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5화(17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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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연이 테이블 위에다가 빈대떡을 빚는 일은 없었다.
“내가 고깃집에 까지 와서 풀때기를 먹어야 한다니…”
간발의 차로 화장실로 달려간 덕에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던 화연이 섬유질 덩어리를 질겅이며 아주 비참한 웃음을 내지었다.
“그러게 뭐하러 억지로 고기를 먹으려 한거야?”
“…난 입덧이라는게 이렇게까지 심한 건 줄은 몰랐단 말이야.”
그동안 지인들이 임신했던 모습은 여러번 봐왔던 화연이었지만 그랬던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덧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봤을 때 마다, 그녀는 그들이 정신력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이겨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
아주 꼰대스러운 마인드. 나이가 나이인지라 꼰대스러운 면모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그녀 본인이 그동안 자신의 마인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마인드였는지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위안이리랴.
“아마 한동안은 계속 입덧 때문에 먹는 걸로 고생하실겁니다. 제 와이프도 꽤나 고생했었거든요.”
강수철 교수가 참 딱하다는 듯이 동정어린 시선으로 화연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충고했다.
“…보통 언제까지 이러나요?”
“음,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보통 임신 4개월 내지 5개월 까지는 심하게 계속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임신하신지 얼마나 되셨는지…”
“2주차에요.”
“2주요? 어… 그럼 평균보다 입덧이 훨씬 빨리 오신건데…”
보통 입덧이 오기 시작하는 시기는 임신 4~8주 차. 헌데 그것의 반 정도로 빠르게 입덧이 찾아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의사인 강수철 교수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얼굴과 함께 살짝 근심어린 시선으로 화연과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화연에게 입덧이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온 이유는 다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남들에 비해 특이 케이스였기 때문일 뿐.
하프엘프를 품고 있는 엘프. 아이가 지닌 마력과 모체가 지닌 마력이 계속해서 충돌을 거듭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빠르게 찾아온 입덧은 그러한 크고 작은 영향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하프엘프에 관한 의학적이고도 마법적인 연구가 지구에서도, 테라리움에서도 제대로 이뤄졌던 적이 없기에 의사인 강수철도, 엘프인 화연도 그 사실을 알고있을리는 만무했지만.
“뭐… 담당 의사 분이 알아서 잘 해결해 주실 거니 제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의사라지만 강수철 본인은 어디까지나 간담췌외과 교수다. 그리고 임신과 관련된 케이스는 산부인과의 영역. 간 수술만 거의 주구장창 다뤄온 그가 임신에 대해 더 잘 알지, 아니면 산부인과 의사가 더 잘 알지 비교를 한다면 정답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위이이잉-]“?”
대화 도중에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각자 밥을 먹다 말고 주머니를 뒤적거렸고, 제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아이고야, 가봐야겠네.”
울리던 것은 강수철 교수의 핸드폰이었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며 고기를 한꺼번에 입에 잔뜩 집어넣은 채 달려나갔고, 이에 둘만 남게 된 이한성과 화연은 멀어져 가는 하얀 가운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암만 돈을 많이 벌어도 의사는 영 될 것이 못 되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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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철 교수가 먼저 계산을 끝마치고 자리를 비운 후, 화연과 함께 느긋하게 식사를 끝마치고 나온 이한성은 소화시킬 겸 잠시 그녀와 같이 병원 앞을 걷기 시작했다.
“어우, 고기 한번 배부르게 먹었네.”
“…난 한 점도 못 먹었지만 말이야.”
매우 만족하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이 잔뜩 토라진 얼굴로 그렇게 대꾸했다.
“으으… 당분간 이렇게 계속 풀때기만 먹어야 한다니… 내가 무슨 스님도 아니고 이게 뭐야.”
최소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계속 풀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참으로 캄캄하다. 그 고기가 귀했던 조선시대에서도 사냥을 통해 고기 만큼은 배부르게 먹어왔던 화연은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의 처지에 깊은 한탄을 내뱉었다.
