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화(17/245)
17
“영희.”
아니야. 너무 올드하잖아.
“…만덕이.”
너무 촌스럽게 들리는 것 같은데.
“달순이…?”
누가 들으면 아직도 태명을 쓰고 있는 줄 알겠다.
하나같이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이 없다. 벌써 반나절 동안 애한테 이름을 지어주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던 이한성은 이름이 뭐 어떠냐는 듯이 젖병을 빨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짓기가 뭐 이리 힘들다냐…”
평소에 뭐 애완동물 같은걸 키운 것도 아니라 그런지 이한성의 작명 센스는 기초조차 없는 초짜 그 자체였다.
“됐다. 그냥 나중에 적당히 생각나면 지어줘야지.”
결국 지금 당장 엉성하게 붙이는 것 보다는 나중에 그럴싸한 게 떠올랐을 때 짓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이한성은 금방 동이 나버린 젖병을 챙기고는 그대로 싱크대에 가져가 깨끗히 씻어냈다.
병원에서 퇴원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게 바로 엊그제.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애를 돌보느라고 쉴 틈이 없었던지라 이제야 겨우 쉴 틈이 생긴 이한성은 아기가 밥을 먹고 조용해진 틈을 타 바로 소파에 앉아서 그간 확인하지 못했던 시스템 창을 열었다.
[이름: 이한성-보호자] [종족: 인간] [직업: 현재 무직] [Lv: 3]“응?”
프로필 창을 열자 무언가 조금 달라진게 눈에 들어왔다.
“레벨이 올랐네?”
그동안 아무리 퀘스트를 깬다 한들 쥐꼬리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경험치 덕에 통 오르질 않았던 레벨이 상승했다. 그 외에도 이름 옆에 적혀진 [임시 보호자]라는 타이틀이 [보호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이내 바로 [스킬] 창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까지만 했어도 잠겨있었던 스킬을 확인했다.
[미해금 스킬: 성장의 축복(I)] [스킬 해금이 가능합니다. 해금하시겠습니까?] [필요 포인트: 2]성장의 축복. 시스템의 설명에 의하면 대상의 성장 속도를 증가시킨다는 별 효용성을 찾을 수가 없는 스킬이다.
‘뭐… 어차피 이거 말고도 딱히 해금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일단은 해금해 볼까?’
아무리 쓸모없는 스킬이라고 해도 일단 가지고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실제로 지난번에 세계수의 이슬을 쓸모없는 아이템으로 여겼다가 유용하게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린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포인트를 사용해 스킬을 해금했다.
[성장의 축복(I)이 해금되었습니다.]별 볼것 없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러자 이한성은 곧바로 새로 해금한 스킬이 어떤 느낌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스킬을 사용할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이걸 써볼 만한 물건이 뭐가 있지?’
당연히 스스로에게 사용하거나 애한테 실험해 볼 수는 없다. 괜히 잘못 썼다가 사람이 잘못 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실험 할 수 없다면 간단하게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에게 실험해 보면 그만이지만 애석하게도 이한성의 집에는 식물이라 부를만한 생명체가 전혀 없었다.
“…됐다. 그냥 신경 끄자.”
당장 어렵게 얻은 휴식 시간인데 별 쓸데없는 것 하나 확인하려고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그대로 소파 위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미튜브에 뭐 볼만한 거 없나…”
개콘도 망한 지금 시대에는 온갖 영상들이 전부 다 미튜브 같은 거대한 동영상 플랫폼에 수두룩하게 떠돌아다니고 있다.
뉴스부터 시작해서 웃긴 동영상, 거기에다가 국뽕 동영상이나 예능 클립들을 모아둔 것들. 그중에서 볼 만한 걸 찾기 위해 이한성은 홈 화면에 뜬 추천 동영상 목록들을 뒤져보았다.
그러나, 이한성이 할 수 있는 건 딱 찾아보는 것 까지였다.
“으아아아앙!!”
“앜-”
갑작스럽게 들려온 울음소리에 이한성은 그만 누워서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대로 얼굴에 수직낙하시켰다.
막 아프다고 난리칠 고통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짜증이 막 치밀어 오르는 고통. 하지만 이한성은 그렇게 짜증을 낼 틈도 없이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아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아까 먹은 게 부족해?”
