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6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64화(164/245)
164
“이정도 깔아두면 되려나?”
급한대로 남은 이불들을 긁어모아 빈 방에다 깔아둔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급하게 준비한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2인용 침대를 새로 사는 김에 이 방에도 침대를 하나 새로 둬야겠네.’
비록 오늘 하룻밤만 사용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항상 이렇게 손님이 올 때 마다 귀찮게 이불을 깔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 이한성은 그렇게 침대를 하나 더 추가로 주문해두기로 하며 조용히 방을 나와 방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방은 다 준비 됐으니까 피곤하면 얼른 올라가서-”
마지막 계단 한칸을 밟아 1층에 발을 붙인 것과 동시에 이한성의 목소리는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1층의 모습이 상상 이상으로 개판이었기 때문에.
“아하하하! 미끄러진다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바닥을 빙판으로 만들어 동계 올림픽에서 스켈레톤을 하는 것 마냥 미끄러지며 놀고 있던 수정이의 모습이었다.
“엣취!!”
그리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꽃가루 알르레기라도 있는지 요즘들어 재채기가 부쩍 는 세리였다. 귀엽게 연달아 재채기를 내뱉을 때 마다 새빨간 화염을 뿜어내던 세리는 거실 바닥에다가 숯을 재배하고 있었다.
“수정아! 그렇게 바닥을 얼리면 마루가 상한대도… 앗! 세리야! 바닥에다 재채기 하면 안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고를 수습하고 있던 화연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바쁘게 수정이와 세리를 번갈아가 지켜보며 마법으로 빙판이 된 바닥과 숯이 되어가는 마루바닥을 원상태로 복귀시키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거실 한구석에서 처참하게 그을리고 얼려진 채 변사체가 되어있던 한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녀에게 다가가 나지막히 사과를 내뱉었다.
“미안. 애들 때문에 고생이 많네.”
“아하하… 그러게… 사실 지금 평소에 네가 애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야.”
“네가 애들한테 너무 물러서 그런거야. 이런 건 쟤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딱 잘라서 사고를 못치게 협상을 해야된다고.”
“…그건 협박 아니야?”
“어차피 음식을 인질로 삼아도 결국 사고는 치니까 협상이지.”
더 빠르게 사고를 치느냐, 아니면 더 느리게 사고를 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아이들이 사고를 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없다. 애당초 아이들과 사고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존재이니.
“이수정. 아빠가 집에서 바닥 얼리지 말랬지.”
“앗…”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무른 화연을 대신해 나서서 아이들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자 신나게 바닥을 미끄러지며 놀고 있던 수정이는 그대로 동작을 멈춘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한성을 올려다 보았고, 이내 벌떡 바닥에서 일어나 어설프게 딴청을 피우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후, 후아암~ 졸리니까 자러가야지~”
“동작 그만. 아빠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아, 아빠아, 그게 말이지이…”
“아빠가 저번에 한번만 더 바닥을 얼리면 어떻게 할거라고 했었더라??”
“1달 동안 과자 금지…?”
“그래. 그리고 또?”
“…어린이날 선물 취소.”
“오. 잘 기억하고 있네. 각오는 돼 있겠지?”
이한성이 사악하게 웃으며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한달 동안 과자도 못먹고 곧 다가올 어린이날에 선물도 못받게 생긴 수정이는 천재적인 두뇌를 돌리며 다급하게 대책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내 불현듯 소파에 앉아있던 양예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언니! 저 언니가 마법을 보여달라고 했었써!”
“…히끅??”
다짜고짜 양예은을 증인으로 끌어들인 수정이. 당연히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거니와 믿지도 않았던 초자연 현상을 코앞에서 목격한 탓에 여전히 반쯤 혼이 빠져나가 있었던 양예은은 멈추지 않은 딸꾹질과 함께 손가락으로 본인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런 당연한 양예은의 반응에 수정이는 필사적으로 아빠 몰래 손짓발짓으로 수신호를 보내며 제발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이 그녀에게 사정하였고, 이에 이한성은 그제서야 양예은이 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릴 수가 있었다.
