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7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79화(179/245)
179
수정이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피아노 연주 소동이 지나가고, 카페에는 다시 평화가 되돌아왔다.
[따단!]결국 [음악의 가호] 없이 평범하게 기초부터 시작해서 양예은으로 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된 수정이. 개노잼 핵노잼이라며 연습하는 것에 질색하던 수정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배워보니 연습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는지 아까부터 저렇게 피아노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그래도 뭐 가호 같은거 없이도 빨리 배우네.”
“워낙 똑똑한 아이잖아.”
이한성의 혼잣말에 화연이 미소와 함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보탰다. 그러자 이에 아까부터 수정이를 가르치고 있던 양예은이 부부에게 다가와 피곤한 기색이 여력한 얼굴로 옆 테이블에 주저앉았다.
“사장님… 수정이 말인데요, 그냥 피아노 학원에 따로 보내시면 안되요…?”
“굳이? 너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니 제발요… 제가 감당할 수가 있는 애가 아니란말이에요…”
배우는 건 빠른 수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수정이가 얌전히 레슨에 임했던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 풀라고 하농을 좀 쳐보라고 했더니 곡이 마음에 안든다고 피아노를 얼려버리지 않나, 그래서 이것저것 지적을 좀 해야겠다 싶으면 옆에서 지켜보는 세리가 살기 등등한 시선을 보내오질 않나.
이한성이야 뭐 매일같이 저 두 아이를 상대해오면서 단련이 된 덕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에 비해 양예은은 너무나도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당장 애들 손에서 얼음이나 불이 펑펑 나가는 것 만으로도 졸도할 지경인데, 그런 애들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야한다니…’
절대로 무리다. 양예은은 그렇게 속으로 장담하며 필사적인 눈빛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에 그녀에게 되돌아온 것은 이한성의 꼽사리였다.
“그래,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 비싼 학원비를 들여서 애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거나 하는 수 밖에.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쟤들 정체를 들켜도 뭐… 예은이 네 잘못은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
갑자기 유압 프레스에 짓눌린 듯이 양심이 무거워진 것을 느껴버린 양예은. 말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한성이었지만, 아무리 그의 말을 곱씹고 또 씹어 보아도 ‘무슨 일 생기면 네 탓이다’ 라고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르치긌습니드…”
“정말? 여윽시 음대 지망생, 그럼 당분간 애들 좀 잘 부탁한다?”
다시 한번 이를 악 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한성의 부탁아닌 부탁을 받아들인 양예은.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이한성에게 빚을 져버린 양예은이었기에 그녀에게 있어선 부탁을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없었다.
“너어는 진짜… 사람을 너무 부려먹으려는 거 아니니?”
화연이 양예은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한성을 꾸중했다.
“어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난 단순히 부탁을 했을 뿐이라고.”
“…독하다 독해 진짜. 너 그러다가 나중에 천벌 받는다?”
“천벌은 무슨.”
고작 이런 걸로 천벌을 받는다면 세상은 진작에 살기 좋은 곳이 되어있었겠지. 세상에 나보다 악질인 것들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데.
만일 천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차례는 아마 거의 맨 마지막쯤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한성은 화연의 말을 흘려넘겼다.
“아빠~”
수정이가 갑작스럽게 피아노를 치다 말고 이한성을 부르기 시작했다.
“왜?”
“나 배고파.”
꼬르륵 거리는 배를 문지르며 저녁시간을 알린 수정이. 그런 수정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한성은 어느샌가 시간이 벌써 6시가 다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저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왠지 모르게 자신도 배가 고파진 것 같다는 기분과 함께 이한성은 조용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은이 너는 어떡할래? 우린 이만 돌아갈건데.”
“아, 저는… 남아서 연습 좀 더 하다가 갈게요.”
수정이를 가르치느라고 오늘 분의 연습을 아직 다 하지 못한 양예은은 피아노를 흘끗 쳐다보더니 이내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러던가. 나올 때 정리 제대로 하고 나와라. 문 잠그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사장님.”
양예은이 기운 빠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그대로 수정이와 세리, 그리고 화연과 함께 카페를 나왔고, 저녁 노을을 등진 채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빠빠! 오늘 저녁 뭐 머글꺼야??”
“뭐 먹고 싶은데?”
수정이가 촐싹이며 벌써부터 저녁 메뉴를 물어오자, 이한성은 골라보라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음…”
“치킨.”
이한성의 질문에 잠시 뭐 먹을지 고민하던 수정이와는 달리 세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즉답을 내놓았다.
“짜장면?”
“탕수육.”
“햄버거!”
“감자튀김.”
…아주 그냥 자매 아니랄까봐, 호흡이 척척 맞는구만.
하나같이 전부 다 배달음식 위주로 끝말잇기 하듯 줄줄히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늘어놓은 수정이와 세리. 그런 두 아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오래간만에 배달 시켜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배달음식 위주로 시켜 먹을까?”
이한성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이 화연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문제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그 순간 잊고 있던 한가지가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그녀를 돌처럼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왜 그래?”
“나 입덧…”
“아.”
맞다 그랬었지. 화연이가 입덧 때문에 지금 풀때기 밖에 못 먹는 처지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네.
지난번에 병원에서 고기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를 못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 배달음식도 똑같이 먹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안쓰럽다는 듯이 화연을 바라보았다.
…힘들겠구나, 임산부의 삶이란.
“? 입덧이 모야?”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
“….”
예상치 못한 수정이의 질문에 잠시 침묵한 두 사람.
입덧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임신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하고, 또 임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명에 탄생에 대해 보다 디테일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른바 ‘아기는 어떻게 생겨?’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있어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민망한 일이다.
