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6화(17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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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띠디딩!]“아하하!”
“….”
대낮의 카페 안에서 불협화음이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한성은 아주 즐겁다는 듯이 들려오는 수정이의 웃음소리를 지켜보며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일요일. 수정이가 하도 집에서 할 게 없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가게에 데리고 나오게 된 이한성이었지만, 설마 그렇게 가게에 오고 싶어 했던 이유가 피아노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데리고 나온 건 수정이 뿐만이 아니였다. 마치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다 딸려오는 1+1 세일처럼, 수정이를 데리고 나오니 자연스럽게 세리도 나오게 되었고, 그렇게 이한성은 자매끼리 사이좋게 피아노 앞에 앉아 지옥의 듀엣을 연주하는 것을 그저 거슬린다는 듯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당장 일요일이라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없어서 망정이었지, 다른 날이었다면 애초에 가게에 데리고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두 꼬마 숙녀들이 저렇게 피아노를 가지고 난리를 쳐대면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일요일인 덕에 딱히 애들이 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걸 뭐라 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되었다. 그렇기에 이한성은 선뜻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고, 이에 그의 마주편에 앉아있던 화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위로했다.
“그래도 재밌어 하니까 다행이네. 아하하…”
“…저렇게 피아노를 때려 부술라 하고 있는데 재밌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두번 재밌었다가는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피아노가 금방 맛이 가겠다 아주.
적어도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제대로 이해해도 저 불협화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차라리 그냥 애들을 피아노 학원에라도 보내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애들한테는 제대로 말 안했지?”
“응. 그게… 생각보다 타이밍 잡는게 어렵다고 해야하나… 막상 말하려고 하니까 이게 입에서 잘 안떨어지네.”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에다 손을 가져다 대며 그렇게 대답했다.
“정 힘들면 그냥 내가 해?”
“아, 아니야 괜찮아.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말해주고 싶어.”
“…그러면 말고.”
거 되게 이상한 고집을 가지고 있네. 그걸 굳이 본인이 직접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나? 뭐… 본인이 직접 하고 싶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말이야.
[끼익-]“?”
뭔가 굳게 마음을 먹은 듯한 화연의 얼굴을 뒤로 하고 알아서 잘 해보라는 듯이 말을 돌리려던 그 순간, 갑자기 가게의 문에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늘은 일요일. 오픈 싸인도 꺼둔 탓에 들어올 손님이 없어야 정상이다.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영업 중이라고 착각한건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니.
어째서 가게에 사람이 들어온건지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고, 우선 들어온 손님에게 설명을 잘 해서 다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이한성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 뭐야, 예은이 너였냐?”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인 것은 다름이 아닌 음대 지망 17세 소녀, 양예은이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가게에 온 것일까.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금방 그녀가 일요일마다 종종 피아노를 연습하러 가게에 들락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릴 수 있었다.
“사장님? 오늘 가게에 왠일이세요…?”
“보다시피 애들이 심심하다길래 데리고 나왔지.”
의외라는 투로 묻는 양예은의 물음에 이한성은 저기 피아노 앞에서 여전히 불협화음을 퍼뜨리고 있는 두 꼬마 숙녀들을 가리키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수정! 이세리! 그만 피아노에서 나와라!”
안그래도 쟤네들을 피아노에서 떨어뜨릴 명분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네.
계속해서 아이들을 내버려뒀다가는 분명 고막에서 피가 줄줄 샜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수정이와 세리를 피아노로 부터 떼어내려고 했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양예은은 그런 그를 말리려 들었다.
“아, 아니에요 사장님. 애들이 놀고 있는데 그냥 냅두시는게-”
“냅뒀다가는 이비인후과에 가봐야 할 참이거든? 넌 저 소리를 계속 듣고싶냐??”
