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8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83화(183/245)
183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정확하게 9시 하고도 10분 늦게 화연을 데리러 온 이한성은 식당 안에 발을 들이자 마자 본인을 향해 잔뜩 집중된 시선들을 느끼며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0분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안나오길래 직접 들어와봤더니만…’
처음부터 직접 식당 안까지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 갑자기 불쑥 나타나봤자 화연이랑 무슨 사이냐고 주변에서 질문공세를 해올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식사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자중했던 이한성이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를 않고, 또 배터리가 다 된 바람에 전화도 받지 않았던 화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물론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생각 또한 없었다. 앞서 말했듯 화연의 주변인들이 무슨 반응을 내비칠지 너무나도 뻔했기에 이한성은 조용히 들어가서 나오라고 신호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한성은 간과하고 있었다.
수정이 성격에 가만히 있을리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엄마, 엄마 뭐 먹었써??”
…수정이 저게 차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지 엄마한테 달려가서 깽판을 부릴 줄 누가 알았냐고.
화연의 다리에 매달린 채 막 신나서 이것저것 물어보려 드는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화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하하… 아하… 아…”
의도치도 않은 커밍아웃에 화연의 멘탈은 현재 붕괴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현재 그녀는 수정이의 물음에 대답해줄 정신 따윈 남아있지 않았고, 이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세리는 이한성의 팔에 안긴 채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개난장판이네.”
“…야. 5살 짜리가 그런 말 하는거 아니야.”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는데?”
“좀 순화시켜서 말해야지…”
“개판이네.”
“….”
단어 사이에 글자 몇 개 좀 뺀다고 그 뜻이 순화가 되는 건 아니란다 용용아.
말 같아서는 그렇게 딴죽을 걸고 싶었던 이한성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우 야, 나 술 너무 마신 듯. 막 이상한게 보이는데.”
“너두? 야 나두.”
“크윽… 사랑했다 쒸불려나…”
“….”
슬슬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주변인들. 누군가는 술을 탓하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려 들었고, 누군가는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며 짝사랑에 끝을 고했다.
“…어떡할래?”
“…어떡하긴. 이렇게 됐는데 뭘 어떡하겠어.”
이한성이 귓속말로 묻자, 화연은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닌 웃음을 지으며 모두에게 이한성을 소개시켰다.
“제 남편이에요.”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화연의 장단에 맞춰 적당히 모두에게 인사한 이한성. 그렇게 둘이 서로의 관계를 밝히며 인사하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잠시 멍하니 둘을 쳐다보더니 이윽고 저마다 각자 축하의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짝짝짝짝-]‘…근데 우리 박수는 왜 치고 있는거지?’
‘아 몰라. 일단 쳐야 되는 상황인 것 같으니까 쳐.’
‘남편이라잖아. 결혼했다는데 축하는 해야지.’
본인들도 왜 지들이 박수를 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냥 왠지 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박수를 쳐준 모두였지만, 다들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다들 넋이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들에게 인기많던 후배, 동기, 혹은 선배가 어느날 갑자기 애딸린 유부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넋이 나가는 것 정도야 아주 평범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반응이 나쁘진 않네.’
괜히 자신 때문에 화연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심 미안해 하고 있던 이한성은 그래도 박수도 쳐주고 조금씩 축하도 해주는 주변인들의 반응에 조금 안도를 내뱉었다.
분명 평소에 주변인들에 대한 화연의 이미지가 워낙에 좋았던 덕일 것이다. 아무리 유명인이고 인기가 많다고 한들 사람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니.
실제로도 아직 이 사회에서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애까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런저런 안좋은 소문들이 돌게 되는 경우가 하루 이틀이 아니던가.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애까지 있다고 하는게 전혀 흉될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사실에 대해 소문을 퍼뜨리며 당사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안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야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대부분은.”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자리에 있던 모두를 한번씩 살펴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눈에는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겉으로만 축하 할 뿐 속으로는 흉을 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런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자가 있었으니.
“이야~ 화연이 너, 유부녀였구나? 진작에 말 좀 해주지. 사람 헷갈리게.”
민정훈이 겉으로만 웃고 있는 목소리로 박수를 치며 화연에게 말했다. 불과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민정훈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사뭇 알 수가 없었던 화연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저 남자의 내면을 똑똑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것과 속이 다른 사람. 호의를 베풀 때는 항상 이유가 있고, 자신이 멋대로 베푼 호의에 항상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
늘 웃으며 남들을 대하지만, 그 속으로는 늘 경멸을 두르고 있는 사람.
