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5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59화(159/245)
159
“왜냐하면 나한테 오면 딸 둘에 시어머니가 쁠라스로 따라오거든. 남편은 덤이고.”
“?????”
어필하는 부분이 뭔가 잘못됐어도 아주 잘못된 듯한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황당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너한테 시집오라는 거지…?”
“그러면 좋지. 솔직히 집에 방도 많고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애들도 좋아할테고.”
“…결혼 얘기를 너무 간단하게 하는 거 아니니?”
“결혼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냥 혼인 서류에 도장찍으면 끝, 나중에 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도 끝인게 결혼인데 굳이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말은 그렇게 하는 이한성이었지만 그 또한 보통 결혼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가 결혼 얘기를 이렇게 별 것 아닌 것 처럼 말하고 있는 이유는 지극히도 간단했다.
이렇게라도 막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화연이라는 이름의 거목을 수십번 찍어봤자 넘어뜨릴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랑은 다르게 우리 가족은 좀 특이한 편이잖아.”
이한성과 그의 어머니야 그냥 평범한 인간이지만 수정이와 세리는 다르다. 하프엘프와 드래곤. 까마득히도 긴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어도 화연이 앞으로 살면서 두 아이의 장례식에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벌써부터 괜히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는 듯이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나지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 100년 동안은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줄 자신 있는데, 어때?”
벌써 살아온 세월만 600년. 그에 비해 이한성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야 100년. 6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세월이지만 적어도 이한성은 그 시간동안 화연의 삶을 아주 시끌벅적하고 정신없게 만들어줄 자신은 충분했다.
물론 이한성이라고 해서 그 100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의 화연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언젠가는 이 관계에 끝이 찾아올 것이고, 그런 세상의 섭리에는 거스를 방도가 없었으니.
하지만 이 관계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화연에게 있어, 그 100년 동안 함께했던 우리의 관계는 종종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는 그랬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으로.
왜냐하면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혼자가 아닐테니.
“….”
자신이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그의 눈동자를 나지막히 마주보았다.
참으로 특이한 남자였다. 올해로 고작 21살, 살아온 세월만 해도 600년에 달하는 본인과는 견주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짧은 시간을 살아온 남자였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째서인지 수백년이나 살아온 본인보다도 인생이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콩깍지가 씌어 버린 걸지도.’
화연은 그렇게 속으로 눈앞의 남자가 좋을 게 뭐 있다고 이렇게 푹 빠져버린걸까, 하고 생각하며 자조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앞이나 봐. 운전 중이잖아.”
“아, 맞다. 깜빡했네.”
화연의 지적에 운전 중에 한눈을 팔고 있던 이한성은 금방 정신을 되찾으며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초보운전자인 주제에 운전하다 한눈을 팔면서 까지 프러포즈를 하는 이한성을 못말린다는 듯이 바라본 화연은 이윽고 나지막히 방금 전의 프러포즈 같지 않은 프러포즈에 대한 대답을 덧붙였다.
“…앞으로 100년 동안 잘 부탁할게.”
“…!”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전방을 주시하다 말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연은 그런 이한성의 시선에 잔뜩 부끄러워진 표정을 숨기려고 창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가슴이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수백년 만에 다시 가족이라는 관계를 얻은 화연이었다.
–––––––
“아, 심신이 안정된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하루종일 한바탕 대청소를 이제 겨우 끝낸 해영의 목소리가 홀로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평소에는 워낙에 안치우고 사는 집주인 때문에 아무리 청소를 해놔도 집 안이 늘상 난장판이었지만, 어제와 오늘만은 달랐다.
바닥을 걸레마냥 뒹굴던 수건이나 속옷도 없고, 나중에 한다고 미춰두던 산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도 없었으며, 대학 과제 끝낸다고 거실 바닥에다 전단지 뿌리듯 던져놓았던 A4용지 더미들도 없다. 한번 치우면 평균 2시간 안에 다시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던 집안이 처음으로 하루 동안이나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왜냐하면 항상 집안을 어질러 놓던 상습범이 남자친구랑 여행간답시고 어제와 오늘 모두 집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그냥 오늘 돌아오지 말고 아예 여행 일정을 하루 더 늘리라고 해볼까?”
