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3화(173/245)
173
지금으로 부터 30년. 아니, 정확히는 35년 전.
20세기 말, 스마트폰 같은 건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절. 송강욱과 박태식이 아직 파릇파릇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어느밤.
“야, 송강욱. 너네 누나 저대로 놔둬도 되는거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송강욱과 박태식이 원수 같았던 인연을 겨우 풀고 이제 막 친구로 지내기 시작했었을 즈음, 그날 우연히 송강욱의 집- 정확하게는 그가 살고 있던 화연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던 박태식은 송강욱에게 그렇게 물었다.
“….”
이에 돌아왔던 고2 송강욱의 대답은 그저 침묵. 식탁에서 빈 소주 두 세병과 함께 아예 꽐라가 되어 늘어져 있던 당시의 화연의 모습에 송강욱은 그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누나. 이제 그만 마셔.”
“멀 그만 마셔어~?! 더 마실 쑤 있써어! 더 가져와!”
그때나 지금이나 외모는 한결같이 똑같았던 화연이었지만, 그 당시의 그녀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 하도 많아서 술을 입에 달고 살던 여자였다. 본래 조선시대 때 부터 술을 좋아했던 그녀였지만 그 시절에는 그때보다 더 한 수준이었다.
“…누나 그러다가 실수한다? 지금 집에 박태식 저놈도 와있는거 잊었어?”
“빡태씩이? 아~ 야 빡태씩이!! 너 아주 그냐앙 한번 만 더 우리 애 괴롭혀바! 어엉? 그땐 내가 확 고냥 밭 거름으로 만들어버릴라니까아!!”
“….”
묘하게 사람 이름을 욕하는 것 처럼 부르는 화연의 술주정에 박태식과 송강욱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쯧… 안되겠다. 야, 박태식. 난 누나가 어질러논거 정리할테니까 잠깐 누나 좀 보고 있어.”
“뭐? 야야 이 새꺄! 내가 니 누나를 어떻게 감당해?!”
박태식이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송강욱은 그대로 들은 채도 안한 채 부엌을 정리하러 가버렸다. 그러자 식탁에 꽐라가 되어버린 화연과 단 둘이 되어버린 박태식은 무척이나 뻘쭘한 분위기와 함께 식탁 위에 드러누워버린 금발 미인을 바라보았다.
“히끄윽, 내가 말이야아 어엉? 이순신 장군이랑 술도 같이 마시고, 어? 허준한테 약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어? 그랬던 사람이다~ 이말이야~!”
“…이 누나, 술주정 한번 참 특이하네.”
워낙에 주변 어른들이 술을 많이 마셨던 탓에 사람이 술주정 부리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온 박태식이었지만 화연의 술주정은 아예 그 차원이 다른 편이었다. 술을 마시고 옛날 이야기나 본심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자주 있어도 왠 픽션 그 자체인 이야기가 튀어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저기요 누님, 술 취한거 잘 알겠으니까 그만 하고 들어가서 쉬시죠.”
“나 안취했써어~!! 내가 이정도에 취할 쭐 알아아??”
“아오 진짜…”
송강욱 이 새끼가 진짜… 이런 걸 나한테 떠넘기면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는거야…
그칠 줄을 모르는 화연의 술주정에 박태식은 속으로 송강욱을 욕하며 식탁 위를 뒹굴던 술병을 옆으로 치웠다.
“치우지 마아! 더 마실꺼야!”
“이거 빈병이거든요?”
“볐긴 뭐가 볐어?! 니 머리가 볐겠지이! 그냥 내놔아~!”
“아니, 빈병이라니까 왜 난리에요?!”
텅텅 비어서 술 한방울도 안떨어지게 생긴 빈 술병을 두고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박태식은 좀비처럼 들러붙으려는 화연에게 저항했다. 그러자 그 순간, 술에 취해 눈에 뵈이는게 없었던 화연은 그대로 발끈하며 손을 한번 휙 내지었다.
[둥실-]“어?”
