?”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누가 거사를 앞두고 물만 끼얹고 나오겠냐고 말하듯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살짝 불그스름 해진 얼굴로 이한성의 시선을 피했고, 이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얼마나 흥분하고 있길래 5분만에 나온거야 대체…”
“?”
화연의 혼잣말에 이한성은 뭐라도 말했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딴청을 피웠고,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살짝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이내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털썩-]푹신푹신한 침대 시트의 감촉에 이한성은 내심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당장 침대가 푹신푹신한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엎어지면 코닿을 바로 옆에 앉아있던 화연을 스리슬쩍 바라보았고, 이내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소소한 대화거리를 던졌다.
“아직 7시 밖에 안됐네.”
“…그러게.”
“….”
“….”
대화가 이어지지를 않는다. 서로 한마디씩만 주고받고 끝나버린 대화에 이한성은 이 어색함을 치워버리기 위한 다른 대책을 내세웠다.
[벌떡-]“?”
가만히 앉아있던 이한성이 갑작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자 화연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눈치에 대답하는 것 대신 곧바로 벽에 붙어있던 스위치를 향해 다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을 확 꺼버렸고, 다시 화연의 옆으로 돌아와 앉았다.
“부, 불은 왜 끈거야…?”
“몰라서 물어?”
“아, 아니… 물론 그렇고 그런 걸 하려면 어두운 편이 좋다는 걸 알긴 아는데… 좀 너무 이른 것 아닐까…? 아직 7시 밖에 안됐잖아…”
“밖은 이미 껌껌한데.”
깜깜한 밤하늘 아래에 주변 건물들의 불빛만이 눈에 들어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이른 시간이라는 화연의 말을 반박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 일찍 자지 않았었나?”
“마, 맞긴 맞는데…”
이한성의 페이스에 완전히 밀려버린 화연은 점점 말끝을 흐리며 손을 꼼지락 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유교에 찌들은 삶을 살아왔던 탓에 밀어붙이는 것에 약해도 너무 약한 그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본인의 사디즘 기질이 들끓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손가락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콕-]“흐갹?!”
참으로 혜자스러운 리액션이었다. 단순히 옆구리를 찔린 것 만으로 괴상한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진짜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항의하듯 이한성을 바라보았고, 이내 뚱한 시선을 보내며 그에게 항의했다.
“너어… 연상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이제와서 나이 차이를 따지려고? 그런 문제는 예전에 이미 다 짚고 넘어간 거 아니였어?”
“아니, 그건 맞지만 네가 자꾸만 날 가지고 노니까 그렇지!”
화연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살짝 삐진 듯한 표정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직후에 나지막히 말을 덧붙였다.
“…나한테도 체면이라는게 있단 말이야.”
“….”
…와, 진짜 더는 못참겠다.
부끄러워 하면서 투덜거리는 모습이 너무 자극적이다. 화연의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타이밍을 재기 위해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한성의 흥분은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인 그는 그렇게 미쳐 날뛰는 흥분을 제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홱-]“?!”
기습적으로 뻗어진 이한성의 팔이 화연을 냅다 붙잡아 갑작스레 끌어당겼다. 반응할 틈도 없이 그렇게 이한성에게 끌어당겨진 화연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졌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어… 어어…”
이한성의 표정을 봐버린 화연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한성의 얼굴에는 악마가 현현한 것만 같은 썩소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에.
“저, 저기요…? 일단 진정부터 좀 하시고…”
“싫은데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연의 말을 칼같이 잘라버린 이한성. 단칼에 요구를 거절당해버린 화연은 식은땀과 함께 벌벌 떨며 어떻게든 이한성의 흥분을 잠재우려고 했다.
“수, 수정이 아버님! 따님을 생각하셔야죠!”
“….”
급하게 수정이의 이름을 부르자 폭주하던 이한성은 잠시 멈칫거리며 행동을 정지했다. 이에 화연은 어찌저찌 시도가 먹혔다는 생각에 한시름 덜은 얼굴로 안도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에 불과했다.
“수정이는 엄마가 갖고 싶대.”
“…어?”
이한성의 말 한마디에 반응이 고장나버린 화연.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건지 어리둥절해 하며 뇌에 에러가 난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살짝 바보같은 얼굴로 코앞까지 다가온 이한성을 직시한 채 그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어어??”
때로는 인생에서 피해가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을 막을 도리가 없듯이, 살다보면 눈앞에 닥친 시련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화연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그랬다.
…태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