이대로 화연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어제 오늘 공들여서 청소해둔 집안이 또 끔찍하게 어질러질 것이다. 그 생각에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낀 해영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한성이 오빠만 잘 구슬리면 어떻게 하루 정도는 더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삑-삑- 삑-삑- 삐비빅-]“?!”
핸드폰의 연락처에서 이한성의 이름을 찾으며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조용한 휴식시간을 벌려던 그 순간, 현관문의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해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자신을 제외하고 단 한명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다급히 집으로 돌아온 집주인을 맞이하였다.
“어, 언니 왔어?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네?”
현재시각 오후 2시. 적어도 저녁 쯤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 보다 일러도 너무 일찍 돌아와버린 화연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해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이제 막 청소 끝내놨는데 벌써 돌아오면 어쩌자는거야… 타이밍 진짜…’
아침 내내 공들여서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만들어놓은 집안이 벌써 예전의 돼지우리로 돌아가버리게 생겼다. 그 사실에 절망을 금치 못할 수가 없었던 해영이었지만, 화연은 그런 그녀의 속마음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돌아오자 마자 바로 방으로 향했다.
[우당탕-쿵- 지이익-]“…?”
화연이 방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방 안에서 부터 흘러나온 괴상한 소리들이 거실에 있던 해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니, 리모델링이라고 하고 있나…?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소리가 저래…?’
또 무슨 난리를 피우고 있길래 방 안에서 저런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일까. 소리만 들었음에도 벌써부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던 해영은 기운이 팍 깎여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언니, 돌아오자 마자 방에서 대체 뭐 하는-”
방 안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무섭게, 해영은 하던 말을 끊은 채 입을 다물을 수 밖에 없었다.
기껏 정리해놨던 방 안이 화연이 발을 들인지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도둑이 들쑤시고 간 것 마냥 엉망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뭐하는거야 지금??”
해영이 개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 여행 케이스에다가 온갖 물건들을 꾹꾹 눌러담고 있던 화연에게 얼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모르겠니? 짐 싸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방금 막 여행갔다가 돌아왔으면서 왜 또 짐을 싸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해외 여행 갈 때나 쓸 법한 캐리어를 가지고.
“당분간 한성이네 집에서 지낼려고.”
“???”
누구 집에서 지낸다고??
갑자기 왜 난데없이 짐을 싸나 했더니만, 왠 남자친구 집에서 당분간 지낼 생각이라는 화연의 말에 해영은 황당 그 이상의 표정으로 집주인 언니를 쳐다보았다.
“아니, 갑자기 왜 한성이 오빠네 집에서 지낸다는거야…? 설마 한성이 오빠가 언니보고 시집오라고 한 건 아닐테고…”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딴죽을 걸 줄 알았더니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침묵을 지키는 화연. 그저 묵비권을 행사하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화연의 모습을 본 해영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자신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에 경악을 내뱉었다.
“…진짜???”
“…응.”
“이런 미친…”
하룻밤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거야 대체??
아직 사귀기 시작한지 2주 밖에 되지 않은 주제에 갑자기 남자친구한테 시집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집주인 언니의 말에 해영의 머릿속은 온갖 물음표들로 가득 채워졌다.
“둘이 아직 키스도 안했으면서 시집을 오라고 했다니…”
“….”
해영이가 전혀 못믿겠다는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화연은 아까와 똑같이 대꾸하기는 커녕 빨개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키스도 했어???”
“…응.”
…하긴 뭐, 남녀끼리 여행을 갔다왔는데 키스 정도는 당연히 하고 왔겠지.
예상외로 키스까지 진도를 뺐다는 화연의 대답에 해영은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놀랄 것도 없다는 듯이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이야… 그럼 이제 키스 다음의 진도를 빼는 것도 시간 문제겠네.”
“….”
이번에도 침묵하는 화연.
“…설마 그거 다음도…?”
“….”