갑작스런 부유감이 박태식의 전신을 감쌌다. 손짓 한번에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에 붕 떠버린 박태식은 멍한 표정으로 공중에서 허우적거렸고, 이에 화연은 그런 동생 친구를 바라보며 꼴 좋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확 마! 고러게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이!”
“???”
빈 술병 하나 때문에 애꿎은 사람을 마법으로 공중에다 띄워버린 화연이 그렇게 외치며 빈 술병을 가지고 소주컵에다 투명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무것도 든게 없는 소주병을 원샷해버린 그녀는 이내 시원하다는 듯이 바닥에 뻗어버렸다.
그 후로 밤새도록 박태식을 공중에 띄워놓았던 채로.
————————-
“…내가 그랬었다고??”
짤막한 옛날 얘기가 끝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화연이 전혀 기억에도 없고 믿겨지지도 않는다는 듯이 당황하며 산부인과 교수, 박태식에게 물었다.
“허헛.”
“….”
화연의 물음에 박태식 교수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전부 사실이라는 듯 웃는 박태식의 모습에, 화연은 할 말을 잃었고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봐. 정체 숨기면서 살 생각 없지?”
“그, 그…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회피 수단을 사용한 화연. 일단 무조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본 그녀였지만 당연히 그런 변명만도 못한 변명이 먹힐리가 만무했다.
“오신 김에 신경외과도 약속 한번 잡아드릴까요? 기억이 안나신다니까 걱정이 좀 되는군요.”
“아니 뭐어… 그럴 것 까진 없는데…”
“아뇨 누님. 그런 건 빨리빨리 진단을 받아야 초기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 왜 치매가 온 걸 수도 있잖습니까?”
“…야 박태식이. 너 많이 컸다?”
듣자듣자 하니 갑자기 멀쩡한 사람을 치매 환자로 몰아가려는 박태식의 음해에 화연은 살짝 발끈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러자 이에 박태식은 그저 웃으며 능글맞게 그녀의 경고를 받아넘겼고,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아무튼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군요. 보아하니까 가족도 생기신 모양이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할까.”
달라진 걸로 치면 박태식이야 말로 아예 못 알아 볼 정도로 달라졌다. 그렇게 화연은 양아치에서 의사로 돌변한 산부인과 교수를 바라보며 사돈 남말하지 말라는 얼굴을 지었다.
“예전에는 어떤 분위기였길래 그럽니까?”
지금의 화연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는 박태식의 말에 이한성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그러자 이에 박태식은 잠시 듬성듬성 희게 새치가 든 머리를 긁적이더니, 단 한마디로 그녀의 예전 모습을 축약했다.
“꼰대였죠.”
[푸욱-]…방금 뭔가가 사람 가슴 팍에 팍 하고 꽂힌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에 옆에 앉아있던 화연을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얼굴은 마치 화살에 가슴이 박힌 것 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허구한 날 라떼는 라떼는 노래를 부르시던 분이셨습니다. 거의 맨날 양로원 같은데 놀러가서 동네 어르신 분들이랑 어울려 다니셨고요.”
“….”
“아, 그리고 또 폭력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셨죠 예. 뭐만 하면 등짝을 후리시는게 취미셨습니다.”
“….”
화연을 바라보는 이한성의 시선이 점점 더 어두워져갔다. 하나 둘 씩 까발려지는 흑역사에 부끄러워서 금방이라도 수치사 할 것만 같았던 화연은 그런 이한성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고, 제발 잊어달라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하하… 요즘 한강물 온도가 좀 어떠려나… 갑자기 궁금해지네…”
시간 여행 마법이라는 것만 있었어도 확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흑역사들을 지우고 싶었던 화연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편리한 마법 따윈 없었다.
…하여간에 꼭 필요할 때 쓸모가 없는 것이 바로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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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의 이런저런 흑역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밑천을 드러내고, 예정했던 것 보다 조금 늦게 외래는 끝이 났다.
“음… 당장 이상한 것 없군요. 문제 없으시다면 2주 뒤에 다시 찾아뵈도 괜찮겠습니다.”
