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8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82화(182/245)
182
현재시각 8시 35분.
지난 2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별로 재밌지도 않은 드라마를 멍하니 시청하고 있었던 이한성은 언제나 늘 그랬듯, 딱 절묘한 타이밍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다음화 예고편을 재생하는 TV를 대충 꺼버렸다.
“슬슬 나가야겠네.”
9시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이한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간단히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이에 거실에서 세리랑 같이 놀고 있던 수정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대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아빠, 어디가?”
“어. 너네 엄마 데리러.”
“우왕! 그럼 나두 따라갈래!”
“응 안돼.”
가서 또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내가 널 데려가겠냐.
잠재적 위험을 데리고 외출할 생각은 없다.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 하나 픽업하러 가는 것 뿐인데 요 사고뭉치들을 데리고 나가봤자 늘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만 수두룩 하게 생길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하지만 수정이가 누구인가.
“아 왜에~!! 나두 동생 만나러 가구 싶단 말이야!”
“야, 니 동생 아직 태어나려면 한참 남았거든?”
“그래두! 동생 조기교육은 원래 일찍부터 해놔야 한다고 해영이 언니가 그랬써!”
“아오 진짜… 해영이 걔는 대체 평소에 너랑 무슨 대화를 하고 다니길래 별별 이상한 것들을 가르치고 다니는거냐??”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거다. 애한테 가르칠게 있고 못 가르칠게 있지, 항상 늘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하면 죄다 해영이 걔한테서 배웠다고 말하니.
“암튼 나두 갈꺼야!!”
“안 돼. 얌전히 아빠 갔다올 때 까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시러!”
“….”
에라이… 저건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쎈건지… 이러다가 늦겠네.
계속 실랑이를 벌이며 수정이의 고집을 꺾어놓기에는 시간이 그닥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고집을 꺾지 않은 채 홀로 나갔다가는 그 사이에 애들이 무슨 사고를 칠 지 모르는 법이었기에 이한성은 결국 오늘도 자식내미의 고집에 꺾이고 말았다.
“…그래, 맘대로 해라 이것아.”
“앗싸아!!”
이한성이 마지못해 허락하자 수정이는 쾌재를 부르며 이한성을 따라 현관으로 향했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거야.”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세리 또한 제 언니를 따라 현관으로 나왔고, 이에 이한성은 1+1 행사마냥 따블로 늘어버린 골칫덩이에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하면 편해.
괜히 실랑이를 벌일 시간도, 기운도 없다. 그렇게 이한성은 말을 지지리도 안듣는 딸내미들과 함께 집을 나왔고,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향해 다가가 문을 열었다.
최근에 새로 산 SUV. 평소에 몰고다니던 Fe라리는 여러모로 연비도 안좋고 2명 밖에 못타기 때문에 차를 한대 더 마련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굳이 이런 비싼 외제차를 마련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
여전히 새차 냄새가 폴폴나는 BWM의 운전석. 본래 이한성은 가족용 SUV로 이런 비싼 차를 마련할 생각이 없었지만, 하도 해영이가 뭐라뭐라 하는 바람에 결국 새차로 BWM을 뽑게 되었다.
-오빠. 오빠가 뭘 잘 모르나본데, 차라는 건 말이야 곧 전투력이야. 돈 아낀답시고 흔하게 널린 차나 타고 다녔다가는 무시당하기 십상이라고.
“생판 모르는 남들한테 무시당해봤자 신경쓰일게 뭐 있다고…”
이한성은 그렇게 지난날에 해영이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투덜거림과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이내 뒷좌석을 바라보며 수정이와 세리에게 말했다.
“둘 다 안전벨트 제대로 매라.”
“응!”
수정이가 힘차게 대답하며 보기 드물게 아무런 말썽도 없이 이한성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세리 또한 따로 마련해둔 유아용 카시트 위에 올라타고는 얌전히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그렇게 둘이 안전벨트를 착용했다는 걸 확인한 이한성은 네비게이션에다가 목적지 주소를 입력하고는 그대로 후진 기어를 넣어 차를 뺐다.
“애들을 데리고 가는게 맞나 모르겠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우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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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마셔라 마셔!! 죽을 때 까지 부어!!”
“….”
술게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한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식지 않은 분위기로 계속해서 게임을 이어나가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에 화연은 멍하니 이를 지켜보았다.
‘와… 나 이러다가 깨달음을 얻고 득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평생 살면서 술을 눈앞에 두고 참아 본 적이 없고, 그러는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그 어려운걸 용케 해내고 있는 자신에게 놀라움을 느낀 화연. 아마 지금이라면 부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아주 부럽다는 듯이 술에 절은 동기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야, 민수아. 정신차려 이 기지배야.”
자신에게 빅엿을 먹여놓고는 태평하게 테이블 위에 뻗어버린 친구의 모습에 화연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 뭐야, 나 언제부터 자고 있었어?”
“한참 전 부터. 넌 진짜… 아까 나한테 그래놓고도 잠이 오니?”
“아, 야!! 귀 잡아당기지 마!”
무슨 엄마가 할 법한 화연의 행동에 민수아는 아프다며 그녀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붙잡고 있던 그녀의 귀를 놓아주었고, 이에 민수아는 투덜거리며 다 이유가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거 다 너 도와주려고 한거거든?”
“그게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날 도와주려던 게 되는데?”
“하아… 너 진짜 하나도 모르는 구나?”
“…?”
내가 뭘 모른다는걸까. 사뭇 이해가 가지 않는 민수아의 말에 화연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너 최근에 민정훈 선배가 너랑 잘 돼 보려고 관심 보이는 것도 몰랐지?”
“??? 그랬어???”
