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8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89화(189/245)
189
최근들어 화연의 대학 생활에는 큰 변환점이 찾아왔다.
“화연 선배! 결혼 축하드려요!”
“….”
“야, 결혼을 했으면 진작에 말을 해줬어야지. 결혼식에 초대도 안하는게 어딨냐?”
“….”
“결혼 축하한다 화연아. 혹시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올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렴.”
“….”
…대학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 마다 결혼에 대해 축하받는 일이 거의 무슨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보통 결혼 했다고해서 이렇게까지 관심 주는 일은 없지 않아…?”
점심시간의 식당에서, 화연이 벌써부터 기운이 다 빠졌다는 듯한 얼굴과 함께 마주편에 앉은 임수아에게 한탄을 늘어놓았다.
“야, 그래도 사람들이 뒷담 안까고 축하라도 해주는게 어디야. 운이나 좋은 줄 아셔.”
“그렇긴 한데… 이거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평소에 말도 잘 안 걸던 사람들까지 다가와서 축하를 하려드니 피곤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다. 가뜩이나 평소에 사람이 많이 꼬이는 걸 질색하는 편이었던 화연은 퀭한 얼굴로 모처럼 제대로 나온 학식 돈까스를 이 악물고 임수아에게 넘겨주며 샐러드를 질겅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녀서 죽을 맛인데 진짜…”
“그러게 누가 결혼한지 한달만에 임신하래? 인과응보야 인과응보.”
지난 술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헤프닝으로 결혼 사실이 탄로나게 되었던 그 다음날, 화연은 가장 친한 친구인 임수아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차피 모두에게 결혼이 탄로나게 된 이상, 임신 사실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소문내고 다닐만한 소식도 아니기에 아직 대학 동기들 중 임수아를 제외하면 그녀의 임신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근데 진짜 깜짝 놀랐다 야. 우리 사회복지학과 여신인 화연 씨가 결혼한 유부녀인 것도 모자라, 애가 셋이나 되는 엄마였다니 말이야. 누가 알았겠어?”
“놀리지 마. 여신은 무슨, 과대포장도 참 잘해요.”
“진짜라니까? 너 그날 남자들 표정 못봤어? 니가 유부녀라는 걸 알자마자 다들 눈빛이 멍해져가지고는 술을 막 마시던데.”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나 때문이 아니라.”
화연이 임수아의 말을 부정하며 그릇을 비웠다. 입덧 때문에 고기는 꿈도 못 꾸면서도 자꾸만 먹지도 못하는 돈까스에 눈독을 들이는 그녀의 시선을 느낀 임수아는 참으로 딱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조각 줄까?”
“…아니야 됐어. 또 토하긴 싫거든.”
“그래? 입덧이란게 진짜 심하긴 심한가보네. 난 솔직히 그거 다 사람들이 오바떠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까 진짜더라구…”
아마 다이어트를 빡세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입덧만큼 식욕을 팍 떨어뜨리게 만드는 게 따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화연은 그림 속의 떡이 되어버린 돈까스를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을 내쉬었다.
“어? 저거 민정훈 선배 아니야?”
“?”
돈까스를 혼자서 맛나게 먹다가 말던 임수아가 저 멀리서 여자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있던 민정훈을 가리켰다.
“쯧, 맨날 저렇게 여자 후배들하고만 어울려 다니니까 구린 소문이 돌지. 화연이 너 저 사람하고 최대한 안 엮이고 있는 거 맞지?”
“걱정 마. 엮이라고 해도 엮이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지난 술자리에서 어렴풋이나마 민정훈의 본성을 엿볼 수 있었던 화연은 살짝 차가운 시선으로 저 멀리 앉아있던 과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수아야. 저 선배 말이데, 정확하게 어떤 소문이 돌았던거야?”
“….”
이참에 저 인간에 대해서 미리 알아두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화연이 묻자, 임수아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너 작년 MT 기억나지? 그 왜 그때 1학년생들이 대부분 다 여자였었잖아.”
“아니. 기억 안나는데.”
“아… 맞다. 기억 못할 수도 있겠네. 너 그때 가자마자 술 퍼마셔서 필름 끊겼었지?”
“그… 그랬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화연은 본인 스스로도 얼마나 술을 퍼마셨으면 아예 기억이 끊길 수가 있는지 놀라워하며 조금 반성했다.
“아무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없었어. 선배들이 술 퍼마시는데 후배들이 어쩌다가 끼는 바람에 다들 뻗었었거든.”
“뭐야. 난 또 뭐라고, 듣기만 해서는 그냥 평범한 MT잖아.”
“그래… 그렇지. 근데 그날밤에 민정훈 선배가 조금 이상했었거든.”
“? 이상했었다는게 무슨 소리야?”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별 일이 없었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임수아의 말에 화연은 사람 헷갈리게 만들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물었다.
“내가 말 했었지? 후배들도 선배들 따라 다 뻗었었다고. 근데 그날밤에 1학년 여자애 한명이 갑자기 사라졌던거야.”
“사라졌다니…?”
