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6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68화(168/245)
168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떠나가버린 두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강애경은 막연히 자리에 주저앉은 채 두통이 가득한 머리를 붙잡았다.
그녀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조차 없었다.
대체 부족한 것이 뭐가 있었다고 이렇게까지 부모의 말을 거부하려고 드는 것일까. 단지, 그저 더 나은 삶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왜 자꾸만 그걸 거부하려는 것일까.
-내 인생이니까.
“….”
예은이가 떠나기 전 했던 한마디가 강애경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인기척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모르시겠다는 얼굴이군요.”
“…?”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강애경은 아까 자신을 가게 사장이라고 소개했던 젊은 남성과 눈을 마주쳤다.
“하긴, 알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그게 무슨 소리죠?”
제3자에 불과한 남자가 저렇게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게 무척이나 불쾌했던 강애경은 얼굴을 찌푸리며 날이 선 목소리로 이한성에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강애경의 날이 선 대꾸에, 이한성은 그저 그녀를 비웃으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받아 칠 뿐이었다.
“무슨 소리기는, 아무리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인생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는 없다는 소립니다 손님.”
“그쪽이 뭘 안다고 지껄여!!”
이한성이 받아친 말에 강애경은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모르면서 끼어들지 말라는 듯이 계속해서 언성을 높혔다.
“다 예은이를 위한 거였어!!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그 아이가 제대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준거였다고!!”
“글쎄요, 따님 분께선 그런 걸 전혀 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내 자식이야!! 당신이 뭘 안다고 어딜 훈수를 두려고 해!? 그쪽이 부모의 심정이 어떤건지 알기나 해?!!”
“당연히 알고 있습죠. 이래봐도 딸아이가 둘이라.”
어리다고 자신을 무시하려 드는 강애경의 태도에 이한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 대꾸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이내 어느정도는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갔다.
“뭐, 지금 어머님 심정이 어떤지 대충 이해는 갑니다. 따님 분 앞날이 걱정되서 그러는 거겠죠.”
확실히 이한성이 생각해도 피아니스트보다는 의사로 진로를 두는 것이 훨씬 비전이 있는 선택이었다. 비록 되는 과정이야 힘들겠지만 의사가 되고 나면 먹고 살 걱정은 일절 할 필요가 없을테니.
“하지만 부모인 당신이 애를 그렇게까지 밀어 붙이면 안되는거였어.”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던 이한성의 존대가 사라지고, 차가운 분노가 서린 그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퍼졌다.
“….”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린 청년에게 비판의 말을 들은 강애경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눈앞의 예의없는 청년에게 항의를 퍼부으려던 강애경이었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혓가닥 하나 뻥긋 할 수가 없었다.
[스킬: 행동제한을 시전하였습니다.] [대상의 모든 움직임이 제한됩니다.]“부모면 부모답게 애를 설득하거나 하다못해 조언을 하는 걸로 만족했어야지. 애 인생을 본인의 2회차 마냥 멋대로 주무르는 게 아니라.”
부모는 어디까지나 자식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자식을 본인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도록 제어하는 조종사가 아니라.
“예은이 걔가 단 한번이라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어? 한창 놀고 싶을 애가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은 있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그리고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어지는 복습. 거의 없는 자는 시간 조차 스트레스 때문에 제대로 잠들 수가 없는 나날들.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한 이한성은 현재 양예은의 심정이 어떨지 그정도 밖에 짐작해 볼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겪어왔을 일들은 그가 짐작한 것 보다 수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예은이 어머님, 당신이 예은이한테 부모라고 불릴 자격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대답을 들을 수 있게 [행동제한] 스킬을 푼 이한성이었지만 강애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굳게 입을 다문 채 침묵했을 뿐.
“한번 집으로 돌아가셔서 잘 생각해 보시죠.”
그런 한마디를 끝으로 이한성은 조용히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테이블에 홀로 남겨지게 된 강애경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내 정신을 다른 곳에 둔 사람 처럼 위태위태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때 까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그래서 예은이 어머님한테 그렇게 말로 치명타를 꽂고 왔다는거야?”