그렇기에 둘이 서로 어떻게 할거냐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눈치를 길게 볼 필요도 없이, 용감하게 나서는 자가 있었다.
“입덧이란 말이야… 뱃속에 아기가 생겨서 엄마의 입맛이 변하는 일을 말하는거야.”
뭘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고민하던 이한성과는 다르게 먼저 나서며 제대로 설명해 주기 시작한 화연.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말해주고 싶어.
아까 낮에 화연이 했었던 말이 이한성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낮에 했던 말을 지금 지키려는 화연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히 화연을 바라보았다.
…언제 말해주려나, 싶었더니만. 생각보다 훨씬 빨랐네.
그렇게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끙끙거리더니 막상 말을 꺼내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화연을 바라보고는 이내 이어서 수정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뱃속에 아기가 왜 생겨??”
…? 어째 반응이 생각했던 거랑 다르다?
보나마나 동생이 생겼다고 좋아 죽으려고 할 줄 알았더만은, 그랬던 예상과는 다르게 왠지 기쁘다기 보다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다.
마치 아기가 사람 뱃속에 생기면 안된다고 말하는 듯한…
“아기는 원래 알에서 태어나는거 아냐??”
“…??”
얘가 갑자기 뭔 소리래…? 인간이 무슨 죄다 박혁거세 인 줄 아나? 세상에 알에서 태어나는 애가 어딨…
속으로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시큰둥한 세리의 얼굴이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있네. 여기.
박혁거세는 아니지만 당당하게 알에서 태어난 드래곤이 바로 여기있다.
아무래도 동생이 알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탓에 아기는 알에서 태어난다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게 된 듯한 수정이. 그런 수정이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화연은 곧바로 설명에 나섰다.
“저, 수정아. 원래 아기는 알에서 태어나는게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거야. 그러니까…”
“그치만 세리는 알에서 태어났는걸?”
화연의 설명에 수정이는 뒤에 있던 세리를 앞으로 내세우며 그렇게 반론했다. 그러자 제 언니에게 내세워진 세리는 그대로 언니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이한성은 화연을 지원하기 위해 그녀를 대신하여 설명을 덧붙였다.
“그거야 세리는 드래곤이니까 그런거고. 파충류는 알에서 태어나지만 포유류는 아니거든?”
“?? 그럼 나두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거야??”
“어…”
순간 ‘너는 허공에서 태어났단다’ 라고 대답할 뻔한 이한성. 수정이와의 첫만남이 평범하지가 않았던 탓이었다.
“어어… 그래, 뭐… 그렇지. 아마 그럴거야.”
“아~ 그렇쿠나~”
“….”
“….”
“…?”
“…??”
수정이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것과 동시 시작된 침묵. 그렇게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정이는 이윽고 잠시 뭐가 잘못됐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고, 끝내 눈을 휘둥그랗게 뜨며 경악어린 외침을 내뱉었다.
“에에에에에엥?!!?!!”
어우 귀야.
“나 알에서 태어난거 아니어써????”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듯이 잔뜩 놀란 표정.
“니가 왜 알에서 태어나;; 너 하프엘프잖아.”
“그치만 세리는 알에서 태어났짜나!!”
“아니 그러니까 세리 쟤는 드래곤이라고… 수정이 너는 하프엘프고.”
“이럴쑤가…”
상당히 충격을 먹은 듯한 수정이. 아무래도 그동안 줄곧 지도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라고 믿어왔던 모양이었다.
“세리야… 난 알에서 태어난게 아니래…”
“응. 들었어.”
수정이가 충격먹은 얼굴로 세리의 옷자락을 붙들며 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이 말하자, 이에 세리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대답했다.
“나 어뜨케…?”
“괜찮아 언니.”
수정이의 물음에 세리는 남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오직 제 언니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를 지었다.
“알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언니는 내 언니인걸?”
“…!! 세리야…”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아예 울먹이기 시작한 수정이.
…쟤들 지금 뭐하냐?
애들끼리 무슨 애니에서나 나올 법한 소년만화 클리셰를 찍고 있다. 그 왜 출생의 비밀을 알고도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는 그런 흔하디 흔한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응, 그래!! 아빠가 뭐라하든 간에 세리는 내 동생이야! 난 세리의 언니구!”
“얼씨구?”
누가 뭐래…?
갑자기 자신을 자매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악당 취급하며 무슨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를 날려대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얼탱이가 빠진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생겼다는 경사를 알려주려고 했더니만은…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냐? 어지럽네 진짜…
어떻게 된게 뭐 하나 얘기만 하려고 해도 애들 앞에서는 이렇게 이야기가 꼭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를 나눠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두통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풉… 아하하!!”
“…?”
한숨을 쉬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울려퍼진 화연의 웃음소리. 그런 그녀의 박장대소에 놀란 이한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이러면 괜히 고민을 했던 내가 너무 바보같잖아.”
그런 혼잣말과 함께 화연은 한참 웃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정이와 세리에게 다가가 두 아이를 양 팔로 끌어안았다.
“수정아, 세리야, 사실은 너희들에게 말해줄게 있어.”
누구보다도 엄마다운 부드러운 목소리. 그런 화연의 목소리에 수정이와 세리는 각각 화연의 품에 안긴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화연은 그런 두 아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곧 너희들의 동생이 태어날거란다.”
곧 여름이 오려는지 다소 뜨끈 미적지근한 온풍이 노을을 타고 불어왔다. 그런 여름 기운 만큼이나 따스했던 목소리는 이윽고 두 아이의 표정을 밝은 햇살로 물들였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