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6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60화(160/245)
160
“심심해.”
일요일 늦은 오후의 거실에서, 바닥에 축 늘어진 채 누워있던 수정이가 가득 부풀은 뺨과 함께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빠가 여행을 가서 집을 비운지도 벌써 이틀 째. 평소 같았으면 주말에 아빠를 귀찮게 하는 맛으로 시간을 보내왔던 수정이에게 있어서 아빠가 없었던 이번 주말은 정말이지 지루함 그 자체였다.
“? 왜 그래 언니?”
“아빠 보구 시퍼.”
소파에 앉아있던 세리가 바닥에 늘어져있던 세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와는 다르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수정이를 걱정한 세리는 무척이나 지루해보이던 제 언니의 기운을 되찾아주기 위해 나지막히 대안을 내놓았다.
“언니, 한스 괴롭히러 갈래?”
이한성이 없어서 심심하다면 꿩 대신 닭으로 한스를 괴롭히면 된다. 5살이라고 해도 드래곤이라고 그런 악랄한 대책을 내놓았던 세리였지만, 수정이의 반응은 영 별로였다.
“시러. 한스 삼촌은 괴롭피는 맛이 없단말이야.”
“아, 하긴 그렇지. 그 인간은 재미가 없어.”
이것이 정녕 5살 짜리와 7살 짜리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란 말인가. 부엌에서 냄비에다 육수를 끓이고 계시던 이한성의 어머니는 거실로 부터 들려오는 손녀딸들의 대화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덜컥-]“!!”
순간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집안에 울려퍼졌다. 이에 마치 강아지와도 같이 홱 몸을 일으키며 반응한 수정이는 기운이 없어 보이던 방금 전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나갔고, 무척이나 기쁜 얼굴로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이한성을 향해 전력을 다한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아빡!!”
“엌-”
전속력으로 달려든 수정이의 몸통 박치기에 이를 예상하고 있지 않았던 이한성은 그대로 팍 고꾸라지고 말았다.
“딸아… 이게 뭐하는 짓이냐…”
대체 뭐 때문에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아비를 죽이려 드는 것일까, 이한성은 그렇게 본인을 깔아뭉갠 채 뭐가 그리 재밌다는 듯이 웃고있는지 모르겠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를 괴롭피고 있써!”
“…왜?”
“그야 재밌쓰니까?”
“….”
사람 괴롭히는게 재밌다는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고개를 저으며 누굴 닮아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며 조용히 수정이를 목에 매단 채 몸을 일으켰다.
“근데 아빠, 선물은??”
“선물? 갑자기 뭔 선물?”
“여행갔다오면 꼭 여행선물을 사가지고 와야한다고 할머니가 그랬써!”
“….”
또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하셨구만. 어쩌냐, 여행 선물은 따로 안사왔는데…
애초에 여행선물을 사오라고 말한 적도 없고, 워낙 여행 내내 데이트에 푹 빠져있던 덕에 선물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한성은 기대 만땅으로 가득한 수정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곤란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어떡할거야? 선물 같은거 안 샀잖아.”
이한성이 곤란해 하고 있던 그 순간, 뒤늦게 짐가방을 가지고 현관에 들어선 화연이 이한성의 귀에다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선물 같은건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화연의 모습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이에 화연은 멋쩍게 웃으며 수정이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하하, 안녕 수정아…”
“여니야~!”
화연이 인사를 받아주기 무섭게 수정이는 타겟을 화연으로 바꿔 그녀를 향해 달려가 안겼다. 그러자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을 느꼈고, 이내 홀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있다, 선물.”
“?”
이한성의 혼잣말에 화연은 대체 선물이 어딨냐고 묻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여행 내내 함께 붙어다녔기 때문에 이한성에게 따로 선물을 살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신할 수 있었던 화연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성은 다 방법이 있다는 듯이 씨익 웃을 뿐이었다.
“수정아. 자, 선물이다.”
[터억-]“?!”