…x됐네.
수정이와 세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화연과 어머니, 그리고 한스와는 달리 바깥사람인 양예은은 아이들의 정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집에 와있는데 아이들에게 마법을 쓰지 말라는 당부를 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동안 집안에서는 딱히 아이들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던 탓에 긴장이 풀어져 있었던게 그 원인이었다.
“…봤냐?”
[끄덕-]혹시나 싶어 들켰는지 확인해 본 이한성이었지만 역시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대답한 양예은을 본 그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붙잡았다.
수정이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수정이의 정체를 남들에게 들킨 것이 이번으로 3번째다. 처음에는 어머니, 그 다음은 수정이 친구, 그리고 이번에는 가게 알바생.
어머니한테 들킨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 이해하셨고, 수정이를 진짜 손녀딸로 받아들이신지 오래였으니.
수정이 친구에게 들킨 것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고작 애한테 들킨 것이고, 어디 가서 그 애가 수정이의 정체에 대해 떠벌리고 다닌다 해도 사람들이 애가 하는 말을 믿을 가능성은 없다시피 했으니.
하지만 양예은에게 들킨 것은? 충분히 큰 문제다. 요즘 애들은 입이 가볍다는 건 둘째치고 여고생이니 SNS를 안하고 있을리가 없는 양예은이 오늘 봤었던 걸 인터넷에다가 퍼뜨리지 않는다? 사진이나 찍지 않았으면 다행인 것이다.
“….”
“…?”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한성이 조용히 양예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눈치와 함께 이한성의 손을 바라보았고, 이에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핸드폰 내놔 봐.”
“…히끅-없는데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요즘 유치원생들도 가지고 다니는게 핸드폰인데 다 큰 고2짜리가 핸드폰 하나 없을까.
양예은의 대답을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치부한 이한성은 그렇게 그녀의 말을 일축하며 빨리 내놓으라는 듯이 그녀를 재촉했다. 하지만 이에 양예은은 교복에 달린 주머니를 뒤집어 까서 텅텅 비어있다는 것을 직접 그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왜 없어???”
“집에 두고 나와서요. 히끅-”
“아…”
맞다, 얘 지금 가출한 상태였지.
두고 나왔다면 이해가 된다. 이세계에서 넘어온 칼질 밖에 모르는 무신이 아니고서야 21세기에서 핸드폰이 없을리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조용히 납득하며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와 양예은에게 반쯤 협박처럼 들리는 말을 내뱉었다.
“그럼 넌 오늘 아무것도 못 본거야. 알지?”
“…히끅-아뇨, 봤는데요. 확실하게.”
“씁… 야, 너 이럴때는 그냥 못 봤다고 말해야 하는거 몰라? 너 그러다가 나중에 어디 취직해서 윗사람 한테 찍힌다??”
“힉끆-본 걸 못 봤다고 해서 못 본 건 아니잖아요.”
“…쯧, 이래서 고딩들은.”
적어도 대학생이었으면 알아서 눈치껏 못 봤다고 말하고 넘어갔을텐데, 어려서 그런지 저 쓸데없는 정직함과 호기심이 문제란 말이지.
“근데 그럼 이제 어떡할거예요? 히끅-전 이미 다 봤는데.”
“…어디 가서 말 안할거지?”
“말해봤자 저만 미친년 될걸요? 히끅-”
“…그렇다면 다행이고. 괜히 마법으로 니 기억을 지우려다가 애 하나를 백치로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
“…히끅??”
“아, 그런 게 있어. 괜히 알려고 하지 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딸꾹질과 함께 얼굴로 물어보는 양예은이었지만, 이한성은 말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얼버무렸고, 다시 수정이에게로 고개를 돌려 씨익 웃으며 잠시 뒤로 미뤄뒀던 수정이의 잘못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수정, 아까 뭐라고 했었지?? 이 언니가 뭘 보여 달라고 했었다고??”
