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6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62화(162/245)
162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화장실에서 걸어나온 양예은의 모습에 이한성은 황당한 표정과 함께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그게… 그러니까… 어…”
대부분의 사람이 원래 다 그렇지만, 변명의 여지조차 찾을 수가 없는 막다른 구석에 몰리게 되면 혀가 고장나기 마련이다. 지금 이렇게 하필이면 가게 사장과 딱 마주쳐버린 일개 청소년 알바생인 양예은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말을 버벅거렸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차분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재 시각은 8시 반. 개점하기 까지는 아직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는, 매우 이른 시간이다. 거기에다 더불어 아침 스케줄 담당도 아닌, 더군다나 고등학생인 양예은이 학교에 등교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불도 다 꺼져 있던 가게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체 뭐 때문에?? 등굣길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기라도 했었나?? 아니, 분명 내가 가게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열쇠를 넘겨준 건 맞지만, 그건 피아노나 연습하라고 넘겨준거지 가게를 무슨 공중 화장실로 사용하라고 넘겨준게 아닐텐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시간에 가게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짐작가는 것이 없다. 가게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이 아니고서야 이런 아침에 학교에도 안가고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빙수 카페의 화장실에서 나올 이유가 없었으니.
…아니, 잠깐만. 설마…
딱 한가지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저 여고생의 가정사를 비롯한 이런저런 상황을 참작한다면.
“양예은 너 혹시-”
“화, 화장실이 급했어요!!”
이한성이 유일하게 짐작되는 이유를 말하려던 그 순간, 양예은은 날카롭게 그의 말을 자르며 그렇게 외쳤다.
“…아니, 화장실이 급한거면 주변에 다른 곳도 많은-”
“새, 생리!! 생리가 터져서!!”
“….”
아 씨… 저건 반칙인데. 저런 변명을 들이대면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
남자가 반박하기에는 상당히 민감하고도 민망한 변명에 이한성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양예은은 그대로 이한성을 제치고 도망치듯 가게를 뛰쳐나갔고, 황급히 인사하며 그렇게 쌩 지나가버렸다.
“저 학교 지각할 것 같으니까 먼저 갈게요!!”
“뭐? 야, 야!!”
붙잡을 새도 없이 도망쳐버린 양예은. 발이 어찌나 빨랐는지 피아니스트 보다는 육상 선수에 더 재능이 있어보이는 듯한 그녀의 줄행량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진짜…”
화장실이 급해?? 갑자기 생리가 터져?? 아니, 그런 변명거리를 댈 거면 증거라도 제대로 치우고 그러지 그랬어??
테이블 두 개가 사람이 눕기 딱 좋게 붙어있는 모습과,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모를 담요가 그 위에 깔려있는 모습이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누가봐도 정황상 누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됐네 이거.”
––––––––—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넓고 좋은 집을 놔두고 어쩌다가 남의 가게에 몰래 들어가서 노숙아닌 노숙을 하게 되었는가.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였다.
지난 금요일 까지만 했어도 양예은의 일상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평소와 같이 성적 외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부모님, 그리고 평소와 같이 그런 부모님과 말 한마디 섞지 않으며 숨막히는 학교에서 시간을 어떻게든 흘려보냈던 양예은.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그녀였지만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이 베푼 호의 덕에 어떻게든 피아노 연습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그녀는 이런 숨막히는 일상조차도 이 악물고 어떻게든 견딜 수가 있었다.
아주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그렇게 위태롭게 버텨오던 그녀에게 결국 한계가 찾아오고 말았었다.
언제나와 같았던 토요일의 저녁. 언니를 제외하고 테이블에 다 같이 모인 가족끼리 언제나처럼 숨막히는 저녁시간을 보냈었던 양예은은 언제나 그랬듯이 빠르게 적당히 배만 채우고 자리를 벗어나 방으로 피할 생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들려온 부모님의 말만 아니었어도, 그럴 생각이었다.
“학원 등록해뒀으니까, 내일부터 다시 다니렴.”
“…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마자 들려왔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양예은의 세상을 모노톤의 흑백으로 까맣게 물들였다.
“왜요…?”
