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8화(178/245)
178
“…한마디로 실수해서 들킨게 아니라, 그냥 이순신 장군님 눈치가 백단이어서 들킨거다, 이거야?”
“그렇지. 나 진짜로 천지신명에 맹세코 장군 앞에서 실수 한 적 없었어.”
조금 길다 싶었던 과거 이야기 끝에, 화연이 가슴에 손을 얹고 거짓 하나 담기지 않은 진실만을 전하며 자신의 무고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주장했다.
확실히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애초에 화연은 거짓말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짓말이 너무나도 티가 나는 편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때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입을 꽉 다물고, 그러면서 머리카락을 손으로 베베 꼬는 버릇이 있는 화연. 하지만 방금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러한 버릇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긴 뭐, 이순신 장군 정도 되는 위인이라면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하기는 했었겠지. 화연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 쯤이야 알아채는 건 일도 아니었을지도.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이순신 장군이다.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을 막아낸, 한국사의 전설적인 영웅. 그런 위인이 화연의 정체를 척 보고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그렇게 이한성은 어찌보면 역사 기록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며 자신의 여친… 아니, 와이프가 그런 대단한 위인과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후로는 뭐… 딱히 가야금을 켜달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별로 손을 안댔어. 아까 말했다싶이 80년 전 부터는 아예 손을 뗐고.”
“….”
가야금을 그만 둔 것에 그러한 깊은 사연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솔직히 난 또 하다가 질려가지고 때려치운 줄 알았지… 까고 봐서 한 300년 정도 같은 악기만 주구장창 만져댔으면 충분히 질리고도 남을 거 아니야.
단순한 이유인 줄만 알았는데 어쩌다가 보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전설적인 위인의 이야기까지 듣게 되어버릴 정도로 스케일이 컸던 화연의 가야금에 관한 에피소드. 그렇게 이한성은 듣기도 전에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치부했던 본인의 생각을 반성하며 어쩌다 보니 한참이나 멀리 떠나온 본론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나저나, 그러면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건 할 줄 모르는거야?”
“응. 전혀. 배워본 적도 없어.”
“….”
결국 서양 악기는 전혀 다를 줄 모른다, 이거구만.
가능하다면 애들한테 다룰 수 있는 악기 아무거나 가르쳐 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애석하게도 그건 힘들게 됐다는 생각에 이한성은 살짝 아쉬운 듯한 눈치를 내보였다.
물론 여전히 가야금 같은 거를 애들한테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야금 같은 건 별로 애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아무래도 클래식조차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가야금 같은 고전적이고 마이너적인 악기는 그닥 인기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배경음악으로 은은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무심코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돌렸다.
소리 좋네. 예은이 이녀석, 역시 두고두고 브금 노예로 꼭 써먹어도 손색이 없을 실력자라니까. 돈 좀 들여서 피아노도 한대 가게에 들여놓은 김에 본전까지 쫙쫙 뽑아야지.
괜히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여서 잘 알지도 못하는 최신 음악들을 셔플재생으로 틀어놓는 것 보다는 사람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손님들의 이목을 끄는데는 더 효과적이다. 보아라, 이렇게 딱 소리를 듣기만 해도 시선이 절로…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건가?”
피아노를 향해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이한성은 본인의 눈이 목격한 광경에 그저 경악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피아노에 앉아있는 것은 음대 지망생이 아닌, 오늘 막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된 사고뭉치 전쟁광인 이씨 가문의 장녀였기 때문에.
…침착하자 침착해. 일단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한번 떠 보는거야.
눈꺼풀이 닫힌 시야가 잠시 캄캄해졌다가 다시 밝게 비처졌다. 그렇게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킬때면 무조건 일단 껐다가 켜보는 것 처럼 눈을 한번 깜빡여 본 이한성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래봤자 눈에 비춰지는 광경은 아까와 똑같았다.
“…설마 우리 애가 피아노 천재-”
“응. 그건 아니야.”
혹시나 해서 이한성이 한 말에, 화연은 즉시 그의 말을 자르며 부정했다.
“피아노를 오늘 처음 배워본 애가 저렇게 치고 있는데 천재가 아니라고…?”
“천재는 아니지. 저건 단순히 [음악의 가호] 때문이거든.”
“뭔 가호??”
그건 또 뭐시여.
