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9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90화(190/245)
190
“…그래서 그 뒤가 구린 놈 조사하려고 날 불렀다?”
오후에 다짜고짜 전화로 불려나온 이한성이 불만어린 목소리로 조수석에 앉은 화연에게 항의하듯 물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면 차가 있는 편이 더 편할 것 같아서 부른건데… 미안, 혹시 바쁜 와중에 온거야?”
“…아니 딱히 바쁘지는 않았는데.”
가게 일이야 애들한테 맡겨둬도 충분하니 딱히 바쁘다고 할 일은 없다. 실제로 이렇게 화연에게 불려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집의 소파에 누워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던 이한성은 바빠서 생색내는 건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 남 뒷조사 하는데 꼭 내가 필요하냐, 이 말이지.”
굳이 차 같은 거 없어도 텔레포트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운전기사가 어디 필요하다는 것일까.
“아, 그거 말인데. 나 당분간은 마법 못써.”
“뭐?”
“정확하게는 거창한 마법만 못 쓴다고 해야하나…”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거야?”
얼마 전 까지만 했어도 정체 숨길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마법 사용을 남발하던 엘프가 갑자기 마법을 못 쓴다고 말하니,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나 지금 임신 중이잖아. 과도한 마력 사용은 아이한테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거든. 뭐… 기억 삭제 마법이나 수면 마법 정도야 가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텔레포트나 번개 같은 건 위험해.”
임산부에게는 무리한 운동은 금물인 것 처럼, 무리한 마법 사용 또한 금물이다.
게다가 화연의 경우에는 뱃속의 아이가 그냥 아기도 아니고 하프엘프. 하프엘프들은 그 어떠한 존재들보다도 마력의 성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주의가 요구된다.
“…임신이란거, 되게 불편한거였네.”
입덧 때문에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도 잘 못해, 마법도 조심해서 써야 돼, 뭐 이리 안되는 것도 많은 것일까. 그렇게 이한성은 참으로 딱하다는 듯이 화연을 바라보며 차를 병원으로 몰았다.
“근데 왜 하필이면 병원으로 가자고 한거야?”
“그때 자퇴했다던 사람, 아직도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고.”
“…이 병원에서?”
많고 많은 병원들 중에 왜 하필이면 또 이 병원인 걸까.
박태식 교수와 강수철 교수가 일하고 있는 병원. 아무리 주변에 큰 병원이 여기 뿐이라지만 이쯤되니 이 병원이 무슨 버뮤다 삼각지대에 속해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그렇게 이한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주차장에다 차를 세웠다.
“뭐… 일단 도착했으니까 내려-”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며 무의식적으로 백미러를 들여다 본 그 순간, 이한성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말을 도로 삼키고 말았다.
왜냐하면 백미러를 통해 비춰진 뒷좌석에서 보이지 말아야 할 존재가 떡하니 자리를 잡은 채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 갑자기 왜 그래?”
“…아니,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건가, 싶어서.”
갑자기 반응이 이상한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따라 조용히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뭘 봐.”
“….”
찰랑이는 흑발에 귀여운 포니테일. 거기에 푸른 눈동자가 더해져 귀여움이 배로 상승한 듯한 외모와는 다르게, 전혀 귀엽지 않은 띄거운 표정.
그렇다. 뒷좌석에는 언제부터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는지 모를 세리가 평소와 다를게 없는 눈빛으로 제 부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처음부터.”
이한성의 물음에 세리는 단답으로 차갑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있었다고? 근데 왜 나도 그렇고 화연이 까지 눈치를 못채고 있었지??
운전중에 백미러를 여러번이나 들여다보았지만 세리의 모습은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단 한번도 비춰진 적이 없었다. 게다가 세리가 방대한 마력을 지닌 드래곤인 이상, 차에 올라타 있던 순간부터 화연이 눈치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차에 타고 있던 세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세리는 줄곧 고도의 은신 마법을 사용해 모습과 기척 그 자체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화 마법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마법.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모습을 숨기는, 대마법사에게도 불가능한 드래곤의 마법.
이세리라는 소녀는 그러한 존재다. 고룡의 피를 이어받은 최후의 용.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어 신조차도 위협할 수 있는 초월자의 핏줄. 이론과 계산을 통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저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는 존재.
물론 이 세계에서는 그저 이씨 가문의 말 안듣는 둘째 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라, 너 왜 여깄냐?”
몰래 따라온 건 둘째치고 어째서 따라왔는지가 더더욱 궁금했던 이한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로 물었다.
평소의 세리는 설명이 달리 필요 없을 정도로 제 언니만 쫓아다니는 수정이 바라기. 한시도 수정이의 곁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누구라도 수정이에게 한소리를 하려고 하면 박박 살기를 뿜어내며 위협하려드는 언니 바보다.
그런데 그런 세리가 수정이를 놔두고 이한성과 화연을 따라왔다?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심심해서.”
“심심해서라니…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수정이랑 놀던가.”
“언니는 그 여우같은 인간 계집애 집에 놀러갔단 말이야.”
“여우같은 인간 계집애? 요거 5살 짜리 주제에 말본새 한번 참…”
…그나저나 여우같은 인간 기지배는 또 누구야? 설마… 그 맨날 수정이랑 같이 놀러다니는 친구인가? 분명 이름이… 하나였지?