“왜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니.”
양예은의 어머니는 모른 척 하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딸을 쏘아붙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딸의 앞에 지난 시험의 성적표를 던지며 딸아이를 몰아붙였다.
“내가 말 했었지. 성적이 1점이라도 떨어진다면 다시 학원에 보낼거라고.”
“….”
양예은의 어머니가 던진 성적표에는 평균 99점이었던 지난번 보다 2점 떨어진 97점의 성적이 매겨져 있었다.
“…고작 2점이잖아요.”
고작 2점.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기세로 노력을 다해왔었던 양예은이었지만, 결국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를 해도, 누적되어 가는 피로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
그러나 그런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있어선 변명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고작이라니!! 1점 차이 하나만으로도 네 대학이 극명하게 갈리는 거 몰라?! 학원을 그만다니고 싶다고 했으면 성적이라도 제대로 유지했어야지!!”
“….”
수저를 거칠게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소리치는 어머니의 분노에 양예은은 그저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입을 열었다가는 말대꾸를 한다고 되려 화만 돋우는 꼴이 될 것이 뻔했기에.
“양예은 너 대체 뭐가 문제야?! 네 언니도 그렇고, 엄마 말만 따라서 지금만 고생하면 나중에 네가 원하는건 뭐든지 하고 살 수 있을텐데 왜 항상 이딴식으로 제멋대로 구니!?”
“….”
“설마 아직도 피아노에 미련을 못 버린거야?! 내가 몇번이고 말해야 해? 그런 걸로는 절대로 성공 못한다고!! 음악을 해서 대체 뭘 먹고 살려고 그러는건데!!”
“그만…”
“내가 그렇게 힘든 걸 요구하는 거니??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성적 2점 떨어지지 말라고 공부하는게 무리야??”
“…그만해요.”
“너도 네 언니처럼 그렇게 쫓겨나서 힘들게 살고 싶어?! 나중이 되서야 엄마 말 안들은 걸 후회할거야!!??”
“그만하라고요!!!”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만 한다. 그렇게 어머니의 폭언을 견디며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양예은이었지만 이미 한계까지 꾹꾹 눌러담은 감정을 이 이상 억누른다고 해서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언니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다 엄마 아빠 때문이잖아!! 우리 인생은 우리가 알아서 살고 싶다는데 왜 자꾸 엄마 아빠가 원하는대로 정하려는건데?! 우리가 무슨 장기말이야?!”
그동안 눌러담아왔던 울분들이 한번에 터져나오며 줄곧 말로 이루지 못했던 생각들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그러자 지금껏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말대답에 분노하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양예은 너가 뭘 잘했다고 부모한테 큰소리를 쳐!!”
“…하.”
여태껏 엄마가 소리치는 동안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서야 끼어들며 되려 화를 내는 아빠의 모습에 양예은은 이미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어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목구멍에 걸려있던 한마디를 기어코 꺼내고야 말았다.
“둘 다 이모양이니까 언니가 집을 나갔지.”
[짜악!!]뺨이 얼얼하다. 귀가 먹먹하다.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았다.
큰 소리가 들려오고 얼굴의 한쪽면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 양예은은 뒤늦게야 제 아빠가 자신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양예은이 기억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이미 어두워진 밤거리를 홀로 거닐고 있었고, 그날밤 결국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지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채로 뛰쳐나왔던 탓에 목적지는 없었다. 걸치고 있는 교복 한벌에 주머니 속에 든 것이라고는 오직 차가운 열쇠 하나 뿐. 그저 발이 닿는대로 그녀는 길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얼마나 거닐었을까, 핸드폰에 표시된 날짜가 다음날로 넘어가고, 인적이 드물어져 길거리에 오직 그녀만이 홀로 남았을 즈음, 그녀는 조용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일하는 장소이자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장소. 둘도 없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자 피아노가 있는 장소의 앞에서, 그녀는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문을 닫은, 누구하나 위로해 줄 사람이 없는 인기척 없는 싸늘한 그곳만이 그녀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에.
––––––––-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까 보았던 그대로다.