“…정말로 대단하다 진짜.”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었다는 화연의 반응에 민수아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선배가 요즘 너한테 그렇게 티나게 작업을 걸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
“아니 난… 그냥 후배 돌봐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도와주고 싶어지는 건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600년 살아온 엘프는 그런 할머니가 할 법한 생각과 함께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민정훈 선배가 나한테 작업 걸던게 네가 나한테 폐기물 쓰레기를 마시게 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지. 그 선배, 여자에 대해 별로 안좋은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
“? 어떤 소문?”
“있어 그런 소문이. 좀 생긴 여자 후배들만 노려가지고 가지고 논다는.”
“…민정훈 선배가?”
전혀 그럴 것 같아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에 화연은 정말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내비쳤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사람이란게 원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사실 쯤이야 아주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에 가까운 생각 때문에 애꿎은 사람을 나쁜놈으로 만들었던 적도 많았기에 그녀는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선 아주 신중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화연은 소문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데에는 무리가 조금 있다는 눈빛으로 민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민수아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소문일 뿐이야.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아까 민수아가 왜 굳이 곤란한 질문으로 쓰레기 폐기물을 마시게 만들었는지 화연은 이제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아까 그거는 나한테서 남자들을 떼어놓으려고 그랬던거야?”
“그런 것도 있고. 생각보다 술을 잘 참길래 괘씸했던 것도 있고.”
“야 이 기지배야.”
순간이나마나 조금 감동하며 아까의 일을 용서해줄 생각이었건만,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하나 더 덧붙이는 바람에 그럴 생각이 싹 사라져버린 화연이 민수아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민수아는 그런 화연의 시선을 모른 척 하며 소주를 한병 더 따라다가 마시기 시작했고, 이에 화연은 두고두고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굳히며 시간을 확인하였다.
“…벌써 거의 9시네.”
조금만 더 있으면 한성이가 곧 데리러 올 것이다. 슬슬 일어나는 것이 좋겠지.
가뜩이나 남들이 신나게 술마시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에 정신력이 지칠대로 지쳐있던 화연은 그렇게 혼잣말과 함께 핸드백을 챙기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전 선배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전 이만 돌아가 볼께요. 다들 나중에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어 뭐야, 화연이 너 벌써 가냐?”
화연의 인사에 가장 나이많은 선배가 술냄새 풍기는 목소리로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네. 가족들이랑 약속이 있어서요.”
“에이…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라.”
보통 술자리에서 도중에 후배가 먼저 집에 가겠다고 말하면 선배들이 언짢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행히도 선배들한테 평판이 좋은 화연이었기에 딱히 그녀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가 집까지 태워다 줄게. 혼자 돌아가기에는 좀 늦었으니까.”
민정훈히 겉옷을 챙기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화연의 발걸음을 세웠다.
“아뇨 괜찮아요. 선배, 술 마시셨으면서 운전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한잔 밖에 안마셨어. 멀쩡하니까 걱정 안해도 돼.”
“아뇨, 진짜로 괜찮아요. 아직 9시 밖에 안됐는걸요.”
“아, 태워준대도. 선배 호의 거절하는거 아니야.”
“….”
괜찮다고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는데도 자꾸만 태워주겠다며 억지를 부리는 민정훈의 모습에 화연의 미소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화연이 민정훈의 호의를 거절하고자 하는 이유는 세가지였다.
첫번째 이유는 곧 있으면 이한성이 데리러 올 것이기 때문에, 두번째 이유는 아무리 봐도 민정훈의 모습이 술을 한잔 밖에 마시지 않은 사람 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이유는 바로 아가 민수아가 했던 말이 조금 걸려서. 비록 소문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말했던대로 조심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화연에게는 민정훈의 호의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더 쎄게 거절해야하나…? 하지만 그러면 괜히 분위기만 나빠질 것 같은데…’
실제 나이는 민정훈보다 하늘과 땅 차이로 많은 화연이었지만 표면적으로 그녀는 누가봐도 그의 후배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생활이 늘 그렇듯이, 후배가 선배에게 강하게 나가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었다.
어떡해야 이 상황을 마찰 없이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문제에 고민에 빠진 화연이 두뇌를 돌리며 방법을 구색하기 시작했다.
왠 익숙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활기차게 들려오기 전 까지는.
“엄마아~!!”
“….”
이 목소리는 설마…
갑작스럽게 들려온 어린아이의 외침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모두가 시선을 돌린 방향에는 은발머리의 소녀가 이쪽을 향해 쪼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요란스럽게 엄마를 불러대며 달려온 소녀는, 이윽고 화연의 다리 위에 폴짝 뛰어 매달렸다.
“???????”
그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물음표로 가득 물들었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마치 갱을 당한 탑이 정글을 향해 미아 핑을 마구 찍어내는 듯한 광경을 목격한 화연은 그저 어색하게 웃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하, 아하하… 하하하…”
우와… 이걸 어쩐대니…
상황이 아주 어색하게 됐다. 덕분에 당장 민정훈에 관한 문제는 미룰 수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이 더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치 타이밍은 그런 그녀에게 이것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이어서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를 등장하게 만들었다.
“야, 이수정. 너 아빠가 이런데서 뛰어다니면 안된다고 했었지.”
터벅터벅 세리를 한손으로 안은 채 먼저 달려간 수정이를 뒤따라 가게에 들어온 이한성. 그렇게 아이에 이은 아빠의 등장에, 자리에 있던 대학생들은 아까보다 한층 더 많은 수의 물음표를 일제히 표정으로 내뱉었다.
“???????????????????????????????”
뭐라 말해볼 틈도 없이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 화연. 하나같이 다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이내 나지막히 눈물을 찔끔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망했네 이거.’
…사회복지학과의 여신이 순식간에 애딸린 유부녀로 변모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