“마, 마법을…”
위기에서 벗어난 줄만 알았는지 방심하고 있던 수정이는 이한성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말을 버벅거리며 무슨 나뭇잎이 많을 것 같은 마을의 닌자마냥 손가락을 심하게 꼼지락 거렸다.
“…잘못해씁니다!!”
그리고는 이윽고 고개를 푹 숙이다 못해 머리를 아예 땅에다 박으며 중범죄를 지은 것 마냥 사과하기 시작했다.
“…? 아니, 왜 갑자기 땅에 머리를 박고 그래…? 그냥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만 하면 되지…”
자세가 영 불편해 보이는게 애 성장에 아주 안좋아보인다. 그렇게 이한성은 군대에서나 볼 법한 수정이의 머리박기에 당황하며 딸을 말리기 시작했고, 이에 수정이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듯이 말했다.
“그치만 한스 삼촌이 잘못 했을 때 이렇게 빌면 다 된다고 해썼는데…?”
“….”
저 노예 새끼가 애한테 뭘 가르친거야.
어쩐지 군대식인 것 같다고 생각한 수정이의 행동이 저 중세시대 군대 출신 노예한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한스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
그러나 여전히 거실 구석에 널브려져 있던 한스는 그러한 이한성의 시선조차 느끼지 못한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다.
––––––––
“오늘밤은 여기서 자면 돼. 침대가 없어서 좀 불편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참고.”
수정이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2층으로 올라온 이한성이 준비 된 방을 양예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례는 나중에 제대로 할게요.”
이한성에게 방을 받은 양예은은 제대로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이라고 해봤자 일개 가게 알바생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렇게 까지 해주는 이한성의 호의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인사 밖에 없었다.
“됐으니까 내일은 제대로 니 언니한테 연락해서 그쪽에서 지내. 괜히 납치 혐의로 경찰서 가긴 싫으니까.”
“…네.”
“알아들었으면 얼른 들어가서 자. 나도 이만 쉴란다.”
이한성이 사례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그렇게 말하자 이에 양예은은 죄송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그런 양예은의 인사를 못 들은 척 하며 그대로 방을 나왔고, 1층의 거실로 내려와 아직까지도 안자고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화연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에휴… 오지랖 넓어봐야 좋을 거 하나 없구만 그래.”
이한성이 소파에 몸을 맡기며 한숨과 함께 불평을 나지막히 늘어놓았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 말고 잠시 이한성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피식 웃었다.
“말로는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오지랖 부릴 거면서 튕기기는.”
“앞으로는 왠만해선 안 부릴려고. 얻는 것에 비해 고생하는게 너무 많아.”
“과연? 시스템 덕에 돈도 많이 받잖아.”
뭐,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를 변명삼아 매번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거겠지만 말이야.
이한성의 한탄에 화연은 그렇게 속으로 뒷마디를 덧붙이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스템이 무슨 퀘스트를 줬길래 저 애를 이렇게까지 도와주는건데?”
“…쟤 부모님을 설득시키랜다. 쟤가 의대 말고 음대에 갈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만든 시스템 아니랄까봐, 되게 까다로운 퀘스트를 줬네.”
화연이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본인의 할아버지인 대마법사 엘레인을 떠올리며 퍽 닮았다는 듯이 쓴웃음을 띄웠다. 그렇게 엘레인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한성은 그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늘 궁금했던 건데 말이야, 이 시스템이 퀘스트를 주는 조건은 대체 뭐야?? 완전 제멋대로 엿장수 맘대로던데.”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만든 시스템이니까 아마 타인의 곤경과 관련이 있을거야. 워낙에 오지랖이 세계수만큼이나 큰 영감이셨거든.”
…그러고보니까 늘 주변에 곤란한 사람이 보일 때 마다 돌발 퀘스트가 떴었지.
화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껏 받아왔던 돌발 퀘스트들의 연관점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오지랖 넓은 시스템 하나 때문에 자기만 고생이라고 조용히 납득했다.