“어.”
늦은 저녁의 집 안에서, 소파에 함께 나란히 앉아있던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어-라니… 그 부모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뭘 어쩌려고 그렇게…”
“아 어쩔 수 없었다니깐. 대화하는 걸 듣고 있자니까 열이 확 뻗쳤다고.”
설득해야 하는 판에 다짜고짜 반말까지 틱틱 써가면서 아주 그냥 말로 묵사발을 내버렸다는 이한성은 그렇게 불가항력이였다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못말린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고, 이내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는 픽 웃으며 그래도 잘 했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이지… 그래도 뭐, 속은 시원해졌겠네.”
“글쎄, 마음 같아선 아예 쌍욕까지 쓰고 싶었는데 말이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예은이 부모니까 그렇게 까진 못하겠더라고.”
예의고 뭐고 싸그리 다 무시하고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것은 이한성의 특기였다. 특히나 되먹지도 못한 부모인 작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래그래. 잘 참았어. 그런데 그럼 예은이는 결국 어떻게 하기로 한거야?”
“걔라면 당분간 언니 집에서 지내겠지 뭐. 당장 숨막혀 죽을 집구석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는 거기가 훨 나을테니까.”
“그런거라면 그나마 다행이네. 결국 예은이 부모님을 설득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애가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된거잖아.”
“…그래. 당장은 이게 최선이겠지.”
원하던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 양예은이라는 아이에게 있어선 이 결과가 최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차선이었다고 해야겠지. 작정하고 설득시키려고 했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한성은 그렇게 본인의 말을 속으로 정정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두컴컴한 창 밖의 풍경 사이로 창문에 거울처럼 비춰진 본인의 모습을 마주보게 된 그는, 그동안 무의식에 두고 있던 자신의 본심을 자각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예은이의 부모님을 설득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설득이 어려워 포기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설득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양예은의 인생도 양예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부모를 설득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처음부터 무의식적으로 퀘스트를 제대로 수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저런 꽉 막히고 답지도 못한 부모를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설득시킬 이유가 없었기에.
만약 마음을 바꿔 퀘스트가 시켰던대로 양예은의 부모님을 무조건 설득시켰더라면 분명 꼴보기도 싫은 광경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고집 센 부모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은 채, 그동안의 잘못들이 전부 흐지부지하게 넘어가게 되었을 것이 너무나도 뻔했다.
“그런 건 역겨워서 못참지.”
이미 한번 부모님을 용서해 본 경험이 있는 이한성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어머니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고, 이한성 또한 어머니에게 그렇게까지 악감정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저지른 잘못이야 다분하게 많으신 이한성의 어머니셨지만, 제 자식을 버린 것 외에는 이한성에게 그 어떠한 피해도 준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만약 어머니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남이 잘못을 지적해 주고 나서야 그걸 깨닫고 용서를 구하셨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 이한성은 제 아버지 되는 인간한테 그랬듯이 어머니에게도 여지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양예은의 어머니가 지금 딱 그런 케이스였다. 본인 잘못이 뭔지는 1도 모르고 있다가 가족도 아닌 타인이 그걸 굳이 짚어줘야 자각하는, 그런 이기적이고도 독선적인 부모.
그런 부모를 굳이 설득시켜야 할 가치 따윈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이한성의 생각은 그랬다.
‘…어차피 설득시키고 말고는 내가 할 게 아니라 예은이 걔가 해야하는 일이고 말이야.’
아까 낮에 아무말도 못하던 것으로 보아할 때 지금쯤이면 아마 본인의 잘못을 뼈저리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양예은의 어머니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리며 혀를 찼고, 이내 나지막히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에라이… 이래서 남의 가족 문제에 끼어들면 안된다니까.”