“확실히…”
별로 계속해서 듣고 싶은 멜로디는 아니다. 양예은은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고막이 헐기 시작한 기분을 느끼며 아이들이 띵가띵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너도 이건 아니다 싶지? 알았으면 빨리 가서 피아노 좀…”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러고보니까 얘가 있었지…?
“…야, 너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네?”
“그 왜 내가 애들한테 피아노 좀 가르쳐달라고 했었잖아.”
“아… 맞다. 그랬었죠…?”
“잘 됐네. 그럼 온 김에 당장 가르쳐라.”
“???”
양예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물론 얼마 전에 도움을 받은 일로 스쳐지나가듯 이한성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었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흘러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저기요 사장님…? 저 연습하러 온건데요. 레슨시키려 온 게 아니라…”
“어허, 이제와서 두말하려고? 좀 섭섭하다??”
“….”
이한성이 농담조로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양예은의 양심을 직격으로 관통했다. 그동안 이한성에게 도움 받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던 그녀는 달리 은인의 부탁을 거절할 변명거리가 없었다.
“을긌습니다…”
양예은이 이를 악 문 채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이한성의 부탁아닌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잘 생각했다는 듯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소음을 퍼뜨리고 있는 두 골칫덩이를 음대 지망생에게 떠넘겨버렸다.
‘어쩔 수 없지. 솔직히 사장님이 그동안 도와주신게 많긴 하니까…’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간단하게 불협화음을 치지 않을 정도로만 애들을 가르치면 된다. 양예은은 그런 생각과 함께 피아노에 앉아있던 수정이와 세리에게 다가갔고, 이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안녕 애들아.”
“? 피아노 언니!!”
양예은의 인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역시나 수정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세리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양예은을 흘끔 쳐다보았고,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인상을 팍 구길 뿐이었다.
“그… 언니가 피아노 치는 법 가르쳐 줄까?”
“정말?! 응응!!”
수정이가 아주 훤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그러나 역시 세리의 반응은 여전히 아나꼽다는 기분이었다.
“…인간 주제에 언니한테 뭘 가르친다는거야.”
“?”
거의 들리지 않게 내뱉어진 세리의 혼잣말에 양예은은 뭐라도 말했냐는 듯이 세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에 세리는 그저 고개를 홱 돌리며 그녀를 무시할 뿐이었다.
‘어… 내가 싫은건가?’
그닥 미움받을 만한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표정으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아무리 봐도 미움받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양예은은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세리와의 불화를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기다려줄 마음이 전혀 없던 수정이가 그녀를 재촉해왔다.
“언니언니!! 빨리 가르쳐줘!!”
“어어, 그래… 그럼 우선 도레미파솔라시도 부터 배워볼까?”
수정이의 재촉에 양예은은 기초 중의 기초를 최우선으로 가르치기로 하며 건반을 짚었다.
[띵~]“자, 이게 [도]야.”
가까이 붙어있는 검은 건반 2개의 바로 앞에 있는 하얀 건반.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C, 혹은 다 장조의 으뜸음이라고 해야하지만 딱히 전문적으로 가르칠 생각은 없기에 그렇게 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여기 부터 시작해서 레, 미, 파, 솔, 라, 시, 그리도 다시 [도]지.”
“우왕!! 처음이랑 마지막이 똑가타!”
음계를 알려주기 무섭게 수정이는 검지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하나씩 눌러보았다. 그러자 음이 하나씩 뚝뚝 끊기며 울려퍼졌고, 이에 양예은은 바로 이어서 건반 누르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건반 위에 한번 손을 올려볼래? 이렇게 둥글게.”
“둥글게?”
양예은이 시범을 보여주자 수정이는 이를 어설프게나마 따라했다. 그러자 양예은은 수정이의 손을 교정해주었고, 이내 똑같이 따라해보라는 듯이 간단한 스케일을 치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음악 다운 소리가 나네.”
멀찍이서 수정이의 레슨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이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예은이 쟤, 가르치는데 소질 있는데?