혹시나 해서 물어본 해영의 물음에 화연은 부끄러움으로 잔뜩 물들은 얼굴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해영은 나지막히 한마디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헐… 대박.”
이 인간들이 1박 2일 여행가서 방 따로 잡고 사람 보는 사람 답답하게 쑥맥같이 손도 하나 제대로 못잡고 돌아올 줄 알았더니만, 할 거 다 하고 돌아왔네.
화연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고, 이한성도 딱히 연애에 경험이 있는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해영이었기에 그녀는 그 두 언니 오빠가 여행 한번으로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도를 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고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둘은 하룻밤 사이에 결혼 이전에 뺄 수 있는 진도를 무슨 rpg게임 광렙하듯 쭉 만렙까지 찍어버렸다. 시집 오라는 얘기가 오갔을 정도로.
“언니가 드디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구나.”
저 언니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될 줄이야-라고 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 동안 해영이 지켜봐온 화연이라는 사람… 이 아닌 엘프는 연애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앞으로도 줄곧 모쏠로 지낼 상이었으니 해영이 그렇게 경악 내지 감탄을 내뱉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정도면 되려나?”
해영의 혼잣말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급하게 짐 싸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던 화연은 한계까지 꽉꽉 채운 캐리어를 바라보며 뭐 더 챙길 게 없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달리 더 챙길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캐리어를 간신히 닫았다.
“…해영아, 이거 터지는거 아니겠지?”
“백퍼 터질 것 같은데.”
“역시 그렇지…?”
조금만 충격을 줘도 지퍼가 쫙 찢어지며 폭발할 것만 같은 팽팽한 캐리어 가방. 그렇게 터질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자신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화연은 조심스럽게 가방에다가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이내 밝은 빛과 함께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던 캐리어 가방의 부피가 조금 줄어들었고, 그 광경을 본 해영은 신기하다는 듯이 화연에게 물었다.
“방금 뭐 한거야?”
“진공포장. 확실히 공기를 쫙 빼니까 부피가 많이 줄어드네.”
“….”
마법으로 가방을 4차원 주머니로 만들기라도 한 줄 알았더니만 지극히도 간단하게 그냥 진공포장을 한 것 뿐이라는 화연의 대답에, 해영은 참으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과연 마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어보았다.
“아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텐데 빨리 챙겨서 나가야지.”
하지만 그런 해영의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화연은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손뼉을 탁 치고는 급하게 내용물들을 마법으로 진공포장시켜놓은 캐리어 가방과 함께 방을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 바로 가게??”
“응. 시동 걸고 기다리고 있을텐데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되잖아.”
그 시동걸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은 화연이었지만 그럼에도 해영은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럼 난 갈게. 무슨 일 생기면 전화 해.”
“언니, 나 19살이야. 언니나 괜히 가서 어지르고 다니지 말고 잘 해.”
“남의 집에선 절대로 안그러니까 걱정 하지마.”
“….”
남의 집에서 깔끔하게 살거면 본인 집에서도 좀 깔끔하게 사시지 그러셨습니까 이 양심 없는 집주인님아.
화연의 말에 해영은 눈으로 그녀를 욕하며 지난 날들의 고생이 하나 둘 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화연 또한 그게 어지간히도 미안했는지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해영의 시선을 피했고, 곧바로 도망치듯 가방을 가지고 현관문을 나섰다.
“…이제야 다시 조용해졌네.”
화연이 나가기 무섭게 집에는 다시 고요함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모든 고생의 원인이었던 집주인이 집을 나가버리자 집에 얹혀사는 식객은 그제서야 한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만, 그렇다는건 혹시…”
…앞으로 이 집에는 나 혼자 밖에 없다는 뜻인가?
늘 집안을 어지르기만 하던 주범이 나가버렸다. 그 말은 즉슨 앞으로 집 안이 다시 난장판이 될 일은 없다는 뜻.
“크흐흐흐…”
청소를 해도 어지를 사람이 없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해영은 환희로 가득 차올랐다.
“이 집은 이제 제껍니다. 제 마음대로 청소할 수 있는 겁니다.”
…청소와 관련해 평소에 맺힌게 많았던 해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