“진짜 말 그대로 애가 감쪽같이 증발했었어. 그래서 다들 뻗어서 정신이 없던 틈에 그나마 멀쩡했던 내가 1학년 애를 찾으러 다녔었는데… 그때 마침 민정훈 선배가 어딜 나갔다 왔는지 차를 타고 돌아왔더라고.”
“….”
“그래서 내가 물었지. 혹시 사라진 1학년 본 적 없냐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러는거야. 갑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길래 자기가 차로 집에 데려다주고 왔다고.”
“…그런데 그 1학년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
이야기의 흐름으로 짐작한 화연이 말하자, 이에 임수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1달 뒤에 갑자기 자퇴했어.”
“….”
확실히 작년 그맘때 쯤에 1학년 한명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자퇴를 하는 바람에 조별과제가 망했다고 불평하던 후배의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자퇴했다던 애가 민정훈이 태워다 준 그 여자애였었구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화연이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 만으로는 딱히 민정훈 선배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는데.”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냥 집에 일이 터져서 자퇴했거니, 하면서.”
보통 선배가 차로 태워다 준 후배가 자퇴를 했다고 하면 그 후배에게 무슨 사연이 생겼으리라고 생각을 하지, 다짜고짜 선배부터 의심하려 들지는 않는다.
“얼마전에 우연히 그 애랑 마주치기 전 까지는 말이야.”
“? 그 1학년이랑 만났어? 어쩌다가?”
한번 학교에서 자퇴한 인물을 다시 볼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딱 2가지 경우 뿐이다. 학교 이전 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던가, 아니면 자퇴한 인물이 다시 복학했다던가 둘 중 하나 뿐.
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말 그대로 아주 우연히 길 가다가 마주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엄마 건강검진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만났어.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혹시 자퇴한거랑 관련이 있는 거냐고.”
“…걔는 뭐라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하더라. 그러다가 나중에 걔 지인한테 들어서 알게됐지. 같은 과 선배한테 시달리다가 결국 못 이기고 자퇴했다고. 그 후로 심리상담도 꾸준히 받고 있고.”
그 괴롭혔다던 선배가 누구인지,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심리상담까지 받아야 할 정도면 대충 어떤 식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솔직히 뭐… 내가 오바 떠는 거일 수도 있고, 증거도 없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하잖아.”
“…확실히 그렇긴 하네.”
임수아의 걱정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일단 민정훈이라는 인간은 조심해야 한다. 이전에 있었던 술자리에서 자꾸 태워다주겠다고 집요하게 굴던 것도 있고, 겉과 속이 다른 말로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려던 것도 있고.
그렇게 화연은 친구의 말에 동의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저 멀리에 앉아있는 민정훈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
“…?”
후배와 함께 대화하며 밥먹는 도중, 자꾸만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민정훈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세요 선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혹시 감기 걸리신거 아니에요? 몸 조심하세요.”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후배의 걱정에 민정훈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또 다른 후배 하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며 최근들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선배도 들으셨어요? 그 왜 최근에 결혼했다던 모델 뺨칠 정도로 예쁜 3학년 선배 이야기.”
“….”
화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일순간이지만 민정훈의 미소가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후배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화연이 말이야? 물론 들었지. 같은 과 후배인데.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아니, 그냥 신기하다 싶어서요. 요즘시대에 저렇게 빨리 결혼하는 사람들 보기가 되게 드물잖아요.”
“…하긴 그렇긴 하지. 아마 사연이 있어서 그런걸꺼야.”
민정훈이 후배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맞장구를 쳐주며 그렇게 적당히 미끼를 흘렸다. 그러자 여자 후배는 덥썩 미끼를 물어버리며 민정훈이 의도한대로 되물었다.
“사연이라니요?”
“그냥 그런게 있어. 아무래도 민감한 이야기일 수가 있어서 꺼내기가 좀 그런데…”
겉으로는 말해주기가 어렵다고 하는 듯 했지만 애초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화연이 걔, 고등학생 때 실수로 애를 가졌었나봐.”
“헐. 대박, 진짜요?”
“그럼. 그것도 애가 두명이나 되던데. 아마 어렸을 때라 철이 없었을거야.”
100%의 거짓말 보다는 거짓과 진실을 적당히 배합해 섞은 거짓말이 더욱 남을 속이기가 쉽다. 어떤식으로 해야 상대방이 거짓말을 믿게 만들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던 민정훈은 그렇게 사실과 거짓을 오묘하게 섞어 후배에게 퍼뜨렸다.
“그러니까 결혼 한 거 가지고 너무 뭐라고 하진 마. 본인한테는 별로 안 좋은 기억일테니까.”
“네… 그런거였구나…”
후배가 처음 알았다는 듯이 놀라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너무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지 말라던 민정훈이었지만, 그는 그런다고 해서 눈앞의 후배가 자신의 말에 따르는 일은 없을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애당초 처음부터 입이 가벼운 후배인 걸 알고서 이 이야기를 은근슬쩍 흘려준 것이었기 때문에.
‘…이 소문이 퍼지고 나면, 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과연 늘 당당하고 기가 센 모습을 하던 화연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그렇게 민정훈은 본인의 뒤틀린 성정을 미소로 감추며 나지막히 저 멀리 앉아있던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꿈에도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