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8화(158/245)
158
‘죄송하지만 예상하신대로 벌써 아침입니다, 예.’
만약 이 세계가 소설 속이고, 독자들이 지금 이 장면을 읽고 있다면 이렇게 사과해야겠지. 이한성은 그렇게 밝은 아침 햇살이 창밖에서 훤히 비춰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침대에 누운 채 실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밤새 있던 일은 어디가고 갑자기 왠 아침이냐, 왜 중간과정은 안보여주냐, 중요한 장면은 생략하고 얼렁뚱땅 다음날 아침으로 넘어가버리는 소설이나 웹툰에서 독자들이 흔히들 그렇게 항의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들의 항의는 정당해 마땅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프라이버시는 지켜져야하는 법인데. 현실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그렇게 이한성은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며 피식 웃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서 그런지 이 세계가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 이런저런 변명거리들을 내뱉은 그는 이윽고 몸을 비틀어 옆으로 누웠다.
“….”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옆으로 누운 채 정면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세상 편한 얼굴로 잠들은 화연의 얼굴에 비춰지고 있었고, 이불로 다 가려지지 못한 그녀의 속살 또한 일부분 그의 눈가에 들어왔다.
“…또 못참을 것 같은데.”
드러난 부분이라고 해봐야 어깨살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한성은 아랫도리에 핏기가 도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어디가고 하반신에게 정신을 장악당할 것 같았던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이불을 화연의 어깨 위 까지 덮어주었고, 가만히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젯밤에 이런 미인이랑 침대 위에서 뒹굴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지 꼴리는대로.
어젯밤 내내 상황의 주도권은 이한성에게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600살 연상을 상대로 그렇게 잘도 리드했다고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린 이한성은 씨알도 안먹힐 변명거리를 구색하며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랍니까. 꼴렸다고요.”
그래, 하반신이 뇌를 이겨버렸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수도승도 아니고 가만히 잠만 잤어야 하나?? 세상에 요런 여자친구를 침대에 놔두고 그럴 수 있는 남자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봐. 백퍼 호모섹슈얼 아니면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테니까.
“으으…”
찔리는게 있어서 내뱉은 변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한성의 변명을 듣기라도 했는지, 평온하게 자던 화연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현재 시간은 아침 8시. 슬슬 일어날 법도 한 시간임에도 화연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어젯밤에 좀 힘들었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가 아니라 가능성이고 뭐고 100%다. 딱 한번만 더-라고 새벽까지 그 난리부르스를 침대 위에서 피워대면서 그녀의 수면을 방해 해버렸으니.
“…다음부턴 적당히 해야겠네.”
“그래. 그걸 이제 알았니?”
“?!”
아주 조금 반성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과 동시에, 언제 눈을 떴는지 모를 화연이 푸른 벽안으로 코앞의 이한성을 토라진 고양이 마냥 째려보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밤새 하도… 뭐 소리칠 일이 많아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이에 이한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정말이지… 어제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흥분을 해가지고는 눈이 돌아갔던거니?”
“….”
너님 때문에요.
…라고 대답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아낸 이한성은 말없이 화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600살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을 보이길래 그만 괴롭히고 싶어져서 하반신이 폭주해버렸다고는 대답할 수가 없었던 그는 나지막히 그녀가 듣지 못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각을 못하시는구만.”
“?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그냥 반성하고 있고, 미안하다고.”
“휴…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번만은 봐줄게.”
사실 나도 꽤 좋았으니까-라며 화연은 나지막히 속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유교걸이었던 그녀는 차마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었고, 이내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
뭔가 되게 허전한 감각이 그녀를 덮쳤다. 뒤늦게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본인이 걸치고 있는게 흰 피부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일어나다 말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고, 아예 번데기가 된 상태로 부끄러움이 가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이한성에게 부탁했다.
“저기… 내 옷 좀 가져다줄래?”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거야?”
어제 스킨쉽의 끝판왕까지 치뤘으면서 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게 뭐 그리 부끄럽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한성은 그렇게 영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너 같으면 안 부끄럽겠니??”
“더 부끄러운 짓도 같이 했는데 부끄러울게 뭐 있어??”
“더하고 자시고 둘 다 똑같이 부끄러운건 마찬가지거든?!”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그 강도가 어떻든간에 부끄러운 것이다. 그렇게 외친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그녀가 여자라서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건지, 아니면 600살 화석이라서 개방성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침대 밑에 떨궈져 있던 셔워 가운을 털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자, 여기.”
“…그리고 뒤 돌아보고 있어.”
“굳이??”
옷 가져다 달래서 옷을 가져다 줬더니만 이제는 뒤까지 돌아보고 있으라는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역시나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도 모르니?! 자네는 장성한 여식의 살갗을 보는게 부끄럽지도 않나??”
“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노인네 같다.”