괜히 머리만 복잡해진단 말이지. 안그래도 가족 문제 같은거는 이미 진절머리 날 만큼 겪었단 말이야. 내 문제도 겨우 해결했는데 남의 문제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원…
어쨌던 간에 당장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중간에 감정에 욱 해서 살짝 계획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예은이에게 있어선 부모님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으니 절반이나마나 성공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굳이 퇴근하고 나서 까지 남의 가족문제로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며 조용히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어차피 퀘스트 자체는 이미 실패 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이니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리모컨을 들어 TV나 보려고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울려퍼진 알림음이 그의 귓가를 간질였다.
[띠링-]“?”
[퀘스트: 아이 해브 어 드림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뭐여. 퀘스트를 클리어 했다고? 아니, 낮에 그렇게 면전에다 대고 팩트폭력을 갈겼는데??
팩트폭력을 날려서 사람을 설득시키는 건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야 팩폭을 받고 정신을 차려서 마음을 바꿀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팩폭을 받으면 되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예은의 어머니가 둘 중 어느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한성은 생각할 것도 없이 후자라고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타인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사람은 달리 고쳐쓰는게 아니라고 믿고있던 이한성에게는 도저히 믿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이 아줌마가 집에 가서 조상님이라도 뵌건가…?”
––––––––
늦은 저녁.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강애경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구두를 벗고 현관에 발을 들였다.
“당신 대체 어디갔다가 이제 온거야?”
그녀가 현관에 발을 들이자 먼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그녀를 반기며 별 일이라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예은이를 만나고 왔어요.”
“뭐?! 그 기지배 대체 밖에서 뭐하고 싸돌아다니고 있었는데?!”
“….”
남편의 성난 외침에 강애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런 보기 드문 아내의 모습을 본 그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조금 언성을 낮췄다.
“…그래, 아무튼 예은이가 어딨는지는 알고 있는거지? 그런데 왜 혼자 돌아온거야?”
“….”
여전히 침묵하는 강애경. 소리는 잘 질러도 아내한테는 약한 편이었던 양정학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아내를 그 이상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해보았을 뿐.
“…혜미도 같이 만나고 왔어요.”
“…뭐? 혜미를? 걘 또 어쩌다가 만난건데?”
“예은이가 가출한 동안 돌봐주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허. 어쩐지 3일이 지나도록 안돌아온다 했더니만.”
양정학이 기가 찬다는 듯이 말하며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붙잡았다. 이미 한참 전에 집을 뛰쳐나간 첫째까지도 모자라 둘째마저도 제 언니와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한다는 것이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일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혜미랑 같이 있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됐으니까 당신은 이만 들어가서 쉬어. 예은이 걔는 내가 내일 직접 가서 데리고 올테니까.”
“….”
남편의 위로에 강애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려던 순간 왠지 모르게 복도 반대편에 위치한 예은이의 방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안방으로 향하려던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당신이 예은이한테 부모라고 불릴 자격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인생이잖아…
“….”
낮에 들었던 말들이 다시 한번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자 강애경은 마치 불을 쫓아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저도 모르게 딸아이의 방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잘못한거라고?’
잘못했을리가 없다. 이건 전부 다 그 아이를 위해서 해왔던 일들이다. 당장은 애가 저렇게 힘들어하지만, 나중이 되면 분명 내게 고맙다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강애경은 그렇게 불안을 떨쳐내며 딸아이의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뭐 하나 부족한게 없게 그동안 다 해줬잖아.’
과외 선생님을 붙여줄 때도 늘 실력이 좋은 사람만 엄선해서 붙여줬다. 학원도 가장 좋은 곳으로 보내줬다. 용돈도 늘 넉넉하게 줬었고, 굶기거나 한 적도 없었다.
[끼이익-]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져 어두캄캄한 예은이의 방 안이 강애경의 눈에 비춰졌다. 3일 동안이나 주인이 들어오지 않았던 탓인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쌀쌀한 방 안의 공기를 느낀 그녀는 이내 스위치를 켜 방에 불을 켰다.
“…예은이 방이 원래 이렇게 넓었던가?”
