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8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88화(188/245)
188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된 늦은 저녁 시간에, 한가로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이한성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사장님. 저 여쭤보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요.”
“?”
한창 미튜브를 시청하던 이한성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질문에 반사적으로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
“아, 윤재… 석 씨?”
“윤재석이 아니라 윤재혁입니다… 아무튼, 상담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말을 걸어온 사람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평소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던 가게의 알바생 중 한명인 윤재혁이었다.
…무슨 일이지? 뭐 문제라도 생긴건가?
그동안 사고 하나 안치고, 아주 모범적으로 알바를 해왔던 사람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을 하고싶다고 말을 걸어오니 이한성은 조금 당황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네, 뭐… 저로 괜찮으시다면.”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게 다른게 아니라 제가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가지고 말이죠.”
“고민이요?”
수정이는 커서 뭐가될까?
고민 하나 없는 얼굴로 그 어떤 진상손님이 화도 활짝 웃으며 반겨주던 사람한테 고민이 생겼다고?? 뭐지?? 집안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건가??
평소에 세상 편하게 웃으면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고민이라는 걸 하면 보통 고민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이한성은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어지는 윤재혁의 말을 기다렸다.
“저 말이에요, 너무 존재감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
…집안에 큰일이 생기기는 무슨. 평소에 웃기만 하다가 괜히 진지한 표정 지어서 긴장했잖아 이 양반아.
예상과는 너무 다른 아주 보잘 것 없고 사소한 질문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윤재혁을 바라보았다.
“마감할 시간 다 됐네. 이만 퇴근하세요.”
“아뇨아뇨 잠깐만요!! 저 지금 진짜 진지하단 말이에요!!”
윤재혁이 쓸데없는 질문에 시간낭비하기 싫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비우려던 이한성의 팔을 붙잡으며 메달렸다.
“아니… 본인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왜 저한테 합니까? 전 자영업자지, 심리 상담사 같은 게 아닙니다만.”
“그야 사장님을 보면 언제나 존재감 포텐이 하늘을 뚫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죠! 저도 사장님 처럼 주변에 여자들이 막 꼬였으면 좋겠단 말입니다!!”
“…아, 예.”
저게 뭔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써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소리라는 건 아주 잘 알겠습니다.
애당초 내 주변에 여자들이 막 꼬인다는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 주변에 여자라고 해봤자 뭐 화연이랑 해영이, 그리고 양혜미 씨 이렇게 셋 밖에 없는데.
이한성은 윤재혁의 말에 전혀 동감하지 못하며 그렇게 속으로 주변 여자들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당연히, 미성년자인 양예은은 제외한 채로.
하지만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와 가까운 여자들이 셋 다 평균치 이상의 외모를 지닌 미인들이라는 사실을.
어찌보면 당연한 일. 인간의 외모를 뛰어넘은 엘프가 와이프인데 이한성의 눈에 다른 여자들 외모가 그닥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물론, 주변에 여자들이 한명도 없던 윤재혁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요즘들어 생각하는건데, 저 진짜로 존재감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막 느낌이 꼭 다들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예 누군지도 잊어버린 것 같달까…”
“그럴리가요. 기분 탓이겠죠. 여기에서 재훈 씨를 무시하고 다닐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재혁입니다 사장님…”
“아, 죄송…”
윤재혁의 이름을 또 틀려버린 이한성. 물론 처음도, 이번도 둘 다 실수였지만 이래서야 결국 윤재혁에게 존재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더욱 증명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흠흠, 아무튼 절대로 다들 무시하거나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재… 혁 씨. 그 왜 저도 그렇고 예은이랑 해영이도 다들 재혁 씨 만큼이나 여기서 일 잘하는 사람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한스 씨는요?”
“그 놈은 사람이 아니라 노예니까 제외입니다.”
“….”
어째서 한스에게만 평가가 박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직원들 모두에게 친절한 이한성이 항상 한스만 콕 찝어서 차별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윤재혁이었지만 그는 굳이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튼 절대로 재훈 씨가 존재감이 없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십쇼.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여전히 영 자신감이 없다는 말투와 함께 윤재혁은 또 자신의 이름을 틀리게 부른 이한성을 반쯤 포기했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둘이 거기서 뭐해?”
