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7화(177/245)
177
원균.
이순신 장군과 같이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 수군을 이끌었지만 명장 중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후세에 성웅이라고 까지 칭송받게된 이순신 장군과는 달리, 후세들에게 두고두고 까이며 온갖 욕이라는 욕은 전부 쳐먹는 졸장 중의 졸장.
무능하고 음흉하며, 질투심은 하늘을 찌르고 인간성마저도 글러먹었던, 인간쓰레기의 아주 훌륭한 표본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 바로 원균이다.
그리고 지난 600년 동안 살아온 화연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 또한, 원균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것과 똑같이 아주 안좋은 쪽으로.
어쩌다가 그녀가 그런 인간과 상종을 하게 됐었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꽤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 부터 약 400년 전, 옥포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치를 지닌 정자(亭子)에서, 여러 장군들이 모여 술자리를 벌인 일이 있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의 첫 승전이자 이순신 장군의 첫번째 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옥포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술자리. 전쟁통에 무슨 술자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승리를 기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당시 술자리를 열자고 가장 강하게 건의했던 원균은 주변 마을에서 악기 좀 다룰 수 있다 하는 사람은 죄다 불러와 술자리에 건 반강제로 초청했었다. 술을 즐기는데 음악과 여자가 빠져서는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당시 화연은 하필이면 가야금에 푹 빠져있었다. 오래 살다 보니 하도 할게 없어서였는지, 그 당시의 그녀는 그저 하루가 가다 시피 온종일 집에서 가야금만 켜대는 방구석 폐인이었고, 때문에 마을 사람들한테도 가야금에 미친 처자라고 불리며 꽤나 유명한 편이었다.
“그래, 듣자하니 자네의 가야금 실력이 외모만큼 그토록 뛰어나다고 하던데.”
“….”
덕분에 괜히 원균의 귀에까지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
‘…내가 대체 뭐하다가 이곳에 오게 된거지…?’
그 당시에 갑자기 술자리로 거의 끌려가다 싶이 불려나갔던 화연의 생각은 오직 당혹스러움 만이 가득했었다.
“그럼 어디 한번 켜 보아라. 한번 실력을 보자꾸나.”
“…받들겠사옵니다.”
하지만 당혹스럽다 한들, 그 당시 그녀에게 있어 거절권 따윈 없었다. 높으신 장군들이 한낮 평민 처자에 불과했던 그녀에게 악기를 켜보라는데, 거절하려 했다가는 당장 불벼락을 맞을 것이 너무나도 뻔했으니.
‘나보다 200년은 어린 것들이 힘 좀 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그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술자리에서 가야금을 켤 수 밖에 없었던 화연. 다행히도 실력 만큼은 확실했던 그녀였기에 연주하는데 있어 지장은 딱히 없었던 것이 행운이었을 것이다.
화연의 연주가 시작되자 장군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며 서로 술잔을 받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앞으로 성웅으로 사람들에게 길이길이 받들여질 이순신 장군도 있었고, 또한 반대되게 두고두고 못난 놈으로 까일 원균도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애석하게도, 둘의 인물상은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였다.
“자네, 이리 와서 술 좀 따라보게나.”
“…?”
한창 연주 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와서 술을 따르라는 원균. 기생의 신분으로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연주자의 신분으로 온 처자한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의도가 너무 뻔했다.
“…외람되오나, 소녀는 기생이 아니옵니다.”
“어허, 그냥 와서 술만 좀 따르래도.”
“….”
퍽이나 술만 따르게 하려는거겠다. 얼굴에 아주 그냥 속내가 빤히 드러나고 있는데.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관심법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표정만 봐도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벌그레진 얼굴에 음흉한 미소. 눈빛에 스산함이 묻어나는 것이 딱 보아도 외설스런 생각만이 가득하다. 화연이 본 원균의 얼굴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재수가 없는 날이로구나.’
갑자기 끌려나와 가야금을 키게 했을 때 부터 운수가 사납다는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직감이 들어맞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화연은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가 없는 높으신 분의 말에 그저 한숨을 내쉬며 확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냈다.
사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술자리를 아예 엎어버리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 뒤끝이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그녀는 참을 인 자를 속으로 새기는 것을 택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곱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화연이라 하옵니다.”
“이름도 예쁘구나. 허허, 좋다. 어서 따르거라.”
원균이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화연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놈의 잔에다가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속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날 것 같은 기분을 꾹 억눌렀다.
‘참아야 하느니라… 엎는거야 쉽지만 수습하는 것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냥 잠깐 기분 더러운 것을 참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 생각으로 원균의 기분나쁜 시선을 애써 무시하려던 화연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원균이라는 작자의 음흉함은 단순히 그녀에게 술을 따르게 함으로써 그칠 정도가 아니었다.
[스윽-]화연이 잠시 술잔을 따르느라 한눈을 팔던 와중 원균의 손이 마치 꼭 독사가 사냥감을 희롱하려는 것 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대로 화연을 향해 닿…
“경상 우수사.”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저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순식간에 잠재운 목소리는 다름아닌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였다.
“자네, 술은 그쯤 마시는게 좋을 듯 하군.”
“자, 장군, 허나 술자리가 아직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무슨-”
“내 눈에는 충분히 무르익은 듯 하오. 마을 처자를 기생과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니.”
“….”
원균은 이순신 장군의 앞에서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대꾸하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눈빛은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할 정도로 매서웠기에.
“화연이라고 했었나? 술병은 내려놓고 가서 연주를 계속하거라.”
“…알겠사옵니다.”
끽소리도 못한 채 쭈그러든 원균을 뒤로 한 채 이순신 장군이 그리 말하자, 화연은 공손이 인사를 올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가야금을 켜기 시작했다.