“으아아아아앙!!”
“아, 기저귀 갈아달라고?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좀 울어.”
어디선가 폴폴 풍겨오는 구린내에 이한성은 바로 아기의 요구를 파악하고는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집에는 현재 남아있는 기저귀가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이한성은 급한 대로 상점 메뉴를 열어 기저귀를 하나 구매했다.
[친환경 기저귀: 엘프들의 영지에서 자라는 마법생물로 엮어낸 기저귀. 자연의 산물로 만들어진 이 기저귀는 착용하는 자에게 약간의 개운함을 부여한다.] [친환경: A+] [내구성: B] [생산성: E+]지극히도 낮은 생산성 랭크다. 아무래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엮어내야 해서 시간과 비용당 생산량이 수지에 안 맞는 모양이다.
“하긴… 왜 기저귀 하나에 5만원이나 들어가는가 했더니만…”
친환경 기저귀의 가격은 5000 골드. 즉 5만원이다. 기저귀 하나 치고는 매우 비싸지만, 그래도 일회용이 아닌 계속해서 빨아서 쓰는 기저귀인데다가 이런저런 효능도 존재하는 듯하니 돈낭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당장 월세 낼 돈을 빼면 생활비가 10만원 밖에 없으니까 허리띠를 꽉 조이는 수밖에.’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50만원. 병원에서 돌아온 다음에 이런저런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모아둔 골드가 총 1500골드. 즉 합쳐서 현재 이한성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돈은 총 50만원보다 조금 많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회용 기저귀를 막 3만원 5만원 씩 주고 일주일만에 다 써버리느니, 차라리 5만원짜리 다회용 기저귀를 하나 사다가 못쓸 때 까지 빨아서 계속 쓰는게 훨 낫다.
그렇게 없는 생활로 다져진 절약정신을 통해 한수 앞을 내다본 이한성은 곧바로 기다릴 것도 없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 아기의 기저귀를 갈았다.
“에휴…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뭐 어떻게 살아야한다냐…”
애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돈도 벌면서 애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시스템 덕에 애를 키우면서 들어오는 골드로 어떻게든 생활비를 충당할 수는 있어서 괜찮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그런 식으로 생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가 나중에 크면 학원비니 학비니 뭐니 하면서 돈도 많이 나갈 텐데…’
물론 그런 걸 걱정해야 할 때 까지는 아직 몇년 정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꼭 마주봐야한다. 그리고 이한성은 괜히 그때까지 해결법 찾는 것을 미루다가 뒤늦게 후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자랐던 것처럼 키우지는 말아야지.”
오래 전 부터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 인간처럼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되지 말자고.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똥기저귀를 비닐봉투에 담아 꽉 묶고는 쓰레기통에다가 버렸다.
“아, 깜빡하고 이걸 안 닫았네.”
아까 기저귀를 구매할 때 열었던 상점 메뉴가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이를 본 이한성은 곧바로 상정 메뉴를 닫으려고 했지만, 그러려던 순간 그의 눈에 비춰진 이질적인 숫자가 그의 손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지 골드: 10, 001, 500 골드]“…어?”
숫자가 조금 이상하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이상하다.
본래라면 1500 골드 밖에 없어야 할 숫자에 0이 너무 많다. 그 사실을 한참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서야 깨달은 이한성은 뒤늦게 숫자를 직접 세어보기 시작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1천만 골드. 한화로는 1억. 이한성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억 클래스의 금액이다.
“…꿈인가?”
꿈이 아니라면 왠지 조금 무섭다. 한 게 없는데 1억이 있다니, 혹시 줬다가 뺏는 건 아닐까.
갑자기 생각치도 못했던 거금이 생겨난 탓에 이한성은 공황장애라도 걸린 것 마냥 팔다리를 벌벌 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정, 일단은 진정하자…”
이한성은 잔뜩 흥분한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기 위해 미리 타뒀던 분유를 꺼내다가 젖병에 담아 마셨다. 그러자 담백하면서도 밍밍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그의 입 안을 맴돌았고, 수전증이라도 걸린 듯 떨리던 그의 몸을 진정시켰다.
“역시 진정해야 할 땐 이게 효과가 직빵이라니까.”
