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6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65화(165/245)
165
낯선 천장이다.
살짝 쑤시는 몸과 함께 양예은은 창 밖의 햇살이 눈틈을 타고 눈부시게 비춰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낯선 천장과 딱딱한 바닥에 깔린 최소한의 이불. 이 두가지만으로도 자신이 일어난 곳이 본인의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양예은은 이내 뒤늦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는 안도하듯 중얼거렸다.
“…맞아, 나 가출했었지.”
이곳은 그 숨막히는 집안이 아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금방이라도 막힐 것만 같던 숨통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고, 침대없이 자서 몸이 찌뿌둥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하다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폈다.
[덜컥-]“피아노 언니야~! 할무니가 내려와서 밥머그래!!”
“으아아악?!”
기지개를 펴던 와중, 갑자기 방문이 덜커덕 열리며 수정이가 예고도 없이 방 안에 들이닥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양예은은 그만 팔근육이 꼬여버린 탓에 팔을 움켜잡고 고통에 부들거리기 시작했고, 이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녀의 팔을 쭉 잡아당겼다.
“내려오래애~!!”
“아아아악?!!? 내 팔!! 팔!! 타임!! 타임!!!”
근육이 꼬여버렸을 때 억지로 잡아당기는 것 만큼 아픈 일이 따로 없다. 그렇게 수정이 덕분에 사지가 찢기는 듯한 고통을 체험한 양예은은 발버둥치며 수정이를 떼어냈고, 이내 일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진 듯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얼른 와~! 빨리 안오면 내가 다 머거버린다?”
“알았어 알았어…”
양예은이 일어나자 먼저 쌩 1층으로 내려가 버린 수정이. 그런 수정이의 기운이 넘치는 모습을 본 양예은은 이내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은발머리 소녀의 뒤를 따라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된장 냄새다.’
1층으로 내려가기 무섭게 짙은 된장 냄새가 양예은의 코를 찔렀다. 평소에 집에서 아침밥으로 토스트나 베이글, 혹은 스크램블 에그 같은 서양식 아침식사만 해왔던 양예은에게는 조금 생소한 냄새였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려왔어? 얼른 먹어. 밥 다 차려놨다.”
수정이와 함께 1층으로 내려온 양예은의 모습에 이한성의 어머니가 식탁위에 냄비를 올리며 그렇게 말하셨다. 그러자 이에 양예은은 얼떨떨한 표정과 함께 조용히 식탁에 앉았고, 이내 밥그릇과 잘 끓여진 된장찌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수저를 들었다.
“…잘먹겠습니다.”
“그려. 많이 있으니까 많이 먹어.”
…아침을 이렇게 편안하게 먹는 게 얼마만일까.
한달? 두달? 아니면 세달?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됐을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단 하루도 편안한 마음으로 수저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숨이 막혀서 목에 뭐가 넘어가지도 알지 못하던 집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어나자 마자 성적을 물어보지도 않고, 밥을 먹는 와중에서 학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분명 다들 집 만큼 편안한 곳이 따로 없다고들 했었는데, 어째서 나는 집보다는 한번도 와본 적 없는 이곳이 이렇게나 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양예은은 그렇게 밥을 한숟갈 떠먹을 때 마다 왠지 모르게 눈가가 시큰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안쪽에서 차오르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눌렀다.
[까드득-까드득-]“…?”
…근데 이건 대체 무슨 소리지?
갑자기 밥 먹다가 말고 왠 돌덩이를 씹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지자 이에 양예은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렇게 그곳을 바라본 그녀의 눈가에 비춰진 것은 다름이 아닌 무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씹고 있던 흑발머리 소녀, 세리였다. 대체 뭘 먹고 있길래 저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싶어 세리의 밥그릇을 살펴본 그녀는 이내 그 내용물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왜 얼음을…??”
“아, 너무 신경쓰지 마려무나. 세리가 얼음밖에 못 먹는 특이 체질인지라.”
당황하는 양예은의 모습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세리의 밥그릇에 얼음을 더 부어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대체 무슨 체질이길래 얼음 밖에 못 먹는다는 거지…?? 그런 희귀 체질도 있나?? 무슨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도 아니고…
얼음이라고 해봤자 물. 그리고 물은 H2O. 아무리 마셔봤자 아무런 열량도 없기에 그 어떠한 생물도 물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전국을 통들어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지닌 양예은은 똑똑한 머리로 그렇게 의문을 품으며 세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에 그녀의 시선을 느낀 세리는 되려 그녀를 째려보았고, 이내 전혀 5살 짜리 답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뭘 봐.”