이한성이 미소와 함께 화연의 어깨를 붙잡고는 수정이의 앞으로 그녀를 떠밀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당황하며 뭐 하는 짓이냐고 말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지만, 이한성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너 엄마가 갖고싶다 했었지? 자, 인사해. 네 새엄마야.”
“아, 아니 잠깐만, 이것 좀 놓고…”
아직 혼인신고서에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 프러포즈도 수락하고 다 했으니 새엄마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던 화연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바로 엄마랍시고 소개되는 것은 화연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부담이었다.
물론 수정이에게 있어선 그녀의 부담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말이다.
“우왕!!!”
지금껏 받은 그 어느 선물보다도 마음에 들었는지, 수정이의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찬란하게 기쁨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화연을 엄마 후보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수정이는 여행 선물이 다름이 아니라 엄마가 된 화연이라는 사실이 그렇게나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빠 최고!!”
“어허허, 그래. 더 찬양해라.”
“나이스! 대박! 쌍남자!”
더 해보라는 이한성의 말에 수정이는 엄지를 척 하고 치켜세우며 칭찬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다 좋은데 꼭 마지막의 쌍남자만 발음이 어째 영 거시기 하게 들리는 것 같다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수정이는 곧바로 화연에게로 시선을 돌린 채 힘차게 외쳤다.
“엄마!!”
“….”
뭘까, 이 뜨뜻 미적지근한 기분은.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엄마라고 불린 화연의 기분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익숙하지가 않은 호칭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저 호칭으로 불릴 자격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을까.
한동안은 적응이 될 것 같지가 않은 엄마라는 호칭에 화연은 표정이 고장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렇게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 미묘한 심정이 드러난 화연의 얼굴을 본 이한성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래. 갑자기 아빠나 엄마라고 불리면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
이한성 본인만 했어도 수정이에게 아빠라고 처음으로 불려졌을 때 그녀와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엄마라고 불려서 당황스러워 하는 화연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그는 그렇게 깊게 생각 할 것 없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냥 새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편해. 앞으로 지겹도록 듣게 될테니까.”
꼭두 새벽에도, 일하고 돌아온 뒤에도,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는 도중에도 말이야.
처음에는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좀 어색하기도 했었던 이한성이었지만 그건 이미 예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도때도 없이 늘상 아빠라고 불리며 온갖 골치아픈 일을 다 겪고있는 그에게 있어 더 이상 어색함은 없었고, 오히려 지겨워서 그만 좀 불렀으면 할 정도였으니.
“…넌 참 대단하구나. 아니, 부모라서 대단한건가.”
“? 갑자기 뭔 소리야?”
“아니 그냥, 이렇게 보니까 네가 나보다도 이런 면에서는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
“…내가??”
죄송합니다만, 제가 그쪽보다 500년은 더 어린데요.
살다살다 600살 한테서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이한성은 조금 황당스러워 하며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현관에서의 소란을 집구석의 모두가 들었는지 다들 하던 일을 하다가 현관으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이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왔어? 안에 안들어오고 현관에서 뭣들 하는거야?”
이한성의 어머니가 유자차를 탄 컵을 손에 드신 채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다른 쪽 손으로 손짓하며 물으셨다. 그러자 이에 화연과 이한성은 신발을 벗고 마루바닥에 발을 붙였고, 그 모습을 보신 이한성의 어머니는 화연도 같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는 마침 잘 됐다는 듯이 입을 여셨다.
“화연이도 왔어? 마침 국 끓이고 있었는데, 밥 먹고 가.”
“아, 엄마. 그게 말이죠…”
말 나온 김에 지금 말해야 한다. 괜히 타이밍을 놓쳐서 일이 귀찮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이한성은 이내 서론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저희 결혼하게 됐습니다.”
“…???”
[주르륵-]한모금 머금었던 유자차가 이한성의 어머니의 입가에서 힘없이 흘러나왔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한다는 말이 뜬금없이 결혼한다는 말이었기에 그런 어머니의 반응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니들 설마 사고쳤니?? 혹시 혼전-”
“아니거든요.”