“하긴 뭐… 힘들긴 하겠네. 못 먹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입덧 때문에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임신 중에 먹어선 안될 것들은 차고 넘친다.
가령하여 술이라던가, 술이라던가, 또 술이라던가.
[멈칫-]이한성이 딱하다는 듯이 내뱉은 한마디에 화연이 갑자기 걷다가 말고 발걸음을 멈췄다.
“? 왜 그래?”
핸드폰이라도 놓고 나왔나? 지금 표정이 딱 그런 느낌인데.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멈춰선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이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물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꼭 세상의 멸망이라도 깨달은 듯한 얼굴과 함께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 잠깐만… 그럼 나… 술도 못 마시는거네…?”
“….”
저기요. 그런 걸 질문이랍시고 물어보십니까? 당연히 못 마시지. 태아 알코올 증후군이라고 못 들어봤나??
어이가 없는 질문에 이한성은 기가 찬다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화연은 그런 그의 시선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그저 나라를 잃은 표정과 함께 간신히 가출하려는 혼을 붙잡는데 필사적일 뿐이었다.
“술 뿐만이 아니라 커피 같은 것도 가급적이면 마시면 안될걸?”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대충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들도 임신 중에는 피해야 한다는 지식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지나치듯 본 적이 있다. 물론 인터넷이라는게 별로 과신할 건 못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고기도 못 먹어, 술도 못 마셔, 하다하다 커피까지 조심해야 된다니… 난 틀렸어.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
“아니, 저기요. 무섭게 무슨 소리십니까;; 못 버티긴 뭘 못 버텨?”
“분명 죽을거야… 안녕 인생아… 600년을 살다 이리 가는구나…”
“안죽어! 그런거 못 먹는다고 안 죽으니까 기운 좀 차려!!”
그깟 고기랑 술, 그리고 커피 못 마신다고 사람이 죽을리가 없잖아.
고기와 술, 그리고 커피 중 그 어느것에도 딱히 환장하지는 않는 이한성은 벌써부터 죽을려고 하는 화연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600년이라는 무료한 인생을 살며 기쁨이라고는 늘 먹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화연에게 있어 앞선 세가지를 먹고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있는 시련이 아니었다.
[홱!]“아 깜짝이야.”
좌절하고 있던 화연이 갑작스럽게 고개를 홱 돌려 이한성을 째려보았다.
“네가 알아…? 과제 끝내고 동기들이랑 같이 먹는 삼겹살+소주가 얼마나 달달한지…??”
모른다. 고졸인데다가 술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마셔본 적도 없으니.
“바로 내일이 발표인데 밤을 새서 과제를 끝낼 때 카페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아. 그건 좀 알 것 같네. 알바생활 할 때 야간근무에서 에너지 드링크가 없으면 버티기가 힘들긴 하지.
“난 망했어. 가망이 없다구우…”
“….”
질책하는 것만 같던 화연의 목소리에서 점점 기운이 빠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삶을 포기한 사람마냥 기운이 방전되고 말았다. 고기, 술, 카페인을 섭취하지 못한다는게 엔드게임일 정도로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런게 엘프?? 아니, 보통 엘프들은 자연을 보호한답시고 풀이랑 이슬만 먹고 살지 않아? 대체 인간 문화에 얼마나 찌들었길래 고기랑 술 좀 못 마신다고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린다니…
“…앞으로 10개월 동안만 참아. 힘들긴 하겠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이한성이 주저앉은 화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이내 거의 울먹이다 시피 하는 목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씨이… 두고 봐, 임신 끝나면 배 터질 때 까지 먹을거야.”
“그래그래. 그때는 안 말릴테니까 나중에 마음껏 먹어.”
꼭 투덜거리는 모습이 수정이랑 똑 닮았다. 600살이나 먹어놓고도 먹고싶은 것 하나 마음 껏 못 먹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땡깡을 부리다 시피 하는 그녀를 본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자신보다 몇백살이나 나이가 많은 연상을 그렇게 달랬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당분간은 휴학 하는게 좋지 않아?”