“[음악의 가호]라고 엘프들의 혈통을 따라 전해지는 그런게 있어. 무슨 악기든지 일단 치는 법만 알면 거의 프로 급으로 연주할 수 있는 가호랄까…”
“….”
뭐냐 그 개사기 스킬은. 그런게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거야?? 노력도 안하고 막 프로 수준으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게 다 혈통빨이라고??? 신님아, 밸런스 패치 제대로 하고 있는거 맞아요???
세상에 이렇게까지 불합리의 극치에 다다른 존재가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생긴 것도 예쁘고, 마법도 쓸 수 있고, 사는 것도 오래 살고, 머리도 좋고, 거기에다가 예술적 치트키까지 지닌 종족이 있다니, 대체 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종족을 창조한 것일까.
엘프들이 지구에 없어서 다행이었지, 아마 그런 사기 종족이 지구에 존재했었더라면 인간은 진작에 도태되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사기캐들이 어쩌다가 인간한테 멸망해가지고 지구로 피난을 오게 된건데?? 아무리 숫자로 밀린다고 해도 그렇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대단하다 대단해 ㅈ간들. 이거를 이겼네.
알면 알 수록 참으로 비현실 그 자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엘프들에 대해 오늘도 한가지 더 알게 된 이한성이 온갖 잡생각들을 그렇게 속으로 토해내며 그저 감탄을 내뱉었다.
“사, 사장님…”
수정이의 말도 안되는 연주를 지켜보던 양예은이 영혼까지 탈탈 털린 허망한 목소리로 이한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인가봐요. 나 대체 12년 동안이나 뭐한걸까… 아하하하… 하하하… 흐흐흐흐…”
“….”
쟤 멘탈 나갔네. 하기야 그럴 수 밖에. 자기가 12년 동안이나 열심히 온갖 고생을 다해가면서 해온 피아노를 누구는 하루만에 뚝딱 해치우고 있는데, 멘탈이 멀쩡하면 사람 아니지.
거의 울면서. 아니, 진짜 울면서 주식마냥 자신감이 폭락해 아주 그냥 자기혐오 수준으로 한탄하는 양예은의 모습에 이한성은 그녀를 동정했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를 막 ㅈ나 프로처럼 기깔나게 치고 있던 수정이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헛웃음 밖에 안나오네.”
아예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피아노 실력이다. 손이 작아서 옥타브까지 손가락이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건반이 저절로 눌려져 소리를 내는, 말 그대로 마법이라고 봐야 하는 연주.
[딴!]경쾌한 음과 함께 수정이의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연주가 막을 내렸다. 그러자 연주를 끝마치기 무섭게, 수정이는 곧바로 뒤를 홱 돌아보며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에게 기운찬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나 천잰가바! 막 손이 저절로 움직여!”
“야, 수정아.”
“응?”
“…너 양심이 있으면 음악가는 하지마라.”
“? 왜에?”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유를 물었다. 그런 수정이의 해맑은 질문에, 이한성은 그저 한숨만을 내쉬며 간단히 그 이유를 대답해주었다.
“그야 그건 진정한 노력을 통해 얻은 네 실력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영 이상하네. 꼭 음악물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멘토가 할 법한 대사잖아. 뭐… 나야 음악이랑은 일절 연이 없는 인간이다만.
바른 말을 하는게 영 익숙치가 않았던 이한성이었지만 지금 당장 말을 하지 않았다가는 훗날에 전세계의 음악계에 생태계 교란종을 풀어놓게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는 이상한 기분을 무릅쓰고 수정이에게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물론 그런 쐐기에 순순히 고정당할 수정이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치만 해영이 언니가 재능도 실력이랬는데?”
“걘 또 언제 그런 쓸데없는 소릴…”
틀린 말은 아니다. 재능 또한 실력이라는 말은 분명 부정할 수 없다. 재능이 있는 자들이라고 해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니.
하지만 저건? 저어거는 재능이라 말해선 안되는 부류의 카테고리다. 재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치 부스트 같은 것. 그리고 저 [음악의 가호]라는 것은 경험치 부스트도 뭣도 아닌, 현질로도 얻을 수가 없는 밸런스 붕괴 개사기 패시브.
