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8화(18/245)
18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
“우아으!!”
“….”
대낮부터 좋아라 거실 바닥을 기어다니는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마치 짜장과 짬뽕 사이에 끼어든 라면을 보는 듯한 위화감. 어디가 정확하게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위화감을 느끼며 바닥을 기어댕기는 아기를 지켜본 이한성이었지만 결국 어째서 위화감이 자꾸만 드는 건지는 알아 낼 수 없었다.
‘뭐, 됐다. 지금 당장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깨닫지 못하는걸 백날 깨달으려고 해봤자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나중에 계기가 생기면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다시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지 골드: 10, 001, 500 골드]“…여전히 안 믿겨지는 숫자네.”
상점 메뉴의 상단에 표시된 숫자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홀로 중얼거렸다.
10, 001, 500 골드. 한화로는 1억 만 5천원. 만원짜리 한장에도 벌벌 떠는 이한성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거금이라고 부르고도 남을 정도의 금액이다.
어쩌다가 이런 거금이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사실 이한성 본인도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한성이 자신이 1억이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불과 엊그제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가지 혜택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들 아무 이유도 없이 1억이나 되는 돈을 줄 리는 없다. 시스템이 보상을 주는 경우는 늘 퀘스트를 클리어 한 직후였고, 그마저도 얼마나 퀘스트를 능숙하게 클리어하냐에 따라서 보수의 양과 질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즉, 이 1억이라는 거금이 이한성의 손에 들어왔다는 뜻은 그가 어떠한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것이다.
‘짐작가는 거라고 하면… 역시 그거 밖에 없지.’
전설 퀘스트. 며칠 전 수정이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특수한 퀘스트. 긴급이나 돌발 퀘스트와는 확연하게 느낌이 달랐던 기억을 떠올린 이한성은 그때는 미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도 정신이 없어서 보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아마 이 1억도 그때 받은 보수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괜히 전설 타이틀이 붙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인가보네.”
하긴. 애 목숨이 붙어있는 퀘스트는 그게 처음이었으니까 전설이란 타이틀이 붙은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나저나 그럼 그때 받았던 보수는 1억이 전부인건가?’
혹시나 뭐가 또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틀이 전설이었으니 만큼 골드 이외에도 보수가 충분히 있고도 남을 거라고 짐작한 이한성은 소소한 기대와 함께 [인벤토리] 메뉴를 열었다.
[싸구려 젖병 x1] [홈메이드 딸랑이 x1] [급조된 기저귀 x1] [텅 빈 유리병 x1] [좀 괜찮은 젖병 x1] [고급 마법 주문서 x1]“있네. 아마 이건가 보다.”
상점에서 미리 사뒀던 온갖 잡다한 물건들 사이에서 예전에 본 적이 없는 아이템을 찾은 이한성은 예전에 얻었던 초급 마법 주문서로 부터 습득했던 수면마법의 유용함을 떠올리고는 한껏 기대감을 품으며 마법 주문서를 실체화 시켰다.
[고급 마법 주문서 x1을 사용하시겠습니까?]“[Yes].”
마법서를 사용하겠냐는 시스템의 질문에 이한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선택했다. 그러자 이내 고급져 보이는 양피지로 이루어진 마법서가 빛의 입자들로 흩어지며 이한성의 손에 흡수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스킬의 습득을 알리는 메시지 창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스킬: 위기감지를 습득하였습니다.]“위기감지? 올,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인데.”
제 6감이나 뭐 그런 건가? 무슨 무협물에 나오는 기를 읽는다거나 그런 거?
이름만 들어도 딱 있어 보이는 스킬이라고 생각한 이한성은 곧바로 [스킬] 창을 열어 스킬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위기감지: 사용자의 반경 25m 내에서 위험이 발생할 경우 10초 동안 주변의 시간이 대폭 감속됩니다. 사용자의 시간은 감속되지 않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8시간]“….”
설명만 들어선 감이 잘 안 잡히는 스킬이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서 무슨 사고 같은 게 일어나면 막 영화나 게임처럼 시간이 느려진다, 이건가?”
별로 일상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스킬인데.
경찰이나 소방관, 또는 군인이라면 모를까, 20대 알바생에겐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는 스킬이다. 당장 이한성에게 닥쳐올 위험이라고 해봤자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적지 않은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스킬]창을 닫았다.
“아하하!! 아우아!”
“?”
갑자기 무척이나 신난 듯한 수정이의 옹알이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저렇게 신나게 웃는 걸까.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거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실 바닥에 앉아있던 수정이는 무언가를 손에 든 채 하늘이라도 날 기세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수정이가 들고 있는 게 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이한성이었지만, 이어서 거실에서 울려퍼진 목소리가 무심했던 그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배터리 풀, 액정상태 클린, 안녕하세요 주인님.]사무적이면서도 활발한 여자 비서의 목소리. 꼭 부르지 않았는데도 가끔가다 핸드폰을 장악하며 튀어나오는 인공지능 아가씨. 때때로 심심해서 할게 없을 때 서로 대화를 나누고는 하는 친구, 빅x비.
그렇다. 수정이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빅x비가 살고 있는 핸드폰이었다.
“야야야야 수정아!! 이수정!! 너너너 그거 던지면-”
아직 할부도 다 안 갚은 핸드폰이 극악무도하게 순진한 아이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그 즉시 소중한 핸드폰을 구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핸드폰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도 부족했다.