“….”
…역시 평범한 애들은 아니야.
애초에 평범한 아이들은 바닥을 빙판으로 만든다거나 입에서 불을 뿜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몇살이나 많은 언니를 보고 저렇게 말하지도 않고.
수정이와 세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던 양예은이었지만 그녀는 그 둘이 딱 봐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알려고 했다가는 매우 인생이 꼬여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그녀는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고, 조용히 된장찌개에다 밥을 부어 말아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사장님이랑 다들 어디 나갔나? 왜 애들 밖에 안보이지?’
밥을 먹던 와중 어제에 비해 많이 조용한 집안의 모습이 양예은의 눈길을 끌었다. 이한성은 물론이고 화연과 한스도 안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조금씩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고, 이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뭐가 부족하냐며 물으셨다.
“뭐 더 필요한거라도 있어? 반찬 더 줄까?”
“아, 아뇨. 그냥… 사장님이 안보이셔서요.”
“한성이라면 아침 일찍 며늘아가랑 같이 나갔어. 곧 돌아올거란다. 한스 총각은 오늘 쉬는 날이라서 운동하러 나갔고.”
“아… 그렇구나…”
“그런데 한성이는 왜 찾니?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
“아니에요. 그냥… 괜히 어제 저 때문에 방이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해서.”
“그런거라면 걱정 마려무나. 오히려 네 덕에 방이 따로 없어서 어젯밤에 좋아 죽을려고 했으니.”
“…?”
그게 무슨 소리일까. 방이 없어서 오히려 좋아 죽으려고 했었다니.
도통 영문을 모르겠는 이한성의 어머니의 말씀에 양예은은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머리카락이 국에 빠질라 손으로 붙잡으며 그릇 째로 남은 국물을 마셔치웠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시던 이한성의 어머니는 이내 나지막히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을 거셨다.
“이름이 예은이었지?”
“아, 네.”
“17살?”
“네에…”
“…그래. 어린 나이에 많이 힘들겠구나.”
“….”
어른의 말에 양예은은 빈 그릇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어린 아이가 그 이상의 질문을 불편해 할 것 같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이상 물어보지 않으셨고, 양예은은 그렇게 침묵 속에서 잠시 내려놓은 빈 그릇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저기, 사장님은 왜 저한테 이렇게 까지 해주시는거예요?”
“….”
양예은의 질문에 이번에는 이한성의 어머니가 잠시 멈칫하며 침묵하셨다. 그렇게 잠시 입을 다물으셨던 이한성의 어머니는 이내 씁쓸하고도 죄책감어린 표정을 지으셨고, 나지막히 먼 곳을 바라보시며 대답하셨다.
“…한성이가 워낙에 가족관계에 데인 것이 많아서 그렇단다. 나한테도, 한성이 아비한테도.”
“…? 사이가 안좋으셨나요?”
그치만 집안 분위기가 화목하고 밝기만 하던데.
우리집이랑은 다르게. 그 한마디를 마음 속으로 덧붙이며 양예은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그 아이한테 죄가 많은 어미란다. 사실, 이렇게 어미라고 자칭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지.”
“….”
양예은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한성의 어머니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자신이 대충 아무말이나 할 수 있을 사연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기 때문에.
“한성이가 어째서 너에게 이렇게 까지 해주는 것이냐고 물었지? 한성이는 뭐라고하던?”
“그냥 제 부모님이 마음에 안들어서 라고…”
그 대답에 순간 어르신의 얼굴이 한층 더 씁쓸하게 물들은 건 기분 탓일까.
“…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일리는 없잖아요.”
이한성의 어머니의 표정을 본 양예은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양예은의 말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양예은을 가만히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이내 퍽 아들내미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옅은 웃음을 지으셨고, 나지막히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셨다.
“닮았으니까, 그래서 네가 자기처럼 되지 않기를 바래서 일지도 모르겠구나.”
“….”
…닮았다고? 사장님이랑 내가?