젖병에 부여된 심신안정의 효과 덕에 안정을 되찾은 이한성은 조용히 젖병을 내려놓고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우아으.”
“…너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냐?”
기분 탓인지 자신을 뚱한 눈빛으로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아기의 시선에 이한성은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아기는 그저 계속해서 이한성을 뚱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야, 거 분유 좀 뺏어먹었다고 그러는 거야? 이거 내가 내 손으로 탄 거거든?”
“우아으.”
“왜. 난 분유 마시면 안되냐?”
“아우으.”
“아니, 야. 니가 직접 분유를 타다 마시면 모를까, 내가 타다 주는 분유만 마시면서 그러는 건 완전 양심 없는 거 아니냐?”
대체 대화가 어떻게 성립되고 있는 걸까. 남들이 보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아기와의 일방적인 논쟁 끝에 이한성은 결국 자괴감과 함께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에휴… 그래 뭐, 애한테 떠들어봤자 나만 입 아프지. 빨리 커가지고 말이나 좀 떼면 소원이 없겠다.”
잔소리라도 좀 마음껏 할 수 있게 애가 빨리 좀 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담긴 말과 함께 이한성은 손가락으로 아기의 볼을 쿡쿡 찔러댔다.
[스킬: 성장의 축복(I)이 부여됩니다.]“…뭐?”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데자뷰가 이한성의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지멋대로 OK나 YES를 선택해버리는 상황을 떠올린 이한성은 이내 휘황찬란한 빛이 손에서 흘러나와 아기의 몸에 스며드는 걸 바라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야야야야 잠깐만!!”
그러나 아무리 외친다 한들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미 한번 시작된 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한성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들이 전부 아기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밝아졌었던 주변은 다시 원래대로 어두워졌고, 이한성은 곧바로 아기에게 달려가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우아?”
다행히도 아기의 상태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좀 더 자세히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이한성은 [의심병자의 눈]을 사용해 또 마력폭주 같은 증상이 생긴 건 아닌지 살펴보았다.
[이름: ???] [나이: 생후 53일] [Hp: 1015/1015] [Mp: 3500/4000] [상태: 그냥그럼]“어우, 다행이네.”
하지만 이한성의 우려와는 다르게 아기의 상태는 무척이나 멀쩡했다. 자신의 걱정이 빗나가서 다행이라고 상각하며 이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쉈고, 이내 피식 웃으며 아기를 안아들었다.
“갑자기 막 커질 줄 알았는데, 아니여서 다행이다 야.”
“으아우.”
아기가 팔을 바둥거리며 이한성의 얼굴을 때렸다. 당연하게도 별 타격을 입지 않은 이한성은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을 때려대는 아기를 말리며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안경을 안 써서 다행인줄 알아. 내가 안경 쓰는 사람이었으면 넌 살인미수죄로 잡혀갔어.”
이한성이 그런 실없는 농담과 함께 말랑말랑한 아기의 볼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아기는 귀찮았는지 작디 작은 손으로 그의 손을 밀어냈고, 이내 티끌하나 없는 녹안으로 이한성을 뚱하게 쳐다보았다.
마치 수정으로 만든 듯한 눈동자. 고블린이 아니라 하프엘프인 게 맞긴 맞는지 사람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하고도 예쁜 눈이다.
“…수정. 그래, 그거 괜찮네.”
수정. 이름으로 써먹어도 썩 나쁘지 않다. 적어도 영희나 만덕이 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수정은 어떠냐? 이정도면 꽤 예쁜 이름인데.”
“아우앙?”
“그래. 괜찮지? 그럴 줄 알았어. 나 아무래도 작명에 소질이 있나보다.”
“?”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제멋대로 해석한 이한성은 그대로 어리둥절해 하는 아기의 코를 손가락으로 살포시 누르며 다시 한 번 아이의 새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이수정.”
자신이 붙여준 이름을 부른다는 건 꽤나 낯이 간지러워지는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조금 민망한 느낌에 잠시 어색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게 딱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그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우으…”
“졸리냐? 그래그래, 재워줄게.”
눈을 꿈뻑거리기 시작한 아기. 아니,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대로 수정이를 조심스레 바구니 안에 눕혔고, 곁에서 그녀가 잠들 때 까지 평소엔 볼 수 없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1억에 관한 건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