너무 당황해서 사극 말투가 튀어나와 버린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놀렸다. 그러자 노인네 같다는 이한성의 말을 들은 그녀는 순간 욱하는 기분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는 이한성을 째려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탁!]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화연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귀신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린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텔레포트라도 쓴건가, 싶어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바로 어렵지 않게 그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허공에서 샤워 가운이 누군가가 만지고 있기라도 한 듯이 저 혼자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투명화 마법. 전신에 빛을 굴절시키는 마법을 걸어 모습을 감추는 지극히도 과학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는 마법이다. 현대에 적응한 엘프답게 시대가 발전하면서 얻은 과학적 지식으로 본인의 마법또한 새롭게 개발하고 발전시켜왔던 화연이었기에 가능한 마법.
물론 그런 마법의 원리까지 이해하고 있을리가 없었던 이한성은 그저 그녀가 마법으로 투명화를 했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투명인간이 옷을 입기라도 한듯, 샤워가운이 허공에 떠다니며 사람의 형태를 띄웠다. 그러자 이윽고 투명화 되었던 화연의 몸 또한 본래대로 되돌아왔고, 그렇게 다시 몸에 옷을 걸친 그녀는 굉장히 삐진 듯한 얼굴로 이한성의 시선을 무시하듯 홱 피해버렸다.
“? 설마 삐진거야??”
수정이 같은 어린아이들이나 할 법한 행동에 이한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몰라서 묻냐는 듯이 대답을 툭 던졌다.
“왜, 노인네는 삐지면 안돼?”
“…삐졌구만.”
“그래. 삐졌어. 굳이 그렇게 꼭 내 나이를 들먹이고 싶었니?”
“….”
나이라는 것은 20살을 넘으면 자랑할 것이 못된다. 6세기 동안이나 살아온 화연이라면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을 넘어 수치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게 왜 볼 거 다 본 사이끼리 옷 갈아입는 걸 가지고 부끄러워 하고 그래?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옛 유교사상까지 들먹이면서.”
“그럼 부끄러운걸 나보고 뭐 어떡하니?! 그렇게 말할거면 너 부터 내 앞에서 옷 갈아입어 보던가!”
화연이 빨개진 얼굴로 성을 내며 이한성에게 항의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한성도 부끄러워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이한성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벌떡-]“?!”
팬티 한장 밖에 걸치지 않은 이한성이 화연이 말한대로 이불을 걷어차고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주섬주섬 벽에 걸어두었던 옷을 입기 시작했고, 이에 화연은 그런 이한성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피하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뭐, 뭐하는거야??!?”
“? 옷 갈아입으라면서??”
“그런게 아니라! 너, 넌 부끄럽지도 않니?? 내가 보고 있는데-”
“그래서요??”
어젯밤엔 더한 것도 봤으면서 왜 호들갑이여?
어젯밤과는 달리 아예 발가벗은 것도 아니고 가려야 할 곳은 제대로 가리고 있는 채로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이 뭐가 부끄럽다는 것일까. 설령 발가벗고 있었다고 해도 좀 민망하기만 할 뿐, 부끄러울 것은 그다지 없는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도 있고 몸매에 대해서도 그럭저럭 자신이 있었던 이한성은 이미 할 거 다 해본 여자친구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에 그 무엇도 부끄러워 할 것이 없었다. 그런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던 이한성이었기에 그는 본인보다 훨씬 뛰어난 외모와 몸매를 지닌 화연이 이렇게까지 몸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워 하는 것을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이한성의 모습에 본인만 바보같아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화연은 꿍한 눈빛으로 이한성을 원망한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결국 그 이후로 이한성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버렸던 화연이었다.
–––––––––—
아침에 일어난 후의 두 사람의 일정은 비교적 이렇다 할 이야기 없이 빠르고 무난하게 흘러갔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짐을 챙겨 방을 나와 로비에서 체크 아웃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그렇게 호텔에서 나와 차에다 짐을 실은 둘은 어느샌가 이렇다 할 헤프닝 없이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소감은 어때?”
달리는 차안에서, 이한성이 운전대를 붙잡은 채 화연에게 물었다.
“새로웠어. 새롭고… 재밌었어.”
“? 새로웠다고??”
“응. 뭐랄까… 시간여행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이였달까.”
“그런거면 새롭다기 보다는 그리웠다고 해야되는 거 아니야?”
시간여행을 한 것만 같았다는 소리는 한옥마을 투어가 마치 그녀에게 있어서는 과거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보통은 그런 기분을 그리움이라고 말하지, 새롭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워서 새롭고, 새로워서 그리웠지.”
“….”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았다는 것 같다.
영 이해하기가 힘든 화연의 철학적인 대답에 이한성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운전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이한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걸까?”
“…운전 중인데 갑자기 플래그 세우는 소리 하지 마시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차가 전복 될 것 같잖아.
갑자기 난데없이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것만 같은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그렇게 딴지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게 아니라 그냥… 앞날이 궁금한 것 뿐이야. 다른 누군가랑 이런 관계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애인은 없었어도 가족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어?”