그닥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처음들어보는 말에 양예은은 참으로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면서 멋쩍게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잠시 머쓱해 한 채 조용히 빈그릇을 만지작 거린지 몇 분이 지났을까, 이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한성의 목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이제 막 화연을 보육원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온 이한성은 살짝 피곤한 얼굴과 함께 거실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가족들이 다 같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양예은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나지막히 물었다.
“잘 잤냐?”
“네… 뭐, 덕분에요.”
“잘 됐네. 됐고, 네 언니 번호 혹시 알고 있어? 전화 좀 하게.”
“모르는데요.”
“…하긴. 그럴 것 같았다.”
보아하니까 그 선생님, 집 나온지도 벌써 몇 년이나 된 것 같은데 연락을 했으면 진작에 연락을 했었겠지.
양예은의 대답에 이한성은 역시나라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신나게 당근과 파만 골라내서 남기고 있던 수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이 넌 기억하지?”
“응? 뭘?”
“네 담임 선생님 번호 말이야.”
다짜고짜 애한테 선생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이한성의 모습에 양예은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닐리가 없-
“010-1234-1234인데, 아빤 그것도 못 외워?”
“???”
…있구나.
물어보자마자 술술 정확하게 번호를 말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양예은은 당황스런 기색을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한성은 그녀가 당황하던 말던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수정이가 말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신호가 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여보세요, 개원 초등학교 1학년 2반 담임인 양혜미입니다. 누구시죠?]“이한성입니다. 말씀드릴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만.”
[아, 수정이 아버님. 말씀드릴게 있으시다니… 혹시 오늘이 개교기념일인지 확인하려 전화하신건가요?]“개교기념일??”
오늘이 개교기념일이었어??
금시초문인 소리에 이한성은 갸우뚱거리는 시선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다고 대답했다.
…쟤는 기억력도 좋으면서 왜 이런 건 맨날 까먹고 다니는지 원.
전화번호 같은 것도 한번 보고 완벽하게 기억하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닌 수정이지만 항상 이런 중요한 것들은 깜빡하고 다니는 기질이 문제다. 그렇게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저 버릇 때문에 언젠가 한번 크게 데일 날이 올 것이라고 속으로 장담을 내뱉었고, 이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핸드폰에다 대고 말했다.
“아뇨, 그거 때문에 전화한거 아닙니다.”
[네? 그러면 무슨 이유로…]“다름이 아니라 양 선생님 동생 분께서 지금 가출한 상태라 말입니다. 지금 제가 보호중이니 와서 데려가라고 전해드릴려고요.”
[…네!?!?!?! 예은이가 가출을 했다고요???]“아오 귀야…”
갑자기 핸드폰을 통해 귓가에 다이렉트로 꽂힌 양혜미의 목소리에 이한성은 화들짝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리며 귀에 울리는 이명을 떨쳐냈다.
[어쩐지… 그 인간들이 안하던 전화를 다 한다 싶었는데 가출을 했었다니…]“전화요?”
[네… 사실은 그저께 부터 부모님한테서 자꾸만 전화가 왔었거든요. 일하느라 바빠서 받지는 않았지만.]…100퍼 무시했구만. 아직도 부모님들이랑 사이가 싸늘한가벼.
말로는 일하느라 바빴다고 했지만 정말로 바빠서 전화를 안받은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확신하며 양혜미도 역시 동생과 비슷하게 한 성깔 하는 면모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기… 혹시 예은이는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많이 안좋은가요…?]“쌩쌩한 것 같습니다만.”
밥 한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어 깨끗하게 비워진 양예은의 밥그릇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양혜미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곧바로 이한성에게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하아… 감사합니다 수정이 아버님. 예은이는 제가 나중에 데리러 갈게요. 그런데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 혹시 5시 때 까지는 데리고 있어주시면 안될까요?]“예, 그러죠 뭐.”
마침 한스 놈도 쉬는 날이겠다, 그때까지 가게에서 일이나 시키고 있으면 되겠네.
조심스러운 양혜미의 부탁에 이한성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양예은을 힐끔 바라보았다.
“…??”
이한성의 시선을 느낀 것과 동시에 한순간 양예은의 전신에 싸늘한 소름이 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위협을 감지한 그녀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고, 이내 깨닫고야 말았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마리의 노예를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