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2화(17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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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풍겨오는 진한 소독약 냄새.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소리. 이따금 다급하게 울려퍼지는 안내방송과, 좀비와도 같은 몰골로 주변을 지나가는 하얀 가운의 의사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것 처럼 느껴지는 병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뭔가 안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 마냥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필이면 또 여기냐.”
몇 개월 전 아버지라는 인간이랑 연을 아예 끊으려고 찾아왔던 강북대학병원. 그 이후로 찾아올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인생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 여기에 와 본 적 있어?”
이한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저기압인 듯한 기분을 내비치자, 함께 온 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있지. 별로 좋은 일 때문에 온 건 아니었지만.”
“아하하… 그야 그렇겠다. 병원에 좋은 일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 아니야.”
우리 같은 사람들을 빼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처럼 들려온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표정을 풀며 기분이 한층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래. 괜히 예전 일 때문에 기분 잡치지 말아야지. 무엇보다도 오늘은 그때와는 다르니까.
이미 아버지와의 악연은 끊어버린지 오래다. 괜히 예전의 기억에 얽매일 필요 따윈 전혀 없다.
그렇게 이한성은 예전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이윽고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둘은 좁디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4층의 산부인과에 발을 디뎠고, 이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꽤나 많은 수의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들이 진료를 위해 대기석에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대한민국은 저출산 국가가 아니었던가?”
OECD 최하위 출산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치고는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임산부들의 숫자에 이한성은 그동안 자신이 알아왔던 지식이 가짜뉴스로부터 비롯된 지식이었나, 의심할 정도로 놀라며 꽉꽉 들어 찬 대기자 수에 약간의 경악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쓴웃음과 함께 이한성의 의문에 대꾸했다.
“큰 병원이라서 많은 것 처럼 보이는 것 뿐일거야. 뭐… 그걸 감안하면 이정도 수도 꽤 적은 편이지만.”
10년 20년 전만 했어도 병원에 찾아오는 임산부들의 숫자가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많았었다. 그렇게 화연은 본인의 기억을 더듬으며 비어있던 대기석에 앉았고, 이에 이한성 또한 그녀를 따라 옆자리에 앉으며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다행이네. 송 판사 님 인맥이 두터워서.”
송 판사 님한테 의사 친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꼼짝없이 병원도 못가고 조선시대 스타일로 임신 생활을 했을 거 아니야. 어우, 생각만 해도 오한이 드네.
마냥 기다리기만 하긴 좀 지루했던 이한성이 나지막히 말을 꺼냈다. 그러자 화연은 확실히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이한성의 말에 동감했다.
“그러게… 강욱이 걔도 참, 언제 그렇게 친구들이 많이 생겼는지 몰라. 어렸을 때는 맨날 혼자있는 걸 좋아했으면서…”
“…네가 송 판사 님 엄마야?”
“엄마라기 보다는 누나지. 걔도 사랑 보육원 출신이었거든.”
“….”
평소에는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느껴지지도 않으면서 꼭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그녀가 600살 엘프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고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처럼 보이는 외모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판사를 무슨 동생 부르듯 부르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
뭐가?
“어제 강욱이가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알려줬을 때… 꼭 자기 의사 친구가 날 잘 알고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졌었거든.”
“…뭐라고 하셨길래?”
“만나면 아마 놀랄지도 모른다고…”
“….”
듣고보니 좀 이상하긴 하다. 아무리 친구가 의사라고 하더라도, 그 친구한테 화연의 진료를 맡기다니. 의사 친구라는 사람이 화연의 정체를 사전에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아주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제아무리 친구라고 할지라도 화연의 정체에 대해 함구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
하지만 이한성이 알고있는 송강욱이라는 사람은 그런 생각도 미리 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송강욱 판사는 나이에 맞게 생각이 깊고, 현명한 사람이었으며, 화연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니, 당장은 이상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한성도 화연도 송강욱 판사를 의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뭐, 의사가 누구던 간에 무슨 상관이겠어. 진료만 잘 받으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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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래냐?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화연이 누님.”
“….”
건 30분 동안이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차례가 와서 의사와 만났더니만, 어째 만나자 마자 무슨 동네 누나 대하듯이 화연을 반갑게 맞이하는 의사의 모습에 이한성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지었다.
…아는 사람인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 까지 봐서는 아예 정체까지 터놓은 사이같은데.
아무리봐도 의사 쪽이 건 아버지뻘 나이고, 화연 쪽이 딸 뻘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의사의 호칭에 이한성은 그렇게 짐작해 보며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
그러나 그가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화연은 눈앞의 의사와 완전 초면인 듯한 반응이었다.
“아는 사람 아니야…?”
“아니, 전혀…”
“그런데 왜 너보고 누님이라고 하는건데?”
“그, 글쎄…?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은데…”
진짜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눈앞의 의사가 자신을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전혀 짐작가는 것이 없었던 화연은 딱 봐도 50대 초반 혹은 중반 쯤 되어보이는 의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이내 매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기… 강욱이- 아니라 송 판사 님 친구 분이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혹시 절 아시나요?”
“예? 아니, 누님. 저 기억 안나십니까??”