화연은 지난 600년이라는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오며, 저와 같은 눈빛을 지닌 인간들을 수도 없이 바라 봐 왔다.
원균이 그랬고, 조병갑이 그리했으며, 또 이완용이 그러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인물은 꼭 존재하는구나.’
민수아의 경고가 맞았다. 소문이 사실인 것 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가까이 할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 만큼은 확실해졌다.
그런 생각과 함께 화연은 민정훈의 겉만 번지르르 한 미소에 똑같이 속이 빈 미소로 맞대응했다.
“별로 헷갈리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단지 떠들어대고 다닐 만큼 대단한 사실도 아니여서 그랬죠.”
“그래도 서운한데. 태워다 준다고 했는데 자꾸 거절하길래 난 또 내가 뭐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잖아. 그런데 그래도 야, 네가 유부녀여서 그랬구나?”
“….”
은근슬쩍 자꾸만 유부녀란 단어를 강조하려드는 민정훈.
보통 사람이라면 두번 이상 호의를 거절한 사람에게 호의를 강요하려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던 화연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자리가 좋지 않았다.
“…저 인간, 아까부터 우리한테 은근슬쩍 시비걸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시비거는거 맞아. 그냥 무시해.”
눈치가 빠른 이한성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는 귓속말로 묻자, 이에 화연은 그렇게 똑같이 귓속말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더 있어봤자 피곤해질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모두에게 인사하며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다들 즐겁게 놀다 가세요.”
화연이 인사하자 이한성 또한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식당을 나섰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바로 옆에 있던 수정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전 까지만 했어도.
“? 뭐야, 얘 어디갔어??”
당황한 이한성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어렵지 않게 사라져 버렸던 수정이를 찾을 수 있었다.
“아구구~ 이거 먹을래 꼬마야?”
“응! 아앙~”
“아이고 잘 먹는다~!”
“….”
언제 갔는지도 모를 저 멀리서 민수아에게 삼겹살을 받아먹고 있는 수정이.
먹을 거 준다고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다가가면 안된다고 그렇게나 누누히 말해왔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인으로 부터 당돌하게 고기를 받아먹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그저 대단하다며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야야, 이것도 함 먹어봐라.”
“아아앙~”
“여기 내꺼도 있어. 옳지~”
“아아아앙~”
무슨 아기 참새마냥 주변인들이 주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얻어먹고 있는 은발 머리의 소녀. 주는대로 받아먹는 수정이도 수정이였지만, 수정이의 귀여움에 홀딱 빠져 일단 먹이고 보려 드는 화연의 친구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와~ 되게 잘먹네. 화연아, 얘 이름이 뭐야?”
“…수정이. 이수정인데.”
민수아의 물음에 화연은 대체 몇번이나 이런 식으로 나가기 직전에 발걸음이 묶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 대답했다.
“우와, 이름도 되게 예쁘네. 수정아, 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야 민수아. 너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말고 빨리 애나 놔줘. 우리 지금 갈 거란 말이야.”
“싫은데? 애가 이렇게나 신나게 먹고 있는데 놔주긴 뭘 놔줘? 갈 거면 너나 빨리 가.”
아이를 반환해달라고 요청한 화연이었지만 그걸 단칼에 거절한 민수아. 사실 애를 돌려달라고 할 것도 없이, 애초에 수정이 본인이 받아먹는거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 뿐이었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바로 제 언니를 먹을 것으로 유혹하려 드는 화연의 친구들에게 잔뜩 질투를 하던 어린 헤츨링 한마리였기에.
“인간들 주제에 감히 언니를 무슨 동물원 동물 보듯이…”
“야야, 살기 좀 거둬라. 여기 밖이다.”
세리가 드래곤 피어를 무의식적으로 흩뿌리며 이를 갈자, 이에 그런 세리를 안고 있던 이한성은 그렇게 참으라며 세리를 달랬다.
“수정이 너도 빨리 와. 안오면 두고 간다.”
“에엥?! 아빠!! 자, 잠깐만!! 나 이것만 더 먹구…”
“그래, 그럼 잘 먹고 잘 살아라.”
“으아아아! 아, 아라써! 갈께!!”