“…휴학? 아.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이 물어본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은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임신을 하게 된 이상 학교를 쉬는 건 불가피하다. 지금 당장에야 초기라서 먹는 것만 빼면 별로 불편할 게 없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생활이 불편해지게 될 것이다.
“음… 그래도 지금 휴학 하기는 시기가 좀 그런데.”
현재 시기는 이제 막 봄이 지나가고 초여름이 시작된 시기. 보통 3월달에 학기를 시작해 6월 달에 종강을 하는 대학교의 일정으로 보았을 때, 지금 당장 휴학신청서를 내기에는 학업적인 면에서 별로 좋지 못한 시기다.
“그냥 이번 학기 까지만 다니는게 좋지 않을까? 종강까지 한달 반 정도 밖에 안남았으니까 별로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은데…”
생활에 지장이 슬슬 생기기 시작하는 임신 중기가 찾아오기 전에 학기를 끝낼 수 있으니 당장 휴학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물론 초기라고 해도 최대한 조심하는게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과한 조심성은 되려 화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라는 걸 화연은 오랜 세월을 통해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게 아니니까.”
조심스럽게 꺼낸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화연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고, 고맙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농담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내가 진짜 살다살다 임신도 해보는구나~ 지금까지 살면서 남들이 임신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소감이 어때?”
“소감? 글쎄… 뭔가 실감이 잘 안나네. 애가 생기자마자 막 모성애가 솟구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가봐.”
“그야 그렇겠지. 뭐 솔직히, 애가 생겼다고는 해도 아직 세포잖아.”
아직 세포분열도 다 안끝났다는데, 그걸 가지고도 모성애가 막 솟구친다면 픽션이겠지.
“그러는 너는? 애아빠가 된 소감이 들어?”
“…글쎄올시다.”
애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냐고? 이미 당장 키우고 있는 딸만 둘인데 이제와서 그런 기분이 들리가. 그런 기분은 예전에 수정이가 걸음마를 뗐을 때 진작에 느꼈지. 게다가 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생긴 거라서 별 감흥도 안드는구만 뭘.
새로운 기분 같은 건 별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애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 그대로의 기분만 느껴질 뿐이다. 그것도 당장 있는 애들만으로도 벅찬데 골칫거리가 늘었다는 느낌.
“애를 가진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별 소감이 없는데.”
“후훗,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람 가슴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애들이 좋아할까?”
잠시 주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늘을 바라보니 지나가는 구름이 햇살을 가린 채였다.
“수정이라면 좋아라 할걸?”
세리는 어쩔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식구 모두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던 화연과 이한성이었지만 아이들은 임신이라는게 뭔지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나중에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새 동생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알게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한성은 왠지 모르게 보지 않고도 선명하게 그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왜, 애들이 따돌릴까봐 걱정이라도 돼?”
“아,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수정이랑 세리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는 나도 잘…”
순간 여러가지 기억들이 화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이한성과 자주 왕래했던 만큼, 왠만한 순간들을 수정이와 세리와 함께했던 그녀는 수많은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법으로 방을 얼린다거나, 벽을 브레스로 날려버린다거나, 아니면 텔레포트로 저기 지구 반대편의 사막까지 날아가서 폭설을 내리게 한다거나.
“차, 착한 아이… 착한… 착한…? 아, 아무튼 좋은 아이들이잖아.”
빈말로도 착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화연. 물론 두 아이가 달리 악의를 가지고 그동안 사고를 쳐온 것은 아니었으나, 어째 반성을 해도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 처럼 느껴졌기에 착하다는 말은 별로 수정이와 세리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괜찮겠지?”
“….”
화연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여나 태어나게 될 아이가 수정이와 세리에게 물들어 대형사고를 뻥뻥 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품고 있는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 또한 달리 대답을 내뱉지 못한 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태어날 아이가 수정이와 세리만큼 사고뭉치가 아니기를 비는 이한성과 화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