박태식 교수가 검사결과를 살펴보고는 이제 막 이런저런 검사들을 끝마치고 온 화연과 이한성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달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싱겁다는 생각을 조금 하며 박 교수에게 확인 차 물었다.
“정말로 괜찮은겁니까?”
“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역시 예상했던 대로 화연 누님의 혈액형이 사람의 것 과는 완전히 다른지라 추후에 좀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은… 당장은 넘기는 수 밖에 없겠죠.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니.”
“…그 곤란한 일이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일입니까?”
“나중에 출산하실 때 수혈이 불가능할 거라던가, 아니면 태아에게 유전될 수 있는 병들을 초기에 잡아내는게 힘들다던가, 뭐 그런거죠. 누님이 겉모습만 사람이랑 닮으셨지, 실상은 완전 외계인이시니 말입니다.”
외계인이라는 범주에다 다른 차원에서 온 이종족까지 포함시킨다면, 화연은 어엿한 한명의 외계인이다. 단지 사람들이 픽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엘프라서 그렇게 잘 느껴지지 않는 것 뿐.
박태식 교수의 솔직한 말에 이한성과 화연의 얼굴에 잠시 근심이 깃들었다. 그러자 이에 박 교수는 병 줬다가 약이라도 주는 듯 희소식을 하나 던졌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어날 아이가 절반은 사람이니 뭐, 애는 현대 의학으로도 충분히 케어가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당장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학적으로는 굉장히 안심이 되는 부분이다. 적어도 엘프라는 종족이 외계인 만큼이나 사람과 동떨어진 존재라는 건 아니라는 뜻이니.
“그나저나 저 없었으면 어쩌 셨을려고 덜컥 애를 가지신 겁니까?”
“그… 정 안되면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었지.”
“….”
21세기에 자연분만을 하겠다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봤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박 교수의 표정에 이한성은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박 교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다시피 이런 사람이라서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앞으로도 고생이 참 많으시겠군요…”
애엄마가 저런 사람이라 참 힘들겠다는 박 교수의 격려에 이한성은 그저 영혼없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런 둘의 대화를 들은 화연은 자신보다 수백 년은 어린 두 남자를 째려보았고, 이에 이한성과 박 교수는 서로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다른 환자분들도 기다리고 있을텐데, 빨리 나가야겠네.”
“어음… 환자 차트가 어딨더라…”
화연의 시선을 피해 이한성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섰다. 그러자 이에 화연 또한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순간 박 교수의 목소리가 방을 나서려던 그녀를 잠시 붙잡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셨군요.”
“….”
좋은 사람. 먼저 나간 이한성을 그렇게 부른 박태식의 말에 화연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그래. 좋은 사람이야.”
나중에 다가올 이별이 두려워질 정도로.
“결혼 소감은 좀 어떠십니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할 만 하지요?”
“…응. 즐겁네, 생각보다.”
늘 무료하기만 했던 삶이 이렇게 까지 즐겁고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는 줄은 몰랐다. 이런 나날들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염치없이 계속되기를 바랄 정도로 사는 것이 즐거워졌다.
“하하, 역시 신혼이시군요. 나중에 몇 년 지나고 보면 슬슬 진절머리가 날 겁니다 아마.”
“글쎄, 나한테는 수십 년도 짧아서 몇 년 가지곤 힘들거야.”
다 즐기기도 전에 금새 지나가버리고 말테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긴, 누님에게는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군요.”
“너도 수백 년을 살다 보면 나처럼 될거야. 시간이라는게… 생각보다 박하거든.”
그 한마디와 함께 화연은 살짝 쓸쓸하면서도 웃음을 지어보이며 다시 한발자국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그 순간, 박태식은 마지막으로 그녀가 가지 전에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행복하십니까?”
“….”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던 화연의 발걸음이 문 앞에서 다시 멈춰섰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말없이 방을 나섰다.
[덜컥-]열렸던 문이 닫히고, 진료실 안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방 안에 홀로 남게 된 박태식은 자신이 어렸던 시절에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미소에 널널한 웃음을 지으며 나지막히 홀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그거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