아무리 내 딸이라곤 해도 그런 개사기 패시브로 생태계를 말아먹는건 참 괘씸-
[파직!]순간 찌릿한 살기 비스무리한 것이 이한성의 감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기가 날아온 근원은 다름이 아닌 세리. 제 언니한테 잔소리하는 것이 그리도 거슬렸는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에게 마저도 살기를 보내오는 어린 헤츨링의 사나움에, 이한성은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얌마, 암만 그래도 내가 니 애비인데 살기를 내뿜는건 좀 너무하지 않냐…?”
“수정이 언니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아빠라도 용서안해.”
“허어…”
이것 참 골때리는 자식들이네. 아니, 욕이 아니라 진짜 내 자식들이라고. 저 골 때리는 것들이.
뭐만 하면 사기적인 스탯들로 사고 밖에 안치는 하프엘프 장녀랑 제 언니 빠돌이라서 뭐만 해도 지 애비 되는 사람한테까지 살기를 막 뿜어대는 드래곤 차녀.
저 둘을 감당하기에는 난 지극히도 평범한 범주의 인간인지라…
…아직 태명도 정하지 않은 셋째야, 부디 너만은 평범하게 태어나다오. 안그러면 나 이러다가 계란 한판 다 채우기도 전에 탈모온다…
“저기, 굳이 그럴 거 없이 그냥 가호를 해제하면 되지 않을까?”
이한성이 그렇게 솟구치는 스트레스 지수에 머리털 걱정을 하고 있던 그 순간, 골 때리는 자식들의 새엄마 되시는 600살 엘프께서 한가지 방안을 내세우셨다.
“…? 그거 막 온 오프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거였어?”
“딱히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가능할 걸? 가호라고 해봤자 뭐… 결국에는 혈통의 잔재 같은거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사랑니지. 충분히 뽑을 수 있는거야.”
아니… 뭐 예시를 들어도 꼭 그런 예시를… 괜히 사랑니 때문에 치과가서 죽을 뻔 한 기억이 생각났잖아.
다 지나갔다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의 치통이 왠지 모르게 다시 도지기 시작한 기분을 느끼며,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뭐, 그런게 가능하다면야 다행이고. 그럼 부탁할게.”
사랑니에 비유한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한성이었지만 방법이 있다는데 마다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이한성이 별 수 없다는 듯이 부탁하자, 화연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내 어린 하프엘프의 은빛 머리위에 살며시 오른손을 올렸다.
[지잉-]빛으로 그린 듯한 마법진이 수정이의 주변으로 펼쳐지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아주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지금 화연이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정밀한 교정 작업. 구태여 설명을 하자면 대략 자석에 붙은 무수한 양의 쇳가루를 하나씩 떼어내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됐다. 수정아, 한번 피아노 좀 쳐볼래?”
“응!”
[띵! 띠딩! 쿵!]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프로 뺨치는 수준의 연주를 하던 수정이의 피아노 실력이 다시 본래의 불협화음 메이커로 되돌아갔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오늘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의 피아노 실력이란게 바로 이거다. 무슨 누르지도 않은 건반이 제멋대로 눌러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온 수정이의 피아노 실력에 이한성은 나지막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수정이의 반응은 영 못마땅스러운 듯 했다.
“모야아~!! 피아노 고장났써!”
수정이가 다시 한번 피아노를 있는 힘껏 쳐보며 불평을 내뱉었다.
“야야, 그렇게 치면 멀쩡하던 것도 고장나겠다. 그만해.”
“그치만 피아노가 이상하단 말이야!”
“원래 그게 정상이야. 차근히 연습을 해야 실력이 올라가는거지.”
“치이… 개노잼. 핵노잼.”
…저런 말투는 또 어디서 배운거야 대체.
날이 가면 갈 수록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하는 수정이. 보통 자식들을 보면 애가 크면 클 수록 ‘대충 나중에 커서 이런 애가 되겠구나’ 알게된다는데, 우리애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크면 클 수록 ‘대체 커서 뭐가 될까’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것만 같다.
“이거 부셔버릴까 언니?”
…아, 물론 세리 쟤도 마찬가지고.
점점 더 앞날이 두려워만 지는 이한성. 어째 내려갈 줄을 모르는 스트레스 수치에 그는 증상이 오기 전에 미리 탈모약이라도 처방받아두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속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만을 내쉬었다.
“…사장님네 가족은 대체 정체가 뭘까나.”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양예은의 존재는 꿈에도 잊어버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