“안나는데요…”
기억력이 좋은 건 엘프들의 종특인데, 그런 엘프인 화연 조차도 지난 50년 동안의 기억들을 싸그리 다 뒤져보아도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에 의사는 섭섭하다는 표정과 함께 가운 안쪽에 넣어두었던 의사 신분증을 꺼내며 이름을 밝혔다.
“접니다 저, 태식이.”
“태식이?”
화연이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듯한 이름이라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 떠올렸는지 멍하니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혹시 박태식?”
“예예! 기억 나시죠??”
“…네가???”
“아유, 그럼요.”
…뭔데? 저 사람이 누구길래 아까부터 왜 지들만 아는 얘기를 하고 있는건데?
갑자기 소외된 듯한 기분을 잔뜩 느낀 이한성이 자기한테도 좀 알려달라는 듯이 화연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멍한 표정과 함께 이한성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을 부비적 거리고는 다시 본인을 박태식이라고 소개한 의사를 쳐다보았고, 뭔가가 잘못되도 아주 잘못되었다는 표정과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래? 아는 사람 맞아?”
“어… 그렇기는 한데 이게 좀 말이 안되서…”
“뭐가?”
“그… 내 기억이랑은 너무 다른 모습이랄까…”
“그럴 수도 있지 뭐.”
딱 대화랑 말투로 보아하니 최소 20년 내지 30년 만에 다시 만난 사이인 것 같은데, 그러면 못 알아봐도 무리는 아니지. 당장 사람이 5년만 지나도 모습이 돌변을 하는데 말이야.
너무 좋은 기억력 때문에 오히려 사람을 못 알아보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별로 놀랄 것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에 돌아온 화연의 말은 이한성을 꽤나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박태식이는 완전 날라리 양아치였는데…?”
“?”
저 의사 선생님이 예전에 날라리 양아치였다고?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박태식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의심병자의 눈]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기라도 한 건지 여러 정보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이름: 박태식] [나이: 53] [취미: 자선사업] [성격: ESFP, 매우 이타적임]“…?”
전혀 안 그래 보이는뎁쇼. 아니, 딱 봐도 얼굴 상 부터가 완전 송 판사 님이나 최 상담사 님 같은 전형적인 착하고 성격 좋고 호구적인 사람이잖아. 지나가는 개미 하나 안 밟으려고 할 사람 같구만.
이한성이 그렇게 딱 표정으로 화연에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도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치? 전혀 안 믿겨지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는거 아니야?”
“잘못 기억할게 따로 있지, 쟤가 예전에 우리 강욱이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알기나 하니?? 그때 막 고등학생인 주제에 담배피고 술마시고, 완전 일진 양아치였다니까??”
순간 박태식의 얼굴이 창에 여러번 찔린 듯이 고통스럽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과거의 일로 뼈를 맞아버린 그는 이내 헛기침을 여러번 하고는 확실히 반성하고 있다는 듯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 그때는 그랬지요. 예, 제가 좀 막 나가는 또라이였습니다.”
“그래! 들었지? 본인도 저렇게 인정을 할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그랬던 쟤가 의사?? 의사아??? 말이 안되잖아?!”
“아, 아유 누님. 그래도 이미 예전에 누님한테 호되게 깨지고 갱생한지가 언젠데 좀 너무하시는게 아니신지…”
“갱생을 했어도 그렇지! 이건 뭐 아예 다른 사람이잖아!? 너 솔직히 말해봐, 태식이 아니지?? 누구야 너??”
“워워, 진정해 진정. 진료받으려고 왔는데 뭐하는거야.”
특이 유형의 긁지 않은 복권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화연이 너무 충격적인 인성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격한 반응을 내비치자 이한성이 나서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그저서야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조금 진정한 채 문득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더 있다며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래, 뭐… 진짜 기적이 일어나서 태식이 니가 꼴통 양아치에서 의사가 됐다 치자. 그런데 왜 날 보고도 저렇게 태연한건데? 보통은 놀라야 하는게 정상 아니야?”
몇십 년 전에야 외모로도 실제로도 누님이였지만 화연이 엘프인 이상, 세월의 흐름은 그녀를 누님에서 자식 뻘로 바꿔놓았다.. 그러니 박태식이 몇십 년이나 지나고도 예전 그대로의 외모를 지닌 화연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까무라치게 놀라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게 정상인데 비해 화연과 마주치자 마자 누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한 박태식의 반응은 누가 생각해도 비정상이었다.
“그야 누님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강욱이가 말해줬어?”
“아뇨. 누님이 직접 본인 입으로 알려주셨습니다만?”
“…내가???”
대단하다 대단해. 아주 그냥 태종 이방원한테도 들키고, 친한 여동생한테도 들키고, 이제는 친한 남동생 같은 사람의 친구한테도 들키다니. 아니,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용케도 세상에 안들키고 살아왔대냐?? 평화롭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게 아니라 이정도면 아예 국정원에 납치되서 온갖 실험이나 받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화연 본인이 알려줘서 알고 있다는 박태식의 대답에 듣고 있던 이한성은 신뢰감이 아예 바닥난 눈빛으로 화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화연은 억울하다는 듯이 곧바로 해명에 나서며 반론을 내놨다.
“나, 난 그런 기억 없다! 네이놈, 거짓을 고하다니! 사실대로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말투.”
“…구라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참으로 지난 600년 동안 들키지 않고 잘 살아온게 용한 엘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