둘만 따로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던 모습을 본 해영이 귀신같이 흥미로움을 감지하고 다가와 이한성과 윤재혁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윤재훈 씨가 상담할께 있다길래 잠시 얘기 중이었는데.”
“재훈이가? 혹시 연애 상담??”
서로 나이도 동갑이라 그런지 진작에 말을 놓은지 오래였던 해영이 놀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이는 웃음과 함께 윤재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윤재혁은 뭐가 재밌어서 그리 웃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둘을 너무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내 이름이 윤재훈이 된걸까.’
윤재혁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부르기 힘든 이름도 아니고, 이상한 이름도 아닌데 굳이 계속해서 본인을 재훈이로 강제 개명시키는 사장과 알바 동료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과 함께 윤재혁은 한숨을 내쉬며 혹시나 생길 수도 있는 오해부터 먼저 부정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존재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에이 뭐야. 난 또 뭐라고, 넌 고작 그런 걸 가지고 오빠한테 상담을 하냐?”
“난 사장님이 인기가 가장 많으시니까 뭔가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했지…”
“저 오빠가 퍽이나 알고 있겠다. 저저 본인이 반반하게 생긴 것도 모르는 기만자한테 물어서 들을 대답이 뭐가 있다고…”
요거 말하는 것 좀 보소? 요게 알바생 주제에 갑자기 지 사장을 막말로 패네?
갑자기 난데없이 말로 얻어맞은 이한성이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해영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해영은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대놓고 깠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곧바로 이한성의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
“아, 암튼 존재감 없는게 걱정이라고 했지? 그런 건 이 누나한테 상담을 했어야지!”
…이곳에서 가장 상담을 청해선 안될 인물 1순위가 너란다 이 아가씨야.
이한성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해영을 향해 속으로 그렇게 대꾸했다. 그동안 하도 그녀가 수정이한테 가르쳐놓은 쓸데없는 충고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던 게 그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한성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던 해영은 그저 자신의 페이스를 밀어붙이며 제멋대로 충고를 계속할 뿐이었다.
“이 누나가 볼 때는 말이야, 네 존재감이 낮은 이유는 딱 하나 뿐이야.”
“뭐 때문인데…?”
동갑인 주제에 누나 행세를 하는 해영이었지만 성격이 좋은 윤재혁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아주 간단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넌 너무 평범해.”
“…내가??”
“어. 아주 너무 평범해서 재미가 없어.”
“…말이 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윤재혁이 살짝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해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일리가 없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달리 부정하지는 않았다.
“팩트는 원래 다 아픈 법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잘 생각해봐. 우리 가게에서 너만큼 평범한 사람이 어딨냐?”
“아니, 나도 꽤나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 예, 기만자는 양심이 있으면 조용히 좀 합시다.”
순간 은근슬쩍 뻔뻔하게 되도않는 본인의 평범함을 내세우려던 이한성이었지만 해영은 그런 이한성의 시도를 칼같이 잘라버렸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다시 한번 사장으로써 직원인 그녀를 째려보았지만, 이미 토크에 시동을 건 해영은 이를 모른 척 넘겨버릴 뿐이었다.
“잘 나가는 카페의 애가 셋 딸린 젊은 유부남 사장이랑, 정신이 좀 이상한 불법체류자. 그리고 거기에다 사연이 좀 많은 음대 지망생으로 꽉 찬 이 카페에서 재훈이 넌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단 말이지.”
“….”
…맞는 말이라서 뭐라고 반박을 못하겠네.
해영의 일리 있는 말을 들은 이한성과 윤재혁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카페에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만 잔뜩 모인 괴짜 소굴과도 같은 곳이었으니.
단지 그녀의 말에 한가지 빼놓은 점이 있다면, 이 말을 꺼낸 해영이 본인도 결코 정상인은 아니라는 사실일 뿐.