아무리 600년 동안이나 모쏠이였다고는 해도 아예 타인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화연에게는 동생이나 다름없는 해영이 있고, 꽤 과거사가 많아 보이는 송 판사 또한 있었으니.
“글쎄… 마주하는게 무서워서 장례식조차 피해왔던 내가 가족이라 부를 사람이 있었을까?”
자학적인 목소리였다. 그것하나 못하는 주제에 어딜 가족이 있었던 것 처럼 굴려 드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듯한 자조.
긴 세월을 살아왔던 화연이었지만 지금까지 줄곧 그녀에게 있어 가족이었던 사람은 오직 그녀를 딸로 거둬들였던 최윤복 뿐이었다.
그녀가 가족같은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가족을 원하는 것과 동시에, 가족을 바라지 않았었을 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은 가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도 아닌 애매한 관계 뿐.
동정심에 동생 대하듯 돌봐주었던 고아가 자라 어른이 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자녀들까지 가지는 모습을 쭉 지켜봐왔던 적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 같았던 여자도, 그녀와 결혼했던 남자도. 그리고 그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아이가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돌보는 것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만날 때 마다 커져가는 아이의 자녀들과, 그에 비례하듯 점점 주름이 늘어가던 아이의 얼굴. 주름이 하나가 되고, 이윽고 둘에서 셋으로 늘어갈 때 쯤, 어느새부턴가 그녀의 눈에 비춰지는 것은 동생과 다름이 없었던 아이가 아닌, 장성한 자식 셋을 둔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은 예전 그대로였다. 주름도, 자식도 없는 채로.
지켜봐온 아이의 미간에 맺힌 주름이 셋에서 넷으로 늘어났을 즘에, 화연은 그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는 십수년이 지나 그 아이의 흔적이 세월에 지워져버렸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마을 안에 발을 들일 수가 있었다.
좋은 삶이었을 것이다. 좋은 가장에 효를 아는 자식들. 적어도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니. 언젠가 제가 갈 날이 오면 굳이 안 찾아오셔도 되요. 언니가 없다고 해서 외로워질 일랑 없으니까.]그렇게 말했던 그 아이의 말을 핑계로, 화연은 그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다. 그 아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늘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왔다.
“그럼 이제부터 만들면 되겠네, 가족.”
“…어?”
별 문제도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울려퍼진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나중에 내 장례식에 찾아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향도 좀 피우고, 그러면 되잖아.”
“….”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라는 듯이 말하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황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못할 거 뭐 있어. 장례식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떠난 사람보고 괜히 귀천이나 떠돌지 말라고 눈치주는 건데.”
장례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사람은 아마 이한성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화연은 슬픈 미소를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미소로 감추려고 하였다.
“아니면 뭐, 정식으로 수정이 엄마가 되어줘도 좋고. 걔는 아마 좋아 죽을 걸?”
“아하하… 지금 프러포즈 하는거야?”
“그렇게 듣고 싶으면 그렇게 듣고.”
“…훗, 되게 성의가 없는 프러포즈네.”
여전히 슬픈 얼굴. 이한성의 농담에 웃으면서도 그런 기색을 감추지 못한 화연의 옆얼굴을 본 이한성은 그녀를 참으로 미련하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말은 굳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 죽을 날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당장이 중요하지, 나중 생각해서 뭐하게?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
잘해봐야 100년이 뭐가 많다는 것일까. 결국 언젠가는 끝이 나고 말텐데.
이한성의 위로아닌 위로에 화연은 입을 다문 채 씁쓰름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한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고, 이어진 그의 말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씁쓰름함을 황당함으로 뒤바꾸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거 알아? 우리 어제 하루동안 키스도 하고 C’ex도 하고 할 거 다 했어.”
“…???”
왜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오는 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 씁쓸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멍해져버린 화연은 서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하루만 해도 그거 다 할 정도로 긴데 100년이면 이야, 그것보다 더한 것들을 하고도 충분히 남겠네.”
“무, 무, 무-갑자기 잘나가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너는?!”
이한성의 말에 어젯밤에 있었던 것 보다 “더한 것”을 상상해버린 화연은 핵융합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붉어진 뺨과 함께 버럭 외쳤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능청스럽게 첫째 딸을 들먹이며 그녀에게 대꾸했다.
“사실 수정이가 또 동생을 가지고 싶어 하거든. 근데 내가 자웅동체가 아니라서 말이야.”
“얘, 얘가 진짜!!”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이야기에 화연은 이한성의 폭주를 어떻게든 멈춰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한성은 그녀가 그럴 필요도 없이 피식 웃으며 스스로의 폭주를 뚝 멈춰세웠다.
“난 이렇게 당장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넌 왜 벌써부터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어? 시간 아깝게시리.”
“….”
“그리고 너한테 가족이 없긴 왜 없어? 많기만 하구만.”
“…? 많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가족이 많다니.
“왜냐하면 나한테 오면 딸 둘에 시어머니가 쁠라스로 따라오거든. 남편은 덤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