피아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쥐꼬리도 없지만 난생 피아노를 배워 본 적 없는 7살짜리 꼬마를 가르치기 시작한지 5분도 안되어서 대충 그럴싸하게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쯤이야 잘 안다.
애초에 피아노든 뭐든 간에 애들을 가르친다는 건 개떡같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지, 금새 질려서 딴짓 하지, 기운은 또 넘쳐서 잠깐만 눈을 떼면 사고를 치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극한의 일상을 매일같이 겪고 있을지, 다시 한번 묵념을 표하자.
그렇게 이한성은 속으로 수정이의 담임교사인 양혜미를 포함한 모든 초등 교사들을 동정하며 셋이서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짚는 애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좋다, 이런거.”
화연이 조용히 눈을 감으며 어설프게 울려퍼지는 피아노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이한성은 감상에 빠진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문득 궁금해졌다는 듯이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뭐 악기 할 줄 아는 거 없어?”
“나? 어… 몇 개 있긴 한데.”
“어떤거?”
“가야금이랑, 해금이랑, 아쟁이랑…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가야금은 알겠는데 해금이랑 아쟁은 또 뭐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죄다 동양 악기들 뿐인 것 같은데… 하긴 뭐, 그렇겠지. 조선 반도에 600년 살았으면 그럴 수 밖에. 그냥 뭐랄까… 잘 상상이 안되는 것 뿐이다.
한복을 입은 채 가야금을 켜는 금발 벽안의 엘프? 얼마 전에 한옥마을에 놀러갔을 때 한복을 입은 모습을 봤던 덕에 한복 까지는 어렴풋이 상상이 어렵지 않게 가지만, 거기에다가 가야금을 켜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뭔가 이미지화 하기가 조금 힘들다.
“…나중에 한번 보고싶네.”
“뭐어… 보여주는거야 어렵지는 않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마. 안 한지 오래됐으니까.”
“? 얼마나 오래 됐는데?”
“80년.”
어우. 오래도 안했네.
당장 음악가들이 말하기를 1년만 악기를 안만져도 손이 굳고 머리가 굳는다는데, 80년이나 그런다면 아마 간신히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풍류라도 한번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은…”
“….”
갑자기 화연의 얼굴에 그림자가 팍 드리워졌다. 무언가 안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옛날 일이 잠깐 떠올라서.”
“…옛날 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표정이 저렇게 어둡대냐? 딱 느낌으로 보아하니까 직장에서 회식이 있는데 높은 꼰대 부장들한테 억지로 술자리에 끌려가서 장기자랑이라도 했던 것 같은 얼굴인데…
“…한 400년? 500년? 전 쯤에 전쟁통에 어쩌다가 장군들 술자리에서 가야금을 켰던 일이 있었거든.”
“어쩌다가…?”
400년 500년 전에 있던 전쟁이라면… 임진왜란을 말하는건가?
역사에 약한 이한성이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전쟁이라고 해봐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전부. 화연이 말하는게 그 두개의 전쟁 중 어느쪽이던간에, 전쟁통에 피난을 가진 못할 망정 술자리에서 가야금이나 켰었다는 화연의 말은 이한성에게 있어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복잡해.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서 장군들 풍류 즐기라고 가야금을 키고 있었는데 말이야, 자꾸 짜증나게 생긴 놈 하나가 자꾸 찝쩍대서 기분이 더러웠던 적이 있었어.”
“그게 누군데?”
“말해줘도 모를… 아니다, 알 수도 있겠다.”
…한국사에 무식한 내가 알 정도의 인물이라면 유명인이라는 뜻인데. 그때 유명했던 장군들이 누구누구 있었더라…?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라고 해봐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순신 장군 뿐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께서 여자한테 찝쩍 거리셨을 리는 없으니 그 외에 다른 사람이라는건데… 그 시대에 그런 짓을 했을만한 유명인을 내가 알고 있을리가…
“원균.”
“….”
오. 나도 알고있는 인간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