“언니는 그런 하등한 인간 따위가 뭐가 좋다고…”
“…얌마, 나도 인간이거든? 그리고 수정이도 반은 인간이야 이것아.”
“….”
이한성의 말에 세리는 조금도 반박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렇게 말문이 막혀버린 세리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고, 이에 화연 또한 웃으며 세리에게 말했다.
“세리야. 넌 어째서 인간이 하등하다고 생각하는거니?”
“약하니까.”
영겁 불멸의 세월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강철의 육체를 지닌 것도 아니고, 쉽게 병에 걸려 죽는다. 인간이란 그러한 존재.
반면 그런 인간에 비해 세리는 드래곤. 고룡, 파프닐의 직계. 마음만 먹는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세상 전체를 힘 하나 안들이고 멸망시킬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러니 그런 세리에게 있어 인간이 그저 하등한 존재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 너보다 약한 수정이는, 하등한 언니인거야?”
“아니야! 수정이 언니는 하등하지 않아!!”
“하지만 인간이 하등한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라며?”
“그, 그건…”
본인의 말에서 모순점을 콕 집혀버린 세리는 말끝을 늘어뜨리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제아무리 위대한 고룡이라 한들… 결국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지 수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존재니까.’
위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저 어린 아이에 불과한 존재. 선천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지혜를 지닌 채 태어나는 드래곤이기에 누구보다도 아는 것이 많지만, 그럼에도 아직 아이일 뿐이기에 이해는 하지 못한다.
세리가 말하는 인간의 하등함은 그저 질투, 짜증, 화풀이를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일 뿐. 결코 인간이 약하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하등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하등하다고 여기는 것.
“…모르겠어.”
세리가 자신감이 없어진 목소리로 나지막히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그런 세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도 괜찮아.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면 되니까.”
“….”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인간을 하등하다고 섣부르게 말하지 말자. 인간에 대해 잘 알게 된 다음에도, 그들이 하등한지 어떤지에 대해서 판단하기에는 늦지 않으니까.”
“…응.”
세리를 타이르는 화연의 말이었지만, 그중 절반은 세리에게 하는 말이 아닌 그녀 본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도 지금껏 인간들과 함께 질릴 정도로 함께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깨닫지 못했지.’
세상에 인간만큼 이해하기 힘든 존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같은 종족임에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 존재들이며, 선인임과 동시에 악인이기도 한 이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평화만을 추구하는 엘프, 강함만을 추구하는 오크, 이익만을 추구하는 고블린, 그리고 파괴를 추구하는 드래곤과는 다르다.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강함을 쫓고, 그와 동시에 이익을 계산하며 파괴를 행하는 존재들.
그러한 존재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이 세계가 수명을 다할 때 까지 관측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거 철학적인 얘기들은 그쯤하고 빨리 내리시지??”
뭔가 되게 분위기 있는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 기다리다 못해 참을성이 증발해버린 이한성이 이야기에 난입하며 세리의 볼따꾸를 꼬집어 잡아당겼다.
“아팟!? 무, 무슨 짓이야!!”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볼을 꼬집혀버린 드래곤 소녀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항의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그렇게 항의하는 세리를 붙잡아 안아다가 차에서 내리게 했고, 그대로 잔소리를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요컨데 꼬맹이 주제에 버릇없게 다른 사람 하대하고 그러지 말라는거잖아. 그 간단한 얘기를 뭐 그리 분위기 잡고 질질 끌고 난리야?”
“….”
세상에 드래곤을 저렇게나 평범한 아이처럼 막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리를 완전 애 취급하며 볼따구를 잡아당기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그렇게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 너도 수정이 만만치 않게 볼따구가 말랑말랑하다?”
“아 저리가!! 하지말라고!”
“어쭈구리? 아빠가 볼따구 좀 만지겠다는데 감히 반항을 해? 이건 못참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러주마.”
“으햐악?!”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려버린 세리는 그대로 요상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런 세리의 반응에 재미를 톡톡히 느낀 이한성은 계속해서 세리의 옆구리를 공격하며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고, 이에 고룡의 후예는 한낱 인간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해버리고 말았다.
“그, 그만..!!”
“어허, 그만해주세요- 라고 해봐.”
“시, 싫어!!”
“그럼 됐고. 속도를 더 높히는 수 밖-”
[짜악!!]경쾌하고 찰진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이한성의 목소리는 그대로 끝을 맺지 못하고 끊겨버리고 말았다. 화연이 내지른 필살 등짝 스매싱이 그 원인이었다.
“고만해! 애한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장난에도 정도가 있지…”
“컼… 아니 옆구리 찌르는게 뭐 어때서…”
“애가 울잖아! 못 말려 진짜…”
화연이 이한성의 손길로 부터 세리를 구해내며 품에 안고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된통 농락당해버린 세리는 그대로 화연의 품에 꼬옥 안긴 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이한성을 째려보았고, 이내 조용히 화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니? 옳지~ 이제 괜찮아.”
“히잉… 흑…”
“….”
…아니 왜 나만 나쁜놈이 된 건데? 보통 아빠들은 애들하고 다 이런 식으로 놀아주지 않나…?
본인의 장난이 꽤 심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이한성이 홀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연과 세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삐져버린 세리는 이한성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았고, 화연은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되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 이후로 세리가 화연을 아주 잘 따르게 되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