수정이의 작은 손에 간당간당하게 들려져 있던 핸드폰이 아이의 손길로 부터 벗어나 마치 하나의 딱지처럼 바닥을 향해 수직낙하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한성의 핸드폰은 가엾게도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와장창…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시간이 감속됩니다.]매서운 속도로 바닥으로 낙하하던 핸드폰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처럼 공중에서 정지했다.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한 이한성은 얼떨떨한 표정과 함께 시작된 카운트다운을 확인했다.
[00:08] [00:07] [00:06]숫자가 1초 간격으로 하나 씩 줄어들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초조함을 느끼며 빠르게 몸을 던져 핸드폰을 붙잡았다.
[쿵!]성인 남성의 몸이 거실 바닥에 부딪치며 둔중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꽤나 묵직한 고통이 이한성의 몸을 엄습했고, 그렇게 타이머의 카운트다운은 0이 되었다.
“꺄아하하하하! 아우아!”
“….넌 이게 재밌니?”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를 짝짝 치며 즐거워 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그렇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대참사가 일어날 뻔 했다. 하마터면 핸드폰이 와장창 박살나버릴 뻔한 아찔했던 상황을 되돌아본 이한성은 마치 핸드폰을 조상님의 유골을 모시듯이 소중하게 다루며 상태를 확인했고, 이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나저나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막을 틈도 없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났어야 했을 핸드폰이 마치 마법처럼 공중에서 멈췄었다. 제아무리 이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게 물리법칙에 위배 된다는 사실은 그 누구나 알 수 있다.
‘설마… 아까 그 위기감지인가 뭔가 하는 게 발동한 건가?’
1초 간격으로 줄어들던 카운트다운, 그리고 멈춘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 [위기감지] 스킬의 설명과 아주 정확하게 일치하는 현상이었다.
위험을 감지하면 발동한다길래 무슨 교통사고나 묻지마 살인 같은 상황에만 발동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위험의 기준이라는 게 꽤나 사소한 헤프닝까지 포함하는 모양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어찌됐든 간에 핸드폰을 구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위이이잉-]“?”
조용하던 핸드폰이 갑작스럽게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 한통. 평소에 전화를 받아볼 일이 거의 없었던 이한성은 조용히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편의점 사장님]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였다. 이름 그대로 전화를 건 게 편의점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바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이고 한성아! 나 좀 도와줘라!]“…예?”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건 편의점 사장님의 다급하기 그지없는 간절한 목소리였다. 다짜고짜 도움부터 요청하는 사장님의 말에 당황한 이한성은 천천히 자초지종을 물었다.
“잠깐만요, 갑자기 도와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큰일났어 지금! 오늘 손님이 많아서 바빠 죽겠는데 오후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아니, 왜요?”
오후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왜?
편의점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사람은 총 두 명. 오후와 오전을 번갈아가면서 스케쥴을 잘 조정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걸까.
[그거야 당연히 니가 일을 그만 뒀으니까 그렇지! 2주 전부터 나랑 화연 씨 둘이서 일하고 있단 말이야!]“아.”
맞다. 그랬었지.
지난 며칠 동안 하도 일들이 많이 터져서 깜빡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사장님과 화연에게 다소 미안함을 느끼며 정중하게 부탁을 거절했다.
“죄송해요. 근데 지금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뭐? 왜?! 너 임마, 또 사고 쳤어?!]이보세요.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꼭 맨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 것처럼 들리잖습니까.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사장님의 말에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유를 말했다.
“그게 말하자면 좀 깁니다만…”
[띵동-]순간 현관문의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한성의 말을 끊었다.
정신없게 왜 하필이면 통화중에 초인종을 누르는 걸까.
“잠시만요, 이따가 나중에 또 전화 드릴게요.”
[뭐? 야야야 한성아 잠깐만 좀 기다-]편의점 사장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한성은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보통 알바생이 사장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다는 행위는 짤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만, 이미 2주 전부터 일을 그만 둔 이한성에게는 딱히 사장을 무서워 할 이유가 없었다.
[띵동-]“네네, 갑니다 가요.”
계속해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이한성은 서둘러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주인 아주머니?”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이한성의 눈에 비춰진 건 다름 아닌 집주인 아주머니였다. 갑자기 소식도 없이 찾아온 주인 아주머니의 행차에 당황한 그는 이내 오늘이 월세 내는 날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는 금방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요… 월세라면 오늘 은행에 가서 바로…”
“지금 바빠?”
“…네?”
순간 뜬금없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이한성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여기 방음 안 되는 거 총각도 잘 알잖아. 문 밖에서 통화 하던 거 다 들었어.”
“아… 그건 말이죠, 그냥 전에 일하던 가게 사장님이-”
“됐고, 요즘 집에서 애 돌보느라고 일도 못하고 바쁜 것 같던데 괜히 월세 못 내서 고생하지 말고 빨리 일하러 나가 봐. 애는 내가 대신 돌봐줄 테니까.”
“네?”
“총각 귀 먹었어?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애는 내가 돌봐줄 테니까 빨리 가보라고.”
집주인 아주머니가 그렇게 이한성을 재촉하시며 자연스럽게 현관에 발을 들이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얼떨결에 아주머니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현관문을 닫아버리셨다.
“…나 지금 쫓겨난 건가?”
집주인한테 집에서 쫓겨났다. 월세를 못 낸 것도 아닌데 그렇게 쫓겨나버린 이한성은 한참동안이나 닫혀버린 집의 현관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으로 한탄했다.
또 귀찮은 오해에 휘말려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