피임은 제대로 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내뱉으신 어머니의 말에 이한성은 그렇게 괜한 오해하지 말라는 듯 극구 부정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에 어머니는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둘을 번갈아가 보셨고, 이내 화연에게 이게 다 사실이냐는 듯이 시선을 보내셨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된 대답 대신에, 화연은 그저 시어머니가 되신 이한성의 어머니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대답만 안했을 뿐, 사실상 대답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화연의 인사를 받은 이한성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아들의 말이 전부 진짜라는 것을 깨달으셨고, 무척이나 감격해 하시며 화연의 어깨에 사뿐히 손을 올려 감사를 표하셨다.
“고맙구나. 한성이 쟤가 장가를 다 가게 되다니…! 이게 다 네 덕분이란다.”
“저기요. 프러포즈는 제가 다 했습니다만.”
정작 프러포즈고 뭐고 할 건 다 한 아들내미를 제치고, 며느리한테 고맙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매정한 모습에 이한성은 그렇게 소소하게 항의를 내뱉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항의를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신 채 화연을 극진하게 환대해주며 거실로 들이셨고, 이에 수정이 또한 좋아라 할머니와 새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이한성을 홀로 현관 앞에다가 방치해두었다.
“소란스러워 죽겠군.”
제일 늦게 무슨 소란인지 확인하러 밑으로 내려온 한스가 투덜거리며 홀로 현관 앞에 서있던 이한성과 눈을 마주쳤다. 한창 운동을 하다가 내려왔는지 60kg 짜리 아령을 손에 들고 있던 한스는 이윽고 거실에 화연도 있다는 걸 눈치챘고, 그 모습에 나지막히 혀를 차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또 엘프를 데리고 온거냐? 쯧, 숲에서 틀어박혀서 사는 저런 귀쟁이들이 뭐가 그리 좋다고…”
여전히 엘프인 화연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한스. 엘프들에 대한 오해는 어느정도 풀어낸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 세월동안 축적된 악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한스는 화연을 아나꼽다는 듯이 바라보았고, 이에 이한성은 조용히 한스를 째려보더니 이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노예 1호. 식객 주제에 안주인한테 그런 말 하면 못쓰지 임마.”
“…안주인? 그게 무슨-”
본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스는 이한성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극구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난 반대한다!! 저 전기뱀장어 같은 귀쟁이랑 같은 집에서 살라고?? 누구 죽는 꼴 보고싶은거냐?!”
당장 이한성이라는 악마만 해도 정신적으로 감당하기가 힘든데 거기에 더물어 저 전기고문 엑스퍼트인 엘프까지 매일같이 함께 감당해야 한다니, 가능할리가 없다. 하도 둘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소드 마스터는 둘의 반대하고 또 반대했다.
물론 식객에 불과한 그의 반대가 씨알도 먹힐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 죽으면 되겠네. 수고.”
“야 이 악마 같은 새끼야!!”
“어 그래. 수정아, 삼촌이 같이 놀아달래.”
한스의 항의를 철저히 무시한 이한성은 거실에 발을 들이며 수정이를 불러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눈을 번득이며 프리즈비를 쫒아가는 한마리의 강아지 처럼 한스의 등 위에 폴짝 뛰어올랐고, 세리 또한 언니를 따라 그렇게 한스의 가슴팤에 폴짝 뛰어올랐다.
“자, 잠깐, 방해하지 마라 꼬맹이들!!”
“아하하! 이얍, 얼음 공격!”
“크아악?!!”
수정이가 마법으로 얼음을 만들어다가 한스의 티셔츠 안쪽에다 집어넣자, 이에 한스는 차가운 감촉을 이기지 못하고 요상한 괴성을 내질렀다.
“에취!!”
“우오오오?!! 불!! 불!! 퐈이어!!!”
수정이의 얼음 공격에 이어서 세리의 재채기로 인해 한스의 티셔츠에 불이 붙어버리고 말았다. 뒤는 차갑고, 앞은 뜨거운 대환장 파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한스는 고통에 몸부림 치며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누구도 그런 소드 마스터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이 집에서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