…훗날 그냥 그 자리에서 원균을 묻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뭐 대충 그런 일이 있었지.”
“….”
…듣다보니까 느껴지는건데, 사실 화연이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 이 아니라 엘프 아닐까?
술마시고 텔레포트를 하다가 태종 이방원이랑 술친구를 하게 됐던 것도 그렇고, 하다하다 이순신 장군의 술자리에서 가야금 연주를 하기까지 했었다니, 들으면 들을 수록 어째 인맥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그냥 참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왔구나, 싶어서.”
이한성의 시선을 느낀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그리 대답하며 다시 한번 화연이 한국사의 산증인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상기했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그게 끝이야? 그 뒤에 무슨 일 더 없었어?”
자그나마치 다른 누구도 아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그 어떠한 소설이나 영화, 혹은 역사 기록보다 정확한, 산증인이 본 위인의 이야기.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이다.
“음…”
그렇게 이한성이 호기심과 함께 묻자, 화연은 잠시 기억을 차근히 더듬기 시작했다.
“뭐어… 그 뒤로도 간간히 불려나가서 가야금을 켜긴 했었지.”
가야금 연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소란이 일어난 후에도 이순신 장군은 여러번 화연을 술자리에 불르고는 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전과 같이 다른 장군들도 모인 큰 자리가 아닌 개인적인 술자리에만 불렀다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이유는 아마 원균 같은 작자가 또 화연에게 찝쩍거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정체를 들키지는 않았었지?”
그동안 부주의함으로 자신의 정체를 들켜온게 한두번이 아닌 화연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영 미심쩍다는 눈빛과 함께 그렇게 물었다.
“에이, 당연히 안들켰었지.”
“확실해?”
“응. 들킨 적은 없었어.”
“….”
어째 꼭 말투가 들키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모순적이게 들려오는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이번에는 정말로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었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지, 진짜야! 그때는 정말로 들킨 적이 없었다구!”
“또 술 때문에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니고?”
“그…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이번에는 그래도 확실해!”
이것 봐. 가능성이 없다는 걸 확신하지 못하는 것 부터가 영 신뢰가 안가는구만 뭘.
당장 술을 마시면 필름이 바로 끊겨버리는 체질인 그녀다. 임신 기간 동안 소주 못마신다고 죽을라고 했던 그녀가, 술자리에서 가만히 가야금만 켰을리가 없다.
‘왕 앞에서 술주정을 부렸던 것도 모자라 그 누구도 아닌 이순신 장군 앞에서 술주정을 부린거라면…’
만약 그런거라면 앞으로 술은 절대 입에 대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이한성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저, 정말이래도? 난 진짜 그때 술자리에 가서 가야금만 켰었단 말이야!”
맨정신으로 높으신 분 앞에서 함부러 술을 마셨을리가 없다. 그 당시에도 본인의 술버릇이 얼마나 심각한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화연이었기에 그녀는 이순신 장군 앞에서 단 한번도 술을 입에 댔던 적이 없었다.
“그럼 왜 대답을 그렇게 애매하게 한건데?”
“그건…”
이한성이 설명해보라는 듯이 캐묻자 화연은 잠시 말끝을 늘어뜨렸다.
-대답해보게.
오래 전 장군께서 물었던 질문이 화연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날의 이야기를, 화연은 나지막히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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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보게. 자네는 내 앞날이 어찌될지 알 수 있는가?”
밤에 뜬 보름달 아래에서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던 가운데, 밤하늘을 나지막히 바라보던 이순신 장군이 화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걸 어찌하여 제게 물으십니까?”
화연이 하던 연주를 멈추며 가야금을 잠시 내려놓고는 그리 되물었다.
“어째서라고 생각하는가.”
“….”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건만, 다시 되돌아온 것은 또 다른 질문이었다.
“전 그저 일개 가야금을 좀 다루는 소녀일 뿐이옵니다.”
“일개 소녀가 그러한 눈빛을 지니고 있을리가 없지.”
“…제 눈 색깔은 그저 타고난 것일 뿐입니다.”
“아니, 눈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네.”
이순신 장군이 술잔을 끝까지 들이켰다. 하지만 취한 기색은 일절 없이, 영웅은 일절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눈동자로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직 세월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풍화된 자만이 그러한 눈빛을 가질 수 있는 법이다.”
“…취하신 모양이십니다. 그런 농도 하시다니.”
“….”
풀벌레 소리만이 주변에 맴돌기 시작했다. 취기는 일절 드러나지 않은 얼굴과 함께, 이순신 장군은 쓴웃음을 지으며 빈 술잔에 홀로 술을 따랐다.
“내가 이정도로 취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자네도 알텐데.”
“….”
이번에는 화연이 침묵했다. 그동안 적지 않게 술자리에 불려나와 장군의 앞에서 가야금을 켜왔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장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게 미래를 물으신다 한들, 소녀에게 그런 재주는 없습니다.”
“…그런가.”
“다만… 장군과 같으신 길을 걸은 이들 중 단 한명도 그 끝이 순탄하지는 못했지요.”
살면서 영웅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여럿 봐왔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평온을 찾은 이는 없었다. 영웅의 말로는 결국 단 하나 뿐이었으니.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불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
죽을 지도 모른다고 말해줬거니만 되려 고맙다고 말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화연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명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뜻이니.”
“….”
스산한 밤바람이 불어와 주변을 밝히던 불을 흔들리게 했다. 흔들리던 불은 그대로 조용히 꺼져버리고 말았고, 그렇게 오직 달빛만이 비춰지는 가운데 이순신 장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 먼 곳을 내다보았다.
보름달이 반사되어 비춰지는 노량 앞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