그거 하나만 제외한다면 해영의 말은 틀린 구석이 전혀 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말한대로 다른 이들에 비해, 윤재혁은 아주 평범한 범주에 속한 편이었기에.
사고 치는 일도 없고, 일도 빡빡하게 잘 하고, 불평도 안하고, 화도 안내고, 딱히 이렇다 할 사연도 없는 평범한 20대 남자, 윤재혁.
그런 그에게 존재감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존재감이 강하다는 것은 결국 눈에 띄어야 한다는 뜻이고, 눈에 띈다는 것은 곧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소리이니.
초록불 보다는 빨간불. 모범생 보다는 문제아가 더 기억에 잘 남는 것이 그 이치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보다는 논란이 터진 배우가 더 사람들에게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 처럼.
윤재혁이라는 남자가 지금 딱 그런 케이스다.
…아니, 정확하게는 평범하다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만 말이야.
굳이 따지고 본다면 윤재혁 또한 정상인은 아니다. 보통 알바생이라면 어느정도 한가할 때 딴청도 피우고 일도 적당히 해야 정상인데, 그에 반해 윤재혁은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도 한시를 가만히 못 있고 일을 찾아 강박적으로 돌아다니는 워커홀릭이니.
“이게 바로 상대성 이론이라는 건가…”
물리학 시간에는 1도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될 것도 같네. 역시 과학이란 멀리있는게 아니라니까.
아인슈타인이 들으면 무덤에서 일어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볼 혼잣말과 함께, 이한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평범함에서 멀어지면 된다는거야?”
“그렇지? 일하면서 일부러 그릇 좀 깨먹는다던가 진상들한테 욕 좀 퍼부어 본다던가 해보는 게 어때? 그럼 자연스럽게 존재감도 상승할 것 같은데.”
윤재혁의 물음에 해영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에 이한성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그녀의 조언을 일축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깨먹는 그릇이 니꺼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하는구만.”
“아 왜! 어차피 오빠 돈 많잖아! 그리고 그릇 하나 깨먹어도 손짓 한번만 슉 하면 고칠 수 있으면서 왜 생색이야?”
“고치는 건 수정이가 깨부숴먹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거든?! 너 걔가 매일같이 박살내는 물건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냐??”
지금까지 기록한 최대량이 총 31개다. 그것도 잠깐 자리를 비웠던 1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걔는 말이야, 어? 건 분당 0.5개 꼴로 물건을 부숴먹는다고. 니가 그걸 전부 고치고 치우는 고통을 알기나 해?? 그리고 수정이 걔만 그런 줄 알아?? 천만에! 세리는 장식이냐?? 걔는 물건이 아니라 아예 집을 날려먹어요 집을!!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집 벽이 날아가있었던 날이 일주일에 몇 번 있었는지 알아?? 다섯 번이야 다섯 번!!! 어이쿠, 그런데 애들 뿐만이 아니라 한스 그 새끼도 있네??? 그 새끼는 애들보다 더해!! 애들 좀 돌보라고 놔뒀더니만 애들의 파괴충동을 막 부추겨!!! 최근에는 말이야 아예 그냥 수정이한테 뭔 이상한 걸 가르쳐놔서 안그래도 물건을 잘 부수는 애가 물건을 더 엑스퍼트 하게 잘 박살내게 됐다고!!!!”
그동안 쌓인게 얼마나 많았는지 마치 댐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이한성의 하소연 세례.
마치 2차대전 때 오마하 해변을 휩쓸었던 히틀러의 전기톱을 보는 듯 했던 해영은 그런 이한성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며 그를 말렸다.
“수, 숨 쉬어… 호흡 곤란 오겠네.”
“…휴우. 아오, 골 아파.”
기껏 잊고 있었는데 괜히 말이 나오게 된 바람에 벌써부터 퇴근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날이 가면 갈 수록 증가하는 스트레스 지수와 함께 머리털 수가 줄어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식혔다.
“…???”
너무나도 판타지같은 이씨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던 윤재혁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