아니, 넓은 것이 아니라 너무 휑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방 안이 있는 것이라고는 수수한 침대와 문제집들만 수북히 쌓인 책상 뿐. 그 외에 벽에 붙어있는 옷장을 제외하면 고시원이라고 믿어도 될 정도로 예은이의 방 안은 무척이나 썰렁했다.
그렇게 썰렁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이라고 해봐야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상장 몇개가 전부.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었던 것은 학교에서 받은 것이 아닌, 예전에 그 아이가 딱 한번 나갔던 작은 콩쿠르에서 받은 상장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찍었던 영상이 있었지.’
예전부터 예은이가 피아노를 하는게 영 못마땅했던지라 그때도 그 아이의 연주를 보러가지 않았지만, 보호자로 같이 갔던 혜미가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서 보라고 줬던 기억이 난다. 보지는 않았지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카메라를 떠올린 강애경은 조용히 방을 나와 바로 마주편에 있던 혜미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몇 년 동안이나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던 혜미의 방은 예은이의 방 이상으로 온기가 죽어 있었다. 하지만 딱히 그간 건드린 적이 없었기에 물건들은 그대로였고, 그렇게 강애경은 첫째 딸의 방에 놓여진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 전 그녀가 필요 없다며 거부했던 카메라는 여전히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수 년이 지나고 나서야 카메라를 찾은 그녀는 카메라의 전원을 조심스럽게 켜 보았다.
오랜시간동안 방치되어 있었기에 카메라의 배터리는 거의 방전되어 있었다. 그렇게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카메라를 붙잡은 채 그 안에 찍혀있는 여러 사진과 영상들을 살펴보기 시작한 강애경은 기록된 날짜가 최근에서 옛날로 점점 거슬러 올라갈 수록, 그 안에 찍혀있는 사진들이 어째서인지 조금씩 밝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거였나?”
그렇게 그다지 많지도 않은 사진들을 거슬러 올라가기를 수십 번.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찾고있던 영상을 찾아낸 강애경은 재생버튼을 눌러 몇 년 전에 촬영된 콩쿠르 영상을 재생했다.
[~~~~]재생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약간의 노이즈가 섞인 피아노 소리가 카메라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강애경은 연주되고 있는 곡이 무슨 곡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저 조용히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잔잔한 선율. 맑고 청아한 소리. 음악에 대해 무지해서인지, 눈을 감고 듣는다면 충분히 프로가 연주하는 것 처럼 들리는 연주.
연주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마치 홀린 듯이 노이즈가 섞인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강애경은 어느샌가 연주가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카메라 속의 무대에서 일어난 소녀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심사원과 관중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카메라에 담긴 소녀의 모습은 그렇게 화질이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활짝 웃고 있는 미소만큼은 무척이나 선명했다.
‘…저 애가 저렇게 웃은 적이 있었나?’
집에서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미소였다. 아니, 집에서는 아예 웃은 적 조차 없었다.
평상시 예은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강애경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카메라 속에 찍힌 소녀와는 동일인물이라고 생각되기 힘들 정도로, 늘 그림자가 드리워진 무표정을 한 평소 예은이의 모습이 그녀의 눈가에 아른거렸다.
“…이렇게도 웃을 수 있는 애였던가?”
그런데 어째서 집에서는 단 한번도 이렇게 웃은 적이 없었을까.
-여전히 모르시겠다는 얼굴이군요.
낮에 간 카페의 젊은 사장이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 때문이었구나.”
나. 아니, 정확히는 우리의 고집이 이 아이의 웃음을 앗아간 것이다. 혜미에게도 그리했듯이.
피아노를 하며 밝게 웃을 수 있던 아이로 부터 피아노를 앗아갔으니 미소를 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밀어붙이며 시켰으니 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것이다.
그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간당간당하던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고, 카메라의 전원이 꺼졌다. 수많은 잘못을 반복하고 더 이상 가족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나서야, 강애경은 깨달았다.
…본인이 부모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