“그나저나 저 애의 부모님을 설득시킬 방법은 있어? 보통 일이 아닐텐데…”
화연이 소파 앞의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커피잔을 집으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리모컨으로 TV를 키며 그럴리가 있겠냐는 듯이 자조가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설득시키기는 무슨. 남의 부모를 내가 무슨 짓으로 설득시켜? 내 부모 하나 설득을 못해서 집을 나왔었구만.”
애초에 그 인간을 설득할 마음도 없었지만 말이지. 뭐, 설령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그 무늬만 부모인 작자를 설득하는게 가능했을리가 없었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뭐… 방법이라는게 없는 건 아니야.”
“어떤 방법인데?”
“간단해. 그냥 예은이 쟤보고 부모님 앞에서 깽판치라고 하면 돼.”
“…그게 방법이야? 상황만 더 악화될 것 같은데…”
부모를 설득시키기는 못할망정 그 앞에서 깽판을 치는 것이 방법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기는 커녕 말아먹기 딱 좋은 배드 엔딩 선택지라고 생각한 화연은 도끼 눈으로 이한성을 바라보며 그렇게 걱정스런 말을 내뱉었다.
“악화되겠지. 그게 목적이야.”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줄래? 상황을 악화시켜서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러니??”
“글쎄, 적어도 쟤 부모님이 자기네 딸을 지네들 맘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어떤 식으로든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는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 설득이 되고 서로간의 이해에 도달하는 경우는 극소수.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 채 서로의 생각에 반대하며 다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기 마련인 부모와 자식간의 다툼에서도, 유리한 것은 부모가 아니라 늘 자식 쪽 일 수 밖에 없다.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기를 쓰고 애를 써서 자식을 통제하려 든다 한들,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 부모가 어떤 식으로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려 든다 한들 결국 선택권은 자식에게 있다. 부모의 간섭으로 그 선택권이 더 많아지냐, 적어지냐의 차이일 뿐.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작정하고 제 뜻을 고집한다면 부모로써는 그걸 막을 길이 없다. 어찌됐든 간에 다시는 보지 않을 게 아닌 이상,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그 이상 자식의 삶에 간섭해서 제 뜻대로 다루려고 했다가는, 절연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뭐, 그런거야. 내가 볼 땐 예은이네 부모님도 꽉 막힌 꼰대 같긴 하지만, 적어도 인간 쓰레기 까지는 아닌 것 같으니까 깽판을 제대로 부린다면 그쪽이 어떻게 할 수도 없겠지.”
자식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다는 건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물론 잘못되도 아주 잘못된 방식의 표현이지만.
“…역시 부모는 다르구나. 600년 동안 산 나보다도 잘 아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너도 이제 부모잖아. 수정이 어머니.”
“….”
“….”
화연의 감탄을 농담으로 받아친 이한성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내뱉어진 그의 농담 반 진담 반은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어어… 느, 늦었는데 너도 이만 들어가서 자. 나도 과제만 끝내고 잘테니까…”
“…언제 끝나는데?”
“그, 글쎄… 한 30분? 아니다, 1시간 정도…”
“그러면 기다리지 뭐.”
“아, 아니야… 피곤할텐데 괜히 나 기다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어. 그러니까 기다릴려고.”
“…뭐?”
자꾸만 기다린다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노트북을 들여보다 말고 뭐 때문에 계속 그러냐는 듯이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째서 이한성이 자꾸만 기다리겠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보고 들어가서 자라며? 그럼 1시간이든 2시간이든 기다려야지.”
“….”
현재 집에 비어있는 방은 단 하나. 1인용 침대 하나 밖에 없는 이한성의 방 하나 뿐. 이 집에서 들어가서 잘 곳은 오로지 그곳 뿐이고, 화연은 방금 전에 이한성에게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그말은 즉슨 같은 방 같은 침대 위에서 함께 자자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가득한 이한성의 귀는 아주 정확하게 그녀의 말을 그렇게 들었다.
“어디 한번 오늘밤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잘 보내 봅시다.”
“…!!”
…오늘밤 편히 잠들기는 그르게 된 화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