두고 간다고 재촉하니 고기를 거의 무슨 다람쥐 마냥 입에 가득 집어넣고 촐랑거리며 달려나온 수정이. 주는대로 받아먹던 하프엘프가 그렇게 부모님들을 따라 가버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삼촌과 이모들은 그 어느때 보다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일제히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도 자주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그 단시간만에 수정이의 귀여움에 중독되어버렸던 사회복지학과의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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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졌던 탓에 녹초가 되어있던 이한성과 화연은 뒷좌석에서 쿨쿨 자고 있는 수정이와 세리를 뒤로 한 채 묵묵히 오가는 침묵을 곱씹었다.
“그… 아까는 미안. 수정이 쟤가 멋대로 나가지 못하게 제대로 붙잡았어야 했는데.”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한성이었다. 아직까지도 아까 본의치 못하게 화연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조금 남아있었던 이한성은 그렇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화연에게 사과했다.
“아니야, 미안해 할 게 뭐 있다고. 어차피 언젠가는 드러날 진실이었는데 그냥 미리 앞당겨서 말하게 된 것 뿐이지.”
“아니, 그래도… 앞으로 학교 다니면서 말이 많아질 거 아니야.”
“괜찮대도. 너도 아까 봤잖니. 반응이 다들 그렇게 나쁘지 않던 거.”
화연이 팔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리고 덕분에 앞으로 남자들이 불편하게 들이댈 일은 없어졌는 걸. 오히려 이득이라고 봐도 돼.”
“…그렇게 말하니까 꼭 그동안 들이대던 남자가 한두명이 아니었다는 것 처럼 들리는데.”
“난 몰랐었는데 내 친구가 그러더라고. 너도 뭐… 알잖아.”
“알지. 아주 잘 알지.”
화연이 연애 관련해서는 답이 없다는 사실 쯤이야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게 이한성은 그동안 이 목석같은 여자에게 들이대고 나가떨어졌을 남자들에게 조금 동정심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아까 그 남자는 결국 뭐였던거야?”
“그 남자라면… 민정훈?”
“어. 아까 막 우리한테 은근히 시비털건 그 남자. 생긴 건 멀쩡한게 아주 속이 뒤틀렸을 것만 같던 얼굴상이던데.”
이한성이 빨간불 앞에서 차를 멈추며 민정훈에 대한 디스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의외로 아주 정확한 이한성의 디스에 살짝 웃음을 터뜨렸고,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나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어. 그냥 자꾸 차로 태워다주겠다길래 거절했는데, 계속 들은 척도 안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더라고.”
“…아까 보니까 술 마신 것 같던데?”
“그러니까. 그런데도 자꾸 한잔 밖에 안마셨다고 해대잖아.”
“단명하고 싶나보지.”
술 쳐마시고 운전해서 좋을게 뭐있다고. 뭔가 했더니만, 그냥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어 환장하는 놈이었구만?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본인의 와이프에게 찝쩍 거렸다는 것 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말과 생각으로 민정훈을 신나게 후려팼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오늘 일이 썩 나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적어도 앞으로는 그렇게 찝쩍대는 놈이 없을 거라는 거 아니야. 결혼한데다가 애까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대놓고 보여줬는데, 그런데도 찝쩍대면 그건 사람 새끼가 아니지.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이에 이한성은 악셀을 살며시 밟으며 다시 차를 몰았고, 아까 그 자리에서 [의심병자의 눈]을 통해 보았던 민정훈의 모습을 조용히 떠올렸다.
[이름: 민정훈] [종족: 인간] [나이: 25] [성격: 반사회적 우월주의]…반사회적 우월주의가 뭔지는 내가 심리학과 의사가 아니여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좋은 건 아니겠지.
단어만 들어도 딱 성격이 글러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그렇게 이한성은 살짝 걱정스러운 말투로 화연에게 말했다.
“그 민정훈이라는 인간 말이야, 앞으로도 무시하고 다니는게 좋겠더라.”
“말 안해줘도 그럴 생각이였어. 그런다고 그게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뭐, 정 안되면 기억삭제 마법이라도 사용하면 되겠지. 안그래?”
“….”
아 그랬었죠. 이분, 600년 사신 엘프셨지? 민정훈 씨. 부디 앞으로도 치매 안걸리고 오래오래 살고 싶으시면 되도록 제 와이프는 피하고 다니시기를 아무쪼록 바랍니다.
…처음부터 걱정할 대상을 완전히 잘못 잡은 이한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