한밤중에 그렇게 집을 나와 이한성의 가게 앞까지 어쩌다 보니 도착한 양예은은 어쩌다 보니 주머니에 들어있던 가게 열쇠로 몰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주말 내내 시간을 보냈다.
먹을게 없어서 몰래 냉장고에 들어있던 과일들을 꺼내다가 먹고, 마침 가게에 있는 피아노로 잡생각을 비우기 위해 하루종일 연습을 하고, 그리고 직원 휴게실에서 담요를 가져다 꺼내 테이블 위에다 깔아 그 위에서 잠을 청하기를 이틀.
그리고 아까 보았다시피 그렇게 이틀이 지나가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보란듯이 가게 주인한테 들키고 말았고, 등교하는 척 가게에서 도망쳐나온 양예은.
당연하게도 가출한 처지의 그녀가 학교에 등교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남아있는 잔돈으로 그렇게 하루종일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가게 마감시간이 되기 까지 밖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기를 16시간.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고, 달리 갈 곳도 없었던 양예은은 결국 다시 빙수 카페 앞으로 제자리 걸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장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진작에 마감을 끝내고 문을 닫은 [수정이네 빙수카페]의 안을 들여다 보며, 양예은은 죄책감과 함께 열쇠로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나중에 냉장고에서 꺼내먹은 것들을 포함해 어떻게든 돈으로 갚을 것이다. 그렇게 양예은은 죄책감을 어떻게든 덜어내며 깜깜한 가게 안으로 조심히 발을 들였고, 그대로 담요를 꺼내기 위해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오늘 아침처럼 또 들키면 그때는 그냥 못 넘어갈테니까…’
적어도 새벽에는 일어나서 가게를 나와야 한다. 확실하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 양예은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본인의 실책을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 담요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어라? 담요가 어디갔지?”
분명 여기쯤에 있었던 것 같은-
“이거 찾냐?”
“히익!!!”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양예은의 심박수를 단번에 80 bpm에서 130 bpm으로 증가시켰다. 안그래도 남의 가게에 몰래 들어온 처지라 무의식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그녀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고, 너무 놀라 눈물까지 맺힌 눈꼬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불이 꺼져있어서 그런지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정체불명의 남자는 조용히 벽에 붙어있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고, 본인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냈다.
“…사장님??”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가게 주인인 이한성이었다. 한 손으로 담요를 든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양예은을 내려다 보고 있던 그는 피곤에 찌든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내 가게가 호텔이야?? 그러라고 준 열쇠가 아닐텐데.”
“여, 여기서 이 시간에 뭐하세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거다 이것아. 너야말로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거야??”
“그, 그게…”
아침에는 어떻게든 어거지로 넘어갈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양예은은 너무나도 잘 깨달았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궁지에 물리고 만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푹 숙였고, 이내 나지막히 이한성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쯧, 그래. 말 안할 줄 알았다. 뭐 어차피 무슨 일인지는 뻔하니까 굳이 말 안해도 돼.”
아직 고등학생 밖에 안된 애가 밤 12시가 되도록 집에도 안돌아가고 이렇게 문 닫은 남의 가게에 자러 올 이유야 오직 한가지 뿐이다.
“저… 사장님. 뻔뻔하다는 건 알지만… 그냥 모른 척 해주시면 안될까요…?”
이렇게 남의 가게에 몰래 자러 들어오는 것이 민폐일 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범죄라는 사실이라는 것 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양예은이었지만 그녀는 여기서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혹시나 이대로 이한성이 책임을 물으려고 자신의 부모님을 부르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교복의 치마자락을 움켜쥐며 필사적인 목소리로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한성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안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왠 17살 짜리 애가 내 가게에서 몰래 숙식하겠다는데, 그걸 모른 척 냅두라고??”
“…그렇죠. 안되겠죠.”
이미 충분히 호의를 받아왔으면서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한 것 부터가 염치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양예은은 충분히 예상했던 대답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가게를 나가려고 했다.
“죄송해요. 그리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네??”
문을 열고 가게에서 나가려던 그 순간, 이한성은 양예은의 말을 정정하며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이내 씨익 웃